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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60화 (160/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60화

클로드는 벌떡 일어나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진짜야!?”

“쉿, 클로드 님 조용……!”

“진짜 진짜 진짜야? 정말 아버지랑……!”

사라가 급하게 만류하며 달래려 했지만 흥분할 대로 흥분한 클로드의 목소리는 작아질 줄을 몰랐다.

여태까지 암브로시아에서 클로드의 유모 노릇을 하면서 아이의 목소리가 이 정도로 커진 적도 처음이었다.

밖에서도 클로드의 흥분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메이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

사라는 서둘러 클로드의 입을 틀어막았다.

클로드 또한 그제야 자신이 너무 큰 소리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비밀 얘기 중이셨군요.”

메이는 웃으며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는 사라와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저택이 발칵 뒤집힌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사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도 사라가 저택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잠이 잘 온다며 지친 몸을 누이고 곯아떨어졌다.

“말씀 나누시는 것도 좋지만, 이제 슬슬 주무세요. 시간이 많이 늦었어요.”

“응, 알았어!”

클로드가 제 입을 막은 사라의 손을 슬쩍 내리며 대답했다.

씨익 웃는 클로드의 얼굴을 보니 금방 잠들 것 같지는 않았지만, 메이는 모르는 척하고 방문을 닫고 나갔다.

클로드는 메이가 나간 뒤에도 조용히 바깥 기척을 살피다가 슬쩍 물어보았다.

“……갔어?”

“아직이요.”

“지금은?”

“음……, 멀어졌어요.”

사라는 귀여운 아기 거북처럼 목을 쭉 빼는 클르도를 보며 쿡쿡 웃었다.

클로드는 그런 사라의 품에 다시 뛰어들었다.

“헤헤. 너무 좋아.”

그간 얼마나 불안했던가.

파티장에서 사라를 두고 떠드는 귀족들을 보며 클로드는 언젠가 그녀를 빼앗기고야 말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젊고 아름다운 밀런 소백작이 굳이 암브로시아 공자에게 묶여 있을 필요는 없죠.’

‘밀런 소백작이 유모 노릇을 하는 것도 뭐 얼마 안 남지 않았겠어요?’

‘아아, 그날이 기다려지네요. 과연 밀런 소백작은 어떤 짝을 만나게 될까요?’

클로드는 자신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던 목소리가 뚜렷하게 기억났다.

안쓰럽다는 양 바라보면서 슬쩍 비웃는 입꼬리를 숨기던 귀족들이었다.

사사건건 사라를 탐내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아들과, 동생과 엮어 보려던 자들.

클로드는 그런 귀족들을 떠올리며 사라가 웃었던 것과 매우 흡사하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흥이다, 바보 어른들아. 유모는 이제 나와 아버지의 것이야.’

당장이라도 그 귀족들의 면상 앞에서 크게 웃으며 비웃어 주고 싶었다.

“클로드 님은 괜찮으세요?”

“응! 나는 좋아! 너무너무 좋아.”

클로드는 어깨춤까지 춰 가면서 좋아했다.

내심 클로드가 거부할까 봐 긴장했던 사라가 힘이 풀린 나머지 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전에도 내가 그랬잖아. 사실 유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그랬었죠.”

“그래서 너무 좋아. 아버지랑 유모랑 결혼하면 내가 진짜 유모의 아기가 되는 거잖아.”

“지금도 클로드 님은 제 아기님이세요.”

“아니야, 틀려.”

사라의 말에 클로드는 헤헤 하고 웃던 얼굴을 싹 굳히며 정색했다.

“음?”

“확실하게 틀려. 유모가 내 유모인 거랑, 유모가 내 엄마가 되는 거랑은 달라.”

볼살이 탱탱하게 오른 귀여운 얼굴로 세상 근엄한 척을 하는 클로드를 보고 사라는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럼 우리는 조금 더 특별해지는 걸로 해요.”

“응!”

사라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클로드는 그제야 안심한 얼굴로 다시 웃었다.

다시 그녀의 품에 안기는 클로드의 머리 위로 사라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그런데 정작 공작님이 절 안 좋아하시면 어떡하죠?”

“……응?”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클로드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사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농담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의외로 사라의 얼굴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아버지가 유모를 안 좋아할까 봐 걱정하는 거야?”

“물론이죠.”

“왜?”

“왜냐니……, 당연히 걱정되니까요?”

사라와 클로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클로드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입을 떡하니 벌렸다.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거지?’

본능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을 눈치챈 클로드는 당최 사라의 걱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작님이 얼마나 무서우신 분인데, 내게 친절한 건 내가 그만큼 쓸모 있어서일 수도 있잖아.’

에단 암브로시아는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것이 사라였다.

에단이 가장 필요로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라는 어떻게 해서든 손에 넣어야만 하는 인물.

그러니 사라의 오해는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

“……?”

그렇게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라와 클로드 사이에는 어느새 깊은 침묵이 흘렀다.

