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아르나이즈 전당
행사장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혀버렸다.
아니, 행사장이 아니라 제국 전체가 완전히 뒤집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인재를 선택하는 조디악 소드.
그리고 두 개의 별.
카이 엘란두르.
파나트 로르실트.
이 둘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최고의 천재들이었다.
해서 이번에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는 자가 누구인지.
그리하여 누가 더 뛰어난 천재인지
그것이 이번 행사의 최대 관심사였지 않은가.
그런 의미였던 걸까.
조디악 소드는 어찌된 일인지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선택했다.
지난 천년의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
그런데 선택된 두 존재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성녀 아리아.
시안 엘란두르.
성녀는 그럴 수 있었다.
그녀는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한 신성력을 타고난 이.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제국의 별이라 할지라도.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는 성녀에게 밀릴 수는 있었다.
제국의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시안은 아니었다.
그는 절대 아니었다.
이건 시안이 성녀와 더불어 이 시대 최고의 인재라는 뜻이었다.
그 말은 즉.
카이 엘란두르와 파나트 로르실트.
시안이 이 둘을 뛰어넘는 천재란 뜻인데···.
그게 당최 말이나 되는 소리란 말인가!
시안은 천재는 커녕 범재도 아니었다.
그야 말로 둔재 중의 둔재였다.
설마 조디악 소드의 선택 기준이 다른 것이었나?
이는 항상 나오던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후작가의 망나니이자 패륜아.
그 어떠한 기준을 들이밀어도 시안은 기준에 충족되지 못했다.
그렇게 제국 전체가 발칵, 뒤집힌 지금.
제국 수도의 중심, 황궁.
황제의 알현실에는 때 아닌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말도 안됩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이는 제국의 체면과도 연결된 일입니다.”
“이번 만큼은 예외를 적용하여 없던 일로 하심이···.”
역시나 대신들은 시안이 선택 받은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특히나 로르실트의 의견이 거세었다.
엘란두르와 라이벌 관계인 로르실트.
가뜩이나 선택을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카이도 아닌 시안에게 밀렸다니 더욱 그러했다.
바로 그때.
“폐하. 그렇다고 하여 천 년간 이어온 관례를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 한 발 나서며 소리쳤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다름 아닌 황태자, 콘라드가 서 있었다.
콘라드는 황제 앞으로 나서보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또한 시안 엘란두르는 자격이 충분합니다.”
“자격이 충분하다?”
황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제 또한 시안에 관한 소문을 모르지 않았다.
크게 관심이 없더라도 엘란두르를 알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었으니까.
그렇기에 자격이 충분하다는 콘라드의 말.
그건 아무리 황태자 콘라드의 말이라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습니다.”
콘라드의 눈빛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황제는 그런 콘라드를 가만히 바라봤다.
다음 제국을 이끌어갈 황태자 콘라드.
그는 황제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제왕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숱한 황위 계승자가 있음에도.
아직 자신이 건재함에도.
진즉에 황태자로 책봉하지 않았는가.
능히 다음 제국을 훌륭히 이끌어 갈 수 있는 재목.
그런 콘라드가 저렇게까지 확신을 한다라···.
황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태자의 생각은 잘 알겠으나. 대신들의 뜻 또한 충분히 일리가 있다. 자격이 되지 않은 이를 전당에 들여보내는 것은 제국의 체면과도 관련이 있는 일.”
“하오나 폐하─!”
“허나.”
황제가 말을 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하여 천 년간 이어온 관례를 어길 수는 없지. 되려 그것이야말로 제국의 전통을 무시하고 체면을 깎는 일.”
“그 말씀은···?”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관례를 따른다.”
그리고 관례라 함은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자가 아르나이즈 전당에 들어가는 것.
그런데 이번에 선택받은 이는 둘.
따라서.
“둘 모두에게 전당의 입성을 허락한다.”
#
아.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을까.
시안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조디악 소드의 선택이든 나발이든.
당대 최고의 인재라는 명예든 나발이든.
시안은 관심 자체가 없었다.
시안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직 두둑해진 돈 주머니, 45만 골드.
그리고 그걸로 무얼 현질 할까.
그리하여 부들부들, 거리는 모바일 영주를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전례가 없던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회의 끝에 시안, 자네도 전당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했네.”
