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망나니가 달라졌다
미친.
그것은 네이슨의 머릿속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
정확히는 네이슨의 생각을 지배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었다.
“커헉···!”
내부가 진탕되는 충격에 네이슨이 격통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입가로 주륵, 선혈이 흘러내린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었다.
오러를 끌어올리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그리고 약간이라도 대응이 늦었다면.
방금 그 일격에 승부는 판가름 났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대련이 끝나지 않았고.
시안의 공격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위험!’
치명적인 본능의 경고에 네이슨이 황급히 정신을 차린다.
정신을 차린 시야로 소리조차 갖지 않는 일격이 쇄도해온다.
네이슨은 급히 검을 들어 방어를 완성했다.
그러나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꽈앙!
네이슨의 몸이 옆으로 크게 밀려났다.
그 순간에도 시안의 검이 다시금 왼쪽에서 치고 들어온다.
틈을 주지 않는 일격들이 쏟아진다.
그 모든 일격들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이 무슨···!”
네이슨은 즉시 검을 휘둘렀다.
섬뜩한 오러가 네이슨의 검에 뒤엉켰다.
오러에 비친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진다.
그런 일그러진 풍경을 매달고 오는 네이슨의 검을 바라보며, 시안은 쥐고 있던 검을 옆으로 내리그었다.
꽈아아아아앙!
충돌하는 힘과 힘.
몰아치는 힘의 격류가 주변을 휩쓸었다.
일순간 상쇄되는 힘의 공백.
“마, 말도 안돼···!”
“저, 저게 대체···!!”
그 광경을 지켜보던 기사들의 두 눈이 모두 부릅, 떠졌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겨지질 않았다.
일단 시안이 오러를 사용하고 있는 것부터가 믿기질 않았다.
기사들의 기억 속 시안은 말 그대로 천하의 둔재.
엘란두르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비기너조차 되지 못한 무능아였다.
그런데 시안은 보란 듯이 오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 오러를 넘어 오러 소드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네이슨의 오러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심지어 시안이 보이는 검술.
솔직한 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겉보기로는 별 거 없었다.
별 거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단순한 베기(斬)와 찌르기(衝).
이 두 가지 동작의 변형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시안의 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아득한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게··· 그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여기 모인 기사들은 모두 유저(User) 이상의 실력자들.
대륙 어딜 가도 ‘기사’라 인정 받는 이들이었다.
“맙소사···!!”
기사들은 경악 어린 눈빛으로 시안과 네이슨의 대련을 지켜봤다.
쐐액!
쇄도하는 시안의 검이 공백의 길을 꿰뚫는다.
그 끝에는 인상을 일그러뜨린 네이슨이 있었다.
네이슨이 검을 휘둘렀다.
꽈앙!
또 다시 격돌하는 힘.
충돌을 견디지 못한 네이슨의 손이 일순간 검을 놓을 뻔 했다.
한 손을 사용하지 않는 패널티.
주머니에 손을 꼽고 있는 터라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네이슨은 입술을 짓이기며 검을 움켜 쥐었다.
잡은 검을 휘두르면서 거리를 벌린다.
그러나 급히 휘두른 탓에 다시 한 번 균형이 무너졌다.
‘젠장!’
네이슨의 몸이 기우뚱거렸다.
시안의 자세가 일순간 낮아졌다.
소리를 도려낸 일격이 네이슨의 틈을 파고 든다.
피할 수 없다.
이 정도의 거리에서 틈을 노린 완벽한 일격.
이건 비단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누가 오더라도 피하기 힘들 것이다.
파삭─.
작은 절삭음이 들려왔다.
그와 함께 뚝, 뚝, 시뻘건 피가 바닥을 적셔왔다.
바라본 그곳.
네이슨의 오른팔이 얕게 베어져있었다.
“······!!!”
“······!!!”
지켜보던 기사들의 표정이 경악에 경악을 넘어선다.
쩌억, 벌어진 입은 쉬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뚝. 뚝.
흘러내린 피가 계속해서 연무장의 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네이슨은 흐르는 피를 막지 않았다.
한 손을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거니와.
그럴 정신 또한 없었다.
부릅, 떠진 네이슨의 두 눈이 시안을 향했다.
믿을 수가···.
믿을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시안은 오러를 사용한 자신의 일격을 버티지 못했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바닥에 나뒹굴고 있어야 했고.
지금쯤이면 그 얼굴에 발을 올려 수준의 차이를 선보여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오러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밀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일격조차 허용했다.
