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 끊임없는 현질(1)
루벤에 위치한 영주성 Lv.2.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시안은 의자에 앉아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긴급 점검을 끝내고 개같이 부활한 모바일 영주.
그로 인해 막혀있던 현질을 다시 할 수가 있었다.
시안은 인벤토리의 금화를 확인했다.
[현재 보유 중인 금화] - 2,570,000 G.
무려 257만 골드.
기존에 남아있던 157만 골드.
거기에 엘레나에게서 뜯어낸 100만 골드를 더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현재 보유 중인 명성 포인트] - 30,100 P
무려 3만 100 포인트에 달하는 명성 포인트까지.
골드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300만 골드였다.
도합 558만 골드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설마 다시 점검하는 건 아니겠지?”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었다.
지난 번에 모바일 영주가 점검하는데까지 든 비용은 450만 골드.
하지만 지금부터 다시 현질할 금액은 558만 골드.
긴급 점검으로 얼마나 강해졌냐가 관건이겠지만은···.
충분히 가능성 있었다.
개같이 부활하고, 개같이 기절하는.
그런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시안은 곧장 모바일 영주를 실행시켰다.
“일단 명성 포인트부터.”
아르나이즈 특전을 강화할 수 있는 명성 포인트.
시안은 【명성 포인트 상점】 항목에 들어갔다.
꾹.
가벼운 터치와 함께 상점의 항목들이 나열되었다.
그래 봤자 <샤를롯의 긍지>와 <모르크루의 불꽃>.
이 두 개밖에 없지만은 아무튼.
“3번 강화를 할 수 있지.”
한 번의 강화당 1만 포인트.
시안은 이미 강화할 항목들을 생각해두었다.
일단 <샤를롯의 긍지>에서 추가시킨 ‘효과 4’.
[강화 효과 4] - 영지의 기사 양성소에서 A등급의 무공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 번에 효과 추가와 더불어 한 번 강화를 한 상태였다.
여기서 한 번 강화하면, S등급의 무공을 구매할 수 있을 터.
게다가 <모르크루의 불꽃>에서 ‘효과 2’까지.
[효과 2] - 숙련공 이상의 대장장이가 있는 영지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장비들은 B등급의 품질을 지닙니다!
이 효과를 강화하면 A등급의 장비가 나올 터였다.
그리고 한 번 더 강화하면 무려···.
“S등급의 장비!”
병사들의 무력 수준이 지금보다 월등히 상승될 것이 분명했다.
여기에 S등급의 무공까지 배운다?
그리고 업그레이드를 통해 폭발적으로 상승한 성장 버프까지 더해진다?
그럼 5개월 뒤.
엘란두르의 하얀 늑대 기사단과 대적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또 그 뿐이랴!
시안의 장비 또한 거의 무제한으로 강화할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시안은 <샤를롯의 긍지> ‘효과 4’를 한 번.
그리고 <모르크루의 불꽃> ‘효과 2’를 두 번 강화했다.
꾸구국.
《구, 구매···?!》
그러자 모바일 영주의 당황하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하기사 시안이 방금 소비한 명성 포인트는 무려 3만 포인트.
골드로 무려 300만 골드를 사용한 셈이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저번처럼 핵(Hack)이니 뭐니, 개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확실히 긴급 점검으로 강해진 것일까.
받아들이는 인과의 허용치가 상당해진 것 같았다.
또 생각해보면 지난 번에 300만 골드를 환전하면서 기절한 모바일 영주였다.
한 마디로 이미 알고 있었던 인과.
“흐음···.”
시안은 약간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강화된 효과를 확인했다.
[강화 효과 4](+2) - 기사 양성소 Lv.5 에서 S등급의 무공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강화 효과 2](+2) - 명인 이상의 대장장이가 있는 영지의 대장간에서 만들어지는 장비들은 S등급의 품질을 지닙니다!
혹시나 싶었지만 예상대로였다!
무려 S등급의 장비.
그리고 S등급의 무공들을 얻을 수 있었다!
“미친!”
시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러다 문득.
“······ 응?”
뭔가 이상한 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일단 <샤를롯의 긍지>.
“기사 양성소 Lv.5?”
앞에 기사 양성소 Lv.5라는 말이 붙어있었다.
기존에는 그냥 ‘기사 양성소에서─.’ 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Lv.5’라는 구체적인 말이 붙어있었다.
지난 업그레이드를 통해 ‘최상급 기사 훈련소 Lv.4’까지 끌어올린 시안.
그 업그레이드에만 거진 150만 골드가 들어갔었다.
