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9화 (19/322)

§ 19화 - 이상한 영주(1)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멜리아와 루카스는 이내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직 멍한 정신이었지만,

그래도 자리를 이동해 루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이, 이게 대체 무슨···.”

아멜리아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정신이 반쯤 나가버렸다.

지금 아멜리아의 눈앞으로 보이는 광경.

“이봐, 빨리 빨리 서두르라고. 아직도 해체 해야할 게 산더미야!”

“기다려봐! 성급하게 했다가 값어치 떨어지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러다가 영주님이 또 난리치실라.”

그건 영지민들이 수 백의 마수 사체들을 해체하는 광경이었다.

그야말로 산처럼 쌓여있는 마수들.

문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 백의 고블린들을 팔아치웠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다고 또···?

아무리 마수가 들끓는 어둠의 숲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바로 그때.

“오늘 사냥은 영 별로였네.”

“아···. 한 마리만 더 잡으면 훈련 면제였는데!”

뒤쪽으로 웅성거리는 소란이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일련의 사람들이 루벤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저마다 무장을 갖춘 것이 아무래도 루벤의 병사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루벤에 병사들이 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어라? 아멜리아님 아니신가요?”

다가오던 병사들이 멍하니 서있는 아멜리아를 발견했다.

“요즘엔 자주 찾아오시군요. 이 위험한 곳까지 오시는 게 쉽지는 않으실텐데.”

“역시, 이 놈들 때문이겠죠?”

병사들은 웃으면서 어깨에 짊어진 무언가를 툭툭, 두들겼다.

녹색 피부의 1m 남짓한 무언가.

다름 아닌 고블린들이었다.

병사들은 저마다 몇 마리의 고블린 사체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인 수가 다시 수 백여 마리.

“이번 사냥은 영 수확이 좋지 못했어.”

“앵벌이만 주구장창 했더니 어둠의 숲에 고블린들이 씨가 말라버렸나.”

“아아···! 한 마리만 더 잡으면 훈련 면제였는데!”

그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네?”

그리고 아멜리아는 병사들이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앵벌이는 뭐고.

훈련 면제는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뭐, 뭐?

어둠의 숲에 고블린들이 씨가 말라?

비록 고블린이 하급에서도 최하급이라 평가받는 몬스터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몬스터’ 일 경우의 이야기였다.

지금 저들이 말하는 고블린은 그런 고블린이 아니었다.

무려 어둠의 숲에 기거하는 마수.

오우거를 사냥한 기록이 있을 정도의 마수로서, 웬만한 수준의 전력으로는 감당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아, 참. 바쁘신 분인데 저희가 괜히 붙잡았네요. 영주님을 뵈러 오신거죠?”

이어 병사 한 명이 뒤쪽으로 크게 소리쳤다.

“이봐! 혹시 영주님 본 사람 있어?”

그러자 병사들이 저마다 한 소리씩 내뱉기 시작했다.

“영주님? 글쎄? 아까 같이 앵벌이하시다가 혼자서 어디론가 가셨잖아.”

“도망치는 고블린 놈들 쫓겠다고 하셨었지.”

“어휴, 난 솔직히 혼자서 고블린을 상대하라하면 아직 무서운데. 영주님은 어떻게 된 게···.”

“홉고블린을 대적하실 때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어째, 요즘 들어 더 성장하신 것 같아.”

“대체 망나니라는 소문은 왜 난 건지 원. 영주님이 망나니면 세상에 망나니가 아닌 자가 있나?”

“역시 사람은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한다니까.”

하하하하하하!

병사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 퍼졌다.

그러자 아멜리아에게 말한 병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로 좋지 않아. 영주님이 고블린들을 다 쓸어버리시는 바람에 나 면제권 못 받았다고.”

“하하하하! 뭐, 어쩌겠나 두라스. 가서 뭐 빠지게 굴러야지!”

“아아···! 한 마리만 더 잡으면 되었는데!!

두라스라 불린 병사가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잠시.

곧 두라스가 병사들을 향해 다시 물었다.

