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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33화 (33/322)

§ 33화 - 후작가의 패륜아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제리의 시선 또한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 사내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기억에 있는 얼굴.

기억에 없을 수가 없었다.

그는 엘란두르의 막내, 시안이었으니까.

“너는···?”

시안의 등장에 네이슨이 깜짝 놀라보였다.

비단 네이슨뿐만 아니라 로즈웰과 엘란두르의 기사들.

심지어 이사벨까지 눈썹을 치켜 떠보였다.

시안은 집중된 시선 속에서도 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제리 앞에 다다러서야 그 발걸음을 멈추었다.

네이슨과 엘란두르의 기사들.

그 앞에 마주하며 시안은 당당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지?”

네이슨의 물음에 시안은 답을 하지 않았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네이슨의 뒤 쪽을 바라봤다.

로즈웰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이사벨은 담담한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듀라크와 카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 둘은 건국일 행사에서 따로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시안은 가만히 이사벨을 바라봤다.

당최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모습.

시안이 나섰음에도 이사벨은 별 다른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시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네이슨을 바라봤다.

“아이를 죽이실 생각입니까.”

“그렇다면?”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입니다.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 사람들에게 엘란두르의 미덕을 보이시지요.”

네이슨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네가 엘란두르의 미덕을 운운해? 루벤에서 지내더니 마기에 정신이 나가버린 거냐? 못 본 사이에 많이 건방져졌구나 시안.”

이윽고 네이슨이 검을 뽑아들었다.

엘란두르의 핏줄을 이어받은 네이슨.

비록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카이만큼은 아니었지만,

네이슨은 무려 소드 엑스퍼트 중급에 이르는 실력자였다.

나이 또한 23밖에 되지 않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천재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꺼져라. 꺼지지 않으면 너도 같이 베어주지.”

섬뜩한 기세가 터져나왔다.

무언의 기운이 공간을 장악하며 분명한 살의(殺意)가 터져나온다.

무려 엑스퍼트 중급의 기사가 뿜어내는 기세.

이를 견딜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시안이 곧 겁을 먹고 도망칠 것이라 생각했다.

후작가의 망나니이자.

무능력한 놈팽이.

시안은 저것을 견딜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사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예상과는 달리.

시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

네이슨의 눈이 크게 떠졌다.

‘내 기세를 견뎌냈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시안은 그런 재능도, 능력도 없는 놈팽이였으니까.

분명 오줌이나 질질 흘리면서 도망쳤어야했다.

그런데 지금···.

네이슨은 이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사고? 지금 사고라 했나?”

이윽고 네이슨은 코웃음을 쳐보였다.

그리고는 검으로 제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놈은 마도구가 절대 고장날 일이 없다고 내게 호언장담했다. 해서 나는 이 마나석을 껴서 작동시켰고 바로 터져버렸지. 이래도 사고라 할 수 있나?”

그러면서 네이슨은 품 속에서 마나석을 꺼내보였다.

주먹만한 크기의 마나석.

검푸른빛을 띠는 그것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보였─.

잠깐. 검푸른빛?

시안은 유심히 네이슨이 꺼낸 마나석을 살펴봤다.

저거···.

‘내가 정제한 마나석이잖아?

아무리 봐도 시안이 정제한 마나석이었다.

오래 전에 시안이 경매장에 판 마나석.

품질만 무려 최상급의 마나석이었다.

그게 왜 네이슨한테···?

‘내 마나석을 구매했던 게 엘란두르였어?’

시안은 어렵지 않게 당시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었다.

‘아··· 이거 설마.’

그리고 시안은 그때서야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제리의 마도구가 최상급 마나석을 버티지 못하면서 폭발을 일으킨 것 같았다.

족히 천년 간 마기를 응축한 마나석.

신기전도 저 마나석에 의해 화력이 어마어마하게 증폭되었다.

초월자들이 개량한 신기전도 그러할진대.

당연히 제리의 마도구가 그것을 버틸 리가 없었다.

시안은 살짝 고개를 돌려 제리에게 물었다.

“제리, 네가 판 마도구. 마나석의 품질을 어디까지 설계했었지?”

갑작스러운 시안의 물음에 제리가 살짝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곧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최대 주, 중급 마나석까지 설계했습니다. 그 이상은 비용도 많이 들고 사, 사실상 쓸모가 없어서···.”

