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9화 (29/322)

§ 29화 - 황태자의 초대

대격변을 맞이한 루벤.

루벤은 이제 폐허가 아닌 엄연히 발전한 마을의 풍경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영지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루벤이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것은 변함 없었다.

언제나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남지···.’ 만을 생각했던 나날들.

“여! 오늘도 일하러 가는 건가?”

“그래, 오늘은 그 놈의 마수 콧대를 꼭 꺾어보려고.”

이제 루벤은 ‘내일 일을 나가려면 푹, 쉬어야지.’ 라는 생각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루벤의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루벤의 일상 속.

쌔액!

시안의 일상은 다름 아닌 훈련소에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쐐애애액!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섬뜩하게 울려퍼졌다.

“이게 마지막···!”

그리고 이어진 검격과 함께 철푸덕.

시안이 그대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파들파들, 떨리는 전신.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입문 진행률 41.5%(+0.3%)]

“하악···! 하악···!”

품 안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시안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시안은 루벤의 발전과 더불어 매일같이 과제를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광고를 시청하고,

또 훈련소에서 성장 버프를 받아 과제를 수행했다.

그 덕분에 어느덧 40%를 넘어선 마혼수라검의 진행률.

지난 검은 오크를 상대했을 때만 해도 27.3%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훈련장에서 과제를 수행하고 있을 때면, 루카스가 놀란 눈으로 시안을 바라보곤 했었다.

모르긴 몰라도 검은 오크 때와는 또 다른 성장을 했을 터.

그리고 이런 성장이 가능한 것은 이러했다.

검은 오크 이후, 과제로 오르는 0.3% ~ 0.4%씩 오르는 진행률.

그리고.

“마나석의 마기를 정제하면 진행률도 많이 오른단 말이지.”

마기(魔氣)를 품은 마나석을 정제하면서 마혼수라검의 진행률도 같이 올랐기 때문이었다.

마기(魔氣)를 사용하는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그 덕분에 어느덧 40%가 넘는 진행률이었지만.

“이제 슬슬 한계란 말이지.”

시안은 한계를 맞이함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몸이 더 이상의 마기(魔氣)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이상의 마기를 받아들였다간,

정신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혹시 마기를 정제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있는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시안은 엘로디의 지식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금방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마기를 정제하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결론만 말하면 시안은 마기를 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나석에 있는 마기를 흡수하는 것일 뿐.

단지 시안은 마기를 흡수해도 미치지 않는 방법만을 체득한 것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이상의 마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시안의 몸에 축적된 마기를 정제할 수 있는 진짜 방법이 필요했다.

엘로디는 그것을 오랜 연구를 통해 밝혀내었다.

그리고 그것은 꽤나 높은 수준의 마법적 지식을 필요로 했다.

그렇기에 시안이 사용하기란 불가능했으나,

시안에게는 엘로디가 밝혀낸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다.

“마혼제법(魔魂制法)··· 이라고 했었지.”

보다 근원적인 방법이.

마혼제법(魔魂制法).

그건 다름 아닌 카일이 사용했던 오러 연공법이었다.

그리고 오러 연공법이란.

존재를 이루는 근원의 힘,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로써 기사는 초인적인 힘을.

사제는 신성의 힘을.

마법사는 기적의 힘을.

물론 사제와 마법사는 오러 연공법이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마혼수라검이 마기를 활용하는 검술이라면,

마혼제법이야 말로 마기를 다루는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근원의 힘을 다루는 방법.

그것이 오러 연공법이었다.

그리고 오러 연공법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효율은 천지차이였다.

따라서 수준 높은 오러 연공법은 억만금을 주어도 구할 수 없는 희대의 보물이었다.

엘란두르 가문에서도 대대로 전해지는 오러 연공법.

그것의 추정 값어치만 무려 3,700억 골드였다.

물론 실제로 3,700억 골드를 주면서 사겠다 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혼제법(魔魂制法)은.

천년 전, 최강의 아르나이즈라 불리던 카일이 사용한 오러 연공법.

