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폭풍의 망나니(1)
기사의 경지는 보통 5단계로 나뉜다.
비기너, 유저, 엑스퍼트,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
그리고 이 기준은 오러의 경지가 무엇이냐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사의 경지가 단순히 오러의 경지만을 논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로가 오러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순전한 실력의 영역.
그렇기에 유저가 비기너에게 패하고,
유저가 엑스퍼트에게 승리하는 일들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비기너(Beginner)가 일반인에게 패하는 일은 없었다.
오러를 처음 사용할 수 있는 경지, 비기너(Beginner).
이때부터 진정한 기사라 불리며.
초인적인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경지였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의 근원을 다루는 영역.
오러의 사용 유무는 절대적이었다.
오러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같은 오러 뿐이다.
이건 절대적인 법칙에 가까웠다.
사자와 늑대가 싸운다면.
높은 확률로 사자가 이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간혹, 정말 간혹.
늑대가 이기는 경우도 있을 터였다.
늑대는 그만한 저력이 있으니까.
그러나 사자와 사슴이 싸운다면.
이는 무조건이라 할 만큼 사자가 패배하는 일은 없었다.
설령 그러한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우연의 힘이 개입되어야만 했다.
천둥 번개에 의한 사자의 감전이라던가.
갑작스러운 산사태에 의한 사자의 매몰이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라던가.
하여 지금.
“크학···!”
네이슨은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이슨은 당연히 자신의 승리를 예상했다.
아니, 예상할 것도 없는 정해진 결과였다.
비기너도 되지 못한 시안.
엑스퍼트 중급에 닿은 네이슨.
수준의 차이를 들이밀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무능력한 놈팽이.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태자가 그런 시안에게서 관심을 끊지 않는 것이.
관심을 갖는 정도가 아니라 시안의 곁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 수도에서 있었던 일까지.
해서 네이슨은 간단한 계획을 꾸몄다.
대련을 통한 개망신.
거절할 것이라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거절해도 나름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결국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 꼴이었으니까.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시안은 대련을 수락했다.
의외긴 했지만 바라마지 않던 결과.
오러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상관없었다.
한 손을 사용하지 않는 것?
이건 패널티의 축에도 끼지 못했다.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손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엑스퍼트 중급과 비기너도 되지 못한 존재.
그 차이는 그만큼이나 까마득했다.
분명···.
그랬어야만 했다.
쩌어엉!
큼지막한 소리와 함께 네이슨의 검이 튀어올랐다.
네이슨의 손아귀로 저릿한 충격이 밀려온다.
그와 동시에 네이슨은 인지할 수 있었다.
‘오러···?’
이건 분명한 오러의 힘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말이 안 되었다.
시안은 오러도 깨우치지 못한 존재였으니까.
‘설마 그 사이에 오러를 깨우쳤다고?’
그건 더 말이 되지 않았다.
오러란 그리 쉽게 깨우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으니까.
피를 깎는 노력과 천부적인 재능.
앞선 것은 모르겠지만 시안에겐 재능이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시안에게선 오러의 기운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꽈앙!
서로의 검이 튕겨져 오른다.
시안은 검을 고쳐잡으며 팔을 뒤로 당겼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 한 번의 찌르기(衝).
꽈꽝!
둔탁한 폭음이 터져나왔다.
쇠와 쇠가 맞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네이슨은 검을 곧추세웠다.
시안이 그 틈을 노리며 다시 찔러들어온다.
꽝! 꽈꽝!
쇄도해오는 검과 닿을 때마다 네이슨의 검이 비틀렸다.
무거움? 가벼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검 자체에 깃들어있는 힘.
확실하다.
이건 확실히 오러의 힘이었다.
‘어찌 이런···!’
네이슨은 지금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네이슨은 눈을 빛내며 검을 내질렀다.
오러를 제약받고 한 손을 사용할 수 없다 한들.
그 실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엘란두르는 엘란두르.
네이슨의 검이 틈을 비집으며 시안에게 쇄도해갔다.
그런데.
카앙!
닿지 못했다.
비록 허초였다고는 하나.
아무런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걷혔다.
“마, 말도 안돼···!”
“어떻게··· 어떻게 이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이··· 말이 안 되었으니까.
시안은 그야말로 천하의 둔재였다.
