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65화 (65/322)

§ 65화 - 듀라크 엘란두르(2)

이사벨과의 거래는 무사히 이루어졌지만

아쉽게도 그 입질은 단번에 오지 않았다.

말이 듀라크를 설득하는 것이지.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대가가 필요할 터였다.

어떤 대가를 지불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안으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안 가는 일.

아마 이사벨 나름대로의 준비가 필요할 터였다.

그렇기에 시안은 한동안 엘란두르 저택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시안은 하얀 늑대 기사단은 물론.

엘란두르 후작령의 전반적인 시설들을 살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150만 골드도 받았겠다.

루벤에 적용할 수 있는 건 싸그리 현질··· 아니, 적용하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한 마디로 뽑아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뽑아먹고 다녔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3일이 넘어가서부터는 마땅히 뽑을 것도 없었다.

아무리 엘란두르 후작령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안의 현질력에 기반한 시설들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신장(神匠) 모르크루의 후손, 세미르가 그린 청사진.

그것을 완벽하게 재현하다 못해 뛰어넘어버린 모바일 영주.

제국의 수도, 다르칸조차 따라오지 못하지 않았는가.

“아··· 할 거 진짜 없네.”

해서 시안은 3일째 되는 날부터 무료함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택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런데 얼굴만 알 뿐이었다.

예전이라면 한스와 시덥지도 않은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 한스는 루벤에 있는 상황.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올 걸 그랬나.”

어째 그 선택이 조금 후회되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시안의 무료함을 달려줄 이는 없었다.

정확히는 한 존재가 있긴 했지만···.

띠링!

《진행을 하시다 심심하실 땐, 현질을 해보세요!》

모바일 영주는 깐족거리기 바빴다.

어째, 지난 점검 이후로 그 정도도 발전했다.

“음··· 진짜 현질이나 해볼까.”

시안은 스마트 폰을 꺼내들어 모바일 영주에 접속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의 시설들도 참고했겠다.

지금 미리 현질해두면 루벤에 도착할 때 쯤 완성이 되어있을테니까.

그렇게 이리저리 현질할 것들을 살펴보다 문득.

생각해보니 전표를 현금화하지 않았음이 떠올랐다.

150만 골드가 있었지만 쓸 수 없는 상황.

“······ 젠장.”

시안은 다시 스마트 폰을 집어 넣었다.

그러자 다시 밀려오는 무료함.

“아아아악!”

시안은 머리를 마구 헝크러뜨리며 소리쳤다.

방 문을 두들기며 아멜리아가 ‘영주님! 돈 벌어왔어요!’ 소리쳐줬으면 좋겠다.

갑자기 저 벽을 관통해 레아가 놀래켜줬으면 좋겠다.

엘리가 그만 좀 다쳐오라며 잔소리 해줬으면 좋겠다.

한스, 루카스, 그레이슨, 제리, 세미르.

하물며 아리아의 그 역겨운 얼굴이라도···.

“그건 아니지.”

시안은 미쳐버리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안 되겠다.”

시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달칵, 방 문을 열자.

문 앞에 있던 시녀들 몇몇이 화들짝 놀라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

“혹시 무료하시면  잠시 외출이라도 하심이···.”

아무래도 방 안에서 시안이 소리치는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못 들었으면 그것도 이상했다.

시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외출을 하긴 할 건데. 하얀 늑대 기사단 연무장에 갈꺼니까. 그리 알아둬.”

“연무장에 말씀이세요?”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저번에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렸다고, 다시 갈 일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이번엔 무슨 일로 가시는 지···.”

뒤에서 시녀 한 명이 물어왔다.

뭐, 별 다른 이유는 없었다.

괜히 멍하니 시간이나 죽이고 있으니.

“수련이나 하려고.”

시안은 성큼, 연무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망나니가 달라졌다!

엘란두르 저택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시안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일단 가문으로 돌아오자마자 시안이 사용인들을 위해 총관, 레리트를 혼낸 것.