그 값어치는 값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저걸 어디서 구하지”

문제는 저걸 배울 방법이 없었다.

“성장 지원 상급 패키지에도 없던데.”

그도 그럴 것이 패키지에도 없었다.

정확히는 '상급' 패키지가 없었다.

초급에 이어 중급 패키지에서 구매한 마혼수라검.

당연히 ‘상급’ 패키지도 있을거라 시안은 생각했다.

하지만 상급 패키지는 알림창에 보이지 않았다.

아직 팔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중급이 끝인 것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현질 유도가 중급에서 끝날 리가 없는데?”

다만 높은 확률로 추측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러면 마나석을 더 이상 정제할 수가 없는데.”

그럼 더 이상 돈을 벌 수가 없었다.

하나에 수 천골드는 가뿐히 넘는 최상급의 마나석.

그것만 믿고 현질을 수도 없이 질러버렸건만.

이렇게 되면 조금 곤란했다.

물론 엘로디의 연구소가 완성이 된다면 괜찮겠지만···.

띠링!

[즉시 완료권] - 3,000 G

《진행을 하시다 답답하실 땐, 현질을─!》

꾹.

시안은 알림창이 떠오르자마자 X버튼을 눌러버렸다.

애초에 저걸 짓는다 한들.

수준 높은 마법사와 연구원이 없으면 딱히 이렇다 할 무언가를 할 수 없을 터였다.

무엇보다 곧 완성되어가는데도 저 놈의 현질 유도창은 왜 끊이질 않는지.

아무튼.

“흠···.”

시안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도련님.”

한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그곳엔 아니나 다를까.

한스가 시안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있는 모양.

시안은 상념을 한쪽으로 밀어버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루카스가 병사들을 맡은 뒤로 요즘 살만한가봐. 얼굴이 활짝, 피었네.”

그러자 한스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주름진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며 한스가 소리쳤다.

“행정관이랍시고 일거리를 그렇게나 던져 놓으시고는, 지금 그런 말씀이 나오십니까?”

루카스가 병사들을 전담한 현재.

한스는 영지의 행정관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말이 행정관이었지.

루벤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전담 처리하고 있었다.

루벤이 발전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들.

사람들이 부대끼며 발생하는 문제들과 불편들.

모바일 영주로 대부분은 해소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람들 간의 분쟁 같은 것들.

그건 모바일 영주로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과거, 용병으로서 사람들을 상대하던 경험이 있던 것일까.

한스는 유능하게도 그 모든 것들을 훌륭히 중재해주었다.

애초에 시안이 마음 편히 수련할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차라리 병사들을 훈련시켰을 때가 더 편했습니다.”

“하하···.”

시안은 멋쩍게 웃음을 흘렸다.

“무슨 일인데?”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시안의 모습에 한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윽고 한스가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시안에게 건넸다.

“초대장?”

겉면에는 그렇게 써져있었다.

시안은 초대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곧 누가 보낸 것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콘라드 폰 샤를롯.]

“엥?”

시안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발신인으로 적혀있는 콘라드 폰 샤를롯.

일단 ‘샤를롯’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천년 전, 세상을 구원한 6인의 아르나이즈 리더이자.

샤를롯 제국를 건국한 초대 황제.

그가 바로 샤를롯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대륙에서 샤를롯이라는 성을 쓸 수 있는 존재는 샤를롯 제국 황가의 일원뿐이었다.

그리고 콘라드라는 이름.

“콘라드라면···.”

시안은 당연히 그 이름을 모르지 않았다.

제국의 황태자.

황제, 다음으로 가는 존재.

“황태자 전하께서 도련님을 건국일 행사에 초대하셨습니다.”

한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말했다.

#

샤를롯 제국의 건국일 행사.

말 그대로 제국의 건국을 축하하는 기념 행사였다.

비단 샤를롯 제국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에서도 행해지는 행사였다.

하지만 샤를롯 제국의 건국일 행사는 다른 왕국과는 사뭇 달랐다.

