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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바람이 닿은 곳은-53화 (53/56)

# 53

53화.

무현은 손을 올려 향기의 뺨을 감싸 저를 보게 했다.

“얼만큼?”

“많이요. 할아버지가 아파서 못 갔는데…….”

“왜 말 안 했어?”

“걱정할까 봐요.”

무현은 입술을 겹치며 신음했다. 이렇게 길어질 줄 모르고 성철과 함께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처음 의도는 좋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서운했다. 그리고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마지막 촬영이 끝나고도 여유를 부리는 척했다. 그러다 문득 아예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 생각을 한 후로 어떻게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향기는 무현의 키스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가 주는 타액을 삼키고 입안을 헤집는 혀를 강하게 빨았다.

하아. 향기야.

조급하게 저를 원하는 키스에 무현은 몸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촬영 직후 바로 온 상태. 간신히 입술을 뗀 무현은 그새 부어오른 붉은 입술을 엄지로 쓸고 혀로 핥아 주었다.

“보고 싶어서 운 거야?”

“네.”

아, 씻기 싫다. 이럴 줄 알았으면 땀나도록 뛰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저녁 식사 해야죠?”

“씻는 것부터.”

“할아버지는 곧 오실 거예요.”

“만나 뵙고 올라왔어. 오늘 마을에서 주무신대.”

무현은 향기를 안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누르고 욕실로 향했다.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 * *

식사를 차리다 무심결에 고개를 돌린 향기는 입을 반쯤 벌리고 말았다. 수건으로 중심부만 가린 무현이 욕실 앞에서 젖은 머리를 털고 있었기 때문이다.

넓은 어깨에 근육이 알맞게 잡힌 가슴. 반듯하게 몸을 나눈 복근과 부드럽게 들어간, 여성의 것과는 다른 느낌의 허리. 특히 허벅지 근육이 꿈틀대는 긴 하체는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근사했다.

꼴깍.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오늘 따라 유난히 근사해 보인다. 하긴 무현의 나신을 온전히 보는 게 흔한 기회는 아니다.

무현은 머리를 털던 수건을 내리지도 못하고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넋을 놓고 빤히 저를 보는 향기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고 싶어서.

피나는 식단 조절과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 노력을 보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는 피지컬 덕에 베스트 드레서 상을 수년 동안 받아 왔다.

이런 몸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저를 순식간에 아저씨로 만들어 버린 야속한 향기다. 그런 그녀가 저를 남자로 감상하겠다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슬슬 몸을 부풀리며 수건을 들추려는 분신을 책망하며 무현이 슬쩍 고개를 틀었다.

“더 서 있을까?”

“아.”

향기는 정신을 차리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손을 뻗었다.

“오, 옷 거기 뒀는데.”

씻고 갈아입으라고 욕실 앞에 준비해 둔 옷을 가리켰다.

향기의 말을 무시한 채 성큼 걸음을 옮긴 무현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가스레인지를 껐다.

“볼만했어?”

“……네. 근사했어요.”

무현은 “식사!”라고 외치는 향기를 가볍게 안아 들고 방으로 향했다.

주인을 닮은 아기자기한 침대에 올려놓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뺨을 잡고 향기가 똑같이 입을 맞춘다.

“큰일이다.”

“뭐가요?”

“더 예뻐져서.”

그리고 자신이 점점 애들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불퉁한 목소리를 냈다.

“아닌데요.”

“너 서울 온다는 말 안 해서 삐졌었거든. 여기서 살고 싶어 할까 봐 불안해하고.”

사랑을 하면 유치해진다고 했던가. 무현은 제가 이런 감정을 경험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한 꺼풀 한 꺼풀씩 향기의 몸에서 옷을 거둬 내자 뽀얀 속살이 저녁노을처럼 붉어진다.

“다시 말해 봐. 보고 싶었다고.”

“그리웠어요. 잠도 안 오고 허전하고.”

더는 대화가 필요 없었다. 작은 속옷까지 벗겨 냈을 때였다. 향기가 손을 뻗어 주춤주춤 가슴을 더듬어 내리더니 그의 허리에 묶인 수건을 풀어낸 것은.

실순가, 생각하는 순간 걸쳐진 수건을 걷어 내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겹쳐졌다. 갓난아기를 다루듯 살살 손가락으로 쓸어내린다.

무현은 질끈 눈을 감았다. 기타 연주할 때도 열 손가락을 다 쓰면서 왜 손가락 하나만 쓰는 거냐고 묻고 싶었다.

딱 한 번 강요나 다름없게 그의 것을 손에 쥐었던 향기였다.

“아파요?”

“전혀.”

조금 힘줘 잡더니 난감한 얼굴을 하는 향기를 보고 무현은 저도 모르게 신음했다.