이는 사용인들 입장에 있어 충격적인 일이었다.

시안은 엘란두르 후작가의 막내였다.

비록 사생아라고는 하나, 핏줄부터가 다른 귀족.

반면에 사용인들은 대다수가 평민이었고.

귀족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천한 것’ 이었다.

그런데 시안은 그런 천한 것을 위해 레리트를 혼냈다.

그것도 이사벨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레리트를 말이다.

“저번에는 있지 글쎄. 시안 도련님이 우리들 고생한다고 간식들 나눠준 거 있지? 나 여기서 일하면서 저택의 음식은 그때 처음 먹어봤잖아.”

“난 한 번은 너무 피곤해서 진짜 깜빡, 졸았거든. 근데 시안 도련님이 괜찮으니 쉬라고 담요를 덮어주시더라. 물론 괜찮다고 바로 일어났는데··· 아, 나 진짜 감동했어.”

“와··· 나도 시안 도련님 담당하고 싶다.”

사용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시안의 이름을 언급했다.

그리고 가주, 듀라크와의 독대.

이는 정말이지 저택 전체를 발칵, 뒤집어버렸다.

듀라크와의 독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곳, 엘란두르 저택의 사람들은 모르지 않았으니까.

이 두 가지만으로도 시안의 이름이 저택에서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물며 지금.

쌔액!

시안이 하얀 늑대 기사단의 연무장에서 검을 수련하고 있었다.

이건 예전의 시안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천하의 둔재임과 동시에.

시안은 그만큼 끈기 또한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시안이 사생아인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엘란두르의 기사들은 시안을 그리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었다.

검술 명가, 엘란두르.

그런 엘란두르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면.

재능이 없더라도 그에 걸맞는 모습은 보여야 했으니까.

하지만 과거의 시안은 그렇지 못했다.

하여 지금.

“보나마나 잠깐 반짝이는 것 뿐이겠지.”

“가끔 이런 날도 있으셨으니까.”

기사들은 시안의 수련을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안이 하루도 빠짐없이 연무장에 나오자 기사들의 생각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흘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한 사람이 갖는 끈기를 볼 수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다름 아닌 시안이 수련하면서 보이는 검.

저건 평범한 경지의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안의 처참한 재능을 알고 있는 기사들이었다.

그럼에도 시안이 저런 수준의 검을 구사한다?

시안이 저 정도 경지에 오르기 위해 얼만큼의 노력을 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네이슨 도련님과의 대련에서 승리했다고는 들었지만··· 내 믿지 않았거늘.”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괜히 받은 것이 아니신가?”

“시안 도련님의 나이가 어떻게 되시지?”

“카이 도련님과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기사들은 하나 둘 씩, 시안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편.

“허억···! 허억···!”

시안은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거친 숨을 갈무리했다.

전신으로 흘러내리는 땀들.

시안은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초급 진행률 44.1%(+0.09%)]

“······ 더럽게 안 오르네 진짜.”

시안은 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진 나흘을 수련했는데 0.09%라니.

이게 말이나 된단 말인가.

루벤에 있을 때야 <샤를롯의 긍지>와 더불어, 정예 병사 훈련소 Lv.2의 성장 버프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광고 시청으로 인한 성장 버프만 받을 수 있는 상태.

쉽게 말해 저게 시안의 재능이라 할 수 있었다.

“에휴, 뭐 누굴 탓하랴.”

재능이 없는 시안 본인 탓이지.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가문으로 돌아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안은 다시 검을 움켜쥐었다.

느리게 오른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올려야하는 진행률이었고.

괜히 멍하니 방에 틀어박히면 정신만 미쳐버리니까.

시안은 그렇게 하루도 빠짐 없이 수련을 이어나갔고.

저택에 머무르며 수련한 지 어언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

“너 뭐야?”

수련을 하던 시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시안의 이름이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안은 저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또한 익숙한 목소리 였으니까.

시안은 휘두르던 검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긴 금발의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한 여성이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로즈웰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의 둘째이자.