망나니, 패륜아.
이런 소문을 떠나 그의 재능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이가 지금 네이슨과 대적하고 있었다.
무려 엑스퍼트 중급에 달하는 엘란두르를 말이다.
아무리 한 손을 제약하고 있다 한들.
오러를 사용할 수 없다고 한들.
이게···.
이게 정녕 말이 되는 일이란 말인가.
“맙소사···.”
“세상에나···.”
사람들은 지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카아앙!
또 다시 걷히는 네이슨의 일격.
그와 동시에 네이슨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녀석···!’
단순히 오러의 힘만이 아니다.
저 깔끔한 동작과 군더더기 없는 행동.
무언가 있다.
오러의 힘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캉! 카캉!
시안의 검은 무모하고 또 단조로웠다.
그 어떠한 기교조차 섞여들어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것은.
꽈앙!
괴악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커헉···!”
네이슨의 입가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내부를 뒤흔드는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경악에 경악을 넘어서는 사람들의 시선.
내려앉는 정적.
그 사이로 시안은 가만히 검을 들고 있었다.
분명 시안이었다.
어벙한 놈팽이이자 후작가의 망나니.
그러나 지금 네이슨의 눈에는 시안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시안 안에 잠재된 무언가가 보였다.
아득한 너머의 무(武).
네이슨은 까마득한 무언가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내가··· 진다고?’
저딴 무능력한 놈팽이한테?
네이슨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네이슨의 이성을 잠시나마 끊어버렸다.
스파아아아앗!
네이슨의 검에 선명한 푸른빛이 맴돌았다.
형상화된 오러.
그와 동시에 짙은 살기가 터져나온다.
“감히!”
네이슨이 시안에게로 달려들었다.
“지, 지금 무슨···!”
“그만둬!”
사람들이 놀라며 소리쳤다.
일부는 네이슨을 막고자 뛰어들었다.
그러나 오러의 힘을 사용하는 엑스퍼트 기사의 움직임을 쉽사리 따라갈 수 없었다.
반면.
시안은 차분한 눈빛으로 달려오는 네이슨을 바라봤다.
사고의 흐름이 고무줄처럼 쭈욱, 늘어진다.
호흡이 가빠지며 요동치는 심장의 소리가 들려온다.
시야가 좁아지고,
주변의 풍경이 희미하게 보인다.
다만, 검을 쥔 네이슨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할 수 있을까.’
시안의 사고가 흘러간다.
시안이 배우고 있는 마혼수라검.
생각해보면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이 사용하는 검술치고 너무도 단순했다.
베기(斬)와 찌르기(衝).
그 이외의 과정은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물론 입문의 과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처음 은발의 미남자, 카일이 선보였던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기에 솔직히 실망을 한 면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검은 오크와 대적하면서.
마혼수라검의 진행률을 쌓고, 또 그에 따른 묘리를 깨달으면서.
시안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베기와 찌르기는 모든 검술의 기본이다.
그 어떤 최강의 검술이라 한들.
베기와 찌르기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검(劍)을 사용한다 함은.
복잡한 검술 없이.
화려한 기교 없이.
단 두 가지 동작만으로 모든 공격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
엑시드(Exceed). 그 너머의 경지에 닿은 자.
그의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에 입문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뚝.
시안의 호흡이 끊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단 한 번의 움직임.
띠링!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입문 진행률 52.8%(+11.3%)]
경쾌한 스마트 폰의 알림음과 함께.
시야 가득히 검격이 덮쳐온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끔찍한 폭발이 터져나왔다.
자욱한 먼지가 일며 시야를 가린다.
“이, 이게···!”
“어억···!”
그 위압적인 광경에 사람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바라보는 시선 사이로 먼지가 가라앉는다.
그리고 보인 광경.
우우우웅···!
그건 선명한 푸른빛이었다.
그 사이로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진다.
공기마저 갈라버리는 하나의 날.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말하길.
오러 블레이드(Auror Blade).
마스터(Master)의 상징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곳에서 마스터의 존재는 단 한 명.
“혀, 형님?!”
가라앉은 먼지 사이로 네이슨의 외침이 들린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존재.
카이 엘란두르.
카이는 네이슨과 시안의 사이를 가로 막고 있었다.
이윽고 카이가 네이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추태냐.”