팔자에도 없는 아르나이즈 전당에 들어가게 생겼다!
황태자 콘라드는 시안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안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왜.
조디악 소드는 시안을 추가로 선택했을까.
‘설마 모바일 영주 때문인가?’
가능성이 높다 못해 거의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그리고 입성에 앞서 한 가지 말해줄 것이 있습니다.”
콘라드는 시안과 성녀를 번갈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이 아르나이즈 전당에 선택받은 이만이 들어갈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기보다는··· 대대로 전해져내려오는 이야기죠.”
콘라드는 그에 관련한 짤막한 이야기를 꺼냈다.
먼 과거, 제국에는 뛰어난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남자.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했던 당시의 황제는 그를 자신의 동생과 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남자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러나 갖은 황제의 협박에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황제의 동생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찌 사람의 마음을 강제할 수 있을까.
남자는 계속해서 연인을 그리워했고.
끝내 병을 앓다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남자가 사랑한 연인.
그 여인 또한 한평생 남자를 그리워하다가 죽었고.
그녀의 영혼이 이곳, 아르나이즈 전당에 잠들었다고 한다.
돌아오지 않을 남자를 기다리고자.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군요.”
“그렇습니다.”
아리아의 말에 콘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아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왜 황가의 일원이 아닌 자에 대한 이야기가 이 전당에 전해져내려오는 것이죠? 그리고 왜 그녀의 영혼이 하필 이 전당에?”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 구전되어오다보니, 변형된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만···.”
콘라드는 고개를 한 번 저어보였다.
“아무튼 그녀의 영혼이 이곳 전당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지만요.”
“본 적이 없으시다고요? 황태자께서도 전당에 들어가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리아의 물음에 콘라드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보였다.
“조디악 소드가 20년에 한 번씩 선택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황가 외부의 일원입니다. 황가의 일원은 조금 예외죠.”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조디악 소드(Zodiac Sword)의 원주인, 샤를롯 대제의 후손이었다.
실질적으로 조디악 소드를 사용할 수 있는 이들.
물론 현재로선 황제뿐이었지만, 콘라드는 차기 황제가 될 인물.
콘라드는 황태자 책봉 때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았고,
그때 아르나이즈 전당에 한 번 들어갔었다고 한다.
“어쨌든 전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녀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허락이 바로 조디악 소드의 선택.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이 뛰어났던 남자를 찾기 위함이라나 뭐라나.
그리고 이것이 조디악 소드가 당대 최고의 인재를 선택하는 게 아닐까, 하는 근거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녀의 허락인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콘라드는 그렇게 말을 끝 마쳤고.
콘라드 본인 스스로부터가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렇군요···.”
아리아 또한 그런 콘라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그냥 이야기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억지가 섞여 있는 이야기.
아마 전대 황제 중에 이런 종류를 좋아했던 이가 있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여러모로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유는 있었다.
“전당에 강력한 결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전당에는 실제로 강력한 결계가 있었고.
오직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이만이 접근할 수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와 관련하여 8위계(位界)에 닿은 마법사, 에그리트 로르실트.
그조차도 이 결계를 파훼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결계에 얽힌 비밀이라도 파헤치고자 했지만 그것도 실패.
비단 에그리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역사상 어느 누구도 이 결계의 비밀을 설명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고 한다.
오직 저 이야기만이 설명 가능했다고.
“실존하는 전설인 거군요.”
“그런 셈입니다.”
아리아와 콘라드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던 시안.
사실 콘라드가 말하는 이야기도 딱히 귀담아 듣고 있지 않았다.
‘하아, 젠장.’
시안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시안은 조디악 소드의 선택이든 나발이든.
썩 관심이 없었다.
막말로 선택을 환불할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환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환불 시스템이 있을 리가 만무했고,
무엇보다 환불할 수가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띠링!
『[스토리 퀘스트] - ‘아르나이즈의 유산’
▶아주 오래 전.
악마들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 대륙.
아르나이즈 카일은 모종의 진실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떠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죠.
하여 카일은 떠나기 직전.
자신의 유산을 이곳 아르나이즈 전당에 남겼습니다.
그리고 동료 아르나이즈들에게 부탁해 전당을 봉인해두었죠.
