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건국일 행사(2)
혹자들은 성녀를 살아 움직이는 기적이라 칭한다.
물론 시안은 성녀의 신성력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저 말이 사실인지는 알지 못했다.
‘건국일 행사에 성녀가 참석한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던 것 같았다.
아니, 그런데 잠깐.
그건 그렇다 치자.
‘왜 성녀가 여기에?’
그런 성녀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정확히는 왜 시안이 여기로 안내되었단 말인가.
성녀는 샤를롯 제국 입장에서도 귀빈 중의 귀빈이었다.
한 마디로 이렇게 시안과 한 자리에 있어도 될 법한 인물이 아니···.
‘아. 이거 설마···.’
시안은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다름 아닌 황태자의 친필 초대장.
로열 나이츠 입장에서 시안은 황태자가 직접 초대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황태자가 직접 초대한 사람 = 엄청난 귀빈.’
아무래도 이 공식이 성립된 것 같았다.
보아하니 대기하는 방에는 나름의 등급이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다른 이들은 다른 방에 모여 서로의 친분을 교류하고 있을 터.
일반적으로라면 시안 또한 그 쪽으로 가야함이 옳았다.
로버트는 황태자의 친필 초대장을 받은 시안이라면, 성녀의 등급 정도는 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착각.
정확히는 이곳은 황태자가 직접 초대한 이들만 올 수 있는 곳 같았다.
‘하아, 그러게 왜 친필 초대장을 보내서는.’
그냥 조용히 있다 가고 싶었는데.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다르게 생각하면 괜히 북적거리는 대기실보다, 조용한 여기가 더 나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솔직히 성녀의 미모가 기적이라 부를만 했으나 시안은 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모가 말이 되지 않으니.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느껴져서 그런 지 썩 관심이 가지 않았다.
애초에 시안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그래도 성녀와 눈이 마주친 이상 소개는 해야겠지.
시안은 성큼, 아리아에게 걸어갔다.
그런데 왜일까.
아리아에게 다가갈수록 어딘가 머리가 어지럽다.
시안은 약한 현기증을 느끼며 아리아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시안 엘란두르입니다.”
아리아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저 시안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
무슨 문제가 있나 싶던 찰나.
아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야.”
이렇게 말했다.
분명 이렇게 말했다.
시안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설마, 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너.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시안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와 동시에 시안은 성녀가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왜 그동안 성녀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 까지도.
하긴, 이상하다 싶었다.
이 정도의 성녀라면 어떻게든 앞에 내세워 홍보를 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든 숨기려고 했으니 말이다.
아마··· 신성 제국 내에서 뜯어말렸을 것 같았다.
정말 확 깨는 성녀.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왜.”
“왜?”
그러자 이번에는 아리아가 되물었다.
“네가 먼저 반말했잖아. 너는 되고, 나는 하면 안되냐?”
“······”
그러자 아리아의 표정이 멍해졌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싶은 듯한 얼굴이었다.
어째, 이런 반응은 처음 겪어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성녀가 저런 식으로 나오면.
보통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당황 혹은 분노였을 터였다.
정확히는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러했을 터였다.
시안처럼 같이 반말을 일삼는 것은 아마 처음일 터.
하지만 그것도 잠시.
“좋아.”
아리아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보아하니 끗발 좀 있어 보이는 귀족 도련님 같은데··· 미안하지만 내게 나불거리는 그 입은 곱게 다물고, 저만치로 꺼져줄 수 있을까”
이윽고 아리아가 시안 귓가 쪽으로 다가왔다.
“난 네 배경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거든.”
그리고 미모에도 향기가 배어있는 것일까.
아찔한 체취가 훅, 하고 시안의 코끝을 자극해왔다.
뭇 사내의 마음을 뒤흔드는 무엇.
그 순간.
비틀.
“······?”
갑자기 시안의 몸이 휘청거렸다.
마치 심한 현기증이라도 이는 듯한 모습.
그리고 실제로 시안은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마기(魔氣)가 갑자기 왜···!’
다름 아닌 시안의 내부에 잠재된 마기(魔氣).
그것이 갑자기 들끓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아리아가 시안에게 다가온 시점에서부터 말이다.
그리고 이 이유 또한 단순했다.
현재 시안이 배우고 있는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천년 전,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이 사용한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은 마기(魔氣)를 다루는 검술이었다.
그 덕분에 시안은 천년 간 응축된 마나석에서 마기(魔氣)를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기(魔氣)는 현재 시안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마기가 자연에 반하지 않는 마나라고는 하나,
빛과는 상반된 속성임은 변함 없었다.