네이슨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카이는 그런 네이슨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네이슨. 네가 졌다.”
“형님!!”
네이슨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카이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시선을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시안은 손아귀가 저려오는 것인지 손바닥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카이는 그런 시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얼핏 보면.
카이는 시안을 구한 것처럼 보였다.
아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분명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카이는 알 수 있었다.
방금 그 격돌의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는 것을.
시안의 검격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내지르는 자세. 뻗는 힘.
그 모든 타이밍들이 완벽했다.
심지어.
‘마지막 일격은···.’
시안의 마지막 일격은 카이조차 사뭇 긴장을 해야할 정도였다.
마스터(Master)인 자신을 긴장시키는 일격.
카이는 한동안 시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카이는 시선을 돌려 연회장의 누군가를 향했다.
“제 동생들이 끓어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추태를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다름 아닌 황태자, 콘라드.
카이는 콘라드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니네. 그리고 적절한 때에 잘 나서주었네.”
콘라드는 그런 카이의 행동을 이해했다.
“헌데··· 이렇게 되면 승부가 어찌 되는지 판단할 수 없네만. 자네가 볼 땐 누구의 승리인 것 같은가.”
콘라드는 카이에게 물었고,
카이는 고민할 것도 없이 답했다.
“처음부터 네이슨이 오러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시작된 대련이었습니다. 제가 개입했다 한들. 오러를 사용한 순간 네이슨의 패배입니다.”
“하, 하지만···!”
네이슨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나서보였다.
그러나 카이의 시선을 마주한 네이슨이 살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다는건?”
“시안의 승리입니다.”
아···!
카이의 말과 동시에 작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이윽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
“······?”
그런 사람들의 표정이 일순간 붕, 떠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에 보이는 시안.
“아아···!!! 아아아···!!”
시안은 감전이라도 당한 것 마냥.
몸을 파들파들, 거리고 있었으니까!
승리의 기쁨이라도 누리는 것인가?
하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저건 감전의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신이라도 접신하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사람들은 시안이 왜 저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45만 골드!!!!’
시안은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45만 골드였다.
자그마치 45만 골드였다!
연구소의 연구 목록들을 싸그리 현질하고.
영지 시설의 시설들도 죄다 현질하고.
또 업그레이드까지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금액!
‘조금만 더 모으면 광고 제거를 할 수도 있고!!’
모바일 영주의 절규가···.
벌써부터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아아아아···!! 아아···!!”
시안은 이 희열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고.
“······”
“······”
“······”
사람들은 그런 시안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전하. 곧 건국일 행사가 시작되옵니다.”
연회장 바깥으로 황궁 서기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본격적인 건국일 행사가 시작되려는 모양.
“모두 자리를 옮기지.”
콘라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렇게 시작된 본격적인 건국일 행사는 딱히 별 것 없었다.
그냥 건국일을 축하하고,
선물을 준비해온 사람이 있으면 교류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연회장에서 하던 짓을 장소만 옮겼을 뿐이었다.
다만, 한 가지.
여기서도 짤막한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엘란두르가 준비한 선물에 관한 것이었다.
엘란두르는 건국일을 축하하는 겸.
황태자를 위한 선물로 최상급 마나석을 준비했다.
“최상급 마나석? 상급이 아니라?”
“역시··· 엘란두르인가.”
이에 귀족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최상급 마나석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예상했다시피.
그건 시안이 정제한 마나석이었다.
시안은 자신의 마나석을 구매한 것이 엘란두르임을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하하···.”
시안도 똑같은 마나석을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시안이 준비한 것은 검은 오크에게 박혀있던 마나석이었다.
최상급을 넘어서는 마나석.
그야··· 당장 딱히 쓸모가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루벤의 마나석 광산.
저번 광산을 현질함으로써 확인한 바.
광산에는 검은 오크가 쓰던 마나석과 비슷한 것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기에 하나쯤은 황태자의 선물로 주어도 상관없었다.
“······”
“······”
귀족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시안이 건넨 마나석.
저건 척 보기에도 엘란두르가 건넨 마나석보다 월등히 품질이 좋았으니까.
저것이야말로 정말 최상급을 넘어서는 마나석이었다.
이에 황태자, 콘라드는 크게 기뻐했으며.
