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출정(1)
“어? 영주님?”
시안을 발견한 한 병사가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다른 병사들 또한 시안을 발견했다.
“영주님? 어라? 진짜 영주님이시잖아?”
“영주님이다! 영주님이 돌아오셨다!”
“영주님이 돌아오셨어?”
곧 시안을 향한 외침이 역병처럼 퍼져나갔다.
“도련님!”
이윽고 병사들 사이로 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한스가 병사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시안에게 뛰어왔다.
달려오는 표정이 꽤나 다급해보였는데···.
한스에겐 편지로 대강의 사정을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되신 겁니까?”
순식간에 시안 앞으로 다가온 한스가 물어왔다.
앞선 편지로 듀라크와의 대면은 알고 있을 테니···.
아마 황궁에서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안은 그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시야로 보이는 풍경.
루벤의 병사들은 해체 작업하던 손길을 멈춘 채 모두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병사들에 들려있는 검.
우우우웅···!
병사들의 손에 쥔 검에 죄다 오러가 일렁이고 있었다!
저게··· 저게 말이 되는 걸까?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그것이···.”
한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련님께서 말씀해주신 오러 연공법 때문입니다.”
“아니, 뭐. 대충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안이 무려 10만 골드의 현질로 구매한 A등급 오러 연공법.
그게 아니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거 말해준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정확히는 배운 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시안이 A등급 오러 연공법을 현질한 건 수도, 다르칸에서였다.
그러니까 황궁에서 콘라드를 기다리던 때.
물론 루벤에서 황궁까지 거리가 제법 되었다.
그렇다고 몇 개월씩 걸리는 그런 거리는 아니었다.
그 말은 즉.
그 짧은 사이에 병사들이 오러를 체득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이었던가?
오러는 이렇게 빨리 습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쉬웠다면 개나 소나 오러를 사용하며 기사가 되었게?
“루카스의 도움이 컸습니다. 확실히 엑스퍼트의 기사답게 오러의 개념을 확실히 알고 있더군요. 그리고 사실··· 제리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도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제리.
어째 엘로디의 연구소 Lv1에서 엘로디의 지식을 탐구하다 또 무언가를 밝혀낸 모양이었다.
루카스의 노하우.
제리의 연구.
그리고 영지의 미친 성장 버프 효율까지.
그 모든 것들이 시너지를 내어 이런 초유의 결과가 나왔나보다.
“그 덕분에 루카스도 이번에 엑스퍼트 중급이 될 수 있었습니다.”
“뭐? 루카스가 엑스퍼트 중급이 되었다고?”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엑스퍼트 중급이면 시안의 형인 네이슨과 같은 경지였다.
초급, 중급, 상급, 최상급.
이렇게 세분화된 단계에서 한 단계를 오르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만했다.
특히 경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필요한 노력은 기하급수로 치솟았다.
엑스퍼트라는 경지 자체도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닿을 수 있는 경지.
그렇기에 엑스퍼트 초급과 엑스퍼트 중급.
이 둘은 사실상 경지 자체가 다르다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벽을 허물었다라···.
A등급의 오러 연공법.
성능은 확실할 것이라 짐작했지만.
‘미쳤잖아?’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고 있었다.
“그보다 도련님은. 도련님은 어떻게 되신 겁니까?”
“아, 전하와 잘 이야기가 되었어.”
시안의 말에 한스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전하께 악마의 부활을 알리셨습니까?”
“아니.”
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뭐,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안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직 확실한 증거도 없었거니와.
그 상태에서 이야기를 꺼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악마는 천 년전.
6인의 아르나이즈들에 의해 소멸되었다.
그리고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말 그대로 소멸되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악마가 나타났다?
그것도 악마 7군주, 나태의 악마가?
아무리 콘라드가 시안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쉽사리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어쩌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섣불리 말을 꺼내는 건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시안에겐 당장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가.
“한스. 지금 영지민들을 모두 불러모아줘.”
“영지민들을 말씀이십니까?”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사람들한테 긴히 할 말이 있어.”
