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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53화 (153/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53화

올리븐이 창밖으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인 마법진이 하늘을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암브로시아 공작가를 감싸고 있는 마법진은 부서진 곳 하나 없었다.

‘순간 이동 마법을 하면 몸이 조각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쉽게…….’

그는 스승을 경애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도 표현하지 않으며 그것을 휘두르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는 스승을 깊이 존경했다.

그렇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올리븐은 스승이 가진 힘을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를 느꼈을 뿐이었다.

“놀란 것 같구나.”

무덤덤한 얼굴을 한 스승의 목소리가 낮게 내려앉았다.

올리븐은 그것이 자신의 두 어깨를 강하게 내리누르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경애라는 감정이 얼마나 얄팍한 것인가를 생각했다.

겨우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으면서, 스승도 쉬이 부술 수 없을 거라 자만하면서.

감히 그녀를 경애한다고 하였다.

“…….”

사라는 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으로 서서히 걸어오고 있는 마계의 마물들은 지금도 살기를 흩뿌리며 안광을 빛냈다.

“아무래도 대화가 필요할 것 같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며 사라는 생긋 웃었다.

“물론 대화라는 걸 굳이 말로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카로운 돌풍이 마치 칼날처럼 불어닥쳤다.

바람결 하나하나에 실처럼 뽑아낸 그녀의 푸른 마력이 곧장 마물들을 향해 쇄도했다.

끼아아아아.

캬으으악.

서슬 퍼런 눈빛을 번뜩이며 다가오던 마계의 마물들이 일제히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빌어먹을!”

올리븐은 황급히 방어막을 쳤지만, 사라의 강력한 마력이 금방이라도 부술 듯이 몰아쳤다.

다친 어깨가 미칠 듯이 아파졌다. 하지만 그것에 신경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스승님, 저 아프다니까요!”

“그럼 안 아파지라고 내가 이러겠니?”

올리븐의 비명에 사라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도의 마력이 한 차례 더 올리븐의 방어막을 향해 몰아쳤다.

“……윽!”

다시 한번 황급히 마력을 덧대어 보았지만 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방어막이 깨지기 시작했다.

스승의 앞에서 흑마법을 쓰는 것이 껄끄러웠던 올리븐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역겨워.”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스승의 말에 올리븐의 몸이 크게 떨려 왔다.

마치 더러운 것을 보는 듯 미간을 좁히는 사라의 얼굴이 콱하고 그의 가슴에 박혔다.

“내 눈을 피해 이 정도까지 힘을 기른 줄은 몰랐으니 이건 내 불찰이라고 인정하마.”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올리븐을 향한 그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올리븐은 어깨의 상처보다도 이게 더 아프게 제 가슴을 난도질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절절 끓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결국엔 저를 이해하시게 될 거예요. 모든 건 스승님을 위해서였으니까. 저는 그저 스승님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날 위해서라…….”

사라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하게 휘어 올라갔다.

그 순간 올리븐과 마계의 마물들을 난도질하려던 격렬한 마력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허, 허억…….”

그가 겨우 유지하고 있었던 방어막은 모래성이 부서지는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올리븐은 어깨의 상처를 감싸 쥔 채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끄으, 끄…….

미처 올리븐의 방어막 뒤로 숨지 못한 마물들이 도륙당한 것을 보고 마계의 문 너머의 마물들 또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사라의 푸른 눈동자 너머로 일렁이는 절대자의 힘을 처절하게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디 한번 내 옛 제자의 헛소리를 들어 볼까.”

나긋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라는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겼다.

그러자 어디서 무언가가 어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공기의 흐름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쿠궁, 쿠구구궁.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어느새 클로드를 품에 안고 있던 벤야민 쪽이었다.

“공간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가 둘로 나누어지듯 클로드의 방의 절반이 움직이고 있었다.

“특별히 독대를 허락하마. 외부인 없이 말이야.”

사라가 클로드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찡긋 눈짓했다.

그리고 그녀가 가로로 손을 내젓자 클로드가 있는 쪽의 공간이 창문 바깥으로 쑤욱 밀려났다.

클로드의 침대 위에서 페넬로아가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이 날고 있어…….”

그들은 어느새 창문 바깥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머리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원래 그들이 있었던 곳은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새까만 공간이 낭떠러지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벤야민은 클로드를 안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설명했다.

“공간을 접어 밀어낸 거다. 저 마법진 안에서 이 인원을 전부 순간 이동시킬 순 없으니까.”

그 어떤 마법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이었다. 고차원의 마법 수식과 함께 공간 자체를 깔끔하게 떠서 분리할 수 있는 힘.

벤야민은 힐끔 시선을 들어 암브로시아 저택 근방을 전부 감싸고 있는 올리븐의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안쪽의 상황을 알 수 없게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순간 이동 마법을 철저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흑마법과 백마법은 서로 상극. 흑마법의 마력으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저 마법진은 벤야민과 벨루나가 힘을 합쳐도 작은 균열 하나쯤 만드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그의 스승은 저것을 뚫고 그 먼 거리에서 이곳으로 단숨에 이동한 것이다.