엘란두르의 선물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시안은 검은 오크 마나석을 선물로 줘도 되나 심히 고민했었다.
대륙에 최상급의 마나석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시안이 그 이상의 마나석을 가져온다?
당연히 그 출처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아니, 분명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시안은 물론이고,
루벤에까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시안은 심히 고민했으나.
끝내 검은 오크의 마나석으로 결정한 이유가 있었다.
“이리 큰 선물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내 자네의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네.”
황태자 콘라드는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으니까.
비록 루벤에 관심이 쏠린다 한들.
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을 당장 어찌하지는 못할 터.
하지만 황태자의 빚은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현질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질로는 구매할 수 없는 권력.
“아니, 특별히 소원을 들어주지. 어떤 것이든 상관 없으니 무엇이든 말하게. 이는 황가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는 바이네.”
“전하!”
물론···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째 조금 과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뭐, 어쨌든.
시안은 그 저울질 끝에 황태자의 빚을 선택했다.
황태자의 빚. 그건 언젠가 한 번.
루벤에 드리운 크나큰 위기를 한 번 넘겨줄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황태자가 주최한 행사는 무리없이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천하의 둔재라고 하지 않았나?”
“들리는 소문으로는 황태자 전하께서 주최하신 연회장에서 네이슨을 대련에서 이겼다고 하던데.”
그 행사 끝에 시안에 대한 사교계의 평가가 들썩였다.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시안 엘란두르가 네이슨 엘란두르를 이겼다고?”
“어떻게 비기너도 못된 자가 엑스퍼트를···?”
천하의 둔재가 네이슨을 꺾었다.
이는 사교계를 강타하다 못해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설마하니 그럴라고. 동생이라고 봐준 것이겠지.”
“암. 그렇고 말고.”
“알고보니 오러 사용 불가에 한 손까지 제약했다고 하더군.”
오랫동안 이어온 이미지가 단번에 바뀌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안의 소문이 들썩이는 가운데.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갔고.
드디어 건국일 행사, 그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일주일 간 행해지는 건국일 행사는 각 날짜마다 치러지는 행사가 다양했다.
그리고 모든 행사가 같은 무게를 짊어진 것은 아니었다.
건국일 행사 중에서도 메인 중의 메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아르나이즈의 전당에는 누가 들어갈까?”
“이번에는 성녀까지 왔다고 하는데. 진짜 기대된다!”
북적거리는 거리.
웅성거리며 모여있는 사람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제는 모두 하나.
아르나이즈 전당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
아멜리아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주님은 누가 선택될 것 같으세요?”
그런데.
어째, 시안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슬쩍 돌아본 시선.
아니나 다를까 시안은 저 멀리, 노점상에서 먹거리를 사고 있었다.
이윽고 한 손 가득히 들고오는 시안.
아멜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까 드시고도 또 드세요?”
“맛있는 걸 어떡해. 게다가 오늘이 행사 마지막이잖아.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지.”
“언제는 돈 아깝다고 식당도 맘대로 못 가게 하셨으면서.”
“그때는 돈이 별로 없었잖아. 지금은 많은걸.”
시안은 두둑한 돈 주머니를 두들겨보였다.
아멜리아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안에 든 금액을 알았으니까.
아니, 그보다.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그 돈은 대체 어디서 나신 거예요?”
무려 45만 골드였다.
4만 5천 골드가 아니라.
자그마치 45만 골드였다.
심지어 딱히 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행사에 다녀오더니 갑자기 45만 골드를 가져왔다.
시안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물며 말했다.
“따써.”
“따···요?”
따긴 뭘 땄다는 거지?
도박으로 땄다는 의미인가?
그 45만 골드를?
“설마 황궁에서 도박하셨어요?”
아멜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박할 곳이 따로 있지 어떻게 황궁에서···.
아니, 도박을 해도 그렇지.
어떻게 판돈이 45만 골드나 된단 말인가.
그리고.
“비슷해.”
도박이면 도박이지.
비슷한 건 또 뭘까?
“······”
아멜리아는 굳이 그것을 묻지 않았다.
오랜 경험 끝에 그냥 생각을 포기하면 편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됐고. 이러다 늦겠다. 빨리 가자.”
그러면서 시안이 저만치 앞으로 걸어갔다.
아멜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당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