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65화
사실 에단이 사라에게 이상한 느낌을 받은 건 이번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암브로시아 저택에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슬슬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다.
‘늦었군요, 저택의 상황이 심각했습니까?’
‘아뇨! 저택은 대부분 다 복구되었어요. 다만 클로드 님이 조금 헤어지기 힘들어하시더라고요.’
‘클로드가 말입니까? 전에는 잘 보내 주기에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이때도 슬쩍 시선을 돌리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사라를 보며 기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이가 헤어지기 싫다며 붙잡았다는 것도 이상했는데, 그걸 말하는 사라의 목소리는 씁쓸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아침까지 사라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그를 붙잡았다가 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저어, 공작님!’
‘왜 그럽니까?’
‘실은 제가…….’
‘……?’
‘아, 아니에요! 암브로시아 저택을 제가 조금 부쉈다고요.’
‘그것쯤은 괜찮습니다. 쉽게 무너질 저택도 아니고 수리가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요.’
‘그쵸…….’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안절부절못하며 눈을 맞추었다가, 피했다가.
저택을 부순 것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여기면서도 그 이면에 무언가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라.”
“네?”
그의 나직한 부름에도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라를 보며 에단은 직감했다.
이거 뭐 있다. 있어도 무언가 굉장히 꺼림칙한 것이 있다.
당신이 어딘가 이상합니다, 라는 말이 에단의 목구멍 안쪽까지 바짝 올라왔다가 끝내 뱉어지지 못한 채 삼켜졌다.
껄끄러운 무언가를 속으로 삼킨 것처럼 입 안이 쓰고 목이 매었다.
“알톤 영지를 구하는 일이 사라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별거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제가요?”
“예.”
에단의 말에 사라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다가 중얼거렸다.
“제가 긴장하기에는 이번 일은 너무 쉬운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에단의 얼굴을 사라는 거울을 통해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에단은 거울 속 사라를 보며 생긋 웃어 주었다.
봄날의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과 같은 미소에 사라의 심장이 조금씩 쿵쾅거리기 시작할 때였다.
이어지는 에단의 말에 설렘을 담아 뛰던 사라의 심장은 순식간에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긴장의 원인이 그쪽이 아닌 모양이지요. 가령, 내가 알게 된다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일을 홀로 생각하고 있다든가.”
“……!”
사라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에단은 단언컨대 사라가 이토록 놀라 당황한 모습을 처음 보았다.
언제나 사라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것을 즐거워했지만, 이번만큼은 그걸 즐길 수 없었다.
“사라.”
“…….”
“그 작은 머리에 대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겁니까?”
에단의 손끝에서 곱게 땋아진 머리가 이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사라는 거울 너머로 서늘하게 가라앉는 에단의 얼굴을 보며 이번엔 두려움에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꽉 억눌러야만 했다.
미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다.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아니,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말할 수 있는 건 말할 생각이었어요. 근데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어서…….”
“그러니까 저와 상의할 생각은 있었다는 겁니까?”
“물론이에요!”
사라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멋대로 굴고 멋대로 행동하기에는 이번에는 사항이 좀 컸다.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지도 않았고 과한 걱정을 끼치기도 싫었다.
물론, 애초에 계획하고 있는 것이 걱정을 안 살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에단은 그녀가 어제저녁 이곳에 돌아왔을 때부터 수상하게 말을 붙이던 것을 떠올리고는 겨우 납득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제 말해 보세요. 듣겠습니다.”
“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사라.”
“네.”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른 에단은 사라와 친히 눈을 맞추며 생긋 웃었다.
“곧 이 로브를 쓰고 밖으로 나가면 그대는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정체를 감추어야 하니까요.”
“그렇죠.”
사라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흑마법사들과 그들이 부리는 마물들까지 상대해야 할 테고요.”
“네.”
이번에도 역시 에단 암브로시아의 목소리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황에서 내게 중요한 일을 상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뇨.”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젓는 사라를 보며 에단은 말을 아주 잘 듣는 클로드를 보듯 그녀를 보며 손을 들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사라는 저가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손길을 받으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은 감촉도 잠시, 사라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그럼 말해 보세요. 지금.”
마지막으로 사라의 머리 위로 떨어진 그의 목소리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요컨대, 지금 말하지 않으면 그녀가 아주 곤란해질 거란 말이었다.
“아, 아아! 아파요!”
“어서.”
“말할게요, 말할게요!”