그리고 지금 시안의 앞에 있는 성녀.
그녀는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한 신성력을 지닌 존재였다.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존재이자.
그 자체가 신성력 덩어리.
“아윽···!”
아리아의 존재를 의식한 마기가 그야말로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마치 ‘당장 저 망할 년을 치워!! 어서!!!’ 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 때문에 시안은 내부가 진탕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나서는 안되는 극과 극이 만나게 되었으니 당연한 반응.
“우욱!”
그건 도무지 참을래야 참을 수가 없는 종류였다.
“······?”
계속 비틀거리는 시안의 모습에 아리아가 순간 당황해보였다.
그러면서 시안 쪽으로 몸을 더 가까이 들이 밀었다.
“뭐야. 너 갑자기 왜─.”
“가까이 오지 마!”
시안은 아리아를 확, 밀치며 소리쳤다.
그러자 아리아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얘가 걱정을 해줘도. 몸이 안 좋은거면 내가 신성력으로─.”
“필요 없으니까! 그 짜증나는 얼굴 들이밀지 말라고!”
짜··· 뭐라고?
아리아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였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한 적은 없었다.
신성하다. 고귀하다. 거룩하다. 훌륭하다.
예쁘다. 곱다. 아름답다. 아리땁다. 청초하다. 정결하다···..
이런 것들이 아리아가 평생토록 들어온 말들이었다.
그 어디에도 ‘짜증난다’라는 말은 없었다.
그런 말을 하고 싶다가도.
자신의 얼굴을 보면 모두 저런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설마··· 꼴에 자존심이라도 부리는 걸까?
그래, 그런 것이다.
그게 아닌 이상 저런 말을 할 수 있을리가─.
“······”
하지만 아리아는 금방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바라본 시야.
그곳엔 시안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으니까.
저것도 연기인가···?
전혀 그래보이지 않았다.
비틀.
시안은 아찔한 두통에 이마를 짚어보였다
계속해서 정신을 헤집어 놓는 마기(魔氣).
진짜 장담하는데.
천년 전.
카일은 뮤리엘을 싫어했을거다.
“우웨엑!”
그것도 엄청!
날뛰는 마기에 시안은 저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비틀거리는 몸은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했다.
다행히 필사적으로 정신을 붙잡은 덕분에 그런 추태는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아.
‘설마 지금···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거야?’
그간 아리아의 미모를 본 사내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신께 맹세코.
태어나 단 한 번도.
“아윽···!”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되려 환한 웃음을 지을 뿐.
“제기랄···! 이건 역겨운 수준이잖아.”
심지어 역겹다는 말은 정말 듣도보도 못한 단어였다.
아리아는 충격에 빠져 몸이 굳어버렸다.
“윽···!”
거친 숨을 내뱉는 시안.
시안은 비틀거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아찔거리는 정신.
일단 저 빌어먹을 성녀로부터 멀어져야만 했다.
“저기요! 여기 말고 다른 방으로 좀 바꿔주세요!”
시안은 떠나간 로버트를 향해 방 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쾅!
진짜···.
진짜 나가버렸다.
마치 너 따위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정확히는 정말로 네 역겨운 면상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시안은 진짜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
아리아는 우두커니 그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아리아는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리아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
시안이 떠나간 방안.
그리고 시안이 떠나가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콘라드 폰 샤를롯이라 합니다.”
“아리아 리뉴 사피아르예요.”
아리아는 제국의 황태자, 콘라드와 마주하고 있었다.
“폐하께서 성녀님을 초대하신 줄 몰랐습니다.”
“비밀 리에 움직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알려져서 좋을 건 없어서요.”
아리아의 말에 콘라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아리아의 모습.
소문으로는 익히 들었지만 실제로 본 모습은 콘라드조차 감탄을 금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성녀가 움직인다고 알려졌다면.
건국일 행사는 그야말로 미어터졌을 터.
그렇기에 성녀는 공식석상에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다.
물론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콘라드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성녀가 이번 건국일 행사에 참석한 이유는 있었다.
“그런데 천년 전에 사라졌던 악마들이 다시 나타났다는 게 사실입니까?”
“확실하지는 않아요. 단순히 마족인지 아니면 악마인지. 그냥 마족일거라 생각이 들지만··· 확인할 필요는 있겠죠.”
콘라드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악마들이 부활한 것이라면 그건 심각한 문제였으니까.
“그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 샤를롯 제국의 아르나이즈 전당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년 전, 아르나이즈의 리더셨던 샤를롯 대제께서는 이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알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해서 제국을 건국할 당시. 아르나이즈의 전당에 유산을 남겨놓으셨다고 들었어요.”