매년 돌아오는 다른 왕국의 건국일과는 달리,

샤를롯 제국은 4년에 한 번씩 건국일이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천년 전, 샤를롯이 제국을 건국한 날.

그 날은 다름 아닌 달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윤달이었고,

또 윤달 중 가장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그 전날.

혹은 그 다음날로 행사를 진행하자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겉치레를 할 필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끝내 행사는 4년에 한 번씩만 치루기로 결정되었다.

대신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만큼 그 행사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했다.

제국의 건국일 행사라 하면 전 대륙에서 구경 올 정도로 정말로 큰 행사였다.

신성 제국을 비롯한 다른 왕국의 왕족들도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는다.

이게 얼마나 큰 행사인지는 굳이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건국일 행사는 유독 더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아르나이즈 샤를롯이 제국을 건국한 날.

그 건국일이 지금으로부터 딱 천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시안은 손에 든 초대장의 내용을 차분히 살펴보았다.

[과거, 샤를롯 대제께서 제국을 건국한지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제국은 그대들과 같은 인재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네. 하여, 이번에 맞이하는 제국의 건국일 행사에 시안 엘란두르. 그대를 초대···.]

뭐, 대충 건국일 행사에 초대할테니.

와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실 말이 와줬으면 좋겠다였지.

그냥 오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초대장.

“이거 설마 직접 쓴 거야···?”

황태자가 직접 작성한 것 같았으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황태자의 인장이 찍혀있을리가 없었다.

보통 이런 공식적인 초대장에는 황가의 인장이 찍힌다.

그리고 그것은 황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효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허가만 있다면 황가의 대리인이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안에게 보낸 초대장에는 황가의 인장이 아닌, 황태자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이건 황가의 대리인이 사용할 수 없었다.

사용하는 그 순간.

황족 참칭죄로 반역에 준하는 형벌을 받는다.

이건 오직 황태자, 본인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인장이었다.

“대체 왜?”

그렇기에 시안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이 초대장이 온 것부터가 의문이었다.

말이 건국일 행사였지.

사실 전 대륙의 인재들이 모여 친분을 나누는 화합의 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이 여기에 초대될 이유는 없었다.

시안에 대한 소문은 시안,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음···.”

시안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띠링!

일순간 경쾌한 스마트 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안은 곧장 스마트 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 위로 떠오른 글귀.

『[스토리 퀘스트] - ‘아르나이즈의 유산’』

<보상 - ???>

그건 퀘스트 알림창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시안이 봐왔던 퀘스트와는 사뭇 달랐다.

“왜 내용이 없어?”

관련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딱 두 가지.

퀘스트의 제목.

그리고 보상 뿐이었다.

심지어 보상 또한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 라는 내용만 있을 뿐.

“뭐지?”

시안은 이게 뭔가 싶었다.

“음···.”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무언가는 있었다.

『[스토리 퀘스트] - ‘아르나이즈의 유산’』

다름 아닌 퀘스트의 제목, 아르나이즈의 유산.

어쩌면··· 스마트 폰과 같은 아르나이즈의 아티팩트에 관련된 퀘스트일 가능성도 있었다.

문제는 6명의 아르나이즈 중 누구이며.

어떤 유산이라는 것.

아무래도 이건 직접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자리를 비워도 괜찮을라나?”

“루벤의 안전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마 전에 오크 부락을 섬멸한 뒤로 어둠의 숲이 잠잠합니다. 그리고 루카스가 예상 외로 병사들을 잘 훈련시켜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여차하면 신기전이 있지 않습니까.”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현질로 인해 영지민들도 일상의 행복을 찾은 상황이었다.

얼추 영지처럼 돌아가고 있는 루벤.

루벤의 안전은 루카스에게.

행정은 한스에게 맡겨 놓으면 당장 시안이 없더라도 큰 문제는 없어보였다.

“역시 가야겠지?”

“그래야하지 않겠습니까.”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시안은 곧장 루벤을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아직 건국일 행사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얼추 있었지만 여유를 가질 정도는 아니었다.

루벤에서 제국의 수도, 다르칸까지.