언젠가 이곳을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에요.
그렇게 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런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끝내 운명을 마주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운명과 마주할 일만 남았는데···.
어마나 세상에?
전당을 지키고 있는 망령이 있다고 하네요?
음··· 조금 곤란하지만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카일은 유산의 단서를 그리 많이 남기지 않았거든요.
심지어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단서도 사라져버렸고요!
그렇기에 유산을 찾기란 불가능!
하지만 저 망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당에 있었으니까요!
그녀는 분명 카일의 유산에 관해서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카일의 유산을 가지고 있을지도요!
자, 그럼 망령이 된 그녀를 찾기만 하면 되는데···.
어마나?
그 망령은 자신과 사랑하는 이를 갈라놓은 황가에 대한 원한으로 원귀(怨鬼)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핫!
역시 유산을 쉽게 얻을 수 있을 리가 없겠죠?
전당을 지키고 있는 원귀(怨鬼)를 찾아 퇴치하고
아르나이즈 카일이 남긴 유산을 쟁취하세요!』
<보상: 카일의 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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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 아닌 스토리 퀘스트.
건국일 행사 내내 요지부동이었던 퀘스트의 내용이 이제야 떠올랐다.
또한 ‘???’ 였던 보상이 ‘카일의 유산’ 이라는 항목으로 변경되었다.
아무래도 조디악의 선택을 받는 것이 퀘스트 발동의 조건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전당에 결계를 친 게 아르나이즈였구나.’
그러니 아무도 결계를 파훼할 수가 없었지.
딱 봐도 엘로디가 만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계를 뚫을 수 있는 방법은 샤를롯의 검, 조디악 소드의 선택이었던 거고.
오랜 세월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모바일 영주에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헌데 콘라드가 말한 이야기.
왜 저런 이야기가 나오게되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리고 카일이 남긴 유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 아무래도 마혼제법이 여기에 있는 것 같은데.’
상당히 높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카일의 오러 연공법이자.
마기를 정제할 수 있는 근원적인 방법, 마혼제법(魔魂制法).
그걸 얻기 위해서라도 이제 와 환불할 수는 없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들려온 콘라드의 목소리.
콘라드는 성녀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속삭였다.
“대제께서 남기신 유산을 찾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콘라드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안은 밀려오는 상념을 털어내었다.
어쨌거나 카일이 남긴 유산을 얻기 위해서는 전당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도.
“아까부터 가만히 서서 뭐해?”
저 빌어먹을 성녀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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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의 입구에 들어서자 기이한 마력이 시안의 몸을 감쌌다.
섬찟한 느낌이 꼭 접근을 막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콘라드가 말한 전당을 둘러싼 결계인 것 같았다.
정확히는 아르나이즈, 엘로디가 만든 결계였지만.
시안은 천천히 안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그러자 반발력이 더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쑤욱, 하고 전당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꽤나 신기한 경험.
조금 놀란 심정을 달래고 있자니.
“······ 선택을 받긴 했나 보네.”
먼저 들어온 아리아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와 동시에 들끓는 마기(魔氣).
시안은 억지로 속을 달래며 입을 열었다.
“넌 목소리에도 신성력을 담냐? 아주 신성력이 남아도나봐?”
“누구와는 다르게 여러모로 뛰어난 몸이라서 말이지.”
그러면서 아리아는 고고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제라도 자신의 고결함을 알았냐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내 목소리 들으니까 황홀해?”
그런데 얘가 미쳤나?
황홀은 개뿔.
“염병하고 있네.”
“뭐, 뭐? 여, 염병?”
아리아가 순간 당황을 해보였다.
어째, 태어나 처음 들어본 말이었던 걸까.
당황을 넘어 충격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 진짜─!”
“됐고.”
시안은 버럭, 소리치는 아리아의 말을 끊어버렸다.
“우리 아는 척 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 그러니까 괜히 따라붙지 말고, 각자 행동하자. 오케이?”
그러면서 시안은 아리아를 휙, 지나쳤다.
뒤에서 부들부들, 거리는 아리아의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아리아의 신성력이 사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같이 날뛰는 시안의 마기(魔氣).
“우웁···!”
시안은 들끓는 속을 억지로 달래며 전당 안 쪽으로 들어갔다.
