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51화 (51/322)

§ 51화 - 산의 종족, 드워프(1)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바라봐도 분명한 드워프였다.

시안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장인의 종족이자 산의 종족, 드워프.

그런 드워프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어둠의 숲.

루벤에서 볼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아, 참.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크마루라고 한다네.”

크마루는 시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시안은 얼떨결에 크마루의 손을 맞잡았다.

확실히 장인 종족이라 그런지 마주잡은 손 끝이 굉장히 투박했다.

시안은 크마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루벤의 영주 시안 엘란두르라고 합니다.”

“시안 엘란두르.”

크마루는 시안의 이름을 한 번 되뇌었다.

아무래도 시안의 이름을 외우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루벤을 찾아오신 겁니까?”

“그게 다름이 아니고··· 아차차!”

갑자기 크마루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미안한 듯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다짜고짜 하대를 해버렸어. 미안허이 미안허. 내가 드워프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말이지. 자네가 좀 이해해주게! 크하하핫!

크마루는 호탕하게 웃어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에··· 그러니까. 시안, 당신이 이곳 이 루벤이라는 영지의 영주라는 말이시오?”

“그렇습니다만.”

“그럼 루카스와 그레이슨이라는 인간을 아시오?”

“둘 다 제 영지민입니다.”

“다행히 잘 찾아왔군.”

크마루가 흡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보아하니 우연찮게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라.

딱 루벤을 찍고 찾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루카스와 그레이슨을 알고 있는 모습까지.

“루벤에 볼 일이 있으셔서 찾아오신 겁니까? 그리고 크마루님은 어떻게 그 둘을 알고 계신 겁니까?”

“크하하핫! 역시 인간 친구 아니랄까봐 성격이 급하구만. 하나씩 물어보시오 하나씩. 난 복잡한 것 영 질색이거든.”

그러면서 크마루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어보였다.

고작 두 개의 질문밖에 하지 않았건만.

하여간 드워프는 드워프였다.

시안은 다시 입을 열었다.

“크마루님은 어떻게 루카스와 그레이슨을 알고 계신거죠?”

“숲에서 우연찮게 만났다오. 다 죽어가던 둘을 발견했지.”

“······ 예?”

시안은 순간 멈칫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 죽어가던 둘’을 발견했다.

그 말은 즉.

그 둘이 죽었다는 뜻?

일순간 아멜리아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갔다.

시안은 크마루를 바라봤다.

그런 시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크마루가 짧은 팔을 휘휘, 저어보이며 말했다.

“아아. 그리 걱정하지는 말게. 다행히 우리가 잘 치료해서 지금은 괜찮으니까. 꽤나 위중한 상태였는데 인간 친구 치고는 굉장히 터프하더군! 마음에 쏙 들었지 뭐야! 크하하하!”

“하아···.”

옆에서 아멜리아가 내뱉는 안도의 한숨이 들려왔다.

시안 또한 그때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럼 루벤을 찾아오신 이유가?”

“바로 그 두 인간 친구들 때문이지!”

“······”

이럴 거면 대체 왜 나눠서 물으라고 했던 건데?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다시 원래 말투로 돌아오지 않았나?

‘드워프는 진짜 드워프구나.’

시안은 드워프라는 종족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뭐.

시안은 크마루의 말투에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비록 시안이 귀족이라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기준.

드워프에게 시안은 그냥 인간일 뿐이었다.

인간의 문화를 드워프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

“뭐, 그런 이유도 있긴 한데···.”

이윽고 크마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그 두 인간 친구에게 듣자하니, 인간 친구들도 요즘 들끓는 마수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고.”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크마루가 곧장 말을 이었다.

“사실 그 문제 때문에 자네를 찾아왔네. 우리 부족도 상당히 위험한 처지거든.

“크마루님도··· 아니, 크마루님의 부족도 말씀입니까?”

“그렇네. 그것 때문에 어찌나 골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크마루의 모습에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크마루가 골머리를 아플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벤이야 어둠의 숲 영역에 위치한 영지.

숲 안 쪽에 자리잡은 강대한 마수로 인해 영역 싸움에서 밀린 마수들이 루벤을 습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마수가 들이닥쳤고.

시안이 건국일 행사에 가있는 사이 루벤이 무너질 뻔하지 않았는가.

지금이야 다행히 방어 시설을 완비했고.

레아도 있는 터라 한시름 놓았지만 어쨌든.

