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52화
올리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벤야민을 공격하려 소환한 창을 거두어들였다.
그러곤 목 끝에 턱 걸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힘겹게 짜내었다.
“……어떻, 게.”
[그럼 네가 이렇게 나올 걸 내가 모를 줄 알았니?]
사라의 목소리는 침착하고도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이 그녀가 참아 줄 수 있는 수준의 분노를 넘어섰기 때문임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대, 대장로님.”
“……망했어, 망했다.”
흑마법사들은 사라의 목소리에 겁을 집어먹고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그들 역시 한때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대장로인 사라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흑마법사들 중 하나가 울분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올리븐! 밖에서 안쪽 상황을 알 수 없도록 마법진을 쳐 놨다고 했잖아!”
“……스승님께서 저런 걸 준비해 놨을 줄은 몰랐어.”
올리븐은 허공에서 빛을 뿜어내는 거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스승을 얕보았다.
그녀가 저택에 있는 것처럼 꾸미려 했다는 것에서 허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대놓고 암브로시아에 엄청난 수의 마물을 풀어놓고 스승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 작은 거울 안에 스승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를 바라보면 언제나 따스하게 웃어 주었던 눈동자가 처음으로 무감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래도 스승님은 저 아티팩트를 통해서만 힘을 행사할 수 있어.”
올리븐은 산산이 부서지려는 정신을 붙들고 이를 악물었다.
그가 암브로시아 저택 전체에 깔아 놓은 촘촘한 마법진은 외부의 마력이 내부로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그 마법진을 부수려면 스승이 직접 암브로시아 저택까지 와 힘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제국에서 힘을 감추고 정체를 숨긴 스승이 쉽게 이리로 올 수 있을 리 없었다.
“거울을 깨 버려.”
이를 악문 올리븐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흑마법사들이 수식을 외우며 공격을 준비했다.
[그동안 내가 얌전히 기다리고만 있을 줄 아는구나.]
사라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웃음기가 담겼다.
금방이라도 마법을 쏘아 보낼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흑마법사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잘 보인다는 듯이 사라는 소리 내어 깔깔 웃으며 말했다.
[같잖은 것들을 상대하기엔 이 정도의 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오늘 알려 줄게, 못난아. 잘 배우렴.]
사라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변했다.
서둘러 공격 마법을 쏘아 보내려던 흑마법사들은 순간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작게 신음했다.
“……으, 왜.”
“몸이 이상―.”
그들은 들어 올려지지 않는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몸을 옭아매고 있는 투명한 마력의 흐름이 그제야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들의 얼굴이 낭패감으로 물들 때쯤, 사라의 비웃음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공격은 예고하고 하는 게 아니란다. 미리 준비해야지.]
“으아아아악!!!”
“아아악!”
사라의 푸른 마력이 마치 불꽃처럼 흑마법사들을 감싸며 타올랐다.
흑마법사들은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는데, 그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어졌다.
[그리고 망설임 따위는 없어야 한단다.]
사라의 서늘한 경고와 함께 그들을 감싸고 있던 마력이 사라졌다.
“……!”
그러자 흑마법사들이 입고 있던 로브만이 털썩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스승님!”
단 한 번의 마법에 흑마법사들을 잃은 올리븐이 이를 악물며 거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벤야민이 막아섰다.
“스승님이 오셨다고 나를 잊으면 안 되지.”
흥분해 빈틈을 보인 올리븐을 향해 벤야민이 온 힘을 다해 마력 창을 던졌다.
“윽!”
올리븐은 신음을 흘리며 손으로 상처 입은 어깨를 꽉 쥐었다.
깔끔하게 관통당한 어깨에서 핏물이 쏟아져 내렸다.
[어머나, 흉한 꼴.]
이내 거울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올리븐의 어깨에서 흐르던 붉은 피가 투명하게 바뀌었다.
[우리 클로드 님 교육에 좋지 않아, 정말.]
“……?”
그 말에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페넬로아는 입을 떡 하고 벌렸다.
피를 투명하게 바꾼다고 대체 이 상황에서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당황해 주변을 둘러보던 페넬로아는 사라의 말에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다섯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사라 님!”
“밀런 소백작님은 참 섬세하셔, 그치 베론?”
“응, 이런 점을 배워야 할 텐데 말이야.”
“맞아, 맞아. 유모가 최고야.”
“…….”
감탄을 하며 눈을 빛내는 메이와 론다, 베론.
그리고 이제야 안심한 얼굴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클로드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벤야민까지.
“……난 모르겠다.”
페넬로아는 암브로시아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을 가볍게 포기했다.
그녀는 여전히 기절한 채 깨지 않는 일렉사를 보듬어 안으며 아이가 이 광경을 보지 않은 것에 안도하기로 했다.
“아파요, 스승님.”