#
루벤 영지의 광장.
사실 광장이라기보다는 주거, 농업, 공업 등.
각 구역으로 갈 수 있는 루벤의 중심지라 부름이 정확했다.
그런 중심지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인간과 드워프들이 섞여있는 광경.
말 그대로 루벤의 모든 영지민들이 이곳에 모여있었다.
“영주님께서 갑자기 무슨 일이시지?”
“글쎄, 돌아오시자마자 이러셨던 적은 없으셨는데.”
“혹시 무슨 일 난 거 아니여?”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모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까보니까 영주님 얼굴이 많이 안 좋아보이시던데요.”
“설마 돈이라도 잃고 오셨나···? 레아 언니. 언니는 들은 거 없어요?”
-나도 몰라. 시안이 집으로 오지도 않았는걸.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답을 알지 못했다.
광장에 모인 루벤의 사람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시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웅성거리던 소란이 뚝, 하고 끊어졌다.
시안은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갔다.
뭐, 단상이라기보다는 영지민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은 곳이라 함이 정확하겠다.
시안은 자리에 올라 차분히 모여있는 영지민들을 바라봤다.
의문 투성이의 눈빛들이 모두 시안에게 향한다.
시안은 그런 눈빛들을 마주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뜸 들일 것이 바로 이야기 하겠다. 할 일들도 바쁠 테니. 이렇게 부른 이유는 별 거 없다.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기 때문이지.”
그와 함께 시안은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름 아닌 시안이 루벤을 떠나 겪었던 일들.
시안이 엘란두르 저택에 방문한 일.
그리고 그곳에서 듀라크를 만난 일.
마지막으로 듀라크가 시안을 가문으로 다시 불러들이려 한다는 것까지.
“어···.”
“지, 지금 그게 무슨···.”
“거짓··· 말이시죠?”
시안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반 년.
시안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 년 후에 시안은 가문으로 돌아가야했기 때문이었다.
“에이, 영주님이 장난치시는 거겠지.”
누군가는 장난이라 치부했으나.
바라본 시안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시안은 천천히 영지민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해서 난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리려 한다.”
“······!!!”
“······!!!”
시안의 말에 영지민들 전부가 눈을 크게 떠보였다.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린다.
그 의미를 모르는 이는 이곳에 없었으니까.
“아마 엘란두르와 척을 지게 될 것이다. 엘란두르를 적으로 돌려야 하며, 어쩌면 엘란두르와 전쟁을 벌여야할지도 모르지.”
아니, 반드시 전쟁을 벌여야만 했다.
만일 일이 잘 풀린다면 시안은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리게 된다.
그로써 루벤 또한 엘란두르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루벤이라는 영지에서 새로운 가문이 생겨나는 셈.
가문과 가문 간의 전쟁은 제국에서 비일비재했다.
당연히 듀라크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황태자 콘라드가 어떤 식으로든, 엘란두르에게 압박을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듀라크 또한 어떤 식으로든, 시안을 억압할 것이었다.
종국에는 시안과 루벤을 역사 속에서 지우려들겠지.
그렇기에.
“너희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시안은 영지민들의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의견이라 하심은···?”
“루벤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
시안이 말을 이었다.
“내가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린다 한들. 엘란두르는 어떻게든 나와 루벤을 억압해올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엘란두르와 전쟁을 해야할지도 모르지.”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엘란두르.
지난 역사상 엘란두르와 대적하여 살아남은 가문은 없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두려운 자는 루벤을 떠나도 좋다.”
시안은 차마 영지민들에게 강요할 수가 없었다.
짚더미를 이고 불길로 뛰어들라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일 너희들 모두가 엘란두르와 대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루벤을 떠나겠다.”
그것이 루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시안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
“······”
“······”
그런 시안의 모습에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시안의 말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엘란두르를 적으로 돌린다.
그건 감히 상상할 수도, 상상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신종 자살법이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
그렇기에 사실상 루벤은 끝이 났다 해도 무방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루벤을 떠나야했다.