루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크마루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곳 마수들은 어둠의 숲 밖으로 나갈 수 없었으니까.

그런 시안의 의문을 눈치챈 것일까.

크마루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망치모루 부족은 어둠의 숲에서 살아간다네.”

“예?”

그리고 시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둠의 숲에서 살아간다는 크마루의 말.

그러니까 크마루의 부족이 어둠의 숲에 있다는 뜻?

“해서 말인데. 우리를 좀 도와줄 수 있겠나?”

심지어 그런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하는 크마루.

시안의 정신이 멍해졌다.

바로 그 순간.

띠링!

『[영지 퀘스트] - ‘고통을 함께 나눈 친구야 말로 진짜 친구!’

▶마수가 들끓는 어둠의 숲!

이곳에서 당신은 하루라도 방심할 수 없는 치열한 삶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나!

그런 당신과 같은 고충을 겪는 친구가 있었어요!

비록 같은 인간 친구는 아니지만요!

사실 이곳은 오래 전.

드워프와 엘프가 살아가던 오랜 고향이었죠.

모종의 이유로 어둠의 숲으로 변질된 이후.

대부분의 드워프와 엘프들은 떠났지만.

그 고향을 떠나지 못한 드워프들도 있었죠.

뭐, 아무튼!

가장 친한 친구는 같은 고통을 나눈 친구라 하였던가요!

당신과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그들을 도와 친구가 되어보세요!』

<보상 - 망치모루 부족과의 동맹>

.

.

잠잠했던 영지 퀘스트가 새로이 떠올랐다.

#

흔히 드워프라 함은 ‘제작’의 분야에 특화된 종족이었다.

정확히는 손재주가 필요한 모든 분야에 특화된 종족이었다.

그런 의미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드워프 무기.

드워프가 만든 무기라하면 기본적으로 품질이 뛰어났고.

그 때문에 기본으로 3배, 4배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또한 이들의 특징이라 함은 ‘장인’의 종족이라는 명칭답게, 인간들과 그리 많은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드워프들은 저마다의 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검은 모루단.

붉은 망치단 등등.

산맥을 중심으로 저들만의 부족을 이루고 그곳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심지어 서로의 부족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인간들로 치면 국가가 다른 격.

해서 같은 드워프라도 부족이 다르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렇기에 크마루는 같은 드워프가 아닌 시안에게 도움을 청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드워프는 결국 드워프였다.

어쨌거나 같은 종족이었고.

서로 등에 칼이나 꽂는 인간들보다는 더 믿을 수 있고, 말이 잘 통하는 종족이었다.

그런데···.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구만. 인간 친구.”

크마루가 중얼거렸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어둠의 숲.

크마루는 앞선 풀숲을 베어내며 말했다.

“예전에는 그러했었지. 숲에는 숲의 종족이. 산에는 산의 종족이 살던 시절이 있었어. 그 당시만 해도 우리 드워프는 드워프로 살았지.”

시안은 현재 크마루를 따라 크마루의 부족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와달라는 크마루의 부탁도 있었거니와.

루카스와 그레이슨의 안위도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겸사겸사 시안은 크마루를 따라 크마루의 부족, 망치모루의 영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오랜 세월이 지나 드워프는 인간이 되었네.”

크마루는 성큼, 걸음을 내딛으며 말했다.

그리고 ‘드워프는 인간이 되었다.’라는 크마루의 말.

그 말에 시안은 크마루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드워프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찾기 힘들었으니까.

산 속에 틀어박혀 무구만 만들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많은 드워프들이 인간들이 사는 도시로 내려와 그네들의 무구들을 팔기도 했으니까.

시안도 가문에 있을 적.

그런 드워프들을 많이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수 백년.

인간과 어울리며 ‘인간화’ 된 드워프들.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장인’의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자신들이 만든 무구를 흥정하고.

때로는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값싼 재료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 우리 드워프는 생김새만 다른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야.”

그렇게 드워프는 그들만의 색을 잃어버렸다.

“그런 의미로 우리 족장님은 마지막 남은 드워프라 할 수 있지.”

크마루는 짙은 눈썹을 한 번 꿈틀거렸다.

“제가 볼 땐 크마루님도 충분히 드워프 같습니다만.”

“나? 크하핫! 무슨 소리! 나도 인간이야 인간.”

크마루는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시안이 볼 땐 크마루도 충분히 드워프라 할 수 있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다 왔네. 저기 보이는 곳이 우리 망치 모루 부족의 영역이야.”