“어떻게··· 어떻게···.”
한 손을 사용하지 못함에 상당한 제약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제대로 된 검술조차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제약을 받는다.’ 라고 느껴진다는 것.
그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다르다.
지난 연회장에서의 시안과는 너무도 다르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무엇보다 그때도 느낀 것인지만 시안에게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만 다가갈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내가··· 또 진다고?’
네이슨의 머릿속으로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절대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감히 네가···!!!”
네이슨의 이성이 끊어졌다.
스파아아아아앗!
네이슨의 검에 선명한 푸른빛이 맴돌았다.
이윽고 형상화 된 오러는 다시 한 번 푸른빛을 발했다.
오러 소드(Auror Sword).
엑스퍼트의 기사가 만드는 진정한 오러소드였다.
그와 동시에 피어나는 짙은 살기.
네이슨이 시안에게로 달려들었다.
이성이 배제된 저돌적인 움직임.
그만큼 괴악한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만두십쇼! 네이슨 도련님!”
“그러다 죽습니다!”
기사들이 당황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시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피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아니, 이건 피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감은 두 눈.
시안은 드리우는 공포로 인해 몸이 굳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말려야한다.
분명··· 그래야만 한다고 기사들은 생각했다.
그 순간.
번쩍.
감겼던 시안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런 두 눈빛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일렁였다.
그와 함께 시안의 전신으로 알 수 없는 위압감이 터져나왔다.
네이슨을 말리려 달려들던 기사들의 움직임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네이슨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시안을 말려야만 할 것 같았다.
대체 왜?
알 수 없었다.
본능적으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
네이슨 또한 저도 모르게 몸을 멈칫, 거렸다.
그와 동시에 흐릿해진 이성이 되돌아온다.
바로한 시야.
시안의 주위로 일렁이는 어둠이 비쳐보였다.
그렇기에 네이슨은 또한 볼 수 있었다.
아득한 그 너머의 무(武).
그건 네이슨이 닿을 수도.
닿고자 하는 생각조차 품을 수도 없는.
까마득한 너머의 무(武)였다.
시안 주위로 피어나는 어둠이 드리운다.
그 어둠은 네이슨으로 하여금 죽음을 윽박지른다.
그리하여 느끼는 공포.
지금 네이슨은 명백한 공포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릴!!”
네이슨은 이를 까득, 깨물며 시안에게 달려들었다.
시안은 그 모든 움직임을 눈에 담으며 검을 말아쥐었다.
움켜쥔 SS등급의 검이 진동한다.
그리고 이어진.
단 한 번의 움직임.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름끼치는 폭발이 터져나왔다.
연무장 전체를 진동시키는 폭발에 시야를 가리는 먼지 안개가 자욱히 일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먼지 안개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끝에 보인 것.
그건 시안과 네이슨.
그 둘이 서로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75분의 1초, 찰나.
그 찰나의 싸움이 바로 이러한 것일까.
내려앉는 정적.
“제가 졌네요.”
그 정적 사이로 시안이 검을 내려보였다.
그러나 이곳 어느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지금의 승부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말 그대로 찰나의 싸움.
이대로 진행되었다면 누구 하나 무사하지 못했을 터였다.
무엇보다.
“그래도 50만 골드는 주시는 거 잊지마세요.”
“뭐, 뭐라고?”
시안의 말에 네이슨이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시안의 눈짓에 금방 입을 꾹, 다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손.
주머니에 꼽고 있던 한 쪽 손이 빠져나와 있었고.
그것은 시안에게 겨누고 있는 검에 사용되고 있었으니까.
시안의 일격을 방어하기 위해 검술을 펼치고자 저도 모르게 꺼내든 손이었다.
네이슨은 스스로가 두 손을 사용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생사결이라면 모르겠으나.
대련에서는 명백한 네이슨의 패배였다.
“······”
네이슨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 순간.
“시안 도련님.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연무장 한 쪽으로 시안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총관, 레리트가 시안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레리트가 방금 했던 말.
“······!!!”
“······!!!”
네이슨을 비롯한 기사단의 기사들 모두가 눈을 찢어져라 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주가 시안을 찾는다.
이 말이 갖는 의미를 여기에 있는 이들이 모르지 않았으니까.
설마 시안이 저택에 방문한 이유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시안에게로 향했다.
“에이, 아직 기사단 구경조차 못 했는데.”
뭐, 50만 골드 벌었으면야···.