그것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
그걸 사람들이라고 모르지 않았기에.
“······”
“······”
“······”
사람들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적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음에도 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너무하십니다.”
누군가 중얼거렸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영지의 병사, 두라스가 서 있었다.
“영주님께서 제게 루벤을 지키는 검이 되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제 와 도망치라니요. 떠나시겠다니요.”
두라스는 다양한 감정이 섞인 눈빛을 보였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갖가지 감정이 뒤섞여있었으나.
그 안에 깃든 뚜렷한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그리고.
“저희가 도망칠 것이었으면 진즉에 도망쳤을 겁니다. 영주님을 처음 만나뵙던, 고블린 무리들이 습격해왔을 때 말입니다.”
그레이슨이었다.
“영주님이 허구언날 다치시는데. 엘란두르랑 싸우시다가 다치면 제가 치료해드려야하니까···.”
그리고 엘리.
“이제 막 상단을 운영하려던 참인데요. 그런데 이제 와 도망치라고요? 그렇겐 안되죠!”
“처음엔 아가씨의 뜻에 따른 것이었지만, 지금은 저에게도 소중한 곳입니다.”
아멜리아와 루카스.
“저, 저도요! 저도 처음엔 어머니를 구해주신 것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여기 루벤이 좋아요. 떠나고 싶지 않아요 영주님.”
“영주님 아니었으면 이미 죽은 목숨인걸요. 영주님께 받은 은혜를 저버릴 생각은 없어요.”
제리와 다나.
“헬렌을 구해주겠다고 내게 약조하지 않았소. 나는 그 약조를 지키기 전까지 절대 루벤을 못 떠나오.”
세미르.
-대체 뭐가 걱정이야 시안! 내가 있잖아! 엘란두르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마차 가득 덤벼오라고해!
레아.
“크흠, 암흑가보다는 살만하더라고요.”
커너.
“영주님 아니었으면 이미 끝난 인생이었습니다.”
“어둠의 숲에서 빌빌 거리다 객사했겠죠.”
“하지만 영주님 덕분에, 영주님이 저희를 거두어 주셔서 루벤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고요!”
“어제 우리 아들이 뭐라 했는지 아십니까! 축제는 또 언제하냐고 묻덥디다! 너무 재밌었다고. 드워프 마을에서 항상 두려움에 떨던 우리 아들이 말입니다! 처음 듣는 말인 것 있습죠! 크하하하핫!”
루벤의 수많은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단 한 명도 루벤을 떠나겠다 말하는 이가 없었다.
시안은 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런 시안의 옆으로 한스가 다가와 속삭였다.
“설마 도련님. 영지민들이 떠날 것이라 생각해 이리 모이라 하신 겁니까?”
“······ 조금은.”
시안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사실을 영지민들에게 알려야하기도 했다.
그리고 솔직히 전부는 아니더라도 떠나는 이가 있을 줄 알았다.
엘란두르는 엘란두르였으니까.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니었나보다.
시안이 조금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우리는 루벤의 검이자, 영주님의 검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말만 하십쇼! 루벤과 영주님을 위해 저희가 무얼 하면 됩니까!”
“엘란두르와 싸우는 것보다 영주님이 저희를 떠나시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시안이 루벤을 생각하는 만큼.
“영주님이 저희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 우리도 갚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루벤 또한, 영지민들 또한 시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시안의 가슴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확실해졌다.
지금 이 시간 부로.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린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으나 후회는 없을 것이다.
시안은 마음 속에서 엘란두르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시안은 시선을 들어 영지민들을 바라봤다.
영지민들은 그런 시안을 마주하며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씨익, 저도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
“그럼 다들 뭐해! 일하러 가지 않고! 빨리빨리 골드 벌어야 할 거 아니야!”
그러자 사람들 또한 시안과 같이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이쿠! 영주님 화나셨다!”
“후딱후딱 가자고!”
루벤에 다시금.
만연한 웃음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
그렇게 영지민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
시안은 따로 아멜리아와 루카스를 영주관으로 불렀다.
