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산의 종족, 드워프(3)
내려앉는 정적.
그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정확히는 쩌억, 벌어진 입이 닫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 자네···. 어떻게 그런.”
가장 먼저 소리를 낸 것은 다름 아닌 크마루였다.
하지만 목소리만 내었다 뿐.
크마루의 표정은 여전히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트롤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던 시안의 검.
심지어 어찌된 일인지 트롤의 재생력 또한 맥을 못추었다.
눈으로 보고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광경.
“크마루. 저, 저자가 자네가 데려왔다던 인간 친구인가?”
“그, 그렇다네.”
나카르의 물음에 크마루가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드워프들.
드워프들의 시선이 다시금 시안에게로 향했다.
반면.
시안은 스마트 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마혼수라검과 마혼제법의 진행률 때문이었다.
‘진짜 엄청 안 오르네.’
마혼제법을 통해 시안은 마기(魔氣)를 온전히 다룰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광폭화(Over Drive)가 진행된 트롤의 재생력을 억제할 수 있었다.
또한 그 힘을 형체화 하여 검에 실을 수 있었고.
S등급의 검이 갖는 힘과 더불어 마혼제법의 오러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힘을 내었다.
그 때문에 시안은 트롤을 그나마 쉽게 상대할 수 있었다.
재생력이 박탈된 트롤은 오크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니까.
그리고 마혼제법을 다루면서 드디어 비기너(Beginner)의 경지에 진입한 시안.
처참한 재능으로 포기해야만 했던.
어엿한 기사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었지만 시안은 딱히 감개가 무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초급 진행률 0.08% (+0.08%)]
아직도 가야할 길이 까마득했으니까.
‘그래도 0.08%는 너무하지 않나.’
나름 완벽하게 시연했다고 생각했는데.
0.1%도 아니고 0.08%라니.
‘0.08%라도 오른 게 다행인건가.’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시안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바로 그때.
“정말 대단한 친구잖아!!!”
갑자기 주변으로 커다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귀청이 떨어지다 못해 찢어질듯한 쩌렁쩌렁한 외침.
뭔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자, 수많은 드워프들이 시안을 향해 환호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크하하핫! 인간 친구! 정말 고맙다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정말이지 큰일 날 뻔 했어!”
“생긴 건 허여멀건한데 이거이거, 누구보다 터프한 친구였잖아!”
“혹시 술 좋아하나? 내가 얼마 전에 특제 맥주를 담궜거든! 언제든 오게나! 한 잔 거나하게 걸치자고!” 크하하하하핫!”
시안은 저도 모르게 귀를 틀어막아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으니까!
그런 시안의 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크하하하하하핫!”
“정말 대단한 인간 친구잖아!!!”
드워프들은 환호성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한 쪽으로 또 다른 드워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척 봐도 범상치 않은 망치를 들고 있는 노 드워프.
다름 아닌 망치모루 부족의 족장이자.
아르나이즈 모르크루의 후손, 세미르였다.
“······?”
세미르는 지금 이게 뭔가 싶었다.
트롤 무리들이 습격했다기에 황급히 달려왔건만.
지금 트롤 무리들은 커녕.
한데 모여 환호성이나 터트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환호성을 받고 있는 존재.
“인간···?”
아까 자신이 내쫓았던 인간이었다.
“이게 지금 무슨···?”
세미르는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
세미르가 오고 난 직후 상황은 금방 마무리 되었다.
정확히는 금방은 아니었다.
무너진 방벽을 보수하고.
널브러진 트롤 사체를 처리하고.
또 다친 인원들을 보살펴야하는 뒷처리 과정이 남아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 굳이 시안이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의 입장에서는 금방이나 다름 없는 상황.
시안은 다시 루카스와 그레이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 당연히.
“트롤 사체는 제가 가져도 되겠죠?”
트롤 사체의 소유권을 챙기는 것은 잊지 않았다.
저게 다 얼만데 그냥 둔단 말인가.
택도 없는 소리였다.
