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황녀의 방문(1)
시안은 출타하는 어이와 함께 정신 마저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일단 갑작스러운 황녀의 방문.
대체 황녀가 왜 루벤에 온단 말인가.
이곳 루벤은 어둠의 숲에 위치한 영지였다.
영주인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솔직히 사람이 올 곳이 못 되었다.
용병들도 어둠의 숲과 관련된 의뢰를 받기 꺼려하거늘.
황녀씩이나 되는 존재가 직접 찾아왔다?
심지어 시안은 황녀가 온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스치는 하나의 생각.
‘설마··· 전하께서?’
다름 아닌 서부에서 콘라드와의 대화 당시.
콘라드는 황녀인 엘레나와 시안의 혼사 이야기를 꺼냈었다.
시안이 단번에 거절하긴 했다만.
시안을 포기 못한 콘라드가 주책을 부렸다면···?
‘음···.’
설마하니 그랬을까, 싶기도 하면서도.
혹시 그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뭐, 그래.
이건 그럴 수 있다 치자.
『[스토리 연계 퀘스트] - ‘카일이 마주한 진실’』
하지만 이건 도무지 설명이 불가했다!
뜬금없는 스토리 연계 퀘스트의 반응.
시안이 엘레나의 방문 사실을 알자마자 퀘스트가 반응을 내보였다.
그렇다는 건 엘레나와 카일이 마주한 진실.
이 둘이 어떤 연관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었다.
‘무슨 연관이 있는 건데?’
그런데 둘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설마 카일이 마주한 진실이 황가의 일원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나?’
그럴 리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황태자, 콘라드를 만났을 때 바로 반응을 보였겠지.
‘그럼 황녀, 엘레나와 관련이 있는 건가?’
그나마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콘라드도 아니고 엘레나랑 연관이 되어있다는 게?
시안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았다.
그러나 그 어떠한 관련성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시안은 다시 스마트 폰의 화면을 바라봤다.
반응을 보인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스토리 연계 퀘스트] - ‘카일이 마주한 진실’
▶천 년전.
아르나이즈 카일은 자신의 유산을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춥니다.
어떤 모종의 진실을 마주하고서 말이죠.
카일은 그 진실을 다른 아르나이즈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말없이 떠나야만 했던 카일.
과연 그가 마주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흔적을 찾아 진실을 밝혀내세요!』
<보상: ???>
.
.
다행히 관련 퀘스트 내용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긴급 점검인 터라 확인이 불가한 줄 알았거늘.
역시 시안이 따로 무언가를 할 수 없다뿐.
떠오르는 결과의 알림창은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았다.
어쨌거나 퀘스트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달라진 게 없는데?’
퀘스트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확인했던 퀘스트 내용.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퀘스트 내용.
그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 뭔데?”
시안은 진짜 뭔가 싶었다.
여러모로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시안은 금방 생각을 털어냈다.
그리고는 멀뚱히 서있는 한스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황녀님께서 지금 어디 계셔?”
황녀 엘레나를 직접 만나봐야 알 것 같았다.
#
엘레나는 지금 꽤나 혼란스러웠다.
“······ 폐허라고 하지 않았나요?”
분명 그렇게 들었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둠의 숲에 위치한 영지.
어둠의 숲에 들끓는 마수로 인해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발전은 커녕 망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솔직히 어둠의 숲에 영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나?
싶은 생각마저 하고 있던 엘레나였다.
그렇기에 상당한 각오를 하고 온 엘레나였다.
그런데 정작 엘레나가 확인한 루벤의 풍경.
일단 루벤 전체를 철통같이 방비하는 철벽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주위를 둘러싼 해자도 차치하고서라도.
저기 트롤 무리들을 해체하고 있는 병사들도 차치하고서라도.
그런 병사들의 검에 일렁이는 오러도 차치하고서라도.
뭔 차치할게 이렇게 많냐만은.
이것도 차치하고서라도.
“어이! 다들 밥 먹으러 가자고!”
“오늘 점심 메뉴는 뭐야?”
“뭐든 상관 있어? 어차피 끝내주는 맛일 텐데!”
“하핫! 그건 그렇지!”
이건 그 여느 영지보다 평화로운 풍경이지 않은가.
심지어 단순히 평화롭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비켜요 비켜! 상행 나갈 드워프 특제 맥주들 지나갑니다!”
“다나님 특제 레시피로 구운 빵도 갑니다!”