헌데 필요한 건 Lv.5.
시안은 다음 업그레이드를 확인했다.
그리고.
『《기사 양성소 Lv.5》 (4,000,000G).』
무려 400만 골드에 달하는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시안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모크르쿠의 불꽃>도 이상했다.
“명인 이상?”
명인 이상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처음엔 ‘숙련공’ 이상이었다.
그리고 사실 숙련된 대장장이도 찾기 힘들었다.
일반적인 영지에 한 명 내지는 두 명 정도가 있을까.
그러나 루벤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장인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워프들이 루벤의 영지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B등급의 장비를 양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S등급의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명인 이상이 필요했다.
시안이 알기로 숙련공, 장인, 명인.
이렇게 나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루벤에서 명인이라 부를 수 있는 이는 한 명.
다름 아닌 신장(神匠) 모르크루의 후손, 세미르뿐이었다.
그 말은 즉.
“세미르밖에 못 만든다는 뜻?”
하지만 다행히 다른 드워프들의 수준을 향상 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엘로디의 연구소 Lv.1에서 ‘모르크루의 야금술’을 연구하실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닌 ‘모르크루의 야금술’ 연구.
“전에는 이런 게 없었는데?”
어째, 특전 강화를 해야지만 개방되는 조건이었나보다.
시안은 곧장 연구소의 연구 항목을 확인했다.
[모르크루의 야금술] - 500,000G
무려 50만 골드에 달하는 연구 비용.
기존의 연구들 값이 1만 골드 내외임을 생각하면 미쳐버린 가격이었다.
하지만 신장(神匠)이라 불렸던 모르크루의 야금술이었다.
아르나이즈들의 무기를 만들어주었던 아르나이즈.
오랜 세월 그의 야금술은 소실되었다.
그의 후손인 세미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연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엘로디는 아르나이즈들의 모든 것들을 기록해놓은 모양.
시안은 곧장 연구를 구매했다.
수중에 257만 골드가 있었으니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Erorr: ‘모르크루의 야금술’ 연구가 불가합니다.》
에러 창이 떠올랐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곧 오류 사유에 대한 알림창이 떠올랐다.
《오류 사유: 연구 조건 미달성.》
《’모르쿠르의 야금술’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업적: 최고의 무기를 위하여!’ 가 필요합니다.》
“업적이 필요하다고?”
시안의 말과 동시에 업적에 관한 정보가 떠올랐다.
『[업적] - 최고의 무기를 위하여! (미달성)
-달성 조건: SSS등급의 장비 1개 보유 혹은 강화 20번 실패.』
.
.
“이게 무슨···.”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모르크루의 유산인 흑석(黑石).
시안은 흑석을 통해 가진 바 장비를 강화할 수 있었다.
강화 재료는 다름 아닌 같은 등급의 장비.
즉, SS등급의 장비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같은 SS등급의 장비가 있어야만 했다.
현재 세미르가 S등급 장비를 하나 제작하는데 필요한 비용은 30만 골드였다.
그런 S등급 장비가 2개가 있어야.
SS등급의 장비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S등급의 장비를 강화해야 SS등급의 장비가 나오니까.
그러니 강화 비용은 차치하고서라도.
SS등급 장비 하나 당 60만 골드가 들어가는 셈이었다.
그런 SS등급의 장비를 지금 시안이 가진 장비에 강화를 해야만 SSS등급의 장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SSS등급 강화 성공 확률은 5%.
즉, 기대값은 20번 강화에 1번 성공하는 꼴이었다.
어차피 확률이었기에 한 번에 성공할 수도 있었지만.
만일 20번 모두 실패한다면···.
“1,200만 골··· 이런 미친.”
강화 재료값만 무려 1,200만 골드가 들어가는 셈이었다.
저 업적을 따기 위해서 무려 1,200만 골드가 들어가는 셈이었다!
바로 그때.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
.
“지랄하지마!!!”
시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게··· 이게 말이 된단 말인가!
1,200만 골드라니!
현재 시안이 가진 골드는 257만 골드.
1,200만 골드에 비하면 택도 없이 모잘랐다!
물론 1,200만 골드가 전부 필요하지 않을 터였다.
어쨌거나 확률이었으니까.
정말 1번에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반대로 20번 이상으로 실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미친!”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도무지 진정되지않았다.
어떻게··· 어떻게···!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
.
“진짜···.”
개같이 부활한 모바일 영주였다.
시안은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
“후우···.”
시안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골드를 벌어야했다.
257만 골드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257만 골드라는 돈이 부족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모바일 영주 앞에서는 그러했다.