크마루의 말에 시안은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

그럴 듯한 성의 풍경이 보였다.

지형을 절묘하게 이용한 천연의 요새.

확실히 드워프가 만든 것이라 그런가.

척 보기에도 튼튼한 방비 시설들이 즐비해있었다.

“어둠의 숲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군요.”

“그래. 그래서 우리도 숲 외곽에 인간들의 영지가 있는 줄 몰랐어.”

시안과 크마루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성 안으로 들어온 시안.

성 안 쪽은 상당히 발전된 모습이면서도 또 정갈했다.

루벤 또한 꽤나 발전된 풍경을 하고 있었으나,

솔직히 되는 대로 지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필요한 시설을 마구잡이로 지은 식.

그 때문에 겉만 그럴듯해보일 뿐 루벤의 내부는 조금 난잡했다.

그러나 이곳 망치모루 부족의 마을은 달랐다.

상업 구역, 주거 구역, 공방 구역 등등.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지은 것인지 구역마다 딱딱, 알맞게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단번에 파악이 가능했다.

심지어 어느 하나 튀지 않고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확실히 장인의 종족은 장인의 종족답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시안은 두리번두리번, 마을의 풍경을 살폈다.

그 순간 거리를 걷던 드워프 하나가 시안과 크마루를 발견했다.

그리고는 크마루를 향해 소리쳤다.

“앙? 크마루! 그 옆에 허여멀건한 놈은 또 누구여?”

“척 보면 몰라? 인간 친구잖아!”

“그러니까 인간 친구를 왜 또 데리고 와? 족장님이 극구 반대했잖아?”

“알 거 없어!”

“그래?”

그러면서 딱히 더 물어오지 않는 드워프였다.

이윽고 제 갈 길 가버리는 드워프.

그야말로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모습.

아무리 생각해도 드워프는 역시 드워프였다.

크마루는 떠나는 드워프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족장님은!”

“족장님이야 뻔하지 않나! 공방에 있겠지!”

크마루는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시안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그렇게 시안은 크마루를 따라 마을을 가로질렀다.

확실히 드워프들의 마을이라 그런 것일까.

건축물들 또한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모바일 영주로 현질한 시설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크마루는 꽤나 오랜 시간을 걸었다.

짧은 팔 다리인 영향도 있었거니와.

족장이라는 자의 집이 가장 높은 지형에 있는 영향도 있었다.

이윽고 한 집 앞에서 크마루가 걸음을 멈추었다.

이어 문 앞에 서 ‘흐읍···!’ 숨을 한 번 들이키더니 곧 쩌렁쩌렁, 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족장!!! 나 왔어! 크마루!!!!”

그야말로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외침.

그러자 문 안 쪽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려왔다.

노크라는 간편한 방법을 두고 왜 저러는 걸까.

시안은 고막이 찢어지진 않았나 잠시 확인했다.

그 순간.

벌컥.

이윽고 문이 벌컥, 열리며 한 드워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염이 희끗희끗한 노 드워프.

그러나 전반적으로 굳센 분위기는 늙고 병든 노인이 아닌, 노련한 노장의 면모가 물씬 풍겼다.

노 드워프가 시안과 크마루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크마루? 이 인간은 뭐지?”

“지난 번에 구해준 두 인간 친구들 있지. 그 인간들의 족장이야.”

노 드워프의 시선이 잠시 시안에게 향했다.

“······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난 것으로 아는데.”

“어렵게 데려온 친구야. 일단 이야기라도 할 수는 있잖어.”

크마루의 말에 노 드워프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시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워프가 드워프답게 살았던 시절.

그 당시 드워프들은 그들만의 색이 뚜렷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드워프는 인간이 되었고.

크마루가 말했던 마지막 남은 드워프.

“나는 긍지 높은 망치모루 부족의 족장이자, 위대한 모르크루의 7번째 자손, 세미르다.”

세미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옆에서 크마루가 킬킬, 거리며 웃어보였다.

하지만 시안은 그런 크마루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미르가 소개한 내용.

그곳에서 꽤나 익숙한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모르크루의 7번째 자손···?”

모르크루.

시안은 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천 년전.

세상을 구원한 6인의 아르나이즈 중 한 명.

“신장 모르크루. 천 년전에 아르나이즈로 활동하신 그 분이 나의 선조시다.”

신장(神匠) 모르크루.

세미르는 그의 후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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