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엘로디의 연구소(2)
시안은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박혀있었다.
깜빡깜빡, 점멸하는 스마트 폰 위의 화면.
조금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린 시안은 이후의 내용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카일은 분명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가 펼치는 검술,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그 검술에는 분명한 마기(魔氣)의 힘이 깃들어있었다.
다른 동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카일은 광기에 잡아먹히지 않았다.
마음이 먹히지도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카일에게 이 사실을 물었다.
카일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냉기가 흐를 것 같은 차가운 기세.
그 기세가 오롯이 담긴 시선이 나를 향했다.
‘전제가 틀렸다.’
카일은 그렇게 말했다.
‘엘로디. 너는 어둠의 마나가 자연에 반하는 마나라 생각하고 있나?’
‘아닌가요···?’
카일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검을 뽑아들 뿐이었다.
이윽고 검푸른빛의 마나가 카일의 검을 감싸안았다.
카일이 사용하는 마나이자, 어둠의 마나에 기반한 힘.
그 힘에 나는 순간적으로 압도되었다.
카일의 강함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카일은 우리들의 동료였으나,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나마 샤를롯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 또한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카일에 대해 확실한 건.
우리 모두가 카일과 대적한다한들.
카일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앱솔루트 배리어를 시전해봐라.’
카일이 내게 말했다.
앱솔루트 배리어(Absolute Barrier).
그건 자연에 반하는 사악한 힘을 절대적으로 차단하는 궁극의 마법이었다.
아무리 카일이라도 어둠의 마나에 기반한다면 뚫을 수 없는 마법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여 앱솔루트 배리어를 시전했고,
카일은 천천히 검을 내게 밀었다.
그리고.
파장창!
카일의 검은 앱솔루트 배리어를 가뿐히 파훼해버렸다.
놀라는 것도 잠시.
카일의 검이 어느 순간 내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어, 어떻게···?’
나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앱솔루트 배리어는 말 그대로 사악한 힘을 절대적으로 차단하는 마법이었다.
아무리 카일이 강하다고 한들.
이건 말이 안 되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카일의 힘이 나의 마력을 압도해야하고.
또 카일이 사용한 힘이 자연에 기반해야만 했다.
첫 번째는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는···.
‘이처럼 어둠 또한 자연의 일부다. 단지 마(魔)속성에 기반한 마나일 뿐이지.’
‘말도 안돼요! 어둠의 마나가 어떻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둠의 마나가 자연의 일부라니.
그런 악(惡)한 마나가 어떻게···!
‘마법사라는 자가 고정 관념에 휩싸여 있군.’
카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둠의 마나는 본질이 악(惡)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럼 묻지 엘로디. 빛의 마나는 선(善)한가?’
‘그거야 당연히···.’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물을 비추는 빛.
생명의 근원이 되는 빛은 분명한 선(善)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힘을 가장 잘 다루는 이가 바로 성녀 뮤리엘.
악마들이 뮤리엘을 얼마나 꺼려하는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빛의 마나가 선(善)하다라는 명제는 당연시 되는 상식.
‘질문을 바꾸지.’
하지만 카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은 악(惡)하다. 그렇다면 빛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은 악(惡)하지 않나?’
‘······’
그리고 나는 이번에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어둠의 마나는 존재의 마음을 제물로 삼는다.
마음이 격하게 끓어오를수록 어둠의 마나는 빨리 쌓이고,
그렇게 어둠의 마나는 존재를 집어 삼킨다.
빛의 마나는 그런 어둠의 마나와 상반되는 성질을 지녔다.
따라서 빛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은 그 누구보다 절제되고 선(善)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성기사와 사제라는 자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네 눈으로 봐서 알고 있겠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빛의 마나를 수행하는 성기사와 사제.
그들은 그 누구보다 선(善)한 마음을 지녀야만 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만, 탐욕, 질투, 분노, 색욕, 탐식, 나태.
그들은 존재의 죄악에 따른 행동을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수행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하기엔 뮤리엘이 가장 믿고 따랐던 추기경의 타락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니, 그걸 타락이라고 해야할까.
그는 뮤리엘의 명성을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이용했다.
앞에서는 선한 척 보였지만.
뒤에서는 온갖 추잡한 짓을 벌였다.
가장 검소해야할 이가 수많은 재화와 재물을 탐했고.
신의 말씀이라며 자신의 색욕을 채우는 등.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뮤리엘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지 않았는가.