그 어느 영지보다 발전된 도시의 모습.
아니, 솔직히 발전이라는 말로 퉁칠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 중에서도 가장 번화가인 곳을 들이밀어도 비교조차 되지않으리라.
도무지 어둠의 숲에 자리한 영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게 무슨···.”
예상과는 전혀 다른 루벤의 풍경.
그 풍경에 비단 엘레나 뿐만 아니라.
예일을 비롯한 로열 나이츠 제 2기사단 전부가 그러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심정을 달래고 있자니.
저 멀리, 한 사내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귀족처럼 보이는 이.
그러나 어딘가 어벙한 분위기는 귀족인가···? 싶은 의문을 잠깐 들게 했다.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저 사내가 여기 루벤의 영주, 시안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럼 저희는 잠시 거리를 두겠습니다.”
엘레나의 옆으로 예일이 말했다.
로열 나이츠 제 2기사단의 단장, 예일.
황태자 콘라드의 명으로 2기사단과 함께 엘레나의 호위로 온 예일이었다.
그리고 황족을 호위한다 함은 말 그대로 철통과도 같아야했다.
한시라도 곁에서 벗어나지 않음은 기본.
황족에게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수시로 검문해야만 했다.
그러니 지금 저 시안이라는 자를 검문해도 모자라거늘.
예일은 되려 엘레나와 거리를 두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뭔가 싶어 예일을 바라봤다.
“그것이···.”
예일이 답지 않게 말을 흐렸다.
그리고 이어진 예일의 말.
“영지 안에서는 너무 호위에 붙어있지 말라고 전하께서 엄명을 하셨습니다. 시안 엘란두르와 만나계실 때는 아예 떨어지라고도 하셨습니다.”
“오라버니가 말씀이신가요?”
예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가 너무 붙어있으면 친해질 기회가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도 그렇게만 하명 받은 터라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합니다. 허나 전하께서 분명 그리 엄명하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윽고 예일이 다시 말을 이었다.
“허나, 아무리 전하의 엄명이라고는 하더라도 황녀님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조금의 거리를 두고 따라가겠습니다.”
예일은 무려 마스터(Master) 중급의 실력자.
제국 제 2의 검하면 빠지지 않고 오르는 인물이었다.
그의 감각을 속이고 접근할 수 있는 이는 없다시피했고.
그렇기에 설령 거리를 둔다 하더라도.
엘레나가 예일의 시야에만 있다면 그 누구도 엘레나를 해할 수 없었다.
따라서 호위와 안전에는 큰 차질이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럼 저희는 이만.”
이윽고 예일과 로열 나이츠 기사단들이 물러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루벤의 영주, 시안. 황녀님을 뵙습니다.”
어느덧 다가온 시안이 엘레나에게 예를 보였다.
뭔가 묘하게 흘러가는 상황.
엘레나는 시안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엘레나 폰 샤를롯이에요.”
엘레나의 인사와 함께 시안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서야 시안은 엘레나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태양빛을 닮은 금발.
그 사이로 느껴지는 품격과 품위.
처음 보는 엘레나였지만 느껴지는 품격과 기품이 확실히 황녀는 황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콘라드가 어디가서 꿀리는 외모는 아니라고 하더니···.
확실히 그렇게 말한 이유가 있었다.
‘조금 레아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머리색만 빼면 꽤나 닮아있었다.
레아의 백은색 머리가 금발이 된다면.
그리고 고혹적인 분위기만 살짝 도려낸다면.
지금 엘레나와 상당히 비슷할 것 같았다.
뭐, 레아는 엘레나의 조상이었으니 그럴 수 있었지만···.
‘천 년이 지났는데도 닮을 수가 있나?’
생각해보면 콘라드도 샤를롯과 꽤나 닮아있었다.
역시 아르나이즈는 아르나이즈라는 것인가.
샤를롯의 유전자도 엑시드(Exceed)의 경지였나보다.
뭐, 아무튼.
시안의 관심사는 그런 엘레나의 외모가 아니었다.
일단.
‘악마는 아니네.’
악마가 아니었다.
혹시 누르비아 때처럼 악마가 엘레나의 모습을 한 것인가 싶었다.
악마는 그 모습을 감쪽같이 숨겼으니까.
그래서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명백한 인간이었다.
하기사, 엘레나가 악마였다면 루벤에 들어오자마자 경보가 울렸겠지.
지난 날 제리가 엘로디의 마도구를 연구했었으니까.