똑똑.
-영주님. 아멜리아예요. 루카스도 같이 왔어요.
“들어와.”
시안의 말과 함께 문이 달칵, 열리며 두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루벤의 상행을 전담하는 아멜리아.
루벤의 병사들을 통솔하는 루카스.
“거기 앉아.”
시안의 권유에 아멜리아와 루카스는 적당한 곳에 자리했다.
그렇게 자리한 아멜리아와 루카스.
시안은 루카스의 모습을 잠시 살펴봤다.
역시나···.
엑스퍼트 중급에 올랐다는 말이 사실인 걸까.
루카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더욱 단단해져있었다.
시안은 작게 웃으며 루카스에게 말했다.
“이야기는 들었어. 축하해.”
“전부 영주님 덕분입니다.”
루카스가 절도있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내 덕은 무슨. 네가 잘 한건데.”
시안은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시안이 한 것은 없었으니까.
그나마 성장 버프 정도?
뭐, 그것도 시안 덕분이라 할 수 있었지만.
결국은 루카스의 노력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루카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영주님께서 주신 오러 연공법. 그것을 습득하고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음? 그래?”
시안은 살짝 놀란 눈을 떠보였다.
루카스가 A등급의 오러 연공법을 배웠다는 건 아까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통 기사들은 자신만의 오러 연공법을 고집한다.
오랫동안 수련해온 연공법을 바꾸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으니까.
월등히 뛰어난 오러 연공법이 아닌 이상 좀처럼 바꾸질 않는다.
그럼에도 루카스가 오러 연공법을 바꿨다는 것.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만, 아마··· 이 오러 연공법에 버금가는 것은 대륙에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루카스의 반응을 보아하니,
확실히 A등급 오러 연공법이 미치긴 한 것 같았다.
“음··· 지금 그 오러 연공법을 병사들이 전부 배웠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루카스, 그럼 현재 병사들 전반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 돼?”
그러자 루카스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전원 견습 기사 이상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말을 내뱉어버렸다.
영지의 병사가 전부 견습 기사라니?
그 무슨 말도 안되는 미친 소리란 말인가.
심지어 그 이상이란다.
세상 어떤 영지에 견습 기사가 병사로 있단 말인가!
기사단이 전원 엑스퍼트 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일개 병사들이 전부 기사인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들의 성장 속도가 어마어마합니다. 마수들과 매일같이 반복되는 실전도 있지만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입니다.”
루카스가 놀라움 반, 감탄 반 섞인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현질의 효과가 여기저기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이러면 현질을 더 해야겠는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골드.
그리고 이사벨에게 받은 150만 골드.
광고 제거랑 A등급 오러 연공법을 현질했으나 아직 남은 골드가 제법 있기는 했다.
‘그런데 요즘 모바일 영주가 강해진 것 같단 말이지.’
시안은 고개를 돌려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아멜리아. 상단 준비는 잘 되어가?”
“네. 거의 다 끝 마쳤어요. 그리고 상단 이름은 ‘루벤 브라헤’. 루벤 브라헤 상단으로 정했어요. 어때요?”
이곳 루벤과 아멜리아의 가문, 브라헤.
그 둘을 합친 간단한 이름이었다.
“아무렴.”
시안은 어깨를 으쓱였다.
돈만 잘 벌어오면 상단 이름이야 상관 없었으니까.
“상단원들은 뽑았어?”
“네. 그런데 영주님이 부재중이셔서 일단 한스님께 결재 받고 바로 일에 투입했어요. 지금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면···.”
“아니야. 됐어.”
시안은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한스가 어련히 잘 처리겠지.
“이번 상행 품목들은 정했어?”
“네 물론이죠!”
아멜리아가 힘차게 대답하며 품 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종이 위에는 글씨들이 틈도 없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아멜리아가 하나씩 읽어내려갔다.
“드워프 분들이 만든 맥주 오크통으로 150통. 드워프 제 무구와 방어구 각각 200개. 트롤의 피 500L. 라이칸슬로프 이빨 600개···.”