“어쨌든, 영주님은 못 봤다 이거지?”

“어. 우린 몰라.”

이윽고 두라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그럼 훈련소로 한 번 가보시죠. 영지에 먼저 들어가셨다면 아마 거기에 계실 겁니다.”

#

아멜리아는 곧장 훈련소로 향하지 않았다.

일단 고블린들의 사체들을 살피는 것이 우선.

그리고 역시나 품질은 최상이었다.

아멜리아는 그렇게 잠시 고블린 사체들을 살핀 뒤.

시안을 찾아 루벤의 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병사 훈련소 앞.

“여긴가···?”

생각보다 그럴 싸했다.

아니, 그럴 싸한 정도가 아니라 웬만한 영지에 있는 훈련소보다 월등히 좋았다.

“이런 건 또 언제 지은 건지···.”

아멜리아는 천천히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다.

“하느아! 두우울!”

“할 쑤우! 있씀다아!”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병사들의 힘찬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라본 그곳엔 병사들이 훈련을 받고 있었다.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마라! 옆에 있는 전우를 믿어라!”

“하아핫! 하앗!”

꽤나 체계적인 모습.

아멜리아는 군사 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척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아멜리아는 두리번두리번, 시안을 찾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리 찾아도 시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바로 그때.

“한스! 조금만 더 빡세게 해봐! 버프가 적용이 안되잖아.”

일순간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멜리아는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봤다.

그리고.

“······?”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있는 그곳.

그곳은 다름 아닌 병사들이 구르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시안은 그런 병사들 틈 속에서 섞여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병사들과 함께 부대끼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있었다.

“영주님! 그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십니까! 지금도 충분히 빡셉니다!”

“맞습니다 영주님! 누구 죽일 일 있으십니까!”

시안의 외침에 병사들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시안은 어림도 없다는 듯 말했다.

“시끄러. 너네 앵벌이 하면서 한 사람도 안 죽은 게 뭐 때문인 거 같아? 이게 다 빡세게 훈련해서 그런 거야. 오늘 흘리는 나의 땀은 내일 흘리는 나의 피다. 몰라?”

“알죠! 잘 알죠! 그런데 지금 제 얼굴에는 땀이 아니라 피가 나고 있지 않습니까아!”

병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그리고 정말 땀이 흘러야 하는 곳에 진짜 피가 나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면 땀 대신 피가 흐르는 걸까.

하지만.

“걱정마. 우리에겐 엘리가 있잖아? 다치고 아프면 엘리가 다 치료해줄거야. 너네들 치료해서 그런지 요즘 실력도 쑥쑥, 늘던데?”

“아, 안돼!!”

“아아아! 한 마리만 더 잡았으면 되었는데! 딱 한 마리만!!”

병사들은 절규하며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잠시 휴식!”

병사들을 굴리던 한스가 소리쳤다.

“응? 한스, 갑자기 왜?”

“아멜리아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어진 한스의 말에 시안을 비롯한 병사들의 시선이 아멜리아에게 향했다.

갑자기 집중된 시선.

“아··· 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자니.

“아아···! 아멜리아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병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기 시작했다.

그런 병사들의 표정은 마치 거룩한 은혜를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아, 맞다. 아까 오셨었지.”

이윽고 시안이 벌떡, 일어나 아멜리아에게 다가왔다.

바라본 시안의 모습은 정말이지 만신창이가 따로 없었다.

헝클어진 머리와 여기저기 묻은 흙먼지.

말 그대로 어디서 뭐 빠지게 구르다 온 모습이었다.

역시나 영주로서의 위엄은 개뿔.

귀족으로서의 최소한 품격조차 보이지 않았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뒷골목의 시정 잡배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하··· 잠시 훈련을 좀 하느라.”

시안은 멋쩍게 웃음을 툭툭,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아멜리아는 그런 시안을 바라보다 물었다.

“왜··· 병사들과 같이 훈련하시는 거예요?”

시안은 아멜리아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옷에 먼지를 털어내며 답했다.