그렇게 도착한 갈색 지붕의 집.
듣자하니 크마루의 집이라고 들었다.
시안은 살며시 문을 열었다.
달칵.
문을 열자 안 쪽으로 포근한 집의 풍경이 보였다.
모바일 영주에서 현질한 살기 좋은 벽돌집.
그것에 비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마을의 풍경도 그렇고 지금 집의 모습까지.
확실히 드워프가 타고난 건축가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니었다.
다만 드워프의 신장에 맞춘 터라 시안은 허리를 조금 숙여야 했다.
그렇게 조금 더 안 쪽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있는 루카스와 그레이슨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주님.”
“오셨습니까.”
시안을 발견한 루카스와 그레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보였다.
“아 괜찮아. 그냥 누워있어.”
시안은 손을 내저으며 그런 둘을 말렸다.
여전히 부상이 심각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시안의 손짓에 루카스와 그레이슨이 어물쩍하게 다시 자리에 누웠다.
시안은 그 둘 사이에 자리하며 물었다.
“몸은 괜찮은거야?”
“큰 이상은 없습니다.”
“드워프들이 잘 치료해준 덕분에···.”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보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러자 루카스와 그레이슨이 번갈아가며 답했다.
“영주님이 루벤에서 떠나신 동안, 갑자기 마수들이 폭발적으로 루벤으로 습격해왔습니다.”
“아무리 안 쪽에 자리잡은 강대한 마수 때문에 영역이 밀리고 있다지만 그 정도가 과했습니다. 해서 다른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해 저와 루카스 경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어.”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건국일 행사에서 돌아오자마자 한스에게 들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루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숲 안 쪽을 조사하던 도중··· 마수에게 당했습니다.”
“마수에게 당해?”
시안의 물음에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루카스의 답에 시안은 의아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카스는 무려 엑스퍼트의 기사였다.
제국에서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실력자.
그리고 그레이슨은 어둠의 숲에서 수 십년을 살아온 베테랑 사냥꾼이었다.
아무리 어둠의 숲이라지만 저 둘은 제 한 몸 건사할 충분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둘이 마수에 당했다?
물론 그럴 수는 있었다.
이 어둠의 숲에는 끔찍한 마수들이 득실거렸으니까.
하지만 그건 마수와 싸웠을 때의 이야기였다.
이 둘은 마수를 토벌하러 간 것이 아니라 단순한 조사만 하러 간 것.
그 말은 즉.
이 둘은 몸을 내뺄 수 없을 정도의 마수와 마주쳤다는 뜻이었다.
그런 시안의 의문을 이해한 것일까.
루카스가 곧바로 말을 이어왔다.
“숲 안 쪽에 자리한 강대한 마수. 그 놈과 마주쳤습니다.”
“루카스 경이 아니었으면 아마 저는 거기서···.”
그리고 이어진 그레이슨의 말.
하지만 루카스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놈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루카스, 네가 한 게 아니라니. 그럼 너희 둘이 어떻게 여기에···.”
“살려준 겁니다.”
놀라는 그레이슨의 표정.
그레이슨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어 루카스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놈은 분명 우리를 살려줬습니다. 그리고···.”
시안을 바라보는 시선.
“그건 마수가 아니었습니다.”
“뭐라고?”
시안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마수가 아니라니.
그럼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
이윽고 루카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분명 인간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시안은 지금 루카스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숲 안 쪽에 자리한 강대한 마수가 사실은 인간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란 말인가.
“루카스, 네가 잘못 본 거 아니야? 아니면 강대한 마수가 아니었다던가.”
“저희가 쫓던 강대한 마수는 맞을 겁니다. 흔적이 확실했거든요.”
그레이슨의 답이었다.
그레이슨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마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마수들이 도망치듯 쫓겨나 루벤으로 몰려왔던 것이었고요.”
이윽고 루카스가 시선을 살짝 내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저도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녀? 마수가 여자였어?”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논외의 존재였습니다. 제가 감히, 감히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녀가 루벤으로 향한다면···.”
