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0화 (10/322)

§ 10화 - 사령영지, 루벤(3)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엔 시안이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 도련님··· 이게 대체 어찌된···?”

한스는 눈을 부릅, 떠보인 채 시안에게 물었다.

그러다 퍼뜩.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다름 아닌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

아무래도 시안이 그 아티팩트로 무언가를 한 듯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아르나이즈가 남긴 아티팩트라도 그렇지···.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한스의 벌어진 입은 쉬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시안은 그런 한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그레이슨을 바라봤다.

한스와 마찬가지로 경악하는 그레이슨의 모습.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때?”

“······”

그레이슨은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저 경악 어린 시선으로 시안을 바라볼 뿐.

이윽고 시안이 목책을 훑어보며 말했다.

“습격해오는 고블린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

그레이슨은 시안의 시선을 따라 목책을 바라봤다.

목재의 품질하며 설계 완성도까지.

그레이슨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목책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다.

“이, 이건···.”

단순한 목책이 아니었다.

그저 나무 판때기를 세워 놓은 조잡한 목책이 아니었다.

그레이슨은 허리춤의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목책을 향해 휘둘렀다.

캉!

쇠붙이가 부딪히는 굉음이 들려왔다.

단검을 쥔 손아귀가 저려온다.

목책이 아니라 철책이라도 되는 걸까?

말이··· 말이 안되었다.

혹시 엘란두르의 지원이라도 받은 건가?

엘란두르의 망나니라도 핏줄은 핏줄이니까?

그레이슨의 정신이 멍해져만 갔다.

“고블린 정도는 문제 없겠지?”

이윽고 들려온 시안의 목소리에 그레이슨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바라본 시안의 모습은, 눈빛은 그 어떤 것보다 확고했다.

그레이슨은 가만히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툭.

“나는 너를 믿지 않는다.”

그레이슨이 입을 열었다.

시안을 바라보는 그레이슨의 눈빛에는 짙은 불신이 묻어있었다.

그레이슨은 시안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시안 뒤에 붙은 ‘엘란두르’ 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살려달라 부르짖을 때.

다른 영지로의 이전이라도 허락해달라 요구했을 때.

매몰차게 외면했던 엘란두르였다.

사령영지, 루벤.

이곳에서 살 바에는 차라리 떠돌이 생활이 더 나았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루벤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다.

사람들은 어둠의 숲에 먹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러했을까?

정말로 어둠의 숲은 단 한 명의 사람도 살려보내지 않았을까?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레이슨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 엘란두르와 관련이 있다.

다만, 밝혀지지 않았을 뿐.

그러니 믿지 않는다.

속지 않는···.

“나를 믿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시안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도망만 치며 살아갈건데.”

“······”

그레이슨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그레이슨이라고 도망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이기는 것이 불가능했으니까.

절대적인 전력의 차이.

습격해오는 고블린들을 막을 힘이 그레이슨에게는, 영지민들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떠돌이와도 같은 생활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떠돌이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살아남음에 안도하는.

그러나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남지 걱정하는.

거렁뱅이보다 못한 삶이었다.

그레이슨은 상관없었다.

그런 삶은 얼마든지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는, 아이들에게는.

그리고 자신의 어린 딸에게는.

정착하여 살아갈 터전이 필요했다.

그레이슨은 가만히 시안을 바라봤다.

‘정말··· 싸우려 한다고?’

그간 루벤의 영주랍시고 온 모든 작자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저 혼자 살겠다며 영지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명령만 내릴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루벤을 방어하는 튼실한 목책.

고개를 돌려 바라본 시안의 모습은 상당히 꾀죄죄했다.

머리는 산발에 피부는 뭔지 모를 것으로 거뭇해져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것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귀족의 품격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뒷골목의 천민이라 해도 믿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레이슨은 어째서일까.

그런 시안의 모습에서 진짜 귀족의 모습이 비쳐보였다.

그것은 정말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그레이슨은 분명 그러한 심정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레이슨은 시안을 믿지 않았다.

엘란두르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같이 싸운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는데.”

그레이슨은 시안의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

루벤 영지와 인접한 어둠의 숲.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과 우거진 풀숲 사이로.

“케륵.”

“케흐르륵.”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고블린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수 백.

