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현질, 현질!(3)
지금 눈앞에 보이는 루벤의 풍경.
어느 누가 이 광경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기존 루벤의 영지민들은 익숙한 광경이었다.
익숙하다기보다는 이미 2번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루벤이 진화하고 있는 광경.
꽈꽈꽈꽝!!
뚝딱뚝딱!
쿠구구구궁···!
지금 이건 절대로 익숙하다는 개념을 들이밀 풍경이 아니었다!
“······”
“······”
영지민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광경을 처음 접하는 드워프들.
“어, 어억···!”
“커헉···!”
드워프들은 놀라 까무러치기 직전이었다!
특히 드워프들의 족장, 세미르.
그가 받는 충격이 가장 거세었다.
믿을 수가···.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일단 저 스스로 건설되는 풍경 자체가 말이 안되었다.
자재를 나르는 인부나 장비가 없음에도 건물이 알아서 건축되고 있었다.
심지어 대충 건축되는 것도 아니었다!
건축물의 구조의 배치하며, 무게 중심하며···.
건축학의 기본은 철저하게 지키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흠조차 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세미르 본인이 공을 들여야 만들 수 있는 건물들이 이곳! 저곳! 여기저기서 건설되고 있었다!
“이, 이, 이, 이게···.”
세미르는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마법?
저걸 마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단 세미르의 상식으로는 지금 이 광경을 정의를 내릴 수가 없었다.
가히 전율이 이는 광경.
정말 루벤이라는 영지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루벤 스스로가 진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금 세미르의 눈에 보이는 풍경.
가슴이 탁, 트이는 광활한 농지가 펼쳐지는.
“농업 지구···?”
저건 농업 지구였다.
정확히는 얼마 전에 자신이 그려낸 청사진 속, 농업 지구였다.
심지어 저 농업 지구뿐만이 아니었다.
상업, 공업, 목축업, 군사, 주거 등등.
환상의 낙원처럼 구상한 청사진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구상하면서도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거늘···!
“어, 어, 어떻게···!”
세미르는 충격에 쉽사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건물들은 제대로 지어지고 있는데? 왜 안 켜져?”
한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시안이 무언가를 쳐다보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렇게 깐족거리더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시안은 무슨 일인지 살짝 화가 나있는 듯 싶었다.
보아하니 손에 쥔 무언가 때문인 것 같았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모두 멍하니 시안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시선들을 느꼈던 걸까.
“응?”
시안이 푹 숙이던 고개를 홱, 들어보였다.
마주치는 시선.
“뭘 그렇게들 멀뚱히 서있어?”
그리고는 휙, 하고 제 갈 길을 가버렸다.
“······”
“······”
“······”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
꾹. 꾸국.
시안은 루벤의 거리를 활보하며 스마트 폰 화면을 눌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모바일 영주는 실행되지 않았다.
정확히는 ‘Loading···.’ 이라는 글귀에서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더니 끝내.
[잠시 임시 점검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점검 내용: 인과 폭주 안정화]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임시 점검?”
임시 점검을 한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이제는 ‘Loading···.’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아직 현질할 게 더 남아있는데 무슨 임시 점검이야.”
시안은 신경질적으로 모바일 영주를 실행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젠장.”
결국 점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할 것 같았다.
시안은 하는 수 없이 스마트 폰을 품 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시안의 시선에 보인 루벤의 풍경.
촤라라라라락!
쿠구구궁···!
뚝딱뚝딱.
그건 루벤이 뒤집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히 진화라 부를 수 있는 모습.
다행히 점검 전에 구매한 시설들은 알아서 잘 건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내가 얼마를 썼지?”
모바일 영주가 과부하를 일으킬 정도로 현질한 시안.
시안은 그동안 현질한 것들을 차분히 정리했다.
“일단···.”
영지 확장에 100만 골드.
상업, 농업, 목축업, 공업 등등 각 구역의 시설들을 채우는데 90만 골드.
아르나이즈의 축복, <모르크루의 불꽃>을 구매하는 데 50만 골드.
엘로디의 연구소 Lv.1에서 각종 연구를 진행하는데 10만 골드.
구역을 연결하는 ‘슝슝 자갈길 Lv.1’ 건설 비용 10만 골드.
그리고 특전으로 개방된 ‘모르크루의 대장간 Lv.1’ 건설 비용 10만골드.
도합.
“270만 골드···?”
