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63화
* * *
사라는 펑펑 운 탓에 눈이 탱탱 부어 버린 클로드의 얼굴을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 주었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머리카락마저 젖을 정도로 아이는 울며 떼를 썼다.
그렇게 아침만 먹고 알톤으로 돌아가려던 것이 점심까지 이어지고 또 저녁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 갈 거야……?’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눈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잡는 클로드의 손을 뿌리치지 못한 탓이었다.
“드디어 잠드셨네요.”
그제야 메이가 지친 얼굴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럽게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던 클로드는 결국 정신력과 체력을 전부 쏟아 냈는지 지쳐 잠들었다.
잠들기 전까지 눈을 뜨면 사라가 없을까 봐 억지로 버티면서도 결국 졸린 것을 참지 못하고 잠투정까지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아.”
사라는 무거운 마음을 애써 내려놓으며 클로드의 눈가에 아직도 맺혀 있는 눈물을 훔쳤다.
메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물론 그렇겠지요. 세상에. 클로드 님이 이렇게 떼를 쓰는 건 처음 봐요.”
“나는 알 것만 같아. 클로드 님이 왜 이렇게 떼를 쓰는지.”
“그러세요?”
“응.”
사라가 무거운 얼굴로 웃어 보였다.
아이들은 가끔씩 어른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끼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 자신에게 다녀오겠다고 말하는 사라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클로드도 그것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싫어.’
‘네?’
‘가지 마……, 가지 마!’
그때부터 클로드는 엉엉 울며 사라를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론다가 억지로 사라에게서 떼어 놓자 아예 바닥에 엎드려서 와앙 하고 울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암브로시아 저택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클로드의 울음소리에 다들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사라가 먼 길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벤야민과 벨루나만이 안타까운 눈으로 클로드를 보았을 뿐이었다.
‘지금 유모가 가면 안 될 것 같아. 이상해, 뭔가 이상하단 말야.’
클로드는 낮잠 시간에 자지도 않고 눈을 부릅뜨며 사라를 지켰다.
옆에서 사라가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벤야민이 머리를 살짝 쥐어박아도, 벨루나가 예쁜 마법으로 시선을 끌어도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잠깐 갔다가 다시 올 거예요. 제가 약속했잖아요.’
‘그럼 조금만 더 있다 가. 응?’
사라가 조금만 마음을 독하게 먹고 떠나려고 해도 그녀는 클로드의 올망졸망한 눈망울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아직도 내 옷자락을 잡고 있네.”
사라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클로드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들어서 떼어 놓았다.
그러자 클로드의 눈가가 움찔하며 파르르 떨렸다.
“……!”
“……!”
사라와 메이는 동시에 숨을 참았다. 여기서 클로드가 일어나면 진짜 돌이킬 수 없다.
꼼짝없이 하룻밤을 더 보내야 할 것이다.
“흐으음…….”
다행히 클로드는 잠시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깊게 잠들었다.
“어우, 세상에.”
사라가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손가락을 따악, 하고 튕겼다.
그러자 눈물로 엉망이 된 클로드의 얼굴과 머리카락은 물론이고 불편하게 입은 옷까지 편한 잠옷으로 깨끗하게 바뀌었다.
잠든 아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힐 생각에 조금은 막막했던 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클로드 님이 모시기 어려운 분은 아니었지만, 역시 사라 님이 계실 때랑 안 계실 때랑 정말 차이가 나네요.”
메이는 그립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라는 이제 얼마가 될지도 모르는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마음만 더더욱 무거워질 뿐이었다.
사라가 메이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쓸어 주며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클로드 님을 부탁할게.”
“……?”
메이는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어차피 알톤으로 돌아가 일을 처리하고 올 테니 사라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눈치가 좋은 메이의 눈에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못할 이가 작별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사라 님.”
메이가 답지 않게 다급히 사라의 옷자락을 잡았다.
“응?”
“아, 아니에요.”
뭐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메이는 힘없이 쥐었던 옷자락을 놓았다.
하지만 자꾸만 기묘한 기분이 들어 저도 모르게 사라의 얼굴을 살폈다.
“왜? 너도 내가 안 갔으면 좋겠니?”
“아뇨! 어서 가 보셔야죠. 빨리 처리해야 하잖아요. 더 큰 피해가 생기기 전에…….”
메이는 손사래를 치고는 클로드에게 다가가 아이의 목 끝까지 이불을 끌어당겨 올려 주었다.
어쩐지 클로드도 사실 자신과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떼를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사라는 그런 메이의 뒷모습을 보다가 이내 픽 웃으며 말했다.
“네가 눈치가 좋은 아이라, 마음이 놓이는구나. 클로드 님이 일어나시면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전해 주렴.”
“네?”
노골적인 작별 인사에 메이가 휙 뒤를 돌아보았다.