그렇게 아멜리아는 한참이나 품목들을 읊어나갔다.
시안은 가만히 그런 아멜리아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저번에 농지에서 수확하고 남은 밀과 보리 300가마. 여기에 각종 마수 부산물들이랑 마수 목장에서 나오는 것들도 있어요. 그리고··· 아! 비누. 비누도 2,000개 정도 물량이 있고요. 또···.”
당최 끝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상단을 꾸리더니 아멜리아의 능력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간에 귀를 닫아버렸다.
그런데 아멜리아는 뭐가 그리 신나는 것인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품목들을 하나하나 끝까지 읊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아멜리아가 소리쳤다.
“착실하게 준비했네···.”
그리고 많이도 만들었네.
시안이 없는 동안 영지가 착실하게 굴러간 모양이었다.
아니, 착실한 정도가 아니라 미친듯이 굴러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것들을 모두 팔아치우면···.
그야 말로 어마어마한 골드를 벌어들일 터!
“그럼 첫 상행을 어디로 갈지는 정했어?”
“아니요. 사실 그걸 고민 중이라 영주님과 상담하려고 했거든요. 아무래도 첫 상행이다보니···.”
시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제국 서부는 어때?”
“제국 서부요? 음··· 나쁘지 않죠. 아니, 오히려 좋죠. 아무래도 상업이 발달된 지역이니까요.”
해안과 인접하여 상업의 요충지가 된, 서부.
비록 제국 최고의 상업 도시는 루치아였지만.
그럼에도 상업하면 제국의 서부를 꼽을 수 있었다.
“저희 가문이 활동하던 지역이기도 했고요.”
애초에 아멜리아의 브라헤 가문도 제국 서부에 위치해 있었고.
“하지만 지금 서부로 가기엔 무리가 있어요. 제가 듣기로 현재 서부는 몬스터들로 인해 난리라고 하던데요? 갑자기 몬스터들이 창궐했다는데 상황이 꽤나 심각한가봐요.”
확실히 정보에 빠른 상인이라 그런가.
아멜리아는 서부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해서 지금 서부 지역으로 상행을 가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요.”
그렇기에 서부로 가기를 꺼려하는 것 같았지만.
“그럼 서부로 가자.”
“······ 네?”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몬스터가 창궐한다는데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것 때문에 가는거야.
아멜리아는 우려를 표했지만 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일단 콘라드의 부탁도 있었거니와.
“혼란하면 다른 상단의 상행이 뜸할 거 아니야? 그럼 틈새 시장도 노리고 좋지. 그리고 나도 갈거니까 바로 준비해.”
“영주님도요···?”
아멜리아는 다시 의문을 표했지만 시안은 곧장 루카스에게 말했다.
“루카스. 이번엔 병사들도 데리고 갈거니까 지금 가서 병사들을 소집해줘.”
“병사들도 말씀이십니까?”
루카스 또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말.
그건 상행과 더불어 병사들을 이끌고 제국 서부로 향한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동안 루벤은 영지를 지키기만 했을 뿐.
이렇게 밖으로 나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아멜리아와 루카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 지.
“출정이다.”
시안이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
제국의 서부는 해안과 인접한 지역으로,
대륙의 각종 물자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창구였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상업이 발달했으며.
제국에서 가장 많은 골드가 유통되는 곳으로 금융업 또한 발전한 지역이었다.
서부를 주름잡는 자가 제국의 상업을 지배한다.
하지만 서부를 주름잡는다는 건 사실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서부에는 그만큼 무수한 상단들이 있었고.
그 모든 상단들 위에 군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으니까.
딱 한 번.
과거, 브라헤 대상단이 그 꿈에 잠깐이나마 닿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꿈은 결국 꿈일 뿐.
상단 내부원이 수 억 골드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들고 잠적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끝내 브라헤는 무너져내렸다.
뭐, 아무튼.
제국 서부는 상업의 요충지로서 평소 상행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허나 지금.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싸늘하네요.”
아멜리아가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