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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183화 (183/190)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83화

* * *

클로드는 초조한 낯을 감추지 못한 채 정원을 서성였다.

정원에 마련된 티 테이블에는 따뜻한 차와 달콤한 간식들이 놓여 있었지만, 클로드는 그쪽에 시선 한번 주지 않았다.

아이의 시선은 오직 사라의 방이 있는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직일까?”

“방금 굉음과 동시에 빛이 나는 걸 보셨잖아요. 분명 공작님께서 사라 님을 불러오신 거예요.”

“그런데 왜 이렇게 안 나오시지? 혹시 뭔가 잘못됐다든가…….”

“그럴 리가 없어요. 공작님께서 원하시는 걸 실패하실 리 없잖아요.”

“그렇지?”

메이가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클로드의 옆에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 주었다.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는 어린 클로드를 안심시키기에 충분했지만, 실은 그렇게 말하는 메이의 시선 또한 사라의 방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아.”

결국 클로드와 메이는 동시에 크게 한숨을 내쉬며 함께 정원을 서성거렸다.

조금 전 사라의 방에서 큰 소리와 함께 빛이 뿜어져 나왔을 때, 암브로시아 기사들이 대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가 베론에 의해 쫓겨났다.

그래서 지금 저 방 안의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론다도 베론에게 들은 게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사실 베론도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는 주군의 명만을 수행할 뿐 안쪽 상황은 모를 겁니다.”

클로드가 마지막 희망을 담아 론다에게 던진 질문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야말로 꼼짝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니까, 분명 해내실 거야.”

클로드는 애써 좋게 생각하려고 하며 티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차를 새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됐어. 어차피 식을 거니까.”

아이의 두 발이 허공에서 못마땅한 기색을 담아 동동거렸다.

그토록 기다렸는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라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지금 이 잠깐을 기다리는 게 못내 힘들었다.

손끝이 자꾸만 차가워졌고 심장은 불규칙하게 쿵쾅거리며 뛰었다.

하지만 클로드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아직도 멀었습니까?”

“계속 기다리고 계시네…….”

“그런데 이번엔 진짜인 것 같아요. 아까 다들 빛 번뜩이는 거 봤죠?”

“맞아, 맞아. 드디어 눈을 뜨시려나 봐요.”

무언가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챈 암브로시아의 사용인들과 에단의 수하들이 하나둘씩 정원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주군이 뛰쳐나가시는 뒷모습이 뭐랄까……,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집무실 안에서 벤야민 님과 벨루나 님이 맹약이 어쩌고 하면서 엎드려 계시던데. 이번엔 진짜 사라 님이 돌아오시는 게 아닐까요?”

“맞아! 벤야민 님 성격에 공격당했으면 그렇게 가만히 계실 성격이 아닌데……. 웃고 있더라니까?”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이들까지 전부 다 클로드의 옆을 지키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다들 자신들이 목격한 것을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하고 있지만, 시선은 클로드의 작은 뒤통수에 가 있었다.

결국 아이더러 안심하라고 하는 소리들이었다.

사라는 반드시 돌아올 테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유모가 올 거야.”

그 말들을 들으며 클로드는 그제야 찻잔에 손을 댔다.

찻잔에는 클로드가 좋아하는 꿀을 넣은 우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

“후우.”

이제야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긴 것처럼 보이는 클로드의 모습에 암브로시아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들 아이와 함께 사라를 기다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 저기 누가…….”

그때 정원으로 다가오는 남녀의 모습에 사람들이 목을 쭉 빼기 시작했다.

“……!”

쨍그랑, 하고 클로드의 손에 들렸던 찻잔이 떨어져 깨져 버렸다.

하지만 클로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앞에 떨어진 찻잔 조각들을 밟으며 앞으로 뛰어갔다.

“클로드 님!”

론다와 메이를 포함한 모두가 사색이 되어 클로드를 붙잡았다.

“위험합니다! 안 다치셨습니까?”

암브로시아 기사단 중 하나가 재빠르게 클로드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번쩍 들어 올리자 아이의 발이 허공에서 바둥거렸다.

“나, 나는 괜찮아! 저기 유모가…….”

클로드는 초조한 목소리로 몸을 뒤틀며 벗어나려다 이내 드러난 남녀의 얼굴에 입을 딱 다물었다.

“…….”

“…….”

“…….”

그와 동시에 정원에 있던 모든 암브로시아의 사람들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정원은 언제 소란이 일어났냐는 듯 묵직한 침묵에 휩싸여 버렸다.

“뭐야, 무슨 일인데 다 그러고 있어?”

“……무슨 일이 생겼나요?”

남녀, 그러니까 정원으로 다가온 것은 사라와 에단이 아닌 벤야민과 벨루나였다.

다들 멀뚱하게 굳어서 이쪽을 강렬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흐으.”

그때였다. 기사의 손에 번쩍 들려 있던 클로드의 입술 사이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 것은.

“흐어어엉!!!”

“클로드 님?”

아이의 입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얌전히 축 늘어져 있던 것과는 달리 클로드는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미워, 다 미워!”

“클로드 님! 위험합니다!”

“벨루나 누나도 밉고, 벤야민 형도 밉고 다 밉단 말이야! 흐아아아앙!”

서럽게 엉엉 울며 격하게 발버둥을 치는 탓에 클로드를 들고 있던 기사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몰라 눈을 가늘게 뜨던 벤야민이 마력을 일으켜 클로드를 부드럽게 감싸 제 쪽으로 끌어왔다.

