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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43화 (143/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43화

* * *

“그래서 이제 끝인가?”

“예, 이제 더 이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 드디어 끝난 건가.”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파벨 영지이니 이게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3황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불길에 휩싸여 타고 있는 마물의 사체를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태운 마물의 사체가 몇이지?”

“오십은 넘습니다.”

“…….”

3황자는 살짝 질린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많은 마물을 암브로시아가 전부 다 죽였다는 거지?”

“네, 맞습니다. 지금 암브로시아가 닦아 놓은 길을 그대로 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뒤처리를 안 했지?”

“……글쎄요.”

3황자의 수하 또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암브로시아가 갔던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처럼 마물의 사체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3황자 일행은 그 뒤처리를 하느라 점차 속도가 더뎌지고 있었다.

“암브로시아는 대체 돈이 얼마나 썩어나는 거야?”

3황자의 입에서 볼멘소리가 나온 것은 당연했다.

마물의 사체는 가죽부터 심장, 그리고 가끔 나오는 마력석까지. 제대로 잘 분리한다면 아주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

알톤 영지가 크롬벨 제국의 가장 구석에 박혀 있으면서도 황실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유가 다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암브로시아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단 하나도 챙겨 가지 않았다.

심지어 뒤에 따라올 3황자에게 ‘너나 챙겨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주 깔끔한 솜씨로 마물들을 처리한 게 너무나 눈에 잘 보였다.

“우리는 지금 저만큼을 챙기고도 아쉬운데 말이야.”

3황자는 마물들에게서 쓸 만한 것을 빼낸 걸 모아 놓은 마차를 바라보았다.

이미 가득 채워 버려 더는 담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알톤 영지에서 해야 할 일도 많고, 이 이상 속도를 늦출 순 없어서 이젠 보이는 마물은 그냥 태워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아아……, 아까워라.”

3황자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마물 사체를 바라보았다.

황위 다툼은 권력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결국 돈의 싸움이기도 했다.

황실에서 황자들에게 할당해 주는 금액도 천문학적인 수준이지만 황제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싸움은 그 이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더는 챙기지 못하고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몹시 속이 쓰렸다.

“근데 암브로시아에서 우리가 좀 늦게 도착하길 바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건 내 착각일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암브로시아 입장에서도 일정을 서둘러야 하니 이렇게 마물들을 수습하지도 않고 갔겠지요.”

“그렇겠지? 근데 왜…….”

지나가는 길 곳곳에 마물의 사체를 도축하기 좋게 놓아두고 간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심지어 저 멀리서 죽여 놓고는 3황자가 지나가는 길에 볼 수 있도록 끌고 온 흔적도 있었다.

아주 정성스럽게 말이다.

“…….”

“…….”

3황자는 잠시 수하와 시선을 교환했다.

하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다시 말에 올랐다.

“어쨌든 이미 챙길 대로 챙겼으니 우리도 서두르자. 일리오르 형님께서는 이미 알톤 영지에 도착하셨다니 말이야.”

“예, 3황자 전하.”

3황자의 명에 수하들은 일사불란하게 마물들의 사체를 정리하고 다시 출발할 준비를 하였다.

이미 전서구를 통해 암브로시아가 파벨에 도착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나면 암브로시아 일행에 합류한 마법사가 순간 이동 마법을 통해 알톤 영지로 한 번에 이동하기로 했다.

‘그 마법사가 밀런 소백작이란 말이지…….’

지금 그는 암브로시아가 숨기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라 밀런이 마법사라는 것. 그리고 암브로시아 공작저에는 그녀의 제자인 마법사가 둘이나 더 있다는 것.

황제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3황자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사실을 아는 것으로 인해 2황자보다 3황자가 황위에 조금 더 가까워진 건 사실이었다.

암브로시아에게 페넬로아와 일렉사를 맡기며 협력 관계를 구축했으니 말이다.

‘내 약점을 암브로시아 공작에게 쥐여 준 셈이지만.’

잃는 것이 있어야 얻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 대가로 그는 암브로시아의 전력이 있었으니까.

페넬로아의 말로는 사라 밀런의 제자 둘은 그녀가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할 자들이라고 했다.