그도 그럴 것이 제국에서 거래되는 마나석의 품질은 주로 ‘최하급 ~ 하급’이 주를 이루었다.

중급의 마나석은 드물었고,

상급 이상의 마나석은 거의 없었으며.

최상급부터는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지금 네이슨이 들고 있는 마나석.

저건 최상급 중에서도 또 최상급이라 할 수 있었다.

“호, 혹시 몰라 주의 사항을 말씀드렸습니다. 에, 엘란두르셨기에 중급 이상의 마나석을 구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

시안은 네이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고라고 하지 않습니까.”

“······”

네이슨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 말을 들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냐는 심정으로 이 마나석을 꽂았다.

설마하니 문제가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펑.

결국 자신의 잘못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이 마나석이 최상급인 걸 어떻게 알고 있지?’

어째 시안은 이것이 최상급 마나석임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네이슨은 시안을 한동안 노려봤다.

“좋다.”

이윽고 네이슨이 입을 열었다.

“동생의 말도 있거니와, 자비를 베풀어 너의 잘못은 넘어가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리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런데.”

네이슨이 말을 이었다.

“네 어미의 잘못은 어쩔 수가 없구나.”

“예···? 예?”

“자식의 잘못에는 마땅히 부모의 책임도 따르는 법.”

네이슨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 녀석의 어미에게는 죄를 물어야 겠다.”

억지였다.

순 억지 논리였다.

그걸 네이슨이라고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럼에도 저렇게까지 한다는 것.

그 의도는 하나였다.

시안, 네가 원하는 대로는 해주지 않겠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루벤으로 쫓겨나기 전.

가문에 있을 적에도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윽고 네이슨이 한 쪽으로 눈짓을 해보였다.

가서 제리의 어머니를 끌고 오라는 의도.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움직이지마.”

시안이 나지막히 소리쳤다.

기사들은 잠깐 멈칫,거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네이슨의 명령에 우선하여 기사들은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기사들의 귓가로 시안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시안 엘란두르로서 명한다. 지금부터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는 이가 있다면!”

챙!

“여기서 목을 베겠다.”

시안은 검을 기사들을 향해 겨누었다.

태양빛에 번쩍이는 새하얀 S등급의 검신.

터져나오는 시안의 기세에 기사들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추었다.

그리고 기사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순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안 엘란두르.

그는 후작가의 망나니이자 무능력한 놈팽이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지금 이 순간 기사들은 엘란두르의 가주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지?”

네이슨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진다.

바라보는 시선. 시안이 말한다.

“자식의 죄를 부모에게 묻는 법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자식의 잘못을 부모가 책임지는 것이 뭐가 어떻다는 거지?”

네이슨은 다시 기사들에게 눈짓을 해보였다.

그 순간 시안이 다시 소리쳤다.

“설령 그런 법이 있다 한들!”

이윽고 시안이 천천히 검끝을 돌렸다.

그렇게 시안의 검끝이 향한 곳.

그곳은 다름 아닌.

이사벨이 서 있는 방향이었다.

시안은 이사벨을 향해 검을 들이밀고 있었다.

“······!”

“······!”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시안을 바라봤다.

엘란두르의 안주인에게 검을 들이민 행위.

이건···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이 되지 않았으니까.

“네가 정녕 미친 것이냐!”

네이슨이 검을 치켜들었다.

당장이라도 시안을 죽일 듯한 기세가 터져나온다.

그러나.

“그럼 지금.”

시안은 담담히 입을 열 뿐이었다.

“제가 어머니께 검을 들이민 이 패륜의 죄는, 누구에게 물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뚝.

말문이···.

말문이 막혀버렸다.

시안은 분명한 엘란두르의 자제였고,

이사벨은 명목상으로나마 시안의 어머니였다.

자식의 죄를 부모에게 묻는다.

그런 네이슨의 논리대로라면.

네이슨은 지금 당장 이사벨의 목을 쳐야만 했다.

내려앉는 정적.

그 누구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바로 그때.

“그만.”

어디선가 고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이사벨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사벨에게 집중된 가운데.

이사벨은 네이슨의 앞에 서보였다.

그리고.

찰싹.

이사벨이 네이슨의 뺨을 때렸다.

“어, 어머니···?”