“아, 체력 단련은 혼자하면 추가 효과가 적용이 안돼서요. 한스한테 배워야 적용되더라고요.”

“네, 네?”

“그런 게 있습니다.”

시안은 그때서야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튼. 무슨 일이시죠?······ 라고 묻기엔 너무 뻔한가요?”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그리고는 곧 마수 사체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보였다.

아멜리아는 별 다른 사설 없이 사체 처리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럼 이번 인건비는 쩜오배로 챙겨주시는거 잊지마세요!”

이번에도 인건비로 탈탈, 털려버렸다.

“보자, 각종 제반 시설을 건설하고···.”

이윽고 들려오는 시안의 중얼거림.

“그러고 보니 그레이슨이 오크 무리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했었는데. 그럼 목책의 방어력으로는 안되니까 이거 업그레이드 한다치면··· 젠장. 또 돈이 없어?”

시안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거래로 아멜리아가 지불해야하는 돈이 거진 1만 골드에 달했다.

그런데 그 돈을 받자마자 하는 소리가 뭐?

돈이 없다고?

“가뜩이나 요즘 고블린들의 씨가 말라버려서 앵벌이가 힘든데. 하아···.”

대체 뭐에 씌워 저렇게 돈을 탐내는 걸까.

웬만큼 돈에 미치지 않고서야 저 정도는 아니었다.

‘영주들이 욕심이 많긴 한다지만···.’

손에 가진 것이 많아도, 또 가지고 싶어하는 탐욕 그득한 자들.

이럴 땐 또 시안에게서 영주다운 면모가 여과없이 보였다.

“어쨌든. 그럼 저는 다시 훈련하러 가보겠습니다.”

이윽고 시안이 등을 돌렸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아멜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멜리아는 시안이라는 사람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상인의 일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본 아멜리아.

아멜리아는 몇 마디를 나눠보면 대략적으로 그 사람의 성향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인지 지금도 모르겠어.’

시안은 어떻게 된 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아멜리아가 생각한 시안은 무능력한 놈팽이였다.

세간에 알려진 후작가의 망나니라는 소문.

꼭 망나니라는 타이틀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멜리아가 만나본 귀족들은.

특히, 영주라는 작자들은 아멜리아를 대하는 태도가 2가지 중 하나였다.

무시 혹은 색욕.

그렇기에 시안이 루벤의 영주임을 알았을 때.

그리고 그의 성이 다름 아닌 엘란두르임을 알았을 때.

시안 또한 똑같은 부류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안은 아멜리아가 여자라고 무시하지도 않았고,

또 색욕을 품지도 않았다.

그저 한 명의 상인으로서만 대할 뿐.

시안은 아멜리아가 알고 있는, 그리고 아멜리아가 겪어온 귀족들과는 달랐다.

영주들과는 달랐다.

그렇기에 시안은 조금 다른가? 싶었지만.

“큰일이네. 이제 돈을 어디서 벌지···?”

그런데 저렇게 돈에 환장하는···.

아니, 뭐··· 돈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썩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사람.

“저기···.”

아멜리아는 저도 모르게 떠나가는 시안을 불렀다.

“음? 무슨 일이시죠?”

갑작스러운 아멜리아의 부름에 시안이 고개를 돌렸다.

“아··· 그···.”

아멜리아는 순간 당황해버렸다.

뭘 물어봐야할까.

아니, 왜 불렀을까.

“그··· 왜 병사들과 같이 훈련을 받으시는거죠?”

아멜리아는 되는 대로 내뱉어버렸다.

“아까 말씀드린 것 같은데. 뭐가 궁금하신 거죠?”

일순간 시안의 눈빛이 살짝 찌푸려졌다.

왜 자꾸 캐묻냐는 듯한 표정.

아멜리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천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천박하다고요? 누가요?”

“병사들이요···?”

그러자 시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시안의 두 눈동자가 가만히 아멜리아를 향했다.

“아, 아뇨. 그런 뜻이 아니라. 그게···.”