‘그럼 왜 스토리 연계 퀘스트가 반응한거지.’
또한 갑자기 황녀가 루벤에 방문한 이유.
시안은 당장 엘레나에게 묻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나 길바닥에서 다짜고짜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이쪽으로 오시죠.”
시안은 엘레나를 영주성 Lv.2로 안내했다.
그리고 엘레나는 그런 시안을 따라갔다.
그러다 문득.
“······?”
시안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어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엘레나에게 물었다.
“로열 나이츠 분들께서는 왜 안 따라오시고 저기 계신 겁니까?”
“아··· 그···.”
그러자 엘레나가 살짝 당황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뭐라 할 말이 없었으니까.
저와 당신이 친해지라고 잠시 물러났어요.
이렇게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 혹시 불편하실까봐. 제가 잠시 물렸습니다.”
엘레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내뱉었다.
“저는 괜찮습니다만.”
“······”
엘레나가 잠시 말이 없었다.
“······ 영지의 사람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어진 엘레나의 말에 시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각자 할 일을 하는 일상의 풍경이었다.
간혹 궁금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영지민들이 있었다.
그러나 딱히 놀라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일단 시안이 같이 있기도 했거니와.
루벤의 수호령인 레아가 있는데 뭐가 불안하단 말인가.
악마가 아닌 이상.
루벤에 위협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무엇보다 엘레나가 황녀임을 모르는 것도 한몫했다.
시안도 이번에 처음 봤거늘.
어둠의 숲에서만 살아가던 저들이 엘레나의 얼굴을 알고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렇기에 영지민들은 귀하신 분인가? 싶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런가 보다. 하며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엘레나 또한 그 모습을 확인했다.
살짝 떨리는 엘레나의 눈빛.
“아, 아무튼요.”
“뭐, 그러시다면야.”
시안은 그런가 보다 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시안은 엘레나를 데리고 영주성 Lv.2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영주성으로 향하던 와중.
“아니, 이게 무슨···.”
엘레나는 연신 감탄을 터트리기 바빴다.
영주성까지 가는 도중 보이는 루벤의 풍경.
그 루벤의 모습이 꽤나 충격인 것 같았다.
그런데 사실 영주성까지 가는 길에 딱히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제대로 된 구역의 지구들은 영주성을 지나쳐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모습들 마저 충격인 것일까.
“세상에나···.”
엘레나의 두 눈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영주성 Lv.2 앞에 섰을 때.
“맙소사···.”
엘레나는 정말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눈에 보이는 영주성.
이건 거의 황궁과 비견되어도 손색이 없었으니까.
물론 크기나 시설들이나 황궁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세부적인 것들을 살펴보면 마냥 그렇지만도 않았다.
디자인이나 느껴지는 분위기.
디테일적인 측면에서는 지금 이 영주성이 황궁보다 더 좋았다.
일개 영지의 영주성이 황궁보다 좋다?
심지어 어둠의 숲에 위치한 영지가?
“이게 무슨···.”
엘레나는 도무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로열 나이츠 분들은? 같이 들어오시는 겁니까?”
이어진 시안의 물음.
“그것이···.”
“일단 결계는 해제해 놓겠습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세요.”
“결계요?”
하지만 시안은 이미 영주성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들어오셔도 됩니다!”
영주성 안으로 들어간 시안이 크게 소리쳤다.
엘레나는 뭔가 싶었지만 금방 영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나.
영주성의 내부 또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이건 단언하건대 황궁보다 좋았다.
황궁은 쓸데없이 넓기만 했었으니까.
“······”
엘레나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시안이 엘레나를 안내한 곳은 영주성 한쪽에 위치한 접객실이었다.
정확히 접객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손님이 오면 써먹어야지 하며 생각해두었던 장소였다.
그렇게 엘레나와 함께 접객실에 자리한 시안.
엘레나는 접객실의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두리번두리번 거리는 모습이 접객실의 디자인이 꽤나 마음에 든 모양.
황궁에서 온갖 휘황찬란한 것들을 봐왔을텐데.
그럼에도 신기해하는 표정이 꽤나 볼 만했다.
“음··· 제가 여기에 외부 손님을 맞이한 건 처음이라.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하지만 생각이 없네요.”
“그럼 간단한 다과라도 준비하겠습니다.”
시안은 한쪽에 비치된 알림벨을 눌렀다.
그러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조금의 시간이 흘러 접객실의 문이 열렸고.
다과를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한스였다.
