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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49화 (149/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49화

* * *

클로드의 방 창문에서 끊임없이 거대한 마력의 창이 쏘아졌다.

그것들은 암브로시아 저택으로 떨어지는 마물들을 향해 일말의 자비도 없이 적중했다.

창밖으로 마물들의 비명이 천둥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모닥불에 재가 날리는 것처럼 힘없이 타 죽은 마물들의 사체를 보며 벨루나는 질린 것처럼 중얼거렸다.

“신난 걸 용케 참고 있군.”

벤야민의 성격상 이런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밖으로 튀어 나가 살육의 축제를 즐겼을 것이다.

얌전히 클로드의 방 안에서 마력 창이나 날려 대고 있다는 건 그에겐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마력의 효율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고 날리는 마법은 아주 하나하나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제 성질을 한껏 참아 낸 것처럼 말이다.

“그래, 다 죽여라 다 죽여.”

그 압도적인 광경에도 벨루나는 그저 덤덤한 얼굴로 주섬주섬 옷가지 등을 정리했다.

태연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바깥 상황은 저것으로 얼추 정리가 될 거라는 믿음마저 엿보였다.

잔뜩 겁에 질린 채 서로를 끌어안고 모여 있던 사용인들은 오히려 그 모습에 안심했다.

그들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벨루나 님, 집사님과 시녀장님이 보이지 않는데,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찾았어요.”

벨루나는 길게 뽑아 저택 곳곳으로 보낸 마력의 실에서 넋을 놓고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는 메이의 기척을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곁에는 베론과 론다가 바닥을 질질 기며 기어 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환각 마법에 당해 저택을 헤매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녀는 더러운 기분에 이를 갈았다. 벨루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마법이었다.

‘공포로 눈이 멀게 하는 마법이니, 벤야민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잔챙이 같은 마물들에게 잡혀 죽기 딱 좋지.’

다행히 그녀는 이 마법의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용인들을 두고 잠깐 자리를 비워야 했다.

벨루나는 힐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저택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놈들은 어쩔 수 없다! 쫓지 말고 대열을 지켜!”

“죽은 마물들은 밀어내고 뚫린 곳은 사체로 막아!”

저택에는 에단과 사라를 따라나서지 않고 남은 암브로시아 기사단이 있었다.

그들은 벤야민의 매서운 마법을 피해 땅을 밟은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방어에 치중해! 마물을 쫓느라 이탈했다간 모두 죽는다!”

남은 기사단의 숫자보다 벤야민의 마법에서 살아남은 마물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기사단은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맡긴 채 둥그런 대열을 유지하며 마물을 상대했다.

월등한 실력을 갖춘 암브로시아 기사단이었지만, 워낙 수가 차이 나다 보니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으로 마물들이 침입하고 있었다.

아마 이대로 가다간 마물들이 이곳을 덮치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최대한 빨리 간다고 해도 환각 마법을 파훼하려면 적어도 10분은 걸려. 마물들이 여기까지 당도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야.’

지금 당장 허공에서 쏟아지는 마물들을 처리하고 있는 벤야민에게 도움을 요청할 순 없었다.

그가 공격을 멈춘다면 밑에서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는 기사단이 위험해진다.

‘소수를 위해 다수를 버리고 움직이느냐…….’

벨루나는 잠시 고심했다.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녀가 고민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이 벨루나에게 다가왔다.

“저희는 괜찮으니 다녀오십시오.”

“하지만 곧 마물들이 인간의 냄새를 맡고 이리로 향할 텐데…….”

벨루나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밖에서 기사단의 칼날에, 그리고 벤야민의 마법에 픽픽 쓰러지고 있지만 마물은 마물이었다.

그것도 하나하나 흑마법으로 개량된 키메라들.

한 마리만 있어도 작은 마을 하나쯤은 지도에서 쉽게 지워질 수 있었다.

“벨루나 님이라면 금방 다시 돌아오실 테니까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습니다.”

“맞아요, 그러니까 빨리 다녀오세요.”

“집사님과 시녀장님이 다치시면 어떡해요.”

사용인들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벨루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 겁도 없는 적극적인 손길에 벨루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건 보통 마물들이 아닙니다. 방문을 잠근다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이…….”

등을 떠미는 손길을 피해 뒤를 돌아본 벨루나의 말이 천천히 느려졌다.

“……?”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이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병장기들을 하나둘씩 들어 올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철퇴를, 누군가는 창을, 누군가는 커다란 도끼를, 누군가는 검을 들었다.

그것을 잡는 폼이 퍽 익숙해 보여서, 벨루나는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당혹감이 어린 벨루나의 얼굴에 암브로시아 사용인들은 민망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희도 제 몸 하나는 지킬 줄 압니다.”