아멜리아는 크게 당황해보였다.

물론 말은 그렇게 했으나.

실제로 아멜리아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은 단연코 아니었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말로 루벤의 사람들을 천박하게 생각했다면.

아멜리아는 이곳 루벤에 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천박한 루벤의 영지민들이야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멜리아는 루벤의 영지민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왔다.

그럼에도 아멜리아가 저리 물은 것은 간단했다.

아멜리아가 만나본 수많은 영주들은.

그간 거들먹거리던 전대 루벤의 영주들은 저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은 스스로를 고귀한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귀족과 평민이라는 근본부터 다른 자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영지민들을 도구로 여길 뿐이었다.

천박하다면서.

어찌 자신같은 고귀한 자가 영지민들 따위와 함께 하겠냐며 무시했었다.

평민 나부랭이.

고귀한 자신을 섬기고 또 희생해야하는 도구.

그들에게 영지민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안은 전혀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지금도 보라.

병사들과 같이 땅바닥을 구르고,

그들이 농담식으로 시안에게 장난도 걸고 있었다.

영지민들과 스스럼 없이 지내는 모습.

그건 아멜리아가 생각하던 영주와 귀족.

그 이미지를 완전히 부숴버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물은 것이지만···.

“아멜리아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나 보죠?”

어째, 시안은 다른 의미로 생각하는 듯 싶었다.

“아뇨! 절대로!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두라스!”

시안은 아멜리아의 말을 끊으며 소리쳤다.

기백이 담긴 외침.

그런 시안의 외침에 쉬고 있던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보였다.

이윽고 병사들 틈에서 한 병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후다닥, 시안을 향해 뛰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군기 가득찬 목소리.

그는 아까 전, 아멜리아가 영지 앞에서 마주쳤던 병사였다.

시안은 두라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

아멜리아는 순간 뭐지? 싶었다.

그리고 그건 두라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두라스’라는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다짜고짜 너는 누구냐니?

아멜리아는 두라스를 바라봤다.

두라스는 역시 시안의 물음에 당황하고 있었다.

“두, 두라스입니다···.”

두라스가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비록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같이 땅바닥을 구르던 사이라고는 하나, 시안과 두라스는 근본부터가 다른 사람이었다.

한낱 평민에 불과한 병사.

고귀한 엘란두르의 귀족이자 루벤의 영주.

이 둘은 근본부터가 다른 이들이었다.

바라본 시안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분노가 담겨있었다.

그렇기에 두라스의 얼굴에는 두려움에 기반한 긴장이 떠올라있었다.

그리고 두라스라는 이름.

그건 제국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성도, 아무런 뜻도 없는, 평민의 이름이자.

누군가에겐 천박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이름이었다.

시안은 물끄러미 두라스를 바라봤다.

그 어떠한 반응 없이, 시안은 두라스를 바라봤다.

“너는 누구냐.”

그리고 시안이 다시 물었다.

두라스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순간 두라스의 눈빛이 결연해졌다.

무슨 대답을 해야하는지 아는 것처럼.

아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두라스는 입을 열었다.

“저는.”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저는 루벤의 검입니다. 루벤을 위협하는 적을 베어내고, 루벤의 터전을 지키는.”

바라보는 시선.

두라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루벤의 가장 강력한 검이자 방패입니다.”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두라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었다.

이윽고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시안이 말한다.

“여기에 천박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안은 그 말을 끝으로.

두라스와 함께 천천히 자리를 벗어났다.

아멜리아는 그 자리에 그만 굳어버렸다.

아무런,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돌덩이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하다.

가슴을 간질이는 무언의 감정.

왠지 모를 감정에 가슴이 이상해진다.

“자, 휴식 끝! 다들 일어나!”

이윽고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멜리아는 멍하니 시안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저도 모르게 문득.

아멜리아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어떤 강대한 적이 와도 루벤은 무너지지 않는다.

아니, 무너질 수는 있겠지.

현실은 차가울 정도로 냉혹했으니까.