어쩌면 1천 단위에 근접한 고블린들의 수는 ‘무리’가 아니라 ‘군단’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수의 고블린들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루벤이었다.

인간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곳.

정확히는 터를 잡고 있다기보다는, 터를 잡으려 한다고 함이 정확했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사라졌던 인간들이었다.

숲을 이 잡듯이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던 인간들.

그런데 얼마 전에 정찰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인간들이 루벤에 또 다시 터를 잡으려 한다.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고블린들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케르륵···.”

“키에엑···.”

잘 차려진 음식을 외면할 고블린들이 아니었다.

고블린들은 끈쩍한 침을 흘리며 루벤을 향해 이동했다.

곧 있을 만찬의 포식을 상상하며.

그렇게 얼마를 이동했을까.

고블린들은 루벤의 영역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케륵?”

“케르륵?”

고블린들은 의아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벤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루벤의 영역을 둘러싸고 있는 목책.

분명 어제만 하더라도 없지 않았나?

“케르륵?”

수 백의 고블린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케르륵!”

고블린들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상관없었으니까.

저딴 나무로 된 목책 따위.

그냥 부숴버리면 그만이었다.

아마 인간 놈들이 살아남기 위해 발악이라도 한듯 싶었다.

하지만 발악은 그저 발악일 뿐.

죽음을 잠시 체불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목책을 세운 것을 보아하니,

저 안에 인간 놈들이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

“킥킥!”

“케케켁!”

고블린들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달려갔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루벤의 영지.

동시에 다가오는 만찬의 시간!

“케흐르르륵!”

고블린들은 환희를 터트리며 목책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카앙!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들려서는 안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목책 아니었나?

그런데 왜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저려오는 손아귀.

목책은 흠집하나 없이 멀쩡했다.

“케륵?”

고블린들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일부 고블린들은 이럴리가 없다는 듯 재차 목책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캉! 카앙!

하지만 둔탁한 굉음만 들려올 뿐.

목책은 아무런 타격조차 입지 않았다.

되려 무기가 부러지는 고블린들도 있었다.

“케르륵?”

“크륵?”

바로 그때.

“지금이다!!”

돌연 목책 위로 성난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곳엔 웬 인간 놈팽이 하나가 검을 치켜들고 있었다.

저 새끼는 뭐지···? 싶은 것도 잠시.

“모두 공격!!!”

그 놈팽이의 외침과 함께.

와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엄청난 함성이 터져나오며 이곳저곳에서 인간들이 튀어나왔다.

콰콰콰쾅!

파바바바박!

그리고 쏟아지는 무차별한 공격들!

키에에에에에엑!!!

고블린들의 비명소리가 하늘을 뒤덮었다.

#

“허억···! 허억···!”

거칠어진 숨.

그레이슨은 차분히 전황을 훑어봤다.

루벤을 향한 고블린들의 공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거진 10배 이상의 전력차.

초기에 기세를 잡았다고는 하나 고블린들의 전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막아라! 반드시 막아라!”

“그동안 당해왔던 것을 되돌려주자!”

루벤은 고블린들의 공격을 무리없이 잘 막아내고 있었다.

물론 수 십과 수 백의 전력차가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수 십의 영지민들은 단순한 영지민들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어둠의 숲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들.

척박하다못해 끔찍한 곳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베테랑들이었다.

“어딜 기어들어오려고!”

“너희 고블린들의 습성은 이미 다 꿰차고 있다고!”

이들은 웬만한 정규 병사들보다 더한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리한 건 사실이었다.

10배의 전력차는 쉬이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고블린들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카앙!

말도 안되는 강도를 자랑하는 목책.

“서쪽으로 공격이 집중된다! 한스! 가서 지원해줘!”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해당 위치를 반드시 사수해라!”

그리고 시안의 적절한 진두지휘 덕분이었다.

그레이슨은 가만히 시선을 들어 시안을 바라봤다.

“목책을 타고 올라오는 놈들부터 노려라! 절대 놈들이 목책을 타고 올라와서는 안돼!”

성난 황소처럼 소리치는 시안.

시안은 최전방에 서서 고블린들과 싸우고 있었다.

“보급이 충분하지 않다! 한 발 한 발, 조준해서 쏴라!”