정확하게는 ‘밀런 소백작이 뒤지라면 진짜 뒤질 인간들.’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그렇다는 것은 그녀가 암브로시아에게 깊은 호의를 가지고 있고, 암브로시아에 무슨 일이 있다면 전력을 다해 나서게 될 것이란 뜻이었다.

그녀의 제자인 두 마법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엄청난 일이었다.

‘그 힘을 제국이 쓸 수 있다면 대륙을 지배하는 것도 꿈은 아니지.’

지금 황제가 평생에 걸쳐서 염원했던 것이 있다면 이 크롬벨 제국이 대륙 유일의 제국이 되는 것이었다.

그걸 알기에 에단 암브로시아 또한 황실의 문제에서 한발 뒤로 물러서 있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가 황제가 될 생각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3황자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더 빠르게 몰았다.

만일 그가 황제가 되더라도 평생 동안 에단 암브로시아의 눈치를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황제로서 자존심이 상한다면 상할 일이겠으나, 사실 3황자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야 우리 페넬로아랑 일렉사랑 오손도손 살기만 하면 됐지.”

3황자는 그것이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대의 황제는 암브로시아에게 자존심 따위 세우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일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 1황자가 지금 어떤 꼴이 됐는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일리오르 형님은 어떨까.”

2황자인 일리오르 크롬벨은 과연 그럴 수 있는 인물일까.

“흠.”

3황자는 지난번 암브로시아 저택을 함께 방문했을 때 사라 밀런을 보던 일리오르의 눈빛을 똑똑히 기억했다.

과연 일리오르의 그 감정을 암브로시아에선 어떻게 받아들일까.

알톤으로 떠나기 전, 페넬로아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있잖아, 일레온. 아무래도 암브로시아 공작님과 밀런 소백작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래?’

페넬로아는 마치 꿈이라도 꾸는 얼굴이었다.

3황자는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었다.

‘응, 아무래도 두 사람…….’

‘그런데 페넬로아. 지금은 나한테 집중해 주면 안 될까?’

3황자는 알톤으로 가기 전 페넬로아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뒷말을 듣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이 뭐란 말인가.

그걸 알아야 2황자의 처우가 어떻게 될지 예상해 볼 수 있었을 텐데.

“하…….”

3황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자제하려고 해도 페넬로아 앞에서는 그가 대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의 앞에서 냉철한 이성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다쳐서 오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음, 간호해 주는 게 아니라 죽인다고?’

‘응. 죽일 거야. 병간호하면서 마음고생 하느니 차라리 깔끔하게 죽이는 편이 나아.’

‘페넬로아……, 그 정도로 나를 걱정해 주다니. 너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물론이야. 그러니 죽기 싫으면 멀쩡히 돌아오도록 해.’

‘응, 꼭 그럴게.’

페넬로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는 3황자의 얼굴이 황홀감에 물들었다.

방금 전까지 암브로시아와 2황자에 대해 계산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로.

“주군, 곧 파벨에 도착합니다!”

“암브로시아 공작이 마중을 나와 있습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때 먼저 파벨 쪽으로 보냈던 3황자의 수하들이 돌아왔다.

잠시 페넬로아를 떠올리며 두둥실 떠올랐던 3황자는 다시 찬물을 맞은 것처럼 가라앉아 버렸다.

“하아. 만나 봐야지.”

언제 헤벌쭉 웃고 있었냐는 듯 그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진짜 일하기 싫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만 그건 암브로시아 공작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빨리 오셨군요.”

암브로시아 공작은 노골적으로 떨떠름한 얼굴을 감추지 않은 채 3황자를 바라보았다.

“예, 최대한 속도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3황자는 정중하고도 호의가 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도 덕분에 값비싼 마물의 부산물도 챙길 수 있었고, 오는 중에 마물들과 소모전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3황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암브로시아 공작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준비해 둔 마물이 부족했나.”

“……예?”

“쯧.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리로 오시죠.”

암브로시아 공작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곤 무심한 얼굴로 뒤를 돌아 파벨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3황자는 생각했다.

‘……빨리 오면 안 됐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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