“사라 님?”
하지만 메이가 돌아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푸른색 마력 조각만이 그녀가 마법을 써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었다.
“……불안해.”
사라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을 곱씹던 메이는 어느새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 있던 메이는 잠든 클로드의 얼굴을 한번 보고 결심을 굳힌 듯 중얼거렸다.
“집사님과 시녀장님에게 보고해야겠어. 공작님도 사라 님이 이상하시다는 걸 알아야 해.”
* * *
“제발, 주군, 제발, 주군, 제발…….”
제이드는 초조한 얼굴로 장벽 너머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젯밤에 장벽 너머로 넘어간 에단 암브로시아가 다음 날 저녁이 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이드는 에단이 사라졌던 장벽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어서 돌아오십시오, 주군.”
몇 번이고 에단을 찾는 3황자와 2황자에게 산책 중이다, 순찰 중이다, 하며 핑계를 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암브로시아 공작이 하루 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미 수뇌부들을 무언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암브로시아 공작이 내일 아침까지 나타나지 않는다면 황제 폐하께서 무어라 생각하실지를 고려해 보는 게 좋을 것 같군.’
‘마법사님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군요. 저희가 미덥지 못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저희는 황실의 명분으로서 이곳에 자리했습니다. 단독 행동을 하신다는 건 저쪽에 꼬리를 내어 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2황자 일리오르와 3황자 일레온은 제이드에게 이미 한마디씩 하고 갔다.
일리오르는 이곳의 상황을 황제가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경고했고, 일레온은 황제가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암브로시아의 약점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우리 공작님께서 암브로시아의 뛰어난 힘으로 장벽을 통과해 그 너머를 순찰하러 가셨습니다!’라고 할 순 없잖아아!”
제이드는 결국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괴로워했다.
물론 그가 이토록 괴로워하는 이유는 순전히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장벽 너머 알톤 영지에서 에단이 다치거나 큰일을 당했을 거라는 걱정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제이드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였다.
“분명 거기서 또 뭔 짓을 하고 오실 텐데. 그거 다 정리하고 다듬고 처리하고 그럴싸하게 만들어서 서류화하고……. 그거 다 내 몫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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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 암브로시아의 귀환이 늦어진다는 건 저 너머에서 그가 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뒤처리와 실용화에 필요한 모든 업무는 암브로시아 공작의 가장 가까운 수하인 제이드의 몫이었다.
아주 불행하게도 그가 퍽 유능한 탓이었다.
기다리는 시간만큼이나 늘어날 업무량을 걱정하며 제이드는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어흐흐흑, 월급 올려 달라고 할 거야.”
“그래, 그래. 당연히 올려 줘야지.”
“휴가도 달라고 해야지. 한 일 년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을 거야.”
“그건 조금 곤란한데.”
“허어어엉, 주군이 이렇게 매정한 사람이라는 걸 온 제국민이 알게 해야 하는데!”
“매정하다니. 이토록 자애롭게 경의 말을 얌전히 다 들어 주고 있는 주군이 또 어디 있겠나.”
“자애롭기는! 아주 무섭고 잔인하고 냉정하고 뒤도 안 돌아볼 인간이 무슨…….”
제이드는 울며 중얼거리다가 이내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천천히 말을 멈추었다.
이상하지. 여기 분명 나 혼자일 텐데. 기사단에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지나가지 못하게 지키라고 분명 말해 놨을 텐데.
‘왜 대화가 되고 있지?’
이상하게 자꾸 누군가와 대화가 통했다.
그것도 주군의 목소리를 한 누군가가 제이드의 혼잣말에 친절히 대답을 해 주고 있었다.
“환청일 거야, 환청이다.”
제이드는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자세 그대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면서 질끈 감았던 눈을 희미하게 뜨자 그의 눈앞에 익숙한 구두 굽이 보였다.
분명 어젯밤에 주군이 신고 있었던 구두였다.
장인이 어느 산에서 첫 이슬이 맺힌 풀만 먹이고 자란 소의 가죽을 다이아몬드를 가루 내어 천재적인 기술로 실로 만들어 꿴 다음 단단하게 어쩌고를 해서 탄생했다는 구두.
저것만 신고 등산을 일 년 동안 해도 해지지 않는다는 그 구두.
제국에서 오직 에단 암브로시아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바로 그 구두가 제이드의 눈앞에 보였다.
“…….”
제이드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환각인가?”
“나야.”
“환각이겠죠?”
“나라고.”
“그냥 환각이라고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주군?”
“…….”
제이드는 어이가 없다는 눈을 하고선 그를 내려다보는 주군의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분명 무사히 장벽 밖으로 빠져나온 주군을 환영해야 하는데.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는데.
어쩐지 그는 주군을 다시 장벽으로 밀어 넣고만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