그의 말마따나 루벤의 보급은 충분하지 않았다.

화살은 턱없이 부족했고,

공성 장비 같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던지고 쏘는 것은 그저 조잡한 돌덩이에 불과했다.

지난 날, 영지민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밤새도록 모으고 모은 것들.

그리고 그 작업에 있어 시안은 빼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앞장 섰고, 고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키에에에에에엑!!

그 결과가 지금의 승전.

‘막을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우리들의 터전을 지켜낼 수 있다.

가꿀 수 있다.

그레이슨은 꽈득, 검을 움켜쥐었다.

“막아라! 목숨을 걸고 막아라!”

터져나오는 그레이슨의 목소리에는 자그마한 희망이 깃들어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크워어어어어어!!!

갑자기 소름끼치는 괴성이 터져나왔다.

치명적인 본능이 쉼없이 경종을 울려왔다.

이 피부를 찌를듯한 아찔함.

그것은 정말이지 끔찍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레이슨은 떨리는 시선으로 괴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레이슨은 볼 수 있었다.

다른 고블린들보다 몇 배는 더한 덩치.

뿜어져나오는 압도적인 살기.

“호, 홉고블린!”

누군가의 외침이 귓가로 파고든다.

홉고블린.

일명 돌연변이 고블린.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종으로 그 강함은 평범한 고블린을 압도한다고 알려져있었다.

그리고 여기는 다름 아닌 어둠의 숲.

광폭화로 인해 몬스터가 마수라 칭해지는 끔찍한 지옥이었다.

크워어어어어!!!

홉고블린이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었다.

주위로 고블린들이 휨라렸지만 홉고블린은 신경쓰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내리찍는 홉고블린의 일격에 목책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홉고블린이 씨익, 웃음 짓는다.

이윽고 홉고블린이 무기를 높이 들어올렸다.

“안돼!”

그레이슨은 소리쳤다.

안된다.

목책이 무너지면 안된다.

목책이 무너지면 무너진 틈 사이로 고블린들이 쏟아져 들어올 터.

그럼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러니 막아야 한다.

꽈득!

그레이슨은 검을 부서져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타닥, 목책 위를 가로질러 홉고블린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내지르는 일격.

하지만 홉고블린은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꽈득!

“커헉···!”

무언가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그레이슨이 허공을 날았다.

이윽고 목책에 부딪히며 힘없이 쓰러져내렸다.

“그레이슨!!!”

“안돼!!”

목책 위로 사람들이 소리쳤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쉽사리 그레이슨을 도우러 가지 못했다.

그레이슨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목책 밖의 영역.

그를 도와주러 간다는 것은 스스로가 사지로 들어간다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레이슨은 끊어지려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하지만 단지 그뿐.

“쿨럭···!”

그레이슨은 몸을 쉽사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뼈가 몇 대 부러지며 내장에 손상이라도 간 것일까.

왈칵, 터져나오는 핏물에는 무언가 섞여나왔다.

몸을··· 움직일 수가···!

그레이슨은 이어지는 홉고블린의 일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는건가.’

죽음을 불사했건만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짙은 후회가 밀려온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다가오는 죽음.

곧 느껴질 끔찍한 고통에 몸이 덜덜 떨려온다.

그레이슨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암전된 시야로 혼자 살아가야하는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안하구나.’

그레이슨은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그건 밀려오는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억지로 내뱉는 함성과도 같았다.

그와 동시에.

카앙!

둔탁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레이슨의 살을 짓뭉개는 파육음이 아니라,

그로 인해 내지르는 그레이슨의 비명이 아니라,

쇠붙이가 맞부딪히는 둔탁한 굉음이.

‘뭐··· 지···?’

그레이슨은 천천히 눈을 떴고.

또한 볼 수 있었다.

어떤 한 사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을.

주변으로는 여전히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있었다.

정면에는 홉고블린이 끔찍한 살기를 터트리고 있었다.

반면에 그 사내는 어설픈 자세로 서 있었다.

그레이슨의 앞을 가로막으며.

그레이슨의 죽음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너, 너는···!”

그레이슨의 두 눈이 부릅, 떠진다.

저 사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의 이름은 시안 엘란두르.

“움직일 수 있겠어?”

루벤의 영주라, 자칭하는 자였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