“…….”

벤야민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스승이 마탑의 대장로이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사라는 것을 처절하게 실감했다.

그것은 아마 사라의 경이로운 힘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올리븐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벤야민은 망연자실하게 스승을 바라보고 있는 올리븐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보여 주는 압도적인 힘 앞에 올리븐은 의지를 잃어버린 듯했다.

“클로드 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안아 드리러 갈게요.”

“유모 위험해! 이리로 와!”

클로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사라에게 손을 뻗었다.

유모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유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하다는 것 또한 알았다.

하지만 불안으로 떨리는 심장이 쿵쾅쿵쾅 귀를 멎게 할 것처럼 뛰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바깥이 조금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벨루나와 기사단이 있으니…….”

사라는 클로드를 보며 생긋 웃어 준 뒤 다시 한번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클로드 일행을 품고 있던 공간이 침대째 창문 아래로 천천히 떨어졌다.

“유모!”

“위험하니까 제발 가만히 있어 꼬맹아.”

벤야민은 사라에게 달려가려는 클로드의 작은 몸을 힘을 주어 꽉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올리븐이 지친 목소리로 빈정거렸다.

“……과연 제 눈 밖에서 벗어난다고 안전할까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 있던 마계의 문이 콰득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찌그러졌다.

끼에엑!

마물들이 괴롭게 울부짖으며 닫혀 가는 문을 비집고 밖으로 나가려고 발버둥을 쳤다.

사라는 그 모습을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아까 클로드를 밖으로 보냈던 것처럼 손을 휘둘렀다.

“……!”

그러자 손쉽게 마계의 문이 있던 공간이 접히며 마물들이 튀어나오는 공간 자체가 바깥으로 빠져 버렸다.

클로드의 일행이 있던 공간을 부드럽게 내려 주었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신경질적인 처리였다.

그 안에 있던 마물들 대부분이 크게 다쳐 제 힘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쉽게 벨루나의 손에 처리될 것이다.

“너는 네 안위나 걱정하렴.”

올리븐을 돌아본 사라의 얼굴에는 감정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나와 단둘이 남았잖니?”

“…….”

사라는 천천히 올리븐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올리븐은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쿨럭, 하고 핏물이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내상이었다.

방금 사라의 힘을 견디느라 속이 전부 뒤틀린 탓이었다.

“제가 가진 힘은 역겨우시면서, 암브로시아의 힘은 괜찮으세요?”

올리븐은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 내며 빈정거렸다.

“저는 스승님을 지키기 위해 흑마법을 익힌 거예요. 그 더러운 암브로시아의 힘이 스승님을 해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요.”

“날 위해서?”

“네.”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것처럼 올리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이 사라를 위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암브로시아의 힘이 스승님을 죽이고 있잖아요. 비록 다른 쪽의 영혼이라고 해도 결국 그조차도 스승님인데. 왜 희생하려 하세요? 그것들이 대체 무엇인데요?”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분개를 참느라 짓씹던 입술은 금방이라도 톡 하고 터져 붉은 핏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스승님께서 왜 그러셔야 하는데요?”

“아아……. 그래. 우리 올리븐이 그것이 불만이었구나.”

사라는 작게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손을 뻗어 올리븐의 창백한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럼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마.”

오랜만에 느껴 보는 스승의 손길에 올리븐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혈색이 없던 뺨에 순간 희미하게 붉은 기가 돌았다.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니?”

“그야 스승님께서 평안하게…….”

“마탑에서 마법이나 연구하면서 살까? 아니면 얌전히 가문의 대를 이어 줄 남자를 찾아 소백작의 본분을 다하도록 할까? 어느 쪽을 원해?”

들뜬 사람처럼 미래를 말하는 사라의 목소리는 밝았다.

마치 꿈결과도 같은 삶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것도 질리면 다른 쪽의 세계에서 또 다른 삶을 사는 건 어떨까? 내가 죽이려 했지만 네가 구한 그 영혼으로 말이야. 어때?”

“스승님…….”

하지만 그런 사라의 목소리와는 달리 올리븐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졌다.

“왜 그러니? 허락을 구하고 있잖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것이 네 마음에 들지 말이야.”

“…….”

“저런. 얼굴이 많이 안 좋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도 네 마음에 들지 않니? 어쩌면 좋담.”

올리븐은 입술을 꽈악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사라의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와 함께 허탈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네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했으니 이제 나를 위해 익힌 흑마법으로 내 입을 막아 버릴 차례겠구나.”

“스승님! 제발!”

노골적인 비아냥에 올리븐은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덜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올리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정심을 사려는 듯 사라를 바라보는 눈빛은 애절하기 짝이 없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왜?”

“저는 정말 스승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올리븐, 말은 똑바로 해야지.”

사라는 쯧 하고 혀를 차며 손가락으로 올리븐의 콧잔등을 툭 치며 말을 이었다.

“널 위해서잖니.”

“……!”

충격으로 부릅뜬 올리븐의 녹색 눈동자에 무표정한 사라의 얼굴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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