아무튼 기사 양성소 Lv.5도 그렇고.
저 업적을 따기 위함도 그렇고.
골드를 다시 벌어야했다.
아무래도 아멜리아에게 당장 상행을 가달라 해야할 것 같았다.
다행히 업그레이드를 통해 산출량도 많아진 바.
아멜리아라면 수 백만 골드를 벌어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
지금 필요한 골드는 천만 단위였으니까!
“이걸 어떻게···.”
시안은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문득 시야에 들어온 한 장의 편지.
다름 아닌 아리아가 보내온 편지였다.
“그러고보니···.”
#
제국의 수도, 다르칸.
그리고 그 다르칸에 위치한 황궁.
“전하. 엘레나 황녀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엘레나가?”
시종장의 보고에 황태자, 콘라드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나가 이렇게 빨리 돌아와서는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 정도 뒤에 돌아와야만 했다.
그러라고 예일한테도 단단히 일러두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돌아왔다?
“들라하게.”
콘라드는 일단 엘레나를 불러들였다.
그렇게 시종장이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달칵, 하며 집무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엘레나.
“황태자 전하를 뵙─.”
“괜한 예의는 접어두고, 이리 와 앉거라.”
콘라드는 손을 휘휘, 내저어보였다.
엘레나는 몸을 바로하고 콘라드 앞에 앉아보였다.
“왜 벌써 돌아왔느냐.”
“그것이···.”
콘라드가 묻자 엘레나가 말을 흐렸다.
이걸 어떻게 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엘레나, 본인만 알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로열 나이츠 모두가 똑똑히 지켜본 일.
어차피 말을 하지 않더라도 보고가 들어갈 터였다.
엘레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쫓겨났어요.”
“뭐라고?”
콘라드가 순간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쫓겨나다니? 누가?
엘레나가?
“그게 무슨···?”
콘라드는 엘레나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라본 시선.
어째서인지 엘레나가 콘라드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살짝 난처한 기색이, 어째 켕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엘레나의 모습에 콘라드는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콘라드는 엘레나가 관심이 없어 빨리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시안에게 편지만 전해준 뒤.
바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쫓겨났다는 엘레나의 말.
그리고 지금 보이는 엘레나의 표정.
그러니까 엘레나는 루벤에 더 있고 싶었는데 쫓겨났다는 뜻?
콘라드는 설명을 요하는 눈빛으로 엘레나를 바라봤다.
엘레나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한동안 주저주저한 끝에 엘레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콘라드는 가만히 엘레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끝난 직후.
“······”
콘라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일단.
“만나자마자 결혼을···.”
콘라드는 이걸 뭐라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소중한 여동생이었지만 솔직히···.
“제정신인게냐.”
이번엔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오라버니가 마음에 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하아···.”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실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엘레나였지만.
콘라드는 엘레나가 저러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다.
황녀로서의 의무.
그 놈의 의무를 내려놓아도 괜찮다 그렇게 일렀거늘.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느 정도 자신의 탓도 있었으니.
콘라드는 이에 대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게다가 로열 나이츠들과 루벤의 병사들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이건 콘라드로서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쫓아낼 것까지야 있었나 싶었지만.
시안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벤에서 엘레나는 그야말로 골칫덩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래도 황녀를 쫓아내다니.
세상 어떤 귀족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잘 보이고 싶어서 안달나지 못할망정.
쫓아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괘씸하면서도.
참··· 시안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유가 모두 제 영민을 위해서라.
자신에게 해가 갈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시안은 거침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콘라드였다.
하지만···.
콘라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
망했다.
그것도 아주 거하게 말아먹었다.
시안과 안면을 트고 연을 쌓으라 보냈거늘.
어째 악연만 쌓고 오지 않았는가!
망했다.
콘라드는 섣불렀던 자신의 행동을 자책했다.
엘레나의 성격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럴 줄은 몰랐다.
따라갔어야했다.
남녀간에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라고 따로 보냈거늘.
오빠라는 자가 괜히 따라가면 어려워할 것 같아 따로 보냈거늘.
착오였다. 따라갔어야 했다.
가서 엘레나를 컨트롤 했어야 했다.
한순간의 착오로 상황을 말아먹었다.
“하아···.”
짙어지는 한숨.
그런데 마냥 글러먹은 것 같지는 않았다.
“오라버니가 보기에 말이에요.”
감은 시야로 엘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눈을 뜨자.
엘레나가 살짝 시선을 내린 채 말했다.
“시안이라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 말에 콘라드는 살짝 놀라보였다.