어둠의 마나는 악(惡)하다.
그렇기에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 또한 악(惡)하다.
그리고 빛의 마나는 선(善)하다.
따라서 그 빛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 또한 선(善)해야하지만···.
‘악(惡)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빛의 마나는 그 어떠한 것보다 악(惡)해질 수 있었다.
‘마기(魔氣)는 단지 악(惡)에 먹히기 쉬운 속성을 지닌 것일 뿐.’
카일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魔)는 마(魔)일 뿐. 악(惡)이 아니다.’
나는 무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그와 동시에 전제가 틀렸다는 카일의 말.
그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이후로 어둠의 마나를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카일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그가 알려준 마혼제법(魔魂制法).
카일의 오러 연공법은 마기를 정제하는 방법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끝내 마기를 정제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비록 카일의 오러 연공법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아니, 발 끝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 지식을 여기에 남긴다.』
.
.
.
그 이후로 마기를 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 복잡하네.”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엘로디는 마법사들의 정점인 대마도사였고,
그렇기에 그 방식은 마법사들만의 방식으로 설명되어있었다.
한 마디로 방법만 있을 뿐.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정확히는 수준 높은 마법사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마혼수라검이 마기를 다루는 검술이라고?”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엘로디의 기록에 적힌 내용.
그 내용에 따르면 마혼수라검은 마기에 기반한 검술이었다.
그리고 마혼수라검은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이 사용한 검술.
그 동안은 추측에 불과했지만,
지금 엘로디의 기록으로 확실해졌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은 카일이 사용한 검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안이 지금 배우고 있는 검술이기도 했다.
엘로디는 그런 카일의 방법을 참고해 마기를 정화할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아니, 기록을 보아하니 거의 베끼다시피 한 것이었다.
심지어 엘로디는 자신의 방법이 카일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적어놓았다.
한 마디로 엘로디의 방법이 하위호환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마왕과 필적할 정도의 흑마법을 구사한 엘로디.
그렇다는건···.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굳이 엘로디의 방법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되지?”
문제는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지만···.
이것 또한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름 아닌 엘로디가 기록한 방법.
그 방법을 잘 살펴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터였다.
말했다시피 엘로디는 카일의 방법을 거의 베끼다시피했으니까.
시안은 엘로디가 남긴 지식을 유심히 살폈다.
역시나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즐비했다.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해한 부분을 요약하면 이러했다.
“마기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마기를 거부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처럼, 몸의 일부처럼 받아들인다.
이에 대해 엘로디는 정신 세계를 병렬적으로 구성하여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알아야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마법사들의 방식인 모양.
“해볼까.”
기사의 방식은 그냥 해보는 게 답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그런 시안의 시야로 수박만한 마나석이 보였다.
다름 아닌 검은 오크가 남긴 거대한 마나석.
짙은 마기(魔氣)를 품은 이것은 최상급 이상의 마나석으로 생각되는 것이었다.
테스트를 해보기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마나석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마나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하여 안에 깃든 마기를 느꼈다.
머릿속으로는 마혼수라검의 검결을 떠올리면서.
그러자.
스으으읍···.
일순간 마나석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짙은 칠흑의 빛이 일렁이더니 곧 시안의 손을 타고 흡수되었다.
그리고.
“어··· 라?”
마나석의 빛이 바뀌었다.
기존의 마나석이 완전한 칠흑의 빛이었다면.
지금은 푸른빛이 감도는 검푸른색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마기(魔氣)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기가 사라졌다···?”
얼핏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지만 시안은 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엘로디의 기록에서 보았던 내용.
그 내용에 따르면 마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으니까.
매개체로 인해 마기가 정제되었을 뿐.
정확히는 매개체가 그 힘을 흡수했을 뿐.
그리고 그 매개체는···.
시안은 차분히 눈을 감아 신체 내부를 관조했다.
이윽고 시안은 몸 안에서 어떤 기묘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폭발적인 힘.
“오러···?”
오러의 힘이었다.
바로 그때.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입문 진행률 28.9%(+0.7%)]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마혼수라검의 진행률이 올랐다.
그것도 무려 0.7%나 되는 진행률.
과제로만 따지면 7일치에 해당하는 진행률이었다.
“미쳤는데?”
시안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
“뭐, 뭐, 뭐, 뭐, 뭐, 뭐예요?!?!?!”
아멜리아는 너무 놀라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이 건넨 무엇.