그러나 영지민들 모두가 지금 아멜리아가 느끼는 심정과 같다면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루벤은 더 이상.

사령(死靈)영지가 아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건 단 한 사람.

그렇기에 참으로.

“이상한 사람···.”

이상한 영주였다.

#

시안은 훈련소에 홀로 남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후우웅!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섬뜩하게 울려퍼졌다.

그런 시안의 검엔 오러의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러나 휘둘러지는 검에는 오러의 힘 못지 않은 기세가 담겨있었다.

“이게 마지막···!”

쐐애액!

“끝! 더는 못 해!”

철푸덕.

시안은 마지막 검격을 끝으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지 않은 곳이 없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근육.

정말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억지로 몸을 움직여 품 속의 스마트 폰을 꺼냈다.

《정확한 베기(斬) 3,000회 [3,000 / 3,000]》

《정확한 찌르기(衝) 3,000회 [3,000 / 3,000]》

“······ 달성했다.”

그런 시안의 말과 동시에.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입문 진행률 1.7%(+0.2%)]

화면 위로 진행률이 올랐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휴우···.”

시안은 깊은 숨을 내뱉으면서 스마트 폰을 다시 품 속에 집어넣었다.

대자로 뻗은 몸.

“진행률 더럽게 안 오르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 거진 '0.1%~0.2%'의 진행률이 올랐다.

그럼 단순 계산으로 100%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대략 500일.

“이 짓을 1년 넘게 해야한다니···.”

심지어 저건 ‘입문’ 과정의 진행률이었다.

그 말은 즉, 입문 이외의 과정도 있다는 뜻.

“······”

벌써부터 고생길이 눈에 훤했다.

하지만 시안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1.7%라 생각할 수 있는 진행률.

그 진행률로 오른 수준을 직접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스가 정말 깜짝 놀랐지.”

지금의 한스보다 약간 못 미치는 수준.

물론 한스는 많이 늙었고,

용병일을 그만둔지도 상당히 오래되었긴 했다.

젊었을 적 한스의 수준과 비교하면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한스는 여전히 상당한 실력자였고,

그렇기에 시안으로서는 어마어마한 성장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게 고작 1.7%란 말이지.”

그것도 ‘입문’ 과정에서의 진행률이었다.

드넓은 대륙의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았던 전설의 경지, 엑시드(Exceed).

그리고 그 너머의 경지라 추정되는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

앞으로 진행률을 쌓으면 어떻게 될지.

시안은 도무지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뭐, 아직 머나먼 이야기지만.”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누운 시야로 보이는 루벤의 하늘.

“그보다···.”

시안은 몸을 일으켜 잠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고블린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단 말이지.”

시안은 수많은 앵벌이를 통해 많은 골드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앵벌이의 정도가 과했던 걸까.

고블린들의 씨가 말라버린 것인지 고블린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소수의 무리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시안을 보자마자 도망치는 바람에 사냥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그 때문일까.

“숲 안 쪽에서 오크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어둠의 숲 안 쪽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레이슨이 말하길.

‘고블린들이 사라지면서 루벤을 주인이 없는 영역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고블린 무리들과 루벤.

그 둘의 영역 싸움에서 루벤이 승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크들이 보기엔 그냥 주인 없는 땅처럼 보인 것 같았다.

어둠의 숲에서 인간은 그저 먹잇감에 불과했으니까.

‘아무래도··· 오크 무리들이 조만간 루벤의 영역까지 흘러들어올 것 같습니다.’

말을 내뱉는 그레이슨의 얼굴은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만연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블린과 오크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오크부터야 말로 진정으로 ‘몬스터’라 부르는 종류.

한 마디로 지금처럼 앵벌이를 할 수준은 아니었다.

“흠···.”

시안의 생각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정확히는 깊어져가려던,

바로 그때였다.

“앗, 역시 여기 계셨군요.”

한켠으로 청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살짝 웨이브 진 적발의 미녀.

'아멜리아?'

다름 아닌 진실 상단의 상단주, 아멜리아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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