“흠···.”
아르나이즈의 전당은 황궁 지하에 위치한 고대 유적이었다.
천년 전, 샤를롯 대제가 만들어놓은 유적.
그리고 그 유적에 샤를롯의 유산이 있다는 것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정확히는 황가의 일원만이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성녀 또한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천년 전, 뮤리엘 쪽에서도 어떤 단서를 넌지시 남겨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유산이 있는 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 전설만 내려올 뿐.
지난 천년간 그 어느 누구도 유산을 확인한 자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르나이즈의 전당에는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아르나이즈의 전당에는 선택받은 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다.
황가의 일원이라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
황태자인 콘라드조차 딱 한 번밖에 들어가지 못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렇게 제가 오게 된 것이죠.”
하지만 아리아는 자신감 있게 입을 열었다.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아리아.
아마 그녀라면 선택 받는 것에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쉽지 않으실 겁니다.”
콘라드는 조금 회의적이었다.
“어째서죠?”
이어진 아리아의 물음에 콘라드는 두 명의 이름을 꺼내보였다.
카이 엘란두르.
파나트 로르실트.
제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의 자제들이자,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두 천재들.
이들은 성녀와 비교하여 절대 꿀리지 않는 천재들이었다.
아니, 성녀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는 않았다.
아마 선택받는 이는 이 둘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번 건국일 행사의 가장 큰 관심사 또한 둘 중 누가 선택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카이 엘란두르···?”
“그를 아십니까?”
“샤를롯 제국에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두 개의 별이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런데 정확한 이름까지는···.”
콘라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인물이 유명하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샤를롯 제국 내에서의 일.
두 가문의 가주인 듀라크나 에그리트라면 모를까.
아직 카이와 파나트는 대륙으로 명성을 많이 뻗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눈앞에 있는 이는 성녀.
그녀는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며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이였다.
한편.
아리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엘란두르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디서 들어봤더라···? 아.’
아리아는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바로 아까 전.
자신의 얼굴을 보고 토했던 그 놈팽이의 이름이 시안 엘란두르였다.
아리아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혹시 시안 엘란두르라는 색··· 아니, 사람과 관련이 있는 자인가요?”
“시안 엘란두르라고 하시면···?”
“그 왜, 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재수 없는 색··· 아니, 귀족인 것 같던데요.”
그런 아리아의 말에 콘라드는 크게 놀라보였다.
아리아가 말한 시안 엘란두르.
애초에 제국에서 그 이름을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어떻게 성녀가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그와 관련한 소문을 접한 것인가?
“혹시 망나니라는 소문을 들으신 겁니까?”
“예? 망나니요?”
아리아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놈이 망나니였나요? 어쩐지··· 하는 행동이 천박하더라니.”
그리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보아하니··· 망나니라는 소문을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를 알고 있다라···.’
성녀가 카이는 모르는데 시안은 알고 있다.
정말 파면 팔수록.
궁금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럼 일단 같이 행사장으로 가시죠.”
콘라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거나 성녀의 목적인 아르나이즈의 전당.
그 선택받은 자가 누구인지는,
건국일 행사에서 밝혀질 일이었으니까.
#
“······ 저딴 게 무슨 성녀라고.”
방에서 나온 시안은 말을 씹듯이 내뱉었다.
아직도 어질어질한 정신.
시안은 이마를 짚으며 정신을 억지로 달랬다.
어둠의 마나에 기반한 마기(魔氣).
빛의 마나에 기반한 신성력.
상성이 좋지 않아도 너무 안 좋았다.
어떻게 된 게 머릿속으로 성녀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온몸이 들 쑤시고 머리가 아프다.
정말이지 해악하기 그지 없는 존재.
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미모라고는 하나,
시안에게 있어 저건 사실상 마수(魔獸)나 다름 없었다.
“게다가 성격은 왜 저 모양이야?”
무엇보다 성격도 완전 개차반이었다.
입은 또 어찌나 험한지.
솔직히 성녀가 아니라 그냥 양아치나 다름 없었다.
다짜고짜 반말을 내뱉는 것은 물론이고,
찝쩍댈 생각은 전혀 없었음에도 지레 넘겨짚는 뻔뻔함까지.
고귀한 성녀(聖女)?
뮤리엘의 환생?
진짜 웃기는 소리 말라지.
아마 모바일 영주가 저 모습을 봤다면.
필시 이렇게 말했을 터였다.