명목상으로나마 시안의 누나되는 이였다.

시안이 검을 갈무리 하자 로즈웰이 다가와 말했다.

“너 뭐냐니까.”

“시안입니다. 명목상으로나마 누님의 동생되는 사람이죠.”

“그건 나도 알아. 지금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럼 뭘 물으시는 겁니까?”

로즈웰이 잠시 시안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시안이 갈무리 한 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아는 시안 엘란두르는 이렇지 않아. 그 놈은 재능이라고는 일절 없었어. 그냥 병신이었다고. 너처럼 그런 수준의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놈이 절대 아니야.”

“그거···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로즈웰은 시안의 물음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야. 저번 건국일 행사에서도 그래. 그 찌질한 새끼는 그런 배짱있는 행동을 절대 못 해.”

다름 아닌 제리를 구할 때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시안이 이사벨에게 검을 겨눈 그 일.

이윽고 로즈웰이 확실하다는 듯 시안에게 물었다.

“너 다른 사람이지.”

“얼굴이 역변할 정도로 오래 떠나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껍데기만 같을 순 있잖아. 그러니까 다른 영혼이 빙의? 환생? 뭐 그런거야?”

시안은 로즈웰이 정말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설마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을 때, 샤를롯 대제의 영혼이라도 깃든건가?”

하지만 로즈웰은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오고 있었다.

“······ 대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등을 돌렸다.

하지만.

“확실히 말해. 너 다른 사람이지.”

로즈웰은 그런 시안의 앞을 가로막으며 계속 헛소리를 일삼았다.

그리고 그런 로즈웰의 모습에 시안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이건 어릴 적, 로즈웰이 자주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시안을 괴롭히거나.

아니면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자 할 때.

이런 식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시덥잖은 트집을 잡으며 시안을 닥달했다.

‘어쩐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 싶더라니.’

시안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나랑도 해.”

아니나 다를까 로즈웰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왔다.

“안 합니다.”

“뭘 하자는 말도 안 꺼냈는데?”

“대련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거 말고 저희 둘이 뭘 합니까?”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야! 대련 맞아!”

그러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로즈웰이 소리쳤다.

꽤나 당황하는 것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

“어쨌든 안 합니다.”

“왜!”

“귀찮으니까요.”

“지금 꽁무니 빼는 거야?”

“네.”

“······”

로즈웰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나도 한 손 안쓸게.”

“그럼 제가 이기면 얼마 주실 겁니까.”

“얼마냐니? 돈? 그런 거 없어. 기사의 대련에 돈이 오가는게 말이 돼? 그리고 어머니가 더 이상 대련에 돈 걸지 말라고도 당부했어.”

이사벨이 그런 말도 했어?

“그럼 안 합니다.”

시안은 주저없이 등을 돌렸다.

로즈웰은 무려 엑스퍼트 상급의 기사.

엑스퍼트 중급인 네이슨보다 한 단계 윗급의 기사였다.

한 손을 안 써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거늘.

하물며 돈까지 안 걸린다?

시안이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로즈웰은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네가 그러고도 엘란두르의 기사라고 할 수 있어?”

하여간, 누가 네이슨이랑 남매 아니랄까봐.

아주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제부터 엘란두르 안하려고요.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시안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로즈웰이 그런 시안의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안 돼. 대련하기 전까지는 못 가.”

“하아···.”

시안은 또 한 번 한숨을 내뱉었다.

네이슨과 달리 로즈웰은 끈덕지게 달라붙을 걸 알기 때문이었다.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시안을 닥달했었고.

끝내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하면 대련을 핑계로 시안을 두들겨 팼었다.

‘저러니까 저 나이 먹도록 시집을 못 갔지.’

뭐, 이사벨을 보면 알다시피.

로즈웰이 어디가서 꿀리는 외모는 아니었다.

아니, 꿀리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쉬이 찾기 힘든 미모였다.

비단 로즈웰 뿐만 아니라, 네이슨과 카이까지도.