루카스는 그때의 일이 생각이라도 난듯 몸을 살짝, 떨어보였다.
어딘가 짙은 두려움이 느껴지는 루카스의 모습.
“필시 대비를 해야합니다 영주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런 루카스의 모습에 시안도 덩달아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숲 안 쪽에 자리한 강대한 마수가 실은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그런 존재가 본격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까지.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종류였다.
하지만 루카스와 그레이슨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필시 간단한 문제는 아닐 터.
바로 그때.
쾅쾅!
“인간 친구! 안에 있나! 잠시 할 이야기가 있네!”
바깥으로 크마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집이면서 왜 문을 두들기나 싶었지만.
“일단 알겠어.”
시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망치모루 부족의 족장, 세미르의 집.
“마수들이 들이 닥치는 주기가 더 짧아졌어.”
“그 동안은 잘 막아왔다지만···.”
“솔직히 이제는 한계요.”
그곳엔 망치모루 부족의 드워프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망치모루 부족의 족장, 세미르.
세미르는 가만히 그 광경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벽은?”
“거의 수리가 끝났다오. 하지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군.”
답을 한 드워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벽을 수리한다 한들.
다음 마수의 습격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드워프들도 모르지 않았다.
“족장. 이러지 말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떻소.”
“아까 보니까 크마루가 데려온 인간 친구. 정말 엄청나더구만.”
“심지어 맨땅이었던 곳을 어엿한 영지 수준까지 발전시켰다고 하던데.”
“그게 참 말이오? 이 끔찍한 어둠의 숲에서?”
드워프들은 모두 시안에 관해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워프는 드워프만의 방식이 있다. 인간들은··· 믿을 것이 못 돼.”
세미르의 의지는 확고했다.
평소라면 그런 세미르의 의견에 따랐을 드워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족장. 뒤통수를 맞든. 배신을 당하든. 일단 당장 살아야하지 않겠소.”
“이러다가는 다 죽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오.”
드워프들은 그런 세미르를 설득했다.
그리고 그런 설득에 세미르는 답을 망설였다.
알고 있었으니까.
이대로 가다간 부족이 멸족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인간을 믿을 수는 없었다.
인간은 신의가 없는 종족.
섣불리 인간을 믿는 것은 트롤을 피하려다 그야말로 오우거를 불러오는 격이 될 수도 있었다.
바로 그때.
“설마 아직도 잊지 못한 거요?”
한 드워프가 세미르를 향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나카르라는 드워프가 서있었다.
세미르는 답을 하지 않았고.
나카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미 100년이란 시간이 흘렀소. 한 시대를 풍미하던 인간들이 모두 죽었을 시간이지. 인간들도 변한다오 족장. 족장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떠나보내야하지 않겠소.”
“그것 때문이 아니다.”
“그게 참말이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한 게 아니라고? 그 때문에 인간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
세미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카르는 그런 세미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려앉는 정적.
나카르가 툭, 말을 내뱉었다.
“족장 기억하시오? 110년 전. 우리가 각자 부족들에게 버려져 이곳 어둠의 숲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때를 말이오.”
“······”
“그때 족장은 우리를 거두어 주었지. 수많은 마수들로부터 목숨을 걸어가며 우리를 지켜주었고, 밤잠을 아껴가며 우리를 보살펴주기도 했고. 그냥 버렸으면 혼자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대체 우리가 뭐라고.”
나카르가 고개를 한 번 흔들어 보였다.
“족장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때 다짐했다오. 무슨 일이 있어도 족장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그래서 이 어둠의 숲에 남아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거라오.”
이윽고 모든 드워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카르는 다시 입을 열었다.
“족장이 인간을 믿지 않겠다면. 우리도 인간을 믿지 않을거요. 설령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족장과 함께할 거요. 우린 그때 그렇게 다짐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만은 한 번 생각해주시오.”
드워프의 아이들.
부족에게 버려져 세미르에게 거두어진 이곳 드워프들과는 달리.