전당 안 쪽은 어두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주변에 박혀있는 마나석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어둡다 라는 느낌이 있었다.
적막하리만치 고요한 내부.
그것은 넓은 공동와 어울어져 꽤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안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아리아가 따라오고 있는지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얼마쯤 더 들어갔을까.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커다란 석상들이 보였다.
도합 6개의 석상.
그 중 가장 앞선 석상은 한 미남자가 검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들고 있는 검.
그건 조디악 소드(Zodiac Sword)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그가 아르나이즈의 리더, 샤를롯 대제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 샤를롯을 중심으로 다른 아르나이즈의 석상 또한 있었다.
성녀(聖女) 뮤리엘.
대마도사 엘로디.
신장(神匠) 모르크루.
상천술사 노에미.
그리고 카일까지.
역시나 카일도 있었다.
바로 그때.
다다다.
아리아가 빠른 걸음으로 시안의 앞을 지나쳐보였다.
뭐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니.
아리아가 샤를롯의 석상 앞으로 서보였다.
‘샤를롯? 뮤리엘이 아니라?’
그런 의문이 들던 찰나.
아리아가 무언가를 찾듯 샤를롯의 석상 근처를 뒤적거렸다.
‘쟤는 뭐하는 거야?’
진짜 뭐하는 건가 싶었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샤를롯은 관심도 없었거니와.
뭐하는지 굳이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시안은 천천히 카일의 석상으로 다가갔다.
카일이 남긴 유산.
퀘스트는 전당의 망령을 찾으라 했지만 사실 딱히 방법이 없었다.
다짜고짜 귀신을 불러낼 수도 없었고,
애초에 불러내는 방법도 몰랐다.
그리고 설령 불러낸다 하더라도 곧이 곧대로 나올지도 알 수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전당에 들어온 그 누구도 망령을 본 적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하여 시안은 망령은 잠시 제쳐두고 카일의 석상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유산을 남겼다면 당연히 자신과 관련한 무언가에 남겼을테니까.
시안은 석상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 응?”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는 카일의 석상.
“누구지?”
저건 카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시안은 카일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을 처음 현질했을 당시.
비록 가상의 존재였지만 카일은 시안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차가운 인상을 지닌 은발의 미남자.
그런데 지금 보이는 석상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물론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륙에서 카일의 얼굴을 아는 자는 없었다.
카일은 다른 아르나이즈들과는 다르게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으니까.
카일의 모습 또한 상상에 기반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대륙에 퍼져있는 카일의 모습들은 죄다 제각각이었다.
따라서 이 석상 또한 그런 의미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다름 아닌 아르나이즈 전당.
천 년 전, 샤를롯이 직접 만든 유적이었다.
그 말은 즉.
샤를롯이 이 석상을 제작했다는 뜻인데.
설마하니 샤를롯이 카일의 얼굴을 몰랐을까.
‘그런데 대체 왜···?’
시안은 차분히 전당의 주변을 살펴보았다.
전당에는 석상 말고도 아르나이즈의 모습들이 있었다.
벽에 그려진 벽화.
아마 아르나이즈들의 업적을 기리며 그린 벽화인 것 같았다.
그런 그림들이 벽마다 빼곡히 그려져있었고.
그것은 전당 전체를 뒤덮다시피 했다.
시안은 하나하나 그림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것들에서 카일이라 추정되는 이의 모습.
‘다 달라?’
그 모습들이 전부 제각각이었다.
바로 그때.
“······ 어?”
시안의 한 켠으로 이질적인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전당의 한쪽 구석에 새겨진 벽화.
그곳엔 악마와 대적하는 아르나이즈들의 모습이 그려져있었다.
그러나 딱 하나.
정확히는 딱 한 장면.
시안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그건 어떤 한 남자가 악마들 앞에서 고고히 서있는 장면이었다.
그의 앞에는 셀 수도 없는 악마들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남자는 오연히 검을 늘어뜨린 채 서있었다.
그리고 옆모습으로 그려진 남자의 얼굴.
“카일?”
그건 다름 아닌 시안이 모바일 영주에서 본 카일의 모습이었다.
그 순간.
흠칫!
목덜미를 훑는 싸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너··· 너 뭐야···.
어디선가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