“맞아요, 약한 자는 암브로시아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제 몸 하나 지킬 줄 모르는 자는 암브로시아에 고용될 수 없어요.”

체구가 작은 몇몇 시녀는 품속에서 작은 암기를 꺼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끼우며 생긋 웃었다.

며칠 전까지 벨루나의 머릿결을 만져 주며 꺄르르 웃던 시녀들이었다.

그녀들이 꺼낸 암기들은 하나하나 손질이 잘되었는지 서늘한 예기를 뿌리고 있었다.

“아까는 좀 무서웠는데……, 이제야 좀 정신이 차려지네요.”

“누구나 그 숫자를 보면 정신 못 차리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밑에서 기사님이 대부분 처리해 주고 있으니까 우린 몇 마리만 상대하면 돼.”

사용인들은 저들끼리 웃으며 대화했다. 이제 몇몇은 창가에 다가가 열심히 싸우는 기사단을 응원하기도 했다.

“…….”

그 모습들을 보며 벨루나는 여태 자신이 보아 왔던 사용인들은 대체 누구였는지 진지하게 고심하기 시작했다.

“주인님이 안 계신다고 바로 암브로시아에 쳐들어오다니.”

“우리가 너무 얕보였나 봐요.”

“주인님이 계셨으면 감히 시도도 못 했을 일인데.”

하지만 고민도 잠시. 저들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떠올린 벨루나는 바로 납득했다.

“과연 에단 암브로시아 공작.”

그 주인을 닮아서 집안 사용인들조차 보통이 아니었다.

“그럼 빠르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때까지만 이곳에서 버텨 주세요.”

“맡겨 주세요. 저희도 몇 번 상대해 보면 감을 잡을 테니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네.”

방금 전까지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보다도 더 든든해 보였다.

벨루나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곧바로 양발에 마력을 실어 밖으로 튀어 나갔다.

“다녀오세요!”

남은 사용인들은 머리 위로 크게 팔을 흔들며 벨루나를 배웅했다.

그리고 벨루나가 완전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그들의 눈빛이 곧바로 변했다.

“후……, 긴장되지만 다들 배운 대로 합시다.”

“그럼요. 벨루나 님이 금방 오실 테니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설마 못 버티겠어요?”

사용인들은 희미하게 떨리는 손을 감추며 각자의 무기들을 고쳐 잡았다.

벨루나에게는 강한 척을 하긴 했으나, 저런 마물들을 상대하는 일은 사용인들로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의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다들 마물들이 아름다운 암브로시아 저택을 어떻게 망쳐 놓을지 생각해 봐요.”

“아, 안 돼……. 내 정원!”

가장 먼저 울부짖은 건 정원사였다. 그의 핏발 선 눈이 마물들이 짓밟고 있는 정원을 향했다.

“용서 못 해.”

그의 손에 잡힌 가지치기용 가위가 새파랗게 빛났다.

“저 더러운 발로 저택을 활보하겠지?”

“침도 뚝뚝 흘릴 거야.”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하녀와 시종들이 각자 꺼내 든 무기를 쥐며 분노했다.

“주인님의 드레스 룸으로 놈들이 가면 어떡하지?”

“귀중품을 건드리면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시녀들 또한 살기를 흘리며 앞으로 나섰다.

저 멀리서 마물들의 울음소리가 점차 이리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암브로시아를 지켜 냅시다.”

“지켜 냅시다!”

“죽이자!”

“피를 볼 시간이다!”

사용인들은 서로를 북돋아 주며 무기들을 고쳐 잡았다.

암브로시아의 숨겨진 전력이 전투할 준비를 마쳤을 때.

“……흐음.”

저 멀리서 이 모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올리븐이 못마땅한 신음을 흘렸다.

“암브로시아가 잘도 버티고 있네. 뭐, 벤야민 그놈 덕분이겠지만.”

한 점의 온기도 없는 올리븐의 목소리는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음에도 평온했다.

마치 이렇게 될 걸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스승님이 계셨다면 바로 끝났을 텐데……. 역시 안 계시잖아?”

올리븐은 입술을 비틀며 희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 흑마법사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긴. 조금 더 흔들어 놔야지. 지금은 작은 틈조차 보이지 않잖아.”

올리븐은 클로드의 방에서 끊임없이 쏘아지는 마력의 창을 무감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벤야민이 저렇게 얌전히 꼬맹이를 지키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 정도까지 했으면 열 받은 벤야민이 올리븐을 죽이겠다고 튀어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그걸 꾹 참고 저렇게 마력 창만 날려 대다니. 벤야민답지 않았다.

“암브로시아가 우리 애들 다 버려 놨어. 스승님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올리븐은 못마땅함을 감추지 않은 채 으득,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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