가는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중간에 루치아에 들를 것까지 생각하면 더욱 여유가 없었다.

중간에 루치아에 들르는 이유는 단순했다.

제국 최고의 상업 도시, 루치아.

그곳에서 시안이 그간 정제해놓은 마나석을 팔기 위함이었다.

비록 지금은 한계를 맞이하여 더 이상 정제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부지런히 정제한 마나석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런 의미로.

“저는 초대받지 않았는데 왜 가는 거예요?”

시안은 아멜리아와 함께 루벤을 떠나왔다.

“루치아로 가는 김에 같이 가자는 거지. 왜 싫어?”

“싫다는 의미는 아닌데···.”

“어차피 너는 영지에 남아서 할 일도 없잖아?”

“······”

아멜리아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시안은 아멜리아와 함께 루벤을 떠나왔다.

그리고 도착한 제국 최고의 상업 도시, 루치아.

“사람 엄청 많네.”

시안은 어마어마한 인파에 살짝, 놀랐다.

정말 발 디딜틈 하나 없다. 라는 표현이 딱 눈앞의 상황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물론 루치아가 어떤 도시임을 시안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인파는 너무도 많았다.

“건국일 행사가 시작되잖아요. 그에 맞춰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올라와서 그래요.”

“아, 어쩐지.”

옆에서 들려오는 아멜리아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 루치아는 제국 중앙부에 위치한 도시.

제국 전역으로 뻗어나가는 교통 요충지였다.

그 말은 즉.

수도 다르칸으로 가려면 루치아를 지나야함을 의미했다.

그 때문인지 귀족으로 보이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럼 이 마나석을 사려는 사람들도 많겠네? 그럼 2만 골드보다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간···.”

아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경매장이 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뭐라도 좀 먹을까. 배고픈데.”

“제가 괜찮은 곳을 알아요. 따라오세요.”

시안은 아멜리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

그곳은 꽤나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비싸보이는데.”

“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니까요. 그래도 생각보다 얼마 안해요. 1인분에 2골드 정도?”

“1인분에 2골드가 얼마 안 하는 거라고···?”

얘가 미쳤나.

“돈도 많으시잖아요. 기왕 나온 거 맛있는 거 좀 먹어요. 솔직히 저 루벤에서 스프랑 딱딱한 육포만 먹느라 힘들었단 말이에요.”

그간 루벤의 주 식량은 간단한 스프와 육포였다.

배식소 Lv.1이 생기고 나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귀족가 영애의 입맛을 맞추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멜리아는 제국 서부를 주름 잡던 브라헤 상단의 여식.

불평은 하지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아쉬운 부분이 있긴 했던 모양이었다.

“돈이 많기는 무슨. 그거 다 썼대도?”

“그럼 곧 많이 벌 거잖아요. 저 여기 되게 좋아한단 말이에요.”

아멜리아는 무작정 시안을 식당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시안은 못 이기는 척 안으로 들어갔다.

이왕 나온 거, 이런데 한 번 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식당 안으로 들어온 시안.

식당 안 쪽에는 역시나 귀족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니, 앉아있는 이들이 죄다 귀족들이었다.

보아하니 시안처럼 모두 건국일 행사에 가려는 이들 같았다.

바로 그때.

“우리 딴데 가요.”

갑자기 아멜리아가 시안의 손을 잡고 문 밖으로 이끌었다.

“응? 왜?”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일단 나가요.”

바라본 아멜리아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봐서는 안될 무언가를 본 듯한 표정.

바로 그때.

“아니, 이게 누구야.”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멜리아 아니야?”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멜리아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리고는 잘못봤기를 간절히 기도해지만.

“맞네. 아멜리아!”

애석하기도 그렇지 않았다.

아멜리아 앞으로 한 남자가 성큼, 걸어왔다.

올백 머리의 미남자.

건들거리는 모양새가 썩 보기 좋지 않은 사내였다.

“오랜만이네요.”

아멜리아는 애써 담담한 척 입사를 입을 열었다.

그가 누군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 레민턴.

