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81화
* * *
“아버지?”
벌컥 거칠게 방문을 열고 뛰어 들어온 에단을 보고 클로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가왔다.
다급해 보이는 그 모습에 아이의 얼굴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일 있는 건가요?”
클로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렸다.
딱딱하게 굳은 아비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느낀 탓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면서도 어깨 너머의 사라를 보는 에단의 시선을 따라가던 아이의 얼굴은 금방 울상이 되었다.
“유모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요?”
“……잠시,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니.”
에단은 그런 클로드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상하지만 단호한 힘으로 아이를 밀어내는 손길에 조급함이 묻어 나왔다.
“저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요?”
클로드는 두 발에 잔뜩 힘을 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해하지 않을 거예요. 여기서 조용히 거슬리지 않게 앉아 있을게요.”
“…….”
“유모 옆에 계속 있고 싶어요. 제발요.”
클로드의 애원에 아이와 함께 있던 메이까지 간절한 시선으로 에단을 바라보았다.
본래라면 아이의 이런 부탁에 쉽게 마음이 허물어졌을 그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의 눈은 혼이 어디론가 빠져나간 것처럼 아득했고, 호흡은 거칠게 떨리고 있었다.
입술 끝이 파르르 떨리며 벌어지다가 이내 무슨 생각인지 꾹 다물리기까지 하였다.
“……?”
상태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해 보이는 에단을 보며 클로드와 메이는 조용히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클로드 님.”
메이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고, 클로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알았어요……. 잠시만 나가 있을게요.”
에단은 말없이 클로드의 머리칼을 쓸어 주었다.
메이가 클로드를 향해 손을 내밀자 아이가 그 손을 잡았다.
그렇게 방을 나서면서도 미련이 남은 듯 사라 쪽을 바라보았다.
그때 에단이 나직하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클로드.”
“네?”
귀를 쫑긋하며 뒤를 돌아보자 에단이 그를 향해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정원에서 기다리거라.”
“정원에서요? 지금은 산책 시간이 아닌데…….”
뜬금없는 에단의 말에 클로드가 고개를 기울일 때였다.
“잠시 뒤에 사라와 함께 가마.”
“……!”
클로드의 두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에단을 바라보는 눈은 한껏 커진 채였다.
“유모가 일어날 수 있어요? 유모가…….”
에단은 아이에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기다릴게요. 그러니까 꼭 유모랑 같이 오세요.”
클로드는 입술을 꽉 깨물며 뒤를 돌았다.
메이와 마주 잡은 손에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공작님께서 방법을 찾으셨나 봐요.”
“……응, 응.”
클로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눈물을 꾹 삼켰다.
만약에 아버지가 정말 유모를 일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라면, 눈물 젖은 얼굴로 유모를 맞이할 순 없었다.
유모가 없는 동안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고 운동도 했다고 자랑해야지.
보고 싶었는데도 많이 울지 않고 꾹 참았다고, 돌아온다고 했던 유모의 말을 믿었다고 꼭 말해 주어야지.
“유모가 일어나면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클로드의 말에 메이는 환히 웃으며 답했다.
“사라 님께서 아주 좋아하실 거예요.”
“응.”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닫고 나가는 클로드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난 뒤.
에단은 급하게 뛰어온 것과는 달리 사라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정작 사라를 눈앞에 두고 나니 몸이 뻣뻣하게 굳으며 두려움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걸터앉으며 사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얼굴로 잠든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이 낯설었다.
“…….”
에단은 아직 사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어째서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진 대마법사가 평범한 크롬벨 제국의 귀족으로 살아왔던 건지.
어떻게 자신과 클로드에게 그토록 헌신적인 애정과 관심을 퍼부어 줄 수 있었는지.
왜 그녀의 영혼이 이곳을 떠나 부재 상태가 되어 버린 건지.
제자들과 영혼을 건 맹약을 한 이유는 무엇이고 그게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전부 다 알고 싶은데, 크롬벨에서 그가 알아내지 못한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오직 사라 밀런만이 에단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처음부터 사라의 행동은 쉽게 예상할 수 없었어.’
암브로시아에 온 첫날부터 클로드의 방문을 날려 버렸던 사람이었다.
에단과 클로드 안에 자리 잡은 힘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알면서도 두려움 따위 없다는 듯 다가왔던 사람이었다.
감히 그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란 소리였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어디까지가 계획된 것이고, 어디까지가 계획되지 않은 것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니 두려울 수밖에.
“내 부름에 당신이 대답해 줄까…….”
만일이라는 것이 그의 발목을 붙들었다.
사라는 암브로시아의 힘이 ‘욕망’을 이루는 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힘을 믿고 1황자 카제르 드 크롬벨의 폭주를 온몸으로 막아 내었던 것이었다.
에단의 힘이 클로드의 힘처럼 변화할 수 있음을 믿고 있었다.
‘제가 공작님의 대답도 듣지 못하고 영영 떠날 사람처럼 보이세요? 절대 아닐걸요.’
그는 축 늘어진 사라의 손을 잡아당겨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일 년 내내 차가웠던 몸에 도는 따뜻한 온기가 반가웠다.
사라가 눈을 뜬 뒤로 계속해서 체온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사실이 그와 클로드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있는지 사라는 아마 모를 것이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당신을 믿겠습니다. 그러니 내 끔찍한 힘이 바뀔 수 있다는 것 역시…….”
에단은 사라가 끼워 주었던 반지를 매만졌다.
‘제가 준 반지를 그렇게 매정하게 빼 버리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네요.’
마지막으로 사라가 남긴 말이 맴돌았다.