올리븐은 미간을 좁히며 거울에 비치는 사라에게 호소했다.
조금이라도 제 마음을 알아 달라는 듯이, 어리광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라의 자애는 더 이상 올리븐에게 닿지 않았다.
[벤야민이 다친 것에 비하면 괜찮아 보이는구나.]
“…….”
올리븐은 벤야민을 걱정하는 사라의 다정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를 향한 사라의 시선에는 그 무엇도 엿보이지 않았다.
[겨우 아티팩트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꼴이라니. 내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거라면 더 나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니?]
사라의 말끝이 느긋하게 길어졌다. 지루함을 참는 것처럼 말이다.
올리븐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에게 너무하세요.”
[그건 내 쪽에서 할 소리란다. 암브로시아 저택 꼴을 보렴. 민망해서 공작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사라를 비추는 거울이 좌우로 흔들렸다.
먼 곳에서 그녀 또한 그 거울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유모…….”
고작 작은 거울이었지만 사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곁에 없지만 마치 곁에 있는 것만 같아 클로드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던 숨을 편안하게 내뱉었다.
이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괜찮으세요?”
메이가 클로드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물었다.
클로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하게 흘러가던 상황이 단숨에 정리되었다.
비록 불완전하지만 사라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유모가 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클로드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흘리지 않겠다는 듯 옷자락을 들어 눈가를 슥슥 닦았다.
안심이 되니 눈물이 쏟아지려고 했다. 아직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 클로드 님, 다친 곳은 없나요?]
“나는 괜찮아, 근데 아저씨가…….”
클로드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벤야민을 바라보았다. 피를 많이 쏟은 탓에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벤야민은 그런 클로드의 머리를 손으로 꾹 누르며 말했다.
“이 정도로 안 죽는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덤덤했지만 클로드는 제 머리 위에 있는 벤야민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잘했어, 벤야민.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별거 아니었습니다, 스승님.”
벤야민은 사라의 칭찬에 한쪽 입꼬리를 올려 대답하면서 은근한 시선으로 올리븐을 보았다.
그의 시선 끝에 걸린 비웃음이 노골적이었다.
“못난 제자.”
“벤야민…….”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말랬지, 흑마법사 새끼야.”
벤야민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손에 마력 창을 만들어 쥐었다.
“더 부릴 잔재주가 없으면 지금 꺼지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없을 것 같아?”
올리븐은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클로드와 벤야민이 친근해 보이는 것도, 스승의 다정함이 그들을 감싸 안는 것도.
전부 토할 것만 같았다.
“……너도 결국 스승님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될 거야, 벤야민.”
“뭐?”
의미심장한 올리븐의 말에 벤야민은 미간을 좁히며 되물었다.
하지만 올리븐은 그런 그를 지나쳐 허공에 떠 있는 거울을 노려보았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당신을 지킬 거예요.”
올리븐의 몸이 순식간에 어두운 마력에 휘감겼다.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어둠의 마력은 다른 흑마법사들의 것과는 달랐다.
아주 위험하고도 파괴적인 냄새가 풍겼다.
[어리석은 것.]
올리븐을 향하는 사라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올리븐의 등 뒤로 쩌억 하고 입을 벌리는 것처럼 검은 구멍이 나타났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새빨간 안광이 하나둘씩 번뜩이며 나타났다.
“키. 키키. 킥.”
사람이 아닌 것들의 울음소리가 구멍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상대했던 마물들의 울음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마계의 것들을 끌어왔구나.]
“……!”
사라의 말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계. 악마들의 땅이라고 불리는 지옥.
신전에서는 언제나 그곳의 끔찍함을 말하며 경고를 아끼지 않았다.
비록 국교가 없는 제국민이라도 신전의 경고는 살면서 한두 번은 꼭 들어 보았을 것이다.
“어디 한번 이것들을 상대로 그 꼬맹이를 지켜 낼 수 있나 볼게요. 물론, 제 공격도 피하셔야 할 거예요.”
올리븐이 스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결국 참지 못한 벤야민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마력을 일으켰다.
올리븐의 살기 어린 시선이 클로드를 향했다.
원망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았다.
[……하나.]
그때 거울 속에 있는 사라가 조용히 숫자 하나를 읊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거울에서 복잡한 마법 수식이 기다란 실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클로드의 방 안을 단숨에 둘러쌀 정도로 빠르게 흘러나오던 마법 수식이 일제히 환한 빛을 터트리며 회전했다.
“……!”
그리고,
“결국 직접 나를 이리로 불러내는구나.”
작은 거울 속에서 존재했던 사라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걸로 둘.”
얼음보다도 더 시리게 웃으며 사라는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올리븐을 향해 경고했다.
그녀가 예고했던 세 번의 기회 중 너는 두 번을 이렇게 썼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