《정말 노답이네요!》
“그런데 설마··· 뮤리엘도 저랬던 건 아니겠지?”
신화 속 이야기의 뮤리엘은 당연 아니었다.
흔히 성녀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자상함과 인자함.
하지만 지금의 성녀도 소문으로는 그러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진짜 카일이 엄청 싫어했겠는데.”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보다 마기(魔氣)가 이렇게 날 뛸줄은 몰랐네.”
이제 어느 정도 다행히 안정을 찾은 마기.
마나석에서 흡수한 이 마기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광기로 번지는 마기의 속성은 남아있었고,
그 마기가 신성력에 반응하여 미쳐 날뛴 것 같았다.
설마하니 계속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님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지난 엘로디의 기록에 따르면.
카일이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것을 다른 아르나이즈 동료들은 몰랐다고 했었다.
오직 엘로디만이 눈치챘던 사실.
그 말은 즉.
카일은 완벽하게 어둠의 마나를 통제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엘로디조차 따라갈 수 없었던.
마기(魔氣)를 다루는 근원적인 방법.
“빨리 마혼제법(魔魂制法)을 배우든가 해야지.”
아마 마혼제법을 배운다면 그렇게까지 문제는 없을 터였다.
문제는 그걸 어디서 배우냐는 것인데···.
시안은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스토리 퀘스트] - ‘아르나이즈의 유산’』
<보상: ???>
.
.
“이 놈의 퀘스트는 대체 어떻게 되먹은 거야.”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행사장으로 가자.
그렇게 시안은 행사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향했다.
정확히는.
“······ 어디야 대체.”
행사장에 가려고 했었다.
“어디가 어딘지 알아야지.”
진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넓기도 무지막지하게 넓거니와
애초에 시안이 황궁을 들어와 본 적도 지금이 처음이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사장의 위치를 물어보자.
저쪽으로 돌아 이렇게 저렇게 가면 된다는데.
황궁이 넓어도 좀 넓어야지!
도무지 행사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안내해달라고 해야겠다.”
해서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려던 그때.
시안의 앞선 시야로 일련의 사람들이 보였다.
정확히는 황궁의 대신들과 로열 나이츠.
그들을 대동한 누군가였다.
“음?”
이윽고 앞선 누군가가 시안 쪽을 바라봤다.
시안이 그를 발견한 것처럼.
그 또한 시안을 발견하고는 성큼, 걸어왔다.
가까이서 본 그는 정갈한 제복을 한 금발의 미남자였다.
시안보다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 나이임에도,
자연스럽게 위엄과 기품이 흘러나오는 존재.
시안은 그 얼굴을 모르지 않았고,
그렇기에 시안은 한쪽 무릎을 꿇어보였다.
“엘란두르 가(家)의 시안 엘란두르. 황태자 전하를 뵙습니다.”
제국의 2인자.
다음 샤를롯 제국을 이끌어갈 황태자, 콘라드였다.
“아! 자네가 시안 엘란두르인가.”
시안의 소개에 콘라드가 반갑게 소리쳤다.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편견이 없는 모습.
소문에 황태자 콘라드는 꽤나 호탕한 성격이라 들은 바 있었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가문과 출신 그리고 배경을 따지는 일반 귀족들과는 달리.
콘라드는 그 사람의 인간됨 그리고 능력을 중시한다고.
그렇기에 황궁 내부에서도 콘라드를 따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얘기는 많이 들었네. 내가 자네를 정말 만나고 싶었지.”
“저를··· 말씀이십니까?”
카이나 로즈웰, 네이슨이 아니라?
그렇기에 시안은 콘라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시안과 관련한 소문은 망나니 그리고 패륜아.
인간됨이든, 능력이든.
그 어느 것을 따져도 콘라드가 시안에게 관심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의문스러운 시안의 표정에 황태자는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데···.”
이윽고 콘라드가 시안의 주변을 훑어보며 말했다.
“왜 행사장에 있지 않고 여기에 나와 있는가?”
“아, 그것이···.”
시안은 이걸 뭐라 대답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녀의 얼굴이 꼴보기 싫어서 나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윽··· 성녀 얼굴 생각하니까 또 머리가 아프네.’
어떻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걸까.
정말 다시는 상종하기 싫은 존재였다.
바로 그때.
“이왕 이렇게 만난 거 같이 가지. 우리도 행사장으로 가려던 찰나였거든.”
콘라드가 시안에게 동행을 요청했다.
그런데 우리···?
시안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시안의 시선이 천천히 콘라드의 옆을 향했다.
그리고 보인 백금발의 미녀.
어쩐지.
“아윽···.”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