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50화 (150/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50화

“단체로 홀리기라도 한 거야, 뭐야.”

올리븐은 스산하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암브로시아의 저택 아래로 내려앉았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웠던 암브로시아 저택이 이렇게 혼란에 휩싸여 비릿한 피 냄새를 풍기는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이런 모습이 어울렸다. 그 괴물 같은 공작이 머물기에는.

“쓸데없는 것에 시간 끌지 마. 그 꼬맹이만 데려간다.”

“……벤야민이 지키고 있는 것 같은데.”

올리븐을 따라 암브로시아 저택 내부로 들어온 흑마법사들은 불안하다는 듯 시선을 교환했다.

벤야민의 마법은 마탑에서 대장로 바로 아래라고 해도 될 만큼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상대할 생각을 하니 얼굴이 희게 질리는 것도 당연했다.

“벤야민이 누군가를 지키는 모습이 상상이 가?”

“아니.”

“우리는 벤야민이 열 받아서 날뛸 수 있게 만들어 주면 돼. 그럼 틈은 생길 테니까.”

“……누가 열 받게 할 건데?”

“당연히 내가 하지. 나만큼 벤야민을 열 받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

올리븐은 그 사실이 굉장히 자랑스럽다는 듯 어깨를 쭉 펴고 가슴을 내밀었다.

다른 흑마법사들은 그런 올리븐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이를 따라야만 하는 처지라니.

제아무리 흑마법에 대한 갈증에 목이 말랐어도 잘못된 우물을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그럼 가 볼까? 그 건방진 꼬맹이가 스승님 없이도 그렇게 눈을 새파랗게 뜰 수 있는지 지켜보자고.”

올리븐은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향했다.

그런 그를 조용히 지켜보던 흑마법사들은 한숨과 함께 그 모습을 조용히 감추었다.

그들은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끄에에에엑.”

벤야민의 손짓 하나에 클로드의 방까지 쳐들어왔던 마지막 마물이 명을 달리했다.

쉴 새 없이 마력 창을 날린 벤야민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마지막으로 마물의 사체에 확인 사살을 했다.

푹, 하고 마력 창이 사체에 박혀 들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끈적한 초록색 피가 벤야민의 뺨에 튀었다.

“……더럽군.”

벤야민은 옷자락으로 마물의 피를 쓱 닦아 내며 뒤를 돌아 클로드가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너 괜찮냐.”

덤덤하게 건네는 안부에 클로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아저씨 눈에는 이게 괜찮은 것처럼 보……, 우웩.”

아이의 작은 입술 사이로 토사물이 쏟아졌다.

아까부터 펼쳐진 잔인하고도 두려운 광경에 역겨움이 밀려든 것이다.

“암브로시아 공자……, 괜찮아요?”

“우우.”

페넬로아가 황급히 클로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자 클로드는 눈에 잔뜩 눈물이 고인 채로 또 토사물들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저런.”

페넬로아는 안타깝다는 눈으로 클로드를 보았다.

그러면서 아예 기절해 버린 일렉사를 바라보았다.

‘차라리 우리 일렉사처럼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클로드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끝까지 벤야민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넬로아가 눈을 가려 주려 했지만 손길을 뿌리치며 꿋꿋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벤야민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클로드의 시선은 끝까지 그 뒷모습에 꽂혀 있었다.

“고작 마물들 좀 죽는 거 봤다고 약한 척하기는.”

벤야민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손에 마력을 담아 클로드의 얼굴을 벅벅 닦아 냈다.

그러면서도 타박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더러운 꼬맹이 같으니라고.”

“아저씨가 더 더럽거든!”

클로드는 바락 대들며 눈을 세모꼴로 뜨고는 벤야민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도 저쪽 뺨도 닦아 달라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벤야민의 손길을 받았다.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페넬로아는 그 모습을 보며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기절한 일렉사를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이제 더 이상 마물들이 들어오지 않는 깨진 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밖에서는 암브로시아 기사단이 칼을 휘두르는 소리와 마물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클로드 님! 무사하십니까!”

그때 벨루나가 클로드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벨루나의 뒤로 메이와 론다, 그리고 베론이 허공에 둥둥 뜬 채 방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을 본 클로드의 안색이 단숨에 환해졌다.

“벨루나 누나!”

클로드가 두 팔을 벌려 벨루나를 향해 달려갔다.

“클로드 님!”

벨루나는 창백한 안색의 클로드를 보며 깜짝 놀라 작은 몸을 안아 들었다.

혹시 다친 곳이 있을까 살피는 시선이 분주했다.

그러다가 다친 곳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그녀의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누나아아.”

벤야민보다 훨씬 더 안심이 되는 벨루나의 품에서 클로드는 안도의 숨을 쉬며 그녀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괜찮으세요? 벤야민 저놈이 방심하진 않던가요?”

“응, 난 괜찮아.”

“무서우셨죠?”

“응.”

벨루나는 제 몸을 꽉 끌어안는 클로드의 몸이 미약하게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클로드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허공에 떠 있는 론다와 베론 그리고 메이를 침대에 눕혔다.

의식이 없는 그들을 보며 페넬로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괜찮은 건가요?”

“네. 잠깐 기절시켰습니다. 환각이 풀리는 마법을 써 두었으니 곧 깨어날 겁니다.”

페넬로아는 아주 창백하게 질린 채로 끙끙 앓고 있는 메이를 보며 질린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까 그 문을 끝까지 바라봤으면 자신과 일렉사가 저 꼴이 될 뻔했다.

“하여튼 벤야민 넌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해.”

벨루나는 클로드의 방을 한번 쭉 둘러본 후 벤야민을 타박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화르륵, 하고 푸른 불꽃이 마물들의 사체를 단숨에 삼켰다.