사라는 머리를 지압하듯이 꾹꾹 눌러 오는 손길에 결국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공작님과 클로드 님에게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암브로시아에 들어가기 전부터요!”
“…….”
드디어 말할 마음이 생겼는지 사라가 입을 열자 에단은 그제야 머리 위에 올린 손을 치웠다.
“……?”
분명 무척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에단의 손길이 떨어지자 두피가 시원해진 느낌이 들었다. 사라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절대 웃고 있지 않은 에단과 눈을 마주치자 다시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는 순전히 디엘린 때문에 클로드 님의 유모가 되기로 한 건 아니에요.”
“그건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친우의 아이를 돌봐 준다기엔 그 이상의 것을 해 주고 있으니까요.”
에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단순히 친한 친구의 아이를 돌봐 주기 위해서라기엔 사라는 암브로시아의 내부적인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
암브로시아에서 사라의 존재는 아주 절대적이었다. 이제 그녀가 없었을 때의 암브로시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 헌신과 희생에 기생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에단은 언제고 사라가 그들을 버릴 수 있다고 여겼다.
그것이 얼마나 그의 마음을 좀먹어 가고 있는지, 사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화나지 않으세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암브로시아에 들어간 게 아니라서…….”
우물쭈물하며 그의 눈치를 보는 사라는 답지 않게 조금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그가 이 사실에 실망할까 봐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하.”
그 모습을 보며 에단은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을 삼켜야만 했다.
사라는 아마 모를 것이다.
그녀가 무엇이 필요해서 암브로시아에 찾아왔든지 간에, 그는 기꺼이 이용당해 줄 것이다.
그걸 이용해 사라를 암브로시아에 묶어 둘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에단은 스스로의 음습하고도 질척한 속내를 훌륭히 속여 보이며 답했다.
“상관없습니다. 오히려 암브로시아에서 그대가 얻어 갈 것이 있다는 게 더 반갑군요.”
“……!”
에단의 대답에 사라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그 안심하는 모습을 보며 에단은 제 이기심에 가슴이 쓰려 오는 것을 느꼈다.
“저는 아주 강대한 힘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저 이렇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할 정도로요.”
“대가라니. 그게 뭡니까.”
대가라는 말에 얼굴이 굳어지는 에단을 보며 사라는 달래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숨기려는 게 아니라 이건 마법사의 맹약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알겠습니다.”
마법사의 맹약이라는 말에 에단은 사라에게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아예 짐작 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라와 맹약을 나눌 만한 상대는 그녀의 제자들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벤야민과 벨루나가 암브로시아의 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 그들의 연구 방향을 살펴보면 분명 뭐가 나오겠군.’
바로 포기하는 척을 하였지만 에단의 머릿속은 누구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사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 대가를 치르는 삶이 결코 싫었다는 건 아니에요. 내겐 숨 쉬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이제 당연한 일상이 되었으니까요.”
두 개의 영혼을 오고 가는 삶. 그것이 사라가 치르고 있는 대가였다.
사라가 박혜연의 삶을 싫어하였는가, 혹은 박혜연이 사라의 삶을 미워하였는가.
그것은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다. 그녀는 두 개의 삶을 모두 사랑했으므로.
“그런데 어느 날 가장 원치 않을 때 그 대가를 치르지 않게 되었어요. 그래서 또 다른 불행이 그 대가를 대신하게 되었죠.”
“……대가에는 또 다른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원래 제가 치러 왔던 그 대가를 되찾고 싶어요.”
사라의 대답에 에단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녀는 에단이 지금 이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으나 차마 묻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 암브로시아의 힘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그저……. 제 잘못으로 어그러진 걸 바로잡고 싶은 생각뿐이었어요.”
“하지만 사라, 이 힘은 그대에게 도움이 되기에는 너무나…….”
“암브로시아의 힘 또한 대가를 필요로 하는 힘이죠.”
생명력을 필요로 하는 힘이라는 걸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이 힘이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그걸 대가로 내놓을 생각이 있다는 뜻.
에단의 얼굴이 희미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본 사라가 웃으며 말했다.
“이 자리에서 말하건대 저는 그 대가를 치러서라도 되찾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알아내야 하는 것도 있고요.”
“사라, 나는 절대 그대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내가 가진 힘 때문이라면 더더욱.”
“절대 저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예요. 약속해요.”
“…….”
부드럽지만 감미롭게 흘러나오는 사라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정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토록 다정하기 때문에 사라는 그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