본래라면 영주성의 유령 집사, 레아의 몫이었다.
그리고 레아가 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안이 말렸다.
시안은 엘레나를 만나기 전, 레아를 영주성 밖으로 내보냈다.
솔직히 다른 귀족이었으면 상관없었다.
정확히는 황족의 일원만 아니었다면 신경도 안 썼을 터였다.
그러나 엘레나는 황녀였다.
그리고 레아는 샤를롯의 여동생.
레아한텐 까마득한 후손이요.
엘레나 입장에선 시조(時祖)였다.
현 황제, 발루아가를 ‘놈팽이’라 부르는 레아였다.
하물며 엘레나한테는 무슨 말을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레아가 입을 비죽이며 불평을 표했다.
자기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난다나 뭐라나.
그러다 결국 삐쳐버린 것인지.
-나쁜 시안!
저러면서 어디론가 휭하니 가버렸다.
뭐, 가봤자 루벤 안이겠지만은.
아무튼.
한스는 탁자 위에 여러 다과들을 내려놓았다.
다름 아닌 다나가 만든 다과였다.
“드시죠. 저희 영지의 실력 좋은 요리사가 만든 거라 괜찮을 겁니다.”
“아, 네.”
엘레나는 별 생각없이 다과 하나를 집어들었다.
모양새는 제법 괜찮았다.
그러나 황궁에서 먹던 것에는 비할 바가 못될 터였다.
엘레나는 손에 든 다과를 한입 베어물었다.
아삭.
역시나.
황궁에서 먹던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
황궁에서 먹던 것이 쓰레기였다!
엘레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맛있···다.
맛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입에서 녹아들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엘레나는 다시 한 번 다과를 베어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혀에서 녹아내린다.
실로 말도 안되는 천상의 맛.
농담이 아니라 이것과 비교하면 정말 황궁에서 먹던 것은 쓰레기였다.
이 영지에 황궁의 수석 셰프급의 요리사가 있다고?
아니, 그보다 더한 요리사가 있다고?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탁자에 놓인 다과에 손을 가져갔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끊임없이 다과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그나마 황녀로서 몸에 배인 품위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꽤나 게걸스러운 모습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접시 하나가 그대로 비워지고.
엘레나는 다시 그 옆의 접시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 문득.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안을 볼 수 있었다.
멈칫.
다과를 향하던 엘레나의 손짓이 멈추었다.
그리고 엘레나는 심히, 심히 고민을 했다.
하지만 결국 다과로 뻗던 손을 다소곳이 무릎으로 가져갔다.
“마, 맛있네요.”
이어진 엘레나의 말.
시안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가 뻔히 보였으니까.
뭐, 다나의 솜씨를 알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시안은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괜히 시간을 끌기도 뭐할 겸.
단도직입적으로 엘레나에게 물었다.
“갑자기 루벤을 찾아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러자 엘레나의 눈빛이 변했다.
시안을 바라보는 표정 또한 상당히 미묘하게 변했다.
시안은 그런 엘레나의 시선을 마주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시안을 바라보는 엘레나.
솔직히··· 조금 의외였다.
아니, 의외가 아니라 예상 밖이었다.
여기 루벤이라는 영지도 그렇고.
지금 눈앞의 시안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망나니에 패륜아라고 하더니.
확실한 건 소문과는 다른 남자였다.
아직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을 만한 자인지.
또 서부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황궁에서 보인 황태자, 콘라드의 태도.
그렇기에 엘레나는 알 수 있었다.
왜 콘라드가 자신을 이곳으로 보냈는지.
명목상으로는 신성 제국의 성녀가 보낸 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걸 굳이 엘레나에게 부탁했다는 것.
그리고 친해지라는 빌미로 호위까지 물리는 것.
아무래도···.
오라버니는 이 시안이라는 남자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았다.
아니, 마음에 들어한 정도를 넘어 자신의 짝으로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닌 이상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오라버니가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
일단 엘레나의 기억으로는 없었다.
마음에 들어하는 남자는 커녕.
세상 귀족 남자들 전부를 도둑놈 취급했다.
그 때문에 엘레나가 정략 결혼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았는가.
일순간 엘레나가 싱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분위기는 화사한데 인상이 차가워서 그런가.
웃는 미소가 날카로우면서도 청순했다.
대비되는 분위기가 꽤나 매력적이었다.
이윽고 엘레나가 곧장 말을 이었다.
“우리 결혼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