그들은 태어날 적부터 이 어둠의 숲에서 살아왔다.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인 이곳.
아이들은 어둠의 숲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오직 생존만이 삶의 유일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삶을 영위하는 존재가 마땅히 누려야하는 행복을 아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족장으로서 세미르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책임 중 하나였다.
“······”
그렇기에 세미르는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득히 먼 세월.
숲에는 숲의 종족이 살았고.
산에는 산의 종족이 살았다.
그러나 다시 오랜 세월.
드워프는 드워프의 방식을 잃어버렸고,
끝내 드워프는 인간이 되었다.
세미르는 그렇게 변하는 드워프가 싫었다.
그래서 이곳 어둠의 숲으로 들어왔다.
위대한 선조, 모르크루의 고향인 이곳으로.
그러다 버려진 이들, 지금의 부족원들을 거두었고.
다시 오랜 세월.
이렇게 자신을 따르는 드워프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어쩌면 드워프는 드워프들의 색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드워프는 인간이 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드워프는.
“족장이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아이들에게 미래를 남겨줘야하지 않겠소.”
한 종족이 가져야하는 마땅한 숙명을 따른 것일지도.
흘러가는 세월.
변화하는 대륙의 정세에 맞게 드워프도 변화했던 것뿐.
그들은 생존 방식을 찾아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드워프들만의 방식으로.
그렇기에 어쩌면 드워프답게 살지 못한 것은.
그 오랜 세월 정체되어 있었던 것은.
“이제는 고집을 놓아줄 때가 된 거요 족장.”
바로 세미르,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00년 전.
그 날에 멈춰버린 세미르의 시간.
세미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크마루. 인간의 영지에 가보았다고.”
“그래.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었지. 어둠의 숲에 있는 영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미르는 여전히 인간을 믿지 않는다.
앞으로도 믿지 않을 것이다.
드워프는 여전히 드워프만의 방식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드워프는.
아니, 변화하지 않고 멈춰버린 드워프는.
“······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우리 부족이 충성을 줄 수 있는 인간인지.”
한 명이면 충분하다.
#
루벤 인근의 어둠의 숲.
시안은 루카스와 그레이슨.
그리고 여럿 드워프들과 함께 루벤으로 향하고 있었다.
루벤을 직접 보고 싶다는 세미르의 말.
크마루가 넌지시 말해주길.
망치모루 부족이 루벤으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 전에 루벤이 어떤 영지인지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양.
그러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시안에게 의사를 물어왔다.
자신들이 루벤에 편입되고 싶다 한들.
루벤의 영주인 시안이 거절하면 말짱 도로묵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안은 흔쾌히 허락했다.
솔직히 바라마지 않던 제안이었으니까.
영지 퀘스트는 ‘동맹’ 이라는 항목을 보상으로 제시했지만 동맹보다는 역시 영지민으로 받는 것이 훨씬 좋았다.
가뜩이나 인력도 부족했던 찰나였고.
그 영지민들이 드워프라면 정말 환영하는 바였다.
솔직히 같은 인간으로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인간보다 드워프가 훨씬 믿음직스러웠으니까.
그리고 드워프들을 영지민으로 들이면 얻는 효과도 많았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루벤.
하지만 무분별한 현질에 솔직히 계획이라고는 없다시피했다.
그냥 필요하면 현질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현질을 하다보면, 더 많은 시설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터.
그럼 이제 슬슬 영지의 구역을 나누고.
또 그 구역을 이어주는 도로 또한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교통망을 잇는 것은 상당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일.
해서 시안은 솔직히 이걸 어떻게해야 고민하고 있었던 찰나였다.
그러나 드워프들의 도움을 받으면 그야말로 손쉽게 해결할 문제였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드워프제 무기가 있었다.
병사들의 수준은 한 단계, 아니 두 세단계는 뛸 것이 분명했다.
특히나 모르크루의 후손인 세미르.
그가 만드는 장비들은 가히 보물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으리라.
시안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그렇게 시안은 금방 루벤의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어··· 어찌 이런 수준의 영지가.”