그뿐만 아니라 방 안 곳곳에 흩뿌려진 마물들의 피도 깔끔하게 태워 버렸다.

“클로드 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이런 건 바로바로 치워야지. 애한테 뭘 보여 주는 거야?”

“내가 어떻게 그것까지 신경 써? 당장 튀어나가고 싶은 것도 참고 있는데.”

“성질 죽인 건 알겠는데, 스승님께서 클로드 님을 지키라고 한 건 정신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만 알아 둬.”

“……알았어.”

사라를 언급하자 벤야민의 불퉁한 얼굴이 단숨에 진중해졌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벤야민을 보며 벨루나는 한숨을 삼켰다.

“저는 다른 사용인들을 확인하러 가 봐야 합니다. 마물들 몇이 저택으로 들어왔으니 인간 냄새를 맡고 그리로 다 몰려들 겁니다.”

“응, 알았어…….”

클로드는 아쉬워하며 벨루나를 꼭 끌어안았다.

벨루나 또한 그런 클로드를 쉽게 품에서 놓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벤야민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빨리 꺼져.”

“알았다고.”

벨루나는 괜히 심술을 부리는 벤야민의 품에 클로드를 덥석 안겨 주었다.

얼결에 클로드를 받아 든 벤야민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건 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우웩.”

“야, 내 옷에 토하지 마!”

벤야민은 헛구역질을 하는 클로드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며 제게서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런 벤야민이 얄미워서 클로드는 더 격하게 헛구역질을 하는 척했다.

“클로드 님 똑바로 지켜. 알았어?”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데려가든가.”

“난 저택 내부의 마물들을 처리한 후에 기사단을 도와야 해. 그러니 넌 얌전히 여기서 클로드 님과 함께 있어. 알았어?”

“알았다고.”

벤야민은 아쉬운 듯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벨루나는 그런 그를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았다.

“누나, 다치면 안 돼!”

“네, 클로드 님.”

클로드의 걱정 어린 응원을 받자 벨루나의 두 뺨이 슬쩍 달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가 여기 남고 싶었다.

“야, 꼬맹아. 나한테도 좀 그렇게 해 봐라.”

“아저씨도 다치지 말든가 그럼.”

“적선하냐?”

“응.”

그녀의 등 뒤로 클로드와 벤야민이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벨루나는 안심하고 클로드의 방을 나설 수 있었다.

그때 페넬로아가 끙끙 앓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하는 일렉사를 고쳐 안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이제 더 이상 마물들이 나타나진 않는 것 같은데.”

그녀는 힐끔 창밖을 바라보았다. 끊임없이 마물을 쏟아 내던 검은 구멍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지.”

“네?”

“이 정도는 그 녀석에겐 환영 인사겠지. 진짜 목적은 따로 있을 테니.”

벤야민은 클로드를 다시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창밖을 노려보았다.

허공 어딘가를 노려보는 벤야민의 시선은 마치 무언가를 똑바로 보고 있는 것처럼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지? 올리븐.”

“이야, 어떻게 알았대. 역시 우리 벤야민, 감은 좋아.”

허공에서 갑자기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리자 페넬로아는 깜짝 놀라 클로드를 자신의 뒤로 보냈다.

“누구죠?”

“아, 그쪽은 처음 뵙네요.”

날 선 페넬로아의 목소리에 허공에서 천천히 사람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유의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벤야민을 바라보는 올리븐의 눈은 예전과는 달리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내 환영 인사는 마음에 들었어?”

“마음에 들 리가. 미친 새끼야.”

벤야민의 손에 다시 한번 마력의 창이 나타났다.

“이번에야말로 죽여 주마.”

“흥, 맨날 말만 그러더라 넌.”

올리븐의 빈정거림에 벤야민의 손에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마력 창이 쏘아졌다.

“이크!”

갑자기 공격할 줄은 몰랐던 터라 올리븐이 황급히 피하며 바락 소리를 질렀다.

“야, 말할 틈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시답지 않은 소리 들어 줘서 뭐 해.”

“너 진짜 정 없다.”

“진짜 정 없는 게 누군데 그러지? 스승님을 배신해 놓고는 말이 많군.”

벤야민은 더 볼 것도 없다는 것처럼 다시 한번 마력을 모아 올리븐에게 쏘아 버렸다.

같은 수에 두 번 당하지 않는다는 듯 올리븐이 가볍게 피하자 벤야민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으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쾅!

피했던 마력의 창이 허공에서 터지며 강력한 파동이 올리븐을 휘감았다.

“젠장!”

올리븐은 황급히 방어 마법을 펼쳤지만 막대한 마력 차이에 허무하게 날아가 벽에 박혀 버렸다.

“아악, 진짜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나도 안 봐준다.”

투둑, 하고 떨어지는 벽 부스러기를 털어 내며 올리븐 또한 양손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 탁한 빛을 띤 초록색 마력이 금방이라도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처럼 일렁였다.

“봐주지 않으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응, 당연하지.”

“헛소리.”

“난 혼자가 아니거든.”

“뭐?”

올리븐은 말없이 마력의 창을 클로드를 향해 쏘아 보냈다.

“까악!”

페넬로아가 비명을 지르며 클로드와 일렉사를 끌어안았다.

콰가가각!

당연하게도 올리븐이 쏘아 보낸 마력의 창은 벤야민이 클로드의 침대에 둘러놓은 방어 마법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벤야민의 시선이 순간 그쪽으로 쏠린 틈을 이용해 다른 흑마법사들이 클로드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순식간에 그를 둘러싼 흑마법사들이 손에 검은 마력을 두른 채 벤야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탑의 배신자들.”

빠득 이를 가는 벤야민을 바라보며 올리븐은 환하게 웃었다.

“네가 쳐 놓은 방어막이 언제까지 버텨 줄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