270만 골드.
4인 가족이 7,500년을 먹고 살 수있는 금액을 일순간에 현질한 셈이었다.
“······ 모바일 영주가 기절할 만 했구나.”
시안은 그때서야 임시 점검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 미친.”
시안 또한 기절할 것 같았다.
아니, 270만 골드가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어떻게 한 순간에 사라진단 말인가!
심지어 이번 현질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아직 건물 업그레이드도 남아있었고,
방벽 강화 및 각종 방어 시설들.
심지어 아직 짓지 못한 상업, 공업 시설들은 물론.
생활 및 여가 시설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때문에 문화 지구는 아예 손도 못대고 있었으며,
애초에 구역 확장을 위해선 계속해서 영지 확장을 해야했다.
한 마디로 아직 돈을 한참이나 쏟아 부어야했다.
“하아···.”
시안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뭐, 그래도.
이번 현질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해야할 일이었고.
무엇보다 이번 300만 골드는 거진 꽁돈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암살에 대한 사죄의 의미라는데···.
솔직히 시안은 위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받지 않았다.
한 마디로 굴러들어온 돈.
개고생하가며 벌었던 돈이라면 또 모를까.
아쉽긴했지만 부들부들, 떨릴 정도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리하여 현재 시안에게 남은 금액.
[보유 중인 금화 - 470,000 G]
47만 골드.
“······ 이것도 강화 한 번하면 이것도 끝이네.”
하지만 이 마저도 곧 사라질 돈이었다.
물론 순전한 강화의 비용은 5만 골드였다.
하지만 강화에 필요한 재료는 다름 아닌 같은 등급의 장비.
즉, S등급의 검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같은 S등급의 검이 필요했다.
다행히 S등급의 검은 세미르가 제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제작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S등급의 검에는 엘프목, 아다만티움, 오리하르콘 등.
진귀한 재료란 재료는 죄다 필요했다.
그렇게 S등급의 장비를 하나 제작하는데 필요한 골드는 대략 30만 골드.
그러니까 강화 한 번 하는데 35만 골드가 필요한 격이었다.
한 마디로.
“······ 또 부지런히 벌어야겠네.”
어떻게 되먹은게 300만 골드도 부족한 걸까.
물론 영지를 운영하는데 엄청난 금액은 아니다만 그래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놈의 현질은 무슨···.
“하아, 어디서 또 돈 들어올 구석이 없나···.”
싶은 그때.
“아 맞다. 그러고보니 아리아가 편지를 보냈었지.”
시안은 잠시 잊고 있었던 아리아의 편지가 떠올랐다.
돈을 동봉했을까 싶어 잠시 훑어보긴 했지만, 돈이라고는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잊어버렸다.
솔직히 이제와 썩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괜히 무시하면 씩씩 거리면서 루벤으로 찾아올지도 모르니까.”
시안은 품 속을 뒤적여 아리아의 편지를 확인했다.
긴 장문의 글.
대충 훑어보니 절대로 사적인 마음은 없다는 둥.
네가 생각나서 편지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둥.
물어보지도 않은 것들을 잔뜩 써놓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근황들이 잔뜩.
또 자신의 상황에 대한 설명도 잔뜩.
한 마디로 별 시덥지도 않은 이야기가 잔뜩.
결국 이 기나긴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악마 탐지기를 어떻게 사용하냐고?”
이런 내용이었다.
“얘는 한 문장으로 끝날 걸, 왜 이리 길게 써놨어?”
하여간···.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아무튼.
“음···.”
그거 그냥 악마가 접근하면 울리는 것 아니었나?
레아에게 그렇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혹시 따로 작동 시켜야 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추측일 뿐 확실하지는 않았다.
악마 탐지기는 무려 천 년전의 유물.
그것도 대마도사 엘로디가 만든 마도구였다.
그 사용법에 대해 시안이 알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이 답을 알고 있는 존재가 마침 루벤에 있었다.
그리고 또 때마침.
저 멀리, 레아의 모습이 보였다.
레아는 신기한 얼굴로 고개를 홱홱,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알아서 건축되는 건물들이 꽤나 신기한 모양이었다.
“레아!”
-어? 으, 응? 누가 나 불렀어?
시안의 부름에 레아가 살짝 놀라보였다.
하지만 곧 시안을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날아왔다.
-시안! 여기 봐봐! 건물들이 막 혼자 건설되고 있어! 여기저기 잔뜩!
