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184화
* * *
사라가 오랜 잠에서 깨어난 뒤.
암브로시아는 아주 극적인 변화를 맛보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아주 극적인 변화였다.
“으흐흐.”
“우후후후후훗.”
바쁘게 저택을 누비는 사용인들의 입에서 연일 요상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빨랫거리를 옮기다가 갑자기 멈춰 서선 고개를 푹 숙이고 웃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일을 시작한다든가, 창문을 닦다가도 손을 멈춘 채 끅끅거리며 웃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던 일을 마저 하곤 했다.
방 청소를 하다가도 함께 일하던 이와 눈이 마주치면,
“오늘도……, 역시나겠죠? 크흡.”
“그럼요, 한결같겠죠. 으하핫.”
이런 대화를 하며 또 괴상하게 웃었다.
누가 보아도 확연하게 이상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은 미처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밀런 소백작님이 제 이름을 부르며 안녕이라고 해 주셨어요.”
“겨우 그 정도예요? 저에게는 그동안 잘 지냈냐고 안부도 물어봐 주셨다고요.”
어떨 때는 사용인들끼리 서로 사라와 말을 몇 마디나 나누었는지 내기를 했다.
“흥, 나는 말야 무려 내 옷에 묻은 머리카락을 직접 떼어 주셨어!”
“헉!”
“음핫핫핫핫!”
그중에서도 사라의 손끝이 잠깐이라도 닿은 사용인이 있으면 어김없이 승리를 차지하곤 했다.
다른 사용인들은 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사라의 곁을 맴돌며 틈틈이 기회를 엿보았다.
“돌봐 드리고 싶어…….”
“가둬 놓고 영양가 있는 음식들만 먹이고 싶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관리해 드리고 싶어…….”
그렇게 암브로시아 사용인들의 욕망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런 과한 욕망을 탓하는 자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물의 숲으로 암브로시아의 모든 것을 옮겨 온 이후로 저택에는 언제나 음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해가 들지 않는 마물의 숲 탓이라고 하기엔 그들에게 있어서 사라의 존재란 이토록 컸다.
그래서 사라가 돌아온 뒤 암브로시아 저택의 분위기는 봄날의 햇볕처럼 따스하고 청량해졌다.
마물의 숲의 음울한 날씨도 사라가 주는 평온함 앞에선 아늑하고 시원한 그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흐흐흐.”
“하하하.”
그렇게 암브로시아에는 웃음꽃이 시드는 일 없이 여러 가지 의미로 활기차졌다.
그중 가장 사용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근무처는 에단의 집무실 근처였다.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에단의 모습에 다들 마음이 아픈 것과 별개로 두려워 꺼려 하던 것도 이제 옛일이었다.
“론다 님, 주군과 밀런 소백작님께 따뜻한 차를 한 잔씩 올릴까요?”
“주군께서 밀런 소백작님께 손수 끓여 드리고 싶다고 필요 없다고 하시네.”
“그럼 베론 님, 추가 보고는 필요 없다고 하십니까? 방금 전 전령이 도착했다고 하던데.”
“밀런 소백작님께서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이미 저 안에서 다 보고받으셨답니다. 마법으로요.”
암브로시아 사람들의 노골적인 욕망이 묻어 나오는 요청들은 론다와 베론이 부지런히 쳐 내고 있었다.
사라가 깨어난 뒤로 그녀를 보필하고 싶어 하는 사용인들의 노력은 아주 가상했다.
게다가 에단과 사라가 함께 있을 때면 그들의 노력은 가상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격렬해졌다.
“하……, 아쉽다.”
“나도 보고 싶은데.”
베론과 론다에 의해 제지당한 시녀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그들이 이토록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를 노리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난번엔 릴리가 동관 서재에서 두 분이 입맞춤하는 걸 봤대요.”
“정말이야? 난 어제 하우퍼가 두 분이 산책하다가 포옹하는 걸 봤다고 해서 부러워했는데……. 이젠 릴리를 부러워하게 생겼어!”
“그러니까요, 릴리가 말하기를 주군께서 밀런 소백작님의 목에 입술을…… 꺅!”
속닥거리며 흐흐 웃던 시녀들 사이에 불쑥 흰 팔 하나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자 엄한 표정의 론다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쯧. 지금 이곳이 어딘지 다들 잊은 건가? 주군의 집무실 앞에서 못하는 말들이 없어.”
“시녀장님…….”
“죄송합니다.”
시녀들은 즉시 반성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들의 위로 론다의 목소리가 한숨처럼 내려앉았다.
“이런 공공연한 장소에서 주군의 사생활을 감히 입에 올릴 정도로, 암브로시아의 입이 가벼워졌던가.”
“아닙니다, 시녀장님. 저희가 실수를 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내가 이번 한 번은 넘어가도록 하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 주렴. 주군과 밀런 소백작님 앞에서는 더더욱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고.”
“네.”
“그리고…….”
따끔하게 혼나던 이들은 약간의 웃음기와 함께 말을 흐리는 론다의 목소리에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한쪽 입꼬리를 당겨 씨익 웃는 론다의 얼굴이 보였다.
“다음에는 나도 껴 줘.”
“……!”
론다의 말에 모든 이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으흐흐 하고 웃었다.
그러니까 이상해진 것은 이들뿐만이 아니라 그냥 암브로시아 전체였다.
“다들 보냈어, 론다?”
“응, 다음에는 나도 껴 준대.”
베론은 요상하게 웃으며 에단의 집무실 근처를 서성거리는 이들을 쫓아낸 론다를 보며 약간 질린 듯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 쫓아낸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기야 다들 얼마나 좋고 재밌겠어. 이제야 이 저택이 사람 사는 곳다워졌는데 말이야.”