주먹 만한 크기의 무엇.
“어때? 이 정도면 상품 가치가 있겠지?”
그건 다름 아닌 마나석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대체 어디서···?”
“뭘 어디서야. 당연히 마나석 광산에서 얻었지.”
“······ 네?”
아멜리아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은 표정이었다.
물론 불과 얼마 전.
오크 부락을 궤멸시키면서 마나석 광산을 확보한 것을 알고 있었다.
아멜리아 또한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마기(魔氣)를 품은 마나석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안이 건넨 마나석.
이건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는 검은색이 감도는 검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 품질 또한 최상급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이거 설마···?”
“내가 정제했어.”
뚝.
아멜리아의 움직임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아멜리아의 생각 또한 정지해버렸다.
찰나 간의 정적.
“네에에?!?!?!?!?!??”
아멜리아가 갑자기 온몸을 까무러치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놀라?”
“지금 안 놀라게 생겼어요!!”
아멜리아는 거의 화를 내듯 시안에게 말했다.
말이, 말이 안되었다.
마기를 정제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만.
심지어 지금 이 순간도 연구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기에 혹자들은 마기를 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렇게 결론 지은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신화에 따르면 천년 전.
대마도사 엘로디는 그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말은 즉.
불가능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마도학자들이.
셀 수 없는 마법사들이.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지금까지도 그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 세월이 흘러 무려 천년이란 시간이 되었다.
천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비밀.
그 비밀이 지금 밝혀졌다고?
아니, 뭔···.
“정제를 하긴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힘들더라고. 그래서 지금 당장 대량 생산은 힘들 것 같아.”
“······”
아멜리아는 이걸 뭐라 반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는 멍한 정신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돈에 미친 사람 같다가도.
또 검은 오크를 대적하던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어렴풋이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는 사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남자에게 상식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이리 줘보세요.”
아멜리아는 시안에게서 마나석을 받아들었다.
주먹 만한 크기의 마나석은 도합 5개.
모두가 최상급의 마나석이었다.
그리고 마기가 사라진 덕에 확실히 마나석으로 활용할 수 있어보였다.
“검은 오크에 박혀있던 마나석은요?”
“아, 그건 나중에 팔려고. 지금 당장은 무리가 있을 거 같아서.”
아멜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오크에 박혀있던 마나석은 최상급 그 이상의 이상일지도 모를 마나석.
“하기사, 그런 마나석이 시중에 풀리면 사람들의 관심이 급증하겠죠. 현재 루벤에 관심이 집중되면 좋을 건 없죠.”
“역시 눈치가 빠르다니까.”
시안은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음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건 나중에 팔려고. 혹시 중간에 내가 쓸지도 모르고. 해서 이거 땅바닥에 굴러다니길래 몇 개 주워다가 정제했어.”
“이 귀한 게 땅바닥에 굴러다녔어요?”
아멜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최상급의 마나석이 땅바닥에 굴러다닌다니.
하긴, 저 마나석 광산에 있는 마나석들은 최소 천년간 마나를 응축한 것들이었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것만 해도 평범함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 굴러다니는 마나석만 하더라도 족히 2천 골드는 받을 터.
“일단 이거 좀 팔아 줘.”
“음···.”
하지만 아멜리아는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왜? 무슨 문제있어?”
“아뇨. 문제라기보다는··· 이걸 어떻게 팔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멜리아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시선을 내려보였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요. 이거 어쩌면··· 3배 이상은 받을 수 있겠는데요?”
3배면 개당 6천 골드.
합치면 무려 3만 골드 가량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지금부터는 저한테 맡겨두시라고요.”
그러나 아멜리아는 싱긋, 웃어보일 뿐이었다.
#
샤를롯 제국은 제국의 수도를 기점으로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어둠의 숲을 비롯한 다른 왕국의 국경과 맞닿은, 동부.
해안과 인접하여 상업의 요충지가 된, 서부.
야만족들과 대치 중인 척박한, 북부.
대륙 최대의 곡창지가 있는, 남부.
마지막으로 제국의 수도가 위치한, 중앙.
이렇게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었다.
그리고 상업의 요충지라 함은 당연 제국의 서부 지역이었다.
해안과 인접하여 각종 물자들이 끊이질 않는 곳.
상업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제국 최고의 상업도시를 묻는다면,
모두가 서부가 아닌 중앙 지역에 위치한 루치아를 꼽는다.
제국 최고의 상업 도시, 루치아.