“믿겠습니다.”
긴장 어린 한숨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옴과 동시에 에단은 천천히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었다.
1황자의 칼날 아래 사라와 클로드가 수모를 당했던 그날처럼, 힘을 주어 손바닥 안에서 부수었다.
그러자 반지의 힘이 그대로 에단의 안에 스며들며 암브로시아의 힘을 부드럽게 감쌌다.
“……!”
따뜻하게 그를 감싸는 그 힘은 마치 사라를 닮아서, 에단은 눈을 질끈 감으며 힘을 서서히 풀어놓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라가 다시 이리로 와 주기를. 나와 클로드를 선택해 주기를. 그래서 다시 한 번만…….
‘좋아해요.’
내게 그 달콤한 말을 들려주기를.
“……윽.”
서서히 그의 안에서 날뛰던 힘을 풀어놓을수록 힘이 불러오는 불안이 에단을 감쌌다.
하지만 에단은 외면하지 않고 힘을 느끼려 하면서 끊임없이 사라가 해 주었던 무수한 말들을 떠올렸다.
‘그래서 공작님은 지금까지 소중한 것 따위 하나도 만들지 않고 버텨 오셨나요? 그 삶이, 진정으로 행복하셨나요?’
‘저는 공작님이 무엇을 잃어 왔는지, 무엇을 포기해 왔는지 알지 못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공작님은 이제 소중한 것을 지킬 힘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예요.’
‘잃을까 봐 벌벌 떨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조금 다치고 힘들더라도 지켜 내는 쪽이 더 멋지지 않나요?’
‘저를 놀리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도 있지만, 공작님이 예전보다 잘 웃게 된 것 같아서 보기 좋네요.’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울리는 그 다정한 울림을 떠올리자 그의 안에서 서서히 깊은 욕망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힘에 점차 잠식되어 갈수록 그 욕망은 차차 그 부피를 더해 갔다.
“목소리도 웃는 얼굴도, 당신 품까지 전부 다…….”
차오르는 욕망은 이제 멈출 줄을 몰랐다.
에단은 자신의 욕망에 이제 솔직해져도 될 거라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싶어. 당신의 영혼 한 자락이라도 내어 줄 수 없어. 누구에게도.”
스산하게 울리는 에단의 목소리에 질척한 집착이 흘렀다.
그것이 그의 욕망이었다.
사라가 무사히 회복되어 눈을 떴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씹어 삼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섬뜩하기까지 한 집착이 결국은 에단의 욕망이었다.
“그 무엇도 내게서 당신을 빼앗아 갈 수 없어. 그것이 설사 신이라고 해도, 마법사의 맹약이라고 해도…….”
그의 몸에서 서서히 은회색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희미한 돌풍을 동반한 빛에 사라의 머리카락 또한 나부꼈다.
“내가 가질 겁니다.”
그의 입에서 노골적인 욕망이 서슴없이 흘러나왔을 때.
에단의 몸은 완전히 은회색 빛에 삼켜져 버렸다.
“……!”
그의 안에 잠자고 있던 암브로시아의 힘이 일제히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라의 방 전체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온몸의 혈관으로 암브로시아의 힘이 세차게 흐르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멈추기에는, 이미 늦었다.
‘안 돼……!’
문득,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평생을 제어해 온 이 힘이 혹여나 사라를 구하기는커녕 해치지 않을까.
나는 괴물이니까, 이 힘은 저주니까.
“사, 라…….”
힘겹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힘을 거두려고 할 때였다.
에단의 머릿속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징그러운 괴물 같은 것이, 네 주제를 알아야지!’
‘결국은 네가 다 망칠 거란다, 이 악마야. 네 힘이 저 여자를 완전히 죽게 만들 거라고.’
‘넌 암브로시아의 괴물이니까!’
‘너 같은 것을 사랑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절규에 가까운 어머니의 울부짖음이 머릿속을 찢을 듯이 쾅쾅 울려 댔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암브로시아의 힘을 타고 에단의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네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그 더러운 욕망을, 그 집착을 저 여자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니?’
저주처럼 퍼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에단은 그제야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을 수 있었다.
“……사라라면 오히려 좋아할 텐데요, 어머니. 저는 이미 그녀의 고백을 받은 몸이어서요.”
어미의 환청을 듣고서야 에단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아, 아아아아!!!!’
내가 저주받은 아이로 남아 주기를 바랐던 어미가 저리 절규하는 것을 보니, 그의 힘은 확실히 변해 가고 있는 것이 맞았다.
“드디어 이 아들의 사랑을 응원해 주시기로 하셨군요.”
그에게 퍼부어지는 어미의 저주가 이토록 달콤할 줄이야.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꾹꾹 억누르던 암브로시아의 힘을 온전히 개방했다.
“사라의 영혼을 다시 이곳에……, 붙잡을 수 있도록.”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암브로시아의 힘이 온 방 안은 물론이고 저택 전체에 퍼졌다.
잠시 뒤, 폭풍과도 같은 바람이 암브로시아 저택으로부터 온 대륙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 * *
대륙에서 시작된 힘의 파동은 차원을 건너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박혜연에게까지 전해졌다.
“……공작님이 드디어 나를 부르는구나.”
돌아갈 때가 왔다.
박혜연은 드디어 몸을 파묻고 있던 소파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드디어.”
앞으로는 영원히 오지 못할 곳을, 천천히 눈에 담다가 한 줄기 눈물과 함께 다시 그리운 암브로시아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강렬한 힘이 다시 박혜연 안에 깃든 사라의 영혼을 끌어당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