엘레나가··· 이랬던 적이 있었던가?
남자에 대해 궁금해한 적이 있었던가?
일단 콘라드의 기억으로는 없었다.
물론 혼사가 오간 남자들을 궁금해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 남자의 가문에 대해 궁금해한 것일 뿐.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콘라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참된 귀족이었다. 진정으로 백성을 위할 줄 아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진정한 귀족.”
엘레나는 답이 없었다.
엘레나를 잘 아는 콘라드 였건만.
이번 만큼은 저 반응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네가 보고 느끼기엔 어떤 사람인 것 같았느냐.”
콘라드의 물음에 엘레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황녀로서의 신분.
엘레나는 자신이 누리는 권리에는 마땅한 의무가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단 황녀라는 신분뿐만이 아니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누리는 권리에는 마땅한 의무가 따른다.
이것이 엘레나가 가진 가치관이었다.
그런데 루벤은 그렇지 않았다.
엘레나가 본 루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권리에 의무가 따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딱히 의무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 누구 하나 의무에 종속되는 일 없이 자발적으로 일을 해나갔다.
권리와 의무가 아닌.
대가 없는 호의.
그 호의가 루벤에 만연해있었다.
그건 엘레나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게다가.
‘제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이런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시안이 했던 말.
그 말이 어째서인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시안은 엘레나가 정답이라 생각한 모든 가치관을 부정시켜버렸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영지이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남자.
그렇기에.
“······ 모르겠어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
콘라드는 엘레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아가고 싶느냐.”
엘레나가 잠시 뜸을 들이다 답을 했다.
“······ 네.”
콘라드는 눈을 크게 떠보였다.
엘레나가 지금 보이는 것은 명백한 관심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엘레나가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것이었으니까.
“헌데 쫓겨나지 않았느냐.”
“······”
엘레나가 아무 말없이 몸을 움찔, 거렸다.
그런 엘레나의 모습에 콘라드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
언제나 고지식만 모습만 보여주던 엘레나였거늘.
이런 귀여운 모습도 보일 줄 알지 않은가.
콘라드 본인은 물론이고, 황제도 불가했던 일이거늘···.
어쨌거나 엘레나가 난생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내였다.
비록 첫 단추는 잘못 꿰매졌으나···.
“이 오라비가 도와주마.”
오라비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하지만 지금 당장은 좀 그러니. 조만간 좋은 자리를 다시 마련해주마.”
엘레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콘라드는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엘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멈칫.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엘레나가 콘라드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혹시 샤를롯 대제께서 여동생 분이 계셨나요?”
다름 아닌 루벤에서 마주쳤던 레아라는 귀신.
엘레나는 루벤의 일을 콘라드에게 설명할 때.
레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애초에 지금 자신도 믿기지 않는데 말해서 무엇할까.
하지만 마냥 믿지 않을 수만은 없었다.
자신의 방에 대한 비밀.
그건 정말로 방을 사용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엘레나의 물음에 콘라드가 답했다.
“샤를롯 대제의 여동생? 음···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만, 너무도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는 모르겠구나. 헌데 그건 갑자기 왜 묻느냐?”
그러나 콘라드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기사, 무려 천 년전의 일.
아무리 샤를롯과 관련되있다 한들,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요.”
“별 게 다 궁금하구나. 정 궁금하면 황궁 도서관에 가보거라. 그곳에 대제께서 남기신 기록들이 있으니 말이다.”
황가의 역사가 기록된 황궁의 도서관.
“여러모로 감사해요 오라버니.”
엘레나는 그곳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시안은 아리아가 보낸 편지를 들어보였다.
엘레나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정확히는 저 빌어먹을 모바일 영주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 편지와 함께 스토리 연계 퀘스트 ‘카일이 마주한 진실’이 반응했었다.
그러나 모바일 영주가 점검 중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퀘스트의 내용은 달라져있지 않았었다.
하지만 모바일 영주가 개같이 부활한 지금.
시안은 퀘스트의 내용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스토리 연계 퀘스트] - ‘카일이 마주한 진실’.
▶모종의 진실을 마주하고 홀연히 떠난 카일.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일은 뮤리엘을 찾아갑니다.
카일은 뮤리엘과 오랜 대화 끝에 다시 떠났고.
뮤리엘은 그 비밀에 관련한 무언가를 숨겨놓았습니다.
뮤리엘의 유적에 잠들어있는 비밀!
그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욧!?!』
<보상: 카일의 유산 + 뮤리엘의 유산>
.
.
“어···?”
그 오랫동안 변화가 없던 퀘스트의 내용이 바뀌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