“대체 또 뭐가 불만이야?”

“몰라! 벤야민 형 미워, 이거 놔아!”

클로드는 어느새 벤야민의 품에 안긴 것이 불만이라는 양 그의 가슴을 퍽퍽 때리며 발버둥 쳤다.

여태까지 떼 한번 쓰지 않고 꾹꾹 참았던 것이 일순 다 터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런 클로드의 투정을 벤야민은 온몸으로 받아 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윽, 으흑, 다 미워…….”

“그래, 그래, 꼬맹아. 때려라, 때려.”

때리면 때리는 대로 발길질을 하면 발길질을 하는 대로 벤야민이 얌전히 다 맞아 주었다.

클로드는 입술을 삐죽이며 이번에는 그의 목에 팔을 둘러 꼭 끌어안았다.

그러곤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허어어엉. 벤야민 형, 나 유모가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단 말이야…….”

“그래. 내가 미안하다, 꼬맹아. 스승님이 오시는 줄 알았다가 실망했구나, 너.”

“흐으……, 응. 유모인 줄 알았단 말이야…….”

클로드는 벤야민의 어깨 자락에 눈물과 콧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벤야민은 잠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벨루나가 옆구리를 찔러 대자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얌전히 클로드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유모가 안 오면 어떡해……. 계속 저렇게 잠만 자면 어떡해. 너무 보고 싶은데…….”

“오실 거라니까.”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거야 스승님과 맹약이 깨졌……, 근데 너 은근슬쩍 아저씨라고 부른 거 맞지?”

“흥.”

클로드는 다시 벤야민의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안기려다가 자신의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옷을 발견했다.

“으.”

아이는 질색하며 벨루나에게 양팔을 내밀었다.

“야, 이거 네가 그렇게 만든 거야.”

“더러워, 벤야민 형.”

“네가 그런 거라니까?”

어느새 다시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벤야민과 클로드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클로드는 진정한 듯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벤야민의 입에서 사라가 돌아온다고 했던 말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린 만큼 클로드는 아주 작은 것에도 쉽게 불안해졌지만, 그만큼 작은 희망도 쉽게 믿었다.

“……후.”

벨루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에게 팔을 벌리는 클로드를 안아 주려 했다.

하지만 벨루나는 한발 늦어 버렸다.

“읏챠, 우리 예쁜 클로드 님은 이리로 오세요.”

누군가가 벨루나보다 먼저 클로드를 번쩍 안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에는 맑은 웃음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

“……!”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 벨루나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얼결에 품에 안긴 클로드도 마찬가지였다.

“잘 지냈어요? 우리 클로드 님, 얼굴이 엉망이 됐네.”

아이의 달아오른 뺨을 쓸어내려 주는 손길은 아주 부드러웠다.

섬세하고도 다정하게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해 주고 다 닦지 못한 눈물을 훔쳐 주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우는 얼굴만 보여 주실 거예요?”

“……유모.”

사라였다.

클로드가 울고 발버둥을 치고 벤야민과 투닥거리는 그 사이에 사라가 돌아와 정원에 들어온 것이다.

그립고 그리웠던 클로드를 보기 위해서.

“유모야?”

“네, 클로드 님.”

“정말?”

“네에, 정말이에요.”

클로드는 계속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리는 시선으로 사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도,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는 것도.

사라가 맞았다. 분명 클로드가 여태 그리워하던 그녀가 맞았다.

시선을 조금 들어 보자 저 뒤에서 이쪽을 보며 가만히 웃고 있는 에단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유모야?”

“그럼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부르는 클로드에게 대답해 주며 사라는 환히 웃었다.

“저 돌아왔어요. 완전히.”

“……흐윽.”

사라의 대답에 클로드의 눈에서 멈췄던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는 더듬더듬 손을 내밀어 사라의 옷자락을 꽈악 쥐었다.

금방이라도 다시 가 버릴 것만 같아서, 안간힘을 다 주면서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잡았다.

“보고 싶었어, 유모. 나 정말…… 너무…….”

“알아요. 저도 너무 보고 싶었으니까.”

사라는 클로드를 꼭 끌어안으며 이제야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하아……. 이제야 정말 돌아온 것 같아요. 우리 클로드 님 냄새, 너무 좋아.”

“흑, 흐윽으, 허엉……. 아버, 아버지……, 유모가 왔어요. 흑. 유모가 왔어요, 아버지…….”

클로드는 사라에게 안긴 채로 감격에 차 울며 에단을 찾았다.

그러자 멀찍이 서서 지켜만 보고 있던 에단이 다가와 그런 클로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며 말했다.

“이젠 다시 우리가 헤어지는 일은 없을 거란다. 꼭 그렇게 만들어 주마.”

“흐윽, 흐으으윽.”

클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럽게 울었고, 사라는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에단을 보며 눈매를 접어 환히 웃었다.

에단은 그런 사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다음엔 클로드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두 팔을 벌려 클로드와 사라를 함께 끌어안았다.

“…….”

“…….”

그 광경을 암브로시아의 모두가 지켜보았다.

세 사람에게선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무언가가 흐르고 있었다. 따뜻했고, 애정이 흘러넘쳤고,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했다.

그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드디어 암브로시아가 완전해졌구나.”

그리고 그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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