루치아는 제국의 수도와 더불어 제국 전역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서부에서 들여온 물자를 제국 전역으로 운송하려면 반드시 루치아를 지나야만 헀다.
비단 서부뿐만 아니라 남부에서 얻은 곡물들.
동부에서 잡아온 각종 몬스터들.
북부에 필요한 갖가지 병기들.
그 모든 것들이 루치아를 지나야만 제국 전역으로 유통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제국 전역의 물건들이 한데 모이는 곳.
루치아는 자연스레 제국 최고의 상업 도시가 되었다.
하여 지금.
“이번에 나온 상품은··· 정말 귀하디 귀한 상품입니다.”
루치아의 한 경매장.
이곳에 자리한 이들의 옷차림은 고급스러움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귀족이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힘깨나 쓴다는.
제국의 중대사를 결정짓는 중앙의 고위 귀족들이었다.
그런 귀족들이 한데 자리한 경매장답게 올라오는 품목들 또한 가볍게 여길 만한 것들이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은 꿈도 가질 수 없는.
아니, 웬만한 귀족들도 감히 가질 수 없는 종류의 보물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번 상품은 저도 거진 몇 년만에 보는 물건입니다.”
그런 귀한 물품들 사이에서도 또 귀한 물건이 경매장에 올라왔다.
사회자는 한 쪽으로 눈짓을 해보였다.
그러자 일련의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가져왔다.
검푸른빛이 감도는 주먹 만한 5개의 돌덩이.
“이번에 소개해드릴 물품은 최상급 마나석입니다!”
다름 아닌 최상급의 마나석이었다.
“최상급 마나석? 상급이 아니라?”
“최상급의 마나석이 아직 남아있었다고?”
사회자의 외침에 귀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상급도 아닌 최상급.
그건 쉬이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이 마나석은 품질도 품질이지만 일반 마나석과는 다릅니다. 검푸른빛이 도는 이 마나석은 일견 마기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마기의 성질은 전혀 없는 기이한 마나석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귀족들의 시선이 모두 마나석으로 향했다.
“저희 감정사에 따르면 어쩌면 최상급을 넘어설지 모른다고 합니다.”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만한 값어치가 있겠군.”
최상급 마나석은 정말 쉽게 볼 수 없는 종류였다.
제국의 모든 물자들이 모인다는 루치아에서도 지난 몇 년간 나온 적이 없었다.
나온다 하더라도 이렇게 극소량.
최상급이라는 말만 붙어도 희소성의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최상급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사회자는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작은 개당 1천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2천.”
“2천 5백.”
“3천.”
순식간에 가격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4천.”
“4천 5백.”
어느덧 4천 골드를 뚫어버린 가격.
보통 최상급 마나석이 2천 골드 내외에서 거래되는 것을 생각하면 2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5천.”
“5천 5백.”
그럼에도 가격은 계속해서 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나석이 최상급이 되기 위해서 최소 20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응축된 마나석은 이제 없었다.
최상급이 될 때까지 사람들이 기다려줄리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대륙에 최상급의 마나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했다.
이 판매자도 오랜 세월.
가보로 전해지던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6천”
“7천”
역시나 멈출 줄 모르고 가격이 뛰고 있었다.
다 년간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이 마나석은 잘하면 1만 정도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사회자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2만.”
우뚝.
경매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싸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들려온 2만이라는 가격.
저건 너무 과했기 때문이었다.
기본 거래가에 10배에 달하는 가격.
그렇기에 저건 장난임이 분명했다.
어떤 정신 나간 놈인지 모르겠지만,
뻗댈 자리를 잘못 찾아도 한참이나 잘못 찾았다.
귀족들이 눈쌀을 찌푸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
“······!”
“······!”
그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한 이들이 모두 굳어버렸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표정.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기품.
이사벨 엘란두르.
제국을 지탱하는 두 가문 중 하나인 엘란두르 가의 안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의 시선 속에서도 이사벨은 어떠한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부른 2만 골드.
도합 10만 골드.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엘란두르라는 이름 앞에서는 한낱 푼돈에 불과했다.
“2만··· 2만 골드···! 더, 더 이상 없으십니까?”
사회자가 재차 확인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의 가격을 부르는 이가 없었다.
가격도 가격이었지만,
엘란두르가 선택한 물건을 빼앗을 배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마나석은 2만 골드. 도합 10만 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들려오는 사회자의 외침.
이사벨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