네이슨이 당황하며 이사벨을 바라봤다.

이사벨은 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엘란두르를 욕되게 하지 말거라.”

이윽고 이사벨의 시선이 시안에게 향했다.

시안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봤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구나.”

이사벨은 시안을 가만히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그런 이사벨의 뒤로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 나중에 보자.”

이어진 네이슨의 중얼거림.

시안은 어깨를 으쓱여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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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혀버렸다.

아니, 이번에는 비단 사교계 뿐만 아니라 제국의 수도 자체가 발칵, 뒤집혔다.

“후작 부인께 검을 들이밀다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

“엘란두르는 그래도 자식이라고 넘어가준 모양이군.”

“하여간··· 저번 크라우드 건도 그렇고. 망나니라는 소문이 괜히 난 게 아니네요.”

사교계는 대체로 시안을 질책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행동은 명백한 패륜이었다.

심지어 그 행동이 평민을···.

아니, 평민도 아닌 빈민촌에 사는 천민 때문이었다.

그것도 엘란두르에게 해를 끼친 천민 말이다.

시안은 고작해야 그런 천민을 위해 자신의 부모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명예를 중시하는 귀족들에게 있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리 보나 저리 보나.

시안의 행동은 망나니나 다름 없었다.

반면.

“시안님이··· 정말 망나니가 맞나?”

“글쎄, 난 잘 모르겠어. 아니, 난 솔직히 소문이 헛소문이라고 봐.”

대중들의 시선을 사뭇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행동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부모에게 검을 겨누는 것.

그것도 고작 천한 아이를 위해서.

세상 어떤 귀족이 이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귀족들은 그저 자신들을 도구라 여길 뿐이었다.

이건 그간 사람들이 알고 있던 귀족의 이미지를 철저히 부숴버렸다.

그렇게 시안에 대한 소문이 양측으로 갈린 가운데.

제국 수도의 중심, 황궁.

“전하. 초대장을 받은 대부분의 자제들이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뵐르와 베르무트 가문의 자제는 현재 투병 중이라 참석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투병 중이라니 어쩔 수 없군. 쾌유를 바란다고 전해주게.”

시종장의 보고에 콘라드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집무를 보던 찰나.

“그러고보니 그 자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콘라드가 시종장에게 물었다.

콘라드는 누구라고 집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종장은 콘라드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그렇기에 시종장은 쉽사리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할까.

현재 사교계는 그의 이야기로 정말 떠들썩 했다.

역시 후작가의 망나니다.

엘란두르의 수치다 등.

심지어 이제는 후작가의 패륜아라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대체로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초대한 것은 다름 아닌 콘라드.

괜히 콘라드의 입장만 난처해진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시종장은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하나 망설였다.

그러나 판단은 자신이 아닌 콘라드의 몫.

시종장은 루치아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이곳 수도에서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보고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콘라드.

“하하하하하하하하!”

콘라드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벌써부터 거하게 한바탕 했군!”

자신의 친필 초대장을 받고도 행패를 부린 시안.

어떻게 보면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한 격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화를 낼 법도 하건만.

“하하하하하하!”

콘라드는 그저 호탕하게 웃어보일 뿐이었다.

“크라우드의 자제가 사제의 치료를 받아도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그렇다고 하옵니다.”

“크라우드 백작이 꽤나 속을 끓었겠군.”

콘라드는 속을 삭히는 크라우드 백작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게다가 엘란두르 후작 부인께 검을 들이밀었다라?”

“······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콘라드는 정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엘란두르의 망나니라···.”

하는 행패는 분명한 망나니였다.

귀족 간의 시비에 선빵을 치고.

또 자신의 어미에게 검을 들이미는 등.

이게 망나니가 아니면 당최 뭐가 망나니란 말인가.

그런데···.

정말 망나니가 맞을까?

‘글쎄···.’

사교계에 퍼진 소문과는 달리.

시종장의 보고는 전후사정을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왜 시안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콘라드는 알 수 있었다.

세간의 소문과는 다른.

콘라드가 알고 있는 시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

‘어떤 자인지 더욱 궁금하군.’

그래서일까.

“또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신성 제국의 귀빈으로 성녀님께서 도착했다고 합니다.”

“성녀가? 그동안 한 번도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의외군.”

콘라드는 곧 시작될 건국일 행사가 심히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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