“맞아, 베론. 당장 나만 해도 너무 재밌는걸.”
론다는 슬쩍 틈이 벌어진 에단의 집무실 문 앞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히죽. 론다의 입꼬리가 주체를 못 하고 위로 솟구쳤다.
“야, 론다 너…….”
“조용히 해.”
베론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론다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다른 사용인들을 쫓아낸 건 이렇게 혼자서 편히 보기 위함이었다는 걸, 베론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하.”
그때 론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며 그녀의 귓불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베론은 슬쩍, 슬쩍 아닌 척하며 론다의 옆으로 다가갔다.
“…….”
그러곤 조용히 그녀를 따라 집무실 문틈을 바라보았다.
집무실에서는 에단이 사라에게 지금 현 대륙의 상황을 정리해 놓은 서류들을 보여 주고 있었다.
사라는 집무실 소파에 앉아 서류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는 얼굴로 그에게 무어라 말했다.
“언제부터……, 계획을……. 그래서 알톤을…….”
거리가 있어서 그런지 사라가 에단에게 무어라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1황자의 쓰임은 원래……, 변수가…….”
그녀에게 대답해 주는 에단의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론다와 베론은 어느새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계속해서 그 둘을 지켜보았다.
에단은 그런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의 손목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시선은 서류에 고정된 채로 사라의 상체가 에단 쪽으로 확 기울었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등을 에단의 가슴에 기댄 채 반쯤은 안긴 자세가 되었다.
에단의 수려한 입매가 만족스럽다는 듯 아름답게 휘어졌다.
그의 한쪽 팔이 자연스럽게 사라의 허리에 둘러졌다.
“아하하!”
에단이 고개를 숙여 사라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자 그녀의 입술에서 맑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간지럽다는 듯 몸을 움츠리는 사라를 보며 에단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만하라며 발버둥 치던 사라가 몸을 바로 해 에단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서히 웃음이 가라앉고, 얽어지는 시선엔 짙게 타오르는 무언가가 오고 갔다.
천천히 사라가 손을 들어 에단의 뺨을 감쌌다.
에단의 눈이 느리게 깜빡이다가 이내 천천히 눈을 감으며 사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툭, 사라의 손에서 서류들이 떨어졌다.
“……하.”
뜨거운 숨소리가 고요한 집무실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사라의 두 팔이 에단의 목을 감싸고, 두 사람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그 모습을 보던 베론과 론다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베론은 민망하다는 듯 괜히 론다를 툭툭 치며 속삭였다.
“……두 분께서 이제야 겨우 마음이 통하셔서 그런지, 아주 뜨거우시네.”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베론의 말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론다가 아니었다.
발밑에서 들려온 소리에 베론과 론다의 시선이 동시에 아래로 향했다.
“……헉!”
“클……!”
무심코 소리를 지를 뻔한 론다와 베론이 각자 서로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다.
베론의 말에 대답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클로드 암브로시아.
이 집안의 작은 주인이었다.
클로드가 기척조차 내지 않고 다가와 쪼그리고 앉아 베론, 론다와 함께 문틈으로 에단과 사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이런 건 보시면 안 됩니다.”
론다가 당황하여 말했지만 클로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그것이, 교육상…….”
“부모가 서로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정서 교육에 아주 좋다고 유모가 그랬어. 근데 왜?”
“그건 맞는데…….”
“유모는 아버지의 연인이니까, 이제 곧 내 엄마가 될 건데. 부모가 저렇게 다정한 건 좋은 거 아니야? 왜 보면 안 돼? 왜?”
클로드의 물음에 론다는 결국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일곱 살이 되면서 클로드의 말솜씨는 그야말로 일취월장하여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저택에 몇 없었다.
게다가 ‘왜?’라고 묻는 클로드의 무한한 질문을 만족스럽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이는 사라 한 명뿐이었다.
“…….”
“…….”
베론과 론다는 결국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클로드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클로드의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는데, 아이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너무 늦었잖아. 이제 겨우 마음이 통했다니. 아버지도 너무 무르고 유모도 너무 느려.”
무르다는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베론과 론다는 클로드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클로드와 아무렇지도 않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건 아이를 뒤따라온 메이였다.
“맞아요. 두 분이 서로에게 마음이 생긴 건 아주 오래전인데, 이어지기까지 이렇게나 오래 걸렸으니……. 지켜보는 제가 현기증이 날 지경이에요.”
“그렇지? 메이도 봤잖아. 파티장에서 유모를 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럼요, 그럼요. 클로드 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분수도 모르고 사라 님께 말 한번 걸어 보겠다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죠.”
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게 일상이라는 양 클로드에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클로드는 메이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아버지가 좀 더 분발하셔야 해. 유모를 꽉 잡아야 한단 말이야.”
“옳으신 말씀이세요. 이번에 확실히 하지 않으면 또 얼마나 걸릴지…….”
클로드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려놓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휴, 안 되겠어. 두 사람 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깊은 한숨이 클로드의 작은 입 사이로 새어 나왔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무거운 한숨이었다.
“가자, 메이.”
“네, 클로드 님.”
클로드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얼굴로 메이를 끌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에단의 집무실 앞에는 어느새 다시 베론과 론다 두 사람만이 남겨졌다.
“……있잖아, 베론.”
“응.”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내가 무슨 수로 알겠어, 론다.”
언제부터 메이와 클로드가 와 있었는지.
언제부터 저 두 사람이 저렇게 한마음 한뜻이었는지.
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죽이 잘 맞았는지.
베론과 론다는 당최 알 수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