크라우드 백작은 제국 남부에 위치한 가문으로서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하고 있는 가문으로 유명했다.

제국에 유통되는 곡물 중 15% 가량이 크라우드 백작의 영지에서 나오는 수준.

그리고 과거.

아멜리아와 혼약이 오고 갔던 가문이기도 했다.

물론 말만 오고 갔다뿐.

그 이상은 진척되지 않았다.

레민턴을 만나본 아멜리아가 단번에 거절했고,

또 아멜리아의 아버지 또한 레민턴의 성향을 알고 곧바로 없던 일로 해버렸다.

그에 대해 크라우드 백작이 브라헤와 거래를 끊는 등.

갖은 보복을 해왔다.

하지만 그 당시 브라헤 가문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서부의 대상단.

딱히 보복이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야···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건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다.

몰락한 브라헤 상단.

레민턴은 빙글빙글, 웃으며 아멜리아의 앞에 서보였다.

“가문이 쫄딱, 망해버렸다고 들었는데···. 마냥 그렇진 않았나봐? 이런 곳에도 오고?”

레민턴의 시선이 아멜리아를 훑었다.

그러더니 아멜리아의 옆에 있던 시안을 슬쩍, 쳐다봤다.

“나를 찰 때는 언제고··· 다른 남자를 달고 다니네?”

이윽고 레민턴이 이해했다는 듯 씨익, 웃음 지었다.

“얼마나 엉덩이를 흔들었으면 이런 곳에 데려다줄까.”

레민턴이 시안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응? 잠깐.”

레먼턴의 시선이 문득 멈추었다.

“어디서 익숙하다··· 싶었더니.”

레민턴은 눈을 살짝, 치켜 떠보였다.

기억에 있는 얼굴.

다름 아닌 시안 엘란두르였다.

귀족가에서 이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시피 했다.

제국에서 엘란두르를 모르는 이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안도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후작가의 망나니.

무능력한 놈팽이.

그리고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존재해서는 안되었던 사생아.

그런 시안이 왜 여기에···?

설마 건국일 행사에 참여하려는 건가?

그런데 왜 둘이?

레민턴이 시안과 아멜리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풉.”

레민턴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거였어? 난 또.”

이윽고 끈적한 웃음과 함께 레민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멜리아, 이제라도 나한테 오는 게 어때? 이런 무능력하고 멍청한 새끼 말고 나한테 오면 잘해줄게. 난 언제든 환영이라고?”

레민턴은 끅끅, 웃음을 터트렸다.

아멜리아는 물론이고 대놓고 시안을 모욕하는 행위.

하지만 레민턴은 개의치 않았다.

아멜리아는 이제 몰락한 가문의 여식이었고.

시안은 엘란두르였지만 사실상 버려진 자식이나 다름 없었다.

반면에 자신의 뒤에 붙은 이름은 크라우드.

남부 최대의 곡창지를 가진 가문으로서 제국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가문이었다.

지금도 보라.

이렇게 모욕을 듣는데도 아멜리아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슬쩍 내려다본 시선.

아멜리아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시안은···.

‘병신같은 새끼. 자존심도 없기는.’

역시 소문대로 였다.

레민턴은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아멜리아.”

이윽고 레민턴이 등을 돌렸다.

그렇게 한 발.

발걸음을 떼려던 그때.

“할 말 다 끝났냐?”

갑자기 시안의 목소리 들려왔다.

천천히 돌아본 시야.

그곳엔 시안이 성큼, 레민턴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말.

“그럼 이제 그 턱관절은 쓰지 않아도 되겠네?”

그와 동시에 시안의 손이 크게 휘둘러졌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레민턴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손바닥이 공기를 가르는 부우웅, 거리는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찰나.

뻐어어어어억!!!

사람의 몸에서··· 들려서는 안될 소리가 터져나왔다.

저게··· 귓방맹이를 때린 것이 맞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눈으로 본 것은 분명 귓방맹이였다.

바라본 시야.

콰당탕!

귓방맹이를 쳐맞은 레민턴이 저 멀리, 날아가 쳐박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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