“정녕 이것이 인간들이 만든 것이 맞는건가?”
루벤의 풍경에 드워프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단한 방벽과 해자는 물론이고.
그 안에서 마음 편히 뛰노는 아이들과 일상을 영위하는 영지민들의 모습까지
“조금 어수선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따스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이 어둠의 숲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따스함이.
드워프들은 루벤의 풍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일순간 드워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세미르에게 향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받은 세미르.
“이게··· 정녕 어둠의 숲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란 말인가?”
세미르 역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루벤의 안 쪽으로 드워프들을 안내했다.
그렇게 더 안 쪽으로 들어온 시안과 드워프들.
바로 그때.
“응?”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쪽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에워싸듯 둘러있는 모양새였다.
시안은 뭔가 싶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보이는 한스의 모습에 시안은 입을 열었다.
“왜 다들 나와있어?”
“아, 도련님. 돌아오셨군요.”
시안의 물음에 한스가 살짝 놀라보였다.
이윽고 시안 뒤 쪽으로 있는 루카스와 그레이슨을 발견하고는 눈을 치켜떠보였다.
“둘다··· 무사했군. 정말 다행이네. 다행이야.”
한스는 크게 안도했고.
루카스와 그레이슨은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윽고 한스는 그 옆으로 드워프를 발견하고는 다시 시안에게 물어왔다.
“진짜··· 드워프들이었군요.”
“루벤을 구경하고 싶다해서 데려왔어. 그보다 왜 이렇게 나와있는거야?”
한스는 그때서야 시안의 물음에 답을 해왔다.
“병사들이 숲 안 쪽에서 사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람을?”
“저기.”
한스는 손가락을 들어 어느 한 쪽을 가리켰다.
“루벤 주변을 순찰하다 발견했다고 합니다. 수상하기는 했지만 워낙에 상태가 위급한 터라 일단 영지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시안의 시선이 한스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으로 따라갔다.
그곳엔 병사들이 한 여인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여인의 모습.
확실히 피투성이가 된 것이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다.
“무슨 사연인지는 치료를 마친 다음에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침 저기 엘리도 오는군요.”
한스는 저 멀리 뛰어오는 엘리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여인의 상태를 보고 허겁지겁 뛰어오는 엘리였다.
그리고.
타닥!
시안은 그런 엘리를 향해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뛰어가는 엘리를 확, 잡아챘다.
“꺄악!”
갑작스러운 시안의 손길에 엘리가 순간 비명을 질러보였다.
“여, 영주님···?”
엘리가 당황하며 시안을 바라봤다.
그러나 시안은 엘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그 여인한테서 떨어져!!”
갑작스러운 시안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도련님···?”
“갑자기 왜 그러시는···?”
한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크게 당황해보였다.
하지만 시안은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S등급의 검을 꺼내들어, 피투성이인 여인에게 겨누었다.
“누구야.”
여인은 답이 없었다.
답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여인은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었으니까.
“영주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지금 저 여인은···.”
사람들은 시안의 행동에 크게 당황해보였다.
하지만 시안은 겨눈 검을 내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한스와 루카스는 물론이고.
루벤 어딘가에 있는 레아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시안은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아니야.”
피투성이가 된 채 정신을 잃은 여인.
저 여인 안에 가득 들어찬 끔찍한 마기를.
저건 마기라 할 수 없었다.
마기의 본질을 완전히 잃어버린 광기.
아니, 저걸 광기라고도 할 수 있을까.
광기가 최종적으로 발아한 결정체.
악(惡), 그 자체였다.
본능이 강력하게 경고한다.
시안의 몸에 내재된 마기가 부르짖는다.
다가가면 죽는다!
시안은 검을 치켜든채 여인을 노려봤다.
그 순간.
히죽.
여인의 입가가 기괴하게 벌어진다.
번뜩이는 두 눈.
그와 동시에.
【어떻게 알았을까?】
끔찍한 악의(惡意)가
피어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