그러면서 레아가 팔을 크게 벌려 보였다.
가끔 보면 천 년 묵은 귀신이 맞나 싶었다.
시안은 고개를 흔들어보이고는 말했다.
“그보다 레아, 혹시 그때 아리아한테 줬던 거 기억나세요?”
-응? 아리아? 그게 누군데?
레아가 기억이 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레아의 모습에 시안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 왜,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봤던 여자애 있잖아요. 레아가 역겹다고 했었던.”
-역겨워? 아, 걔? 얼굴만 엄청 예쁘던 재수없는 꼬맹이?
레아는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역겨운 여자애라고 하니까 단번에 알아듣는 레아였다.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때 아리아한테 줬던 악마 탐지기. 그거 별 다른 사용법이 있어요?”
-사용법? 아니? 딱히 없는데. 그냥 주변에 악마가 있으면 막, 막 요란하게 울려.
그러면서 레아가 요란함을 표현하듯, 손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보였다.
뭐, 역시나.
별 다른 사용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아리아, 얘는 무슨 사용법을 물어보는거야?
“말 그대로 탐지기군요.”
-맞아. 그런데 그거 문제가 좀 있어. 변형된 마기가 아니라 농도가 짙은 마기를 감지해도 울려버렸거든. 그래서 악마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이 접근해도 울렸어.
-특히 카일만 보면 진짜 요란하게 울려댔지. 여간 시끄러운게 아니었다니까? 엘로디가 그래서 버리라고 한 거였어.
“아··· 그렇군요.”
-아마 지금 나한테 가져다대도 울릴 걸?
이어진 레아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땐 안 울렸는데요?”
-응? 그랬었나? 음··· 그럼 다른 기준이 있는 건가? 우움···.
레아는 몇 번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하지만 딱히 알지 못하는 것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레아가 배시시, 웃어버렸다.
-아무튼. 별 다른 사용법이 있는 건 아니야.
이윽고 이어진 레아의 말.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리아에게 보낼 답장을 작성했다.
#
신성 제국, 루테아.
그리고 그런 루테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
쾅.
아리아가 거세게 문을 닫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그녀를 보좌하는 여사제, 로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는 잘 끝나셨어요?”
“몰라.”
아리아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털썩, 의자에 앉았다.
꽤나 퉁명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로라에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리아의 모습이었다.
대주교급 회의가 있는 날에는 항상 저러곤 했었으니까.
물론 성녀는 대주교 그 이상의 직위였지만, 그래도 아리아는 매번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 로라는 오늘 따라 사뭇 다른 아리아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로라는 새침하게 앉아있는 아리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살짝 헝크러진 아리아의 백금발을 정리해주며 말했다.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앙칼지실까요?”
“라히르 대주교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아리아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쳤다.
“라히르 대주교님이요? 또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셨어요?”
“저번에 레민 마을에서 성기사 파견을 요청한 건 있지? 몬스터들이 갑자기 불어났다면서.”
“네. 그게 왜요?”
“라히르 대주교가 레민 마을에서 낸 성금이 부족하다고 성기사를 파견하지 말자는 거잖아! 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면서! 대체 믿음이랑 그 놈의 돈이 무슨 상관이라고!”
아리아는 아직도 화가 나는 지 씩씩거렸다.
로라는 그때서야 아리아가 왜 그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들이라 하여 모두가 사제와도 같은 이는 아니었다.
거룩한 신을 모시고 있으나,
이 신성 제국도 결국은 ‘사람’이 살아가는 국가.
쉽게 말해 ‘정치’라는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대주교라 하더라도 허울만 있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그리고 라히르 대주교는, 그런 이들 중에서도 가장 악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로라 또한 라히르 대주교를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하여간, 라히르 대주교님은 가끔 그 주둥아리를 찢어버리고 싶다니까요? 어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누구랑 같이 지내다보니 성격이 닮아버렸나봐요.”
“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어머? 전 누구라고 말 안했습니다 성녀님?”
아리아가 로라를 노려보다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래서 그렇게 앙칼지셨군요?”
“지금 기분이 몹시 안 좋아.”
아리아는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아리아의 모습에 로라가 살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입이 좀 험하고 천성이 개차반인 아리아였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사람들을 위할 줄 아는 이였다.
말 그대로 성녀(聖女).