가문도 빵빵하겠다.

얼굴도 반반하겠다.

결혼을 하더라도 진즉에 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시집을 못 간 것은 저 빌어쳐먹을 성격도 있었지만, 로즈웰은 끝내 기사로서의 길을 걷기로 했기 때문.

뭐, 그만큼의 재능도 있긴 했다만.

예나 지금이나.

정말 달라진 게 하나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딱 한 번만 하겠습니다.”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로즈웰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어 로즈웰이 무기를 챙기려는 듯 등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쐐액!

시안의 검이 그런 로즈웰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방심의 틈을 완벽히 찌른 일격.

로즈웰은 크게 당황했으나, 확실히 엑스퍼트 상급의 경지 답게 반응을 해보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안의 공격이 맹렬하게 이어졌다.

가진 바 무기도 없었거니와.

쇄도하는 일격이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었다.

특히나 제대로 된 준비도 행해지지 않은, 말 그대로 방심의 틈을 노린 완벽한 일격.

뻐억!

끝내 로즈웰이 이어지는 발길질에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로즈웰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로즈웰은 황급히 균형을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너 이게 무슨···!”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뚝.

목덜미에 닿는 검의 감촉에 로즈웰은 순간 입을 꾹, 다물었다.

바라본 시선.

그곳엔 시안이 검을 겨눈채 서있었다.

이윽고 시안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됐죠? 제가 이겼습니다.”

“······ 뭐라고?”

로즈웰은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소리쳤다.

“너···! 너···! 갑자기 공격해놓고 이기긴 뭘 이겨!”

“바로 시작한 대련 아니었습니까?”

“그런 비겁한 대련이 어떻게 대련이야! 엘란두르의 기사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말했다시피 저는 엘란두르의 기사가 아닙니다만?”

시안은 뭐가 문제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우리 루벤의 기사들에겐 그런 거 없습니다. 하나, 둘, 셋 와아! 하고 싸우는 그런 대련을 했다간 마수한테 그대로 잡아먹히거든요.”

“그게 무슨···.”

맹렬히 쏘아대는 시안의 말에 로즈웰은 순간 말을 잃어버렸다.

뭐라 반박할 거리는 있는 것 같은데.

딱히 뭐라 해야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제가 갑자기 공격했다고 한들. 엑스퍼트 상급이시면서 당한 거 아닙니까?”

“어···?”

생각해보니 그러했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는 하나, 시안과 로즈웰과의 격차는 까마득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당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거니와.

로즈웰은 시안의 공격이 행해지기까지 아무런 기척조차 느끼지 못해도 안 되었다.

“바, 방금 어떻게 한거야?”

“뭐, 커너가 알려준 기술입니다만. 의외로 잘 통하네요.”

“커너?”

“저희 영지에 있는 노예인데. 암살 잘하는 놈 있습니다.”

마스터가 아니면 쉬이 알아차리기 힘들거라더니.

확실히 특급 암살자를 도박으로 딴 건 아닌 듯 싶었다.

“아무튼. 이걸로 대련 끝입니다.”

“뭐라고? 너 지금···!”

바로 그때.

“시안 도련님.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한 쪽에서 시안을 찾는 총관, 레리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는 듀라크가 시안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

일순간 로즈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가주님이 또 시안을 찾는다고?

한 번도 놀라운진대 두 번이나?

그것도 얼마나 되었다고?

로즈웰은 크게 뜬 눈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시안은 속으로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듀라크가 갑자기 시안을 부를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시안은 멍한 로즈웰을 뒤로 한 채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

똑똑.

-들어와라.

노크 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은 천천히 방 문을 열었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문 틈으로 듀라크의 집무실 풍경이 비쳐보였다.

그리고 그 집무실 중앙에 서 있는 듀라크 엘란두르.

“가주님을 뵙습니다.”

시안은 듀라크를 향해 예를 보였다.

듀라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시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내려앉는 정적.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듀라크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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