* * *

벨루나는 슬쩍 클로드의 방 쪽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클로드 님은 잠드셨나요?”

“응. 오늘 많은 일을 겪어서 그런지 금방 잠드셨어.”

“고단하셨겠죠.”

“그러게 말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하는 사라와 벨루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벤야민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제가 제일 고단했는데요.”

“물론 그렇겠지, 벤야민. 클로드 님이 무사한 건 전부 네 덕분이란다.”

“……네.”

사라가 웃으며 칭찬하자 벤야민은 그제야 옅게 웃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대놓고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에 벨루나가 몰래 눈을 흘겼다.

‘하여튼 스승님 앞에서만 배부른 짐승처럼 굴지.’

정작 암브로시아 저택을 수리하는 일은 벨루나가 도맡아서 했다.

벤야민은 전투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마법사로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암브로시아 사용인들과 기사단을 전부 챙기면서도 저택 곳곳에 설치된 환각 마법을 처리한 것도 벨루나였다.

그런데 겨우 클로드와 3황자의 군식구들만 지켜 낸 벤야민이 스승님 앞에서 저렇게 내숭을 부리는 꼴이라니.

‘어떨 때 보면 올리븐보다 더 얄미워.’

고깝기 그지없는 벨루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벤야민이 힐긋 시선을 들어 벨루나를 바라보았다.

“뭐. 왜.”

“……아니다.”

뻔뻔하게 되묻는 벤야민을 보며 벨루나는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곤 사라를 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응?”

“올리븐은, 죽은 건가요?”

“…….”

벨루나의 질문에 사라는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가만히 침묵하는 스승의 모습을 보고 벨루나는 무언가 직감했는지 주먹을 꽉 쥐며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미친놈이 결국…….”

“스승님 손에 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벤야민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였지만 일부러 쌀쌀맞게 대꾸했다.

하지만 벨루나와 마찬가지로 꽉 쥔 주먹은 피가 통하지 않아 새파랗게 질린 채였다.

“스승님의 얼굴에 먹칠을 해도 제대로 한 놈이 뭐가 이쁘다고. 신경 쓰지 마, 벨루나.”

“내가 언제 신경 썼다고 그래?”

“지금 쓰잖아.”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아니라고.”

벨루나와 벤야민은 괜히 투닥거리며 입씨름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은 사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올리븐은 여기 있단다.”

그녀가 따악 하고 손을 튕기자 허공에서 검은 보석 하나가 은은한 빛을 뿌리며 나타났다.

“……이건?”

“올리븐에게서 뽑아낸 흑마법을 응축해 놓은 거란다.”

사라의 말에 벤야민과 벨루나는 의아한 얼굴로 검은 보석을 바라보았다.

흑마법을 응축해 놓았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올리븐이 어떻게 여기 있다는 말인가?

“그 아이의 더럽혀진 영혼을 담기에 딱 좋은 그릇이지.”

“그, 그걸 어떻게…….”

벨루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더듬으며 검은 보석과 사라를 번갈아 보았다.

영혼을 뽑아내어 마력석에 봉인하는 마법은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실현시키기 어려운 마법이었다.

신의 영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잊었니? 영혼과 관련된 분야는 마탑에서도 내가 최고란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흔들리는 벨루나의 동공을 보며 사라는 맑게 웃어 보였다.

두 가지의 영혼으로 차원을 넘나들며 살아왔던 사라였다.

그녀만큼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실제로 마법 실험까지 스스로의 몸에 시도하며 익힌 마법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나니까 가능한 거란다.”

“그야 그렇겠습니다만.”

“너희도 노력하면 할 수 있어.”

“……아뇨.”

벨루나는 질린 것처럼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승의 위대함이야 언제나 알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깨닫는 기분이었다.

“올리븐의 영혼은 그럼 저기에 봉인되어 있는 겁니까?”

“그래. 내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깨어날 수 없지.”

“그럼 육체는…….”

“잘 보관해 두었단다.”

“그렇군요.”

벤야민은 그제야 조금은 풀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무거웠던 마음의 한구석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마땅하죠. 적절한 처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신랄하게 평가하는 벤야민의 음성에 어쩐지 허공에 떠 있던 검은 보석이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곳에 담아 둘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알아. 그래서 내가 이 녀석을 데리고 가 봐야 할 곳이 있는데…….”

“어딜 말입니까?”

사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벨루나와 벤야민을 가만히 눈에 담으며 말했다.

“내 다른 영혼이 살아 숨 쉬는 곳.”

“……!”

“……!”

벨루나와 벤야민은 두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응시하다가 이내 다시 사라를 바라보았다.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런데 잠시나마 다녀올 수 있는 방법이 생겼어.”

“어떻게요?”

벨루나의 물음에 사라의 입가에 잠시 씁쓸한 미소가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그 모습에서 어쩐지 불안감을 느낀 벤야민이 미간을 좁히며 일어났다.

“스승님, 설마.”

“……맞아.”

사라는 새파랗게 굳는 제자들의 앞에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조금 오래 잠들어 있어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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