로라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러면 어쩔 수 없네요. 조금 놀려줄려고 했는데.”
“놀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리아가 물음에 로라가 품 속에서 한 장의 편지를 꺼내들었다.
“편지? 로라, 내 앞으로 오는 연서 같은 건 전부 태워─.”
“시안이라는 사람에게서 온 편지인데요?”
“핫!”
그러자 아리아가 화들짝 놀라보였다.
그리고 언제 뾰루퉁했냐는 듯, 화색을 띠었다.
로라는 정말이지 헛웃음이 나왔다.
대체 시안이라는 자가 어떤 사내길래.
남자라고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던 아리아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아··· 저는 몹시 서운하답니다 성녀님. 저한테는 그렇게 퉁명스럽게 굴더니. 연모하는 사내의 편지 앞에서는 그렇게나 상기된 표정도 지으시고요. 그렇게 좋으세요?”
“뭐, 뭐? 연모? 그리고 상기되긴 누가 상기되었다고 그래? 자꾸 개엿같은 소리할래?”
“누누히 말씀드리는데 말 좀 이쁘게 하세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야지.”
“네네, 어련하시겠어요~.”
로라는 아리아에게 편지를 넘겼다.
이윽고 아리아가 봉인된 편지를 뜯어 그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마치 생일날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잔뜩 상기된 표정의 아리아.
말로는 그렇게 아니라고 하더니.
‘이럴 때 보면 정말 성녀가 맞나 싶다니까.’
로라는 속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바로 순간.
“······!!”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던 아리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이윽고 주먹을 꽈득, 움켜쥐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아리아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마치 화가 난 듯한 모습.
조금 더 정확히는 배신 당한 모습이었다.
혹시 실연이라도 당했나?
‘설마.’
세상 어떤 남자가 아리아를 걷어 찰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보이는 아리아의 모습은 조금 이상했다.
로라는 슬쩍, 시선을 돌려 편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뭐 대충 예상하자면···.
일단 악마 탐지기에 대한 사용법이 적혀있을 터였다.
그것에 대해 물어본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구실에 불과했다.
그걸 빌미로 서로 간의 연락을 하고자 하는 구실.
그리고 아리아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역시나 그 뒤에 다른 내용이 적혀있는 것 같았다.
로라는 슬쩍 답장의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
로라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붕, 떠버렸다.
저게··· 저게 대체 뭐지?
저걸 답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로라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편지에 써져있는 내용.
[얼마.]
딱 두 글자였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딱 저 두 글자가 답장에 써져있는 전부였다.
구구절절하고도 애타는 감정의 글귀가 아니라.
담백하다 못해 저게 무슨 편지인가 싶을 정도의 내용··· 아니, 딱 두 글자.
아, 물론 그 밑으로 추신이 덧붙여있었다.
[
참고로 선제시다.]선제···시?
그러니까 돈을 달라는 뜻?
악마 탐지기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대가로?
“······”
로라의 어이가 그대로 출타했다.
물론 로라는 시안이라는 남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편지만 봤을 때, 저 시안이라는 남자.
아무래도 돈을 밝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그것도 상당히.
그리고 아리아는 지금에서야 그것을 깨달은 모양이고.
쉽게 말해 아리아에게 접근한 것이 바로 돈 때문인 것이었다.
그래서 아리아가 지금 배신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전, 라히르 대주교도 그렇고.
돈에 집착하는 건 아리아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저 시안이라는 남자는 제 복을 걷어찬 격이었다.
그는 아리아의 호감을 이런 식으로 걷어차버렸다는 걸 알고 있을까.
무려 세상 모든 남자가 바라마지 않는 성녀의 호감을 말이다.
아마 평생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 분명했다.
분명···.
“로라, 그··· 있잖아.”
그랬어야만 했다.
“내 이름으로 교단에서 당길 수 있는 골드가 얼마 정도였지?”
“······ 네, 네?”
로라는 지금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교단에서 당길 수 있는 골드가 얼마냐고?
그러니까··· 사채를 쓰겠다는 말?
물론 성녀쯤 되면 사채라 부를 수는 없었다.
신성 제국에서 아리아가 갖는 위치는 그야말로 확고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떠나서 저게 지금···.
“하씨. 이럴 줄 알았으면 몸으로 때울 때 확실히 물어보는 거였는데!”
뭐, 뭘로 때워?
“······”
로라는 진짜로···.
진짜로 뭔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