“향기야.”

“보고 싶었어요.”

상체를 세워 그의 가슴에 아이처럼 얼굴을 비비는데 눈앞에서 번쩍 별이 튀고 아찔했다.

작은 입술이 그의 가슴에 열 도장을 찍고 내려간다.

도대체 왜 이래? 그러나 몸도 입도 굳어 꿈쩍할 수 없었다.

그의 허벅지 안쪽에 앉아 쪽쪽, 입을 맞추자 온몸이 펄펄 끓는다.

“무슨 일이야?”

“싫어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순진한 척하려는 게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그랬다.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은 산골, TV도 없는 집. 깊은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조차 다 외지로 나가고. 무현과 관계에서 많이 미안했었다.

“그럴 리가.”

“사랑해요. 무현 씨가 해 주는 대로 똑같이 해 주려고요.”

호칭도 변했다. 무슨 일일까. 온몸을 홍시처럼 붉히고 횡설수설. 무현은 짐승처럼 향기의 입술을 삼켰다. 작은 살덩이를 빨고 가냘픈 뒷목을 잡아 틀며 깊숙이 혀를 얽었다. 진한 키스에 콧소리를 내는 그녀의 입속을 타액이 범람하도록 휘저었다.

진한 키스가 끝나자 무현은 그녀의 몸으로 입술을 내려 핥고 삼켰다. 향기의 신음이 커지자 그의 애무가 더 짙어졌다.

나만 애타게 원한다는, 가슴에 남아 있던 찜찜한 우려가 싹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몸을 비트는 향기를 그의 품에 가두고 진한 애무를 퍼붓자 향기의 신음이 탁해졌다.

“흐읏.”

다리를 세웠다 뻗으며 흥분을 표현하는 몸짓이 그의 욕구를 더 부추긴다.

향기는 신음을 참지 않고 쏟아 냈다. 빨리 무현과 몸을 잇고 싶었다. 제 안을 가득 채워 줘서 허전하지 않게. 떨어져 있는 동안 무현이 너무 그리웠다.

“빨리 안아 줘요.”

“하.”

얼굴을 복숭아처럼 물들이고 그의 머리를 잡아당긴다. 마치 자신을 가져 달라는 듯.

무현은 아낌없이 향기를 삼키며 입을 열었다.

“피임하지 말자.”

“빨리.”

무현의 입술이 삐딱하게 틀어지며 향기를 안았다.

무현은 향기의 입안에 손가락을 물려 주었다.

“깨물어.”

저를 원하고 안아 달라 애원하는 눈빛이 짙어져 있었다. 향기는 그의 목에 힘껏 매달린다.

“하앗……!”

“으.”

탁한 신음이 무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를 원하는 향기를 내려다보는 무현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대로 폭주하면 다칠 텐데.

“조그만 참아 줘.”

“사랑해요.”

고개를 끄덕이는데 눈에는 물기가 일렁인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흥분이 몰려온다.

향기의 신음이 크게 터지고 봉긋한 가슴이 제법 출렁인다. 쑥스러워 숨기기 바빴던 신음, 야한 몸짓이 무현을 더 거칠게 만들었다.

허우적거리던 팔을 올려 침대를 짚은 무현의 팔을 잡는다.

새빨갛게 익은 입술이 벙긋대다 톤이 높아졌다.

“으흣, 자 자기야!”

헉! 무현은 시간이 멈춘 듯 향기를 내려다보았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호칭에 무현의 이성이 뚝 끊겼다.

“다시.”

“으흣, 오 오빠?”

“고르면 돼?”

대답하듯 눈을 감았다 뜨는데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진주처럼 굴러 떨어진다.

사람 홀리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꽃향기, 네 무덤 네가 판 거야.

제 여자를 완벽하게 소유하고픈 수컷의 이기심에 향기의 몸을 뒤집었다.

“힘들게 하고 싶어.”

“서울 안 가서요?”

“예뻐서.”

향기의 등에 가슴을 겹치고 척추를 따라 입맞춤을 하며 상체를 세웠다.

향기는 허리를 비틀며 야릇한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곧 다시 안아줄 거라는 기대감에 온몸이 달아올랐다.

무현은 향기의 몸을 지분거리다 단번에 몸을 겹쳤다.

날카로운 신음을 쏟는 향기를 꽉 안았다.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다.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아흣. 그…… 그만.”

“다시 불러 봐.”

“자, 자기야? 오빠? 아앗!”

이 상황에서도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틀어 저를 보며 눈을 홉뜨는데 무현의 이성이 뚝 끊겼다.

정신없이 흐느끼던 향기가 절정에 달했다.

무현은 온도를 높이는 향기를 꼭 안았다. 그녀를 아낌없는 사랑으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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