시안은 어깨를 으쓱여 보이고는 차분히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
시안은 앞서 가는 레리트를 따라 저택의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살며시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초급 진행률 43.2% (+5.7%)]
‘진짜 더럽게 안 오르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스마트 폰을 품 속에 집어넣었다.
물론 지난 날, 0.08%가 오른 때와 비교하면 5.7%면 엄청난 진행률이었다.
‘그래도 수라천살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하지만 수라천살을 시전한 것 치고는 적게 오른 진행률이었다.
네이슨과의 마지막 격돌.
시안은 기억을 떠올려 마혼수라검의 1초식을 사용했다.
물론 누르비아와의 전투에서 보였던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땐 정말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없었으니까.
방금 시안이 보인 것은 흉내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흉내조차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솔직히 네이슨이 막아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확실히 네이슨이 쫌팽이 같아 보여도···.’
저 나이에 엑스퍼트 중급에 닿은 실력자.
천재는 천재였다.
만일 시안이 SS등급의 검이 없었고.
또 네이슨이 두 손을 사용했더라면···.
아마 패배한 것은 시안이었을 것이었다.
‘아직도 멀었구나.’
시안은 속으로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 순간.
“이쪽입니다.”
앞서 가던 레리트가 발걸음을 멈춰보였다.
그리고 손짓으로 시안을 방 앞으로 안내했다.
굳게 닫힌 방문.
다름 아닌 듀라크가 가문에 있을 적에 기거하는 집무실의 앞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레리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안은 멀어지는 레리트를 바라보다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괜시리 느껴지는 긴장감.
이렇게 단독으로 듀라크를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시안은 긴장을 떨쳐버리고는 방 문을 두들겼다.
똑똑.
-들어와라.
노크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
시안은 천천히 방 문을 열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 틈으로 듀라크의 집무실 풍경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그 집무실 중앙에 서 있는 한 중년의 남자.
주변으로 날카롭다 못해 베어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겨져나왔다.
아무런 기세조차 내뿜지 않고 있거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숨을 쉬기 힘든 압박감이 느껴졌다.
엘란두르 후작가의 가주이자.
명실상부 제국 제 1의 검.
듀라크 엘란두르.
만일 누군가가 시안에게 묻기를.
지금까지 만나본 존재 중 가장 강한 존재가 누구냐.
이리 묻는다면.
시안은 고민도 않고 카일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직접’ 만나본 존재 중 가장 강한 이가 누구냐.
이리 묻는다면 시안은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를 차치하고서라도.
레아와 듀라크.
이 둘 사이를 쉼없이 재단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 재단 끝에 아마 시안은 레아의 손을 들어줬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시안은 그 생각을 바꿔야할 것 같았다.
눈앞에 서있는 거대한 벽.
네이슨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끔찍한 힘이 느껴졌다.
마스터(Master) 상급의 경지라 알려진 듀라크 였건만.
어쩌면··· 그 이상의 경지에 문을 두들기고 있는게 아닐까.
시안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 최상급.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의 경지.
인간이 닿을 수 있는 궁극의 영역.
아직은 아니었으나, 듀라크는 그 영역에 발을 딛으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시안은 듀라크를 향해 예를 보였다.
“앉거라.”
듀라크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적당한 자리에 가 앉았다.
듀라크는 그때까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시안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
시안은 살짝 시선을 내린 채로 듀라크의 말을 기다렸다.
“네이슨과 다시 한 번 대련을 했다고.”
이윽고 듀라크가 물어왔다.
정말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이었건만.
그새 보고가 들어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라는 말.
듀라크는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 또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카이 말고는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던 듀라크가?
시안은 의문을 삼키며 나지막히 대답했다.
“형님께서 제게 한 수 가르쳐주셨습니다.”
듀라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 결과 또한 알고 있을텐데.
듀라크는 어째서인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가문으로 돌아오거라.”
듀라크가 말했다.
별 다른 설명도 없었다.
그저 저 한 마디뿐이었다.
시안은 가만히 시선을 들어보였다.
듀라크는 무덤덤히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현재 루벤의 영주로 있다고 들었다.”
“그렇습니다.”
시안의 대답에 듀라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가문으로 돌아오거라.”
그때서야 시안은 저 말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루벤의 영주를 때려치고.
가문으로 다시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듀라크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시안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려앉는 정적.
“거절하겠습니다.”
시안이 입을 열었고.
꿈틀.
시종일관 무덤덤하던 듀라크의 표정에 변화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