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91화 (91/322)

§ 91화 - 재회(2)

아리아의 백옥 같은 손 위로 새하얀 신성력이 맺혔다.

에에에엥─!!

에에에에에에엥─!!!

시안의 손에 들린 악마 탐지기는 멈출 생각을 않고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레아가 요란하다, 요란하다 그러더니.

진짜 요란하기는 굉장히 요란했다.

그렇기에.

“이거 잘만 작동하잖아. 그런데 대체 뭐가 망가졌다는 거야?”

“너···!!”

바라보는 아리아의 두 눈으로 갖가지 감정이 스쳐지나간다.

놀람, 당황, 경악.

그리고 일말의 분노.

그러나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감정은 배신.

아리아가 시안을 향해 손을 뻗어보였다.

그와 함께 쏟아지는 새하얀 빛.

쇄도해오는 빛이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꽤나 진심을 담은 것 같았다.

시안은 곧장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교황청에 들어오기 전에 넣어둔 SS등급의 검을 꺼내었다.

사아아악─!

거뭇한 검신 위로 칠흑의 마기(魔氣)가 일렁인다.

시안은 쏟아지는 빛무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작─!

단칼에 베어지는 빛무리.

비록 아리아가 뮤리엘의 환생이라 불리고 있으나.

실제로 뮤리엘에 비할 바는 못 되었고.

시안이 다루는 마기(魔氣)는 최강의 아르나이즈라 불리던 카일의 마혼제법(魔魂制法)에 기반한 힘.

대마도사 엘로디조차 감히 닿을 수 없었던 근원의 마(魔)였으니.

사아아악─!

쏟아지는 빛들은 마(魔)에 삼켜져 사라질 뿐이었다.

시안의 검이 춤을 추듯 계속 이어졌다.

파앙─!

사가각─!

쏟아지던 빛들이 모조리 베어진다.

그렇게 베어진 빛은 힘을 잃어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후우···!”

시안은 긴 숨을 내쉬며 검을 갈무리했다.

“다짜고짜 공격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너···! 너 지금···!!”

아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쏘아낸 신성력.

그건 정말로 진심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력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나.

그럼에도 쉽사리 제압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다.

신성 제국의 성녀(聖女), 아리아.

시안이 카일의 후계자임을 차치한다면.

제국의 별이라 불리던 카이와 파나트.

그 둘을 제치고 조디악 소드의 선택을 받은 아리아였다.

그런 아리아가 진심을 담았다면.

감당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런데 시안은 그런 아리아의 신성력을 모조리 베어버렸다.

한 마디로 시안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뜻이며.

아리아가 알고 있는 시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리아가 전당에서 본 시안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설마하니 그 단기간에 이 정도의 성장을 했다?

그건 가히 불가능하다 단정지어도 되었다.

처음부터 힘을 숨기고 있었다면 또 모를까.

게다가 지금 시안이 쥐고 있는 검.

조금 더 정확히는 그 검 위로 일렁이는 오러.

푸른빛을 띠는 오러와는 달리.

지금 시안의 검 위로 일렁이는 오러는 명백한 검은빛이었다.

게다가 느껴지는 사이한 힘까지.

그렇기에 저건 분명한 부정의 마기(魔氣)였다.

에에에에엥─!

무엇보다 악마 탐지기는 여전히 시안을 향해 요란하게 울리고 있으니.

“나를··· 나를 지금까지 속인 거였어···?”

아리아의 오해는 더욱더 짙어져만 갈 뿐이었다.

에에에에엥─!

시안은 요란하게 울려대는 악마 탐지기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와 동시에 소리가 뚝, 하고 끊어졌다.

그리고 상당히 요란한 소리였음에도 다른 누가 듣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행인 상황.

그리고 상황이 이쯤되니 시안도 마냥 아리아를 윽박지를 수만은 없었다.

어쨌거나, 누가 봐도.

심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지 않은가!

“아니, 야 잠깐. 이거는 그러니까···!”

“시끄러워!!”

하지만 아리아는 시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하며.

눈가에 살짝, 맺혀있는 눈물하며.

어째, 아리아가 받은 충격이 상당한 것 같았다.

아리아는 손을 펼쳐보였다.

그래도··· 믿을 만한 이라 생각했었다.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보인 위령제와 그 고결함.

아리아의 능력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영지민을 위해서 사용하는 따뜻함.

여전히 재수 없고, 꼴보기 싫고.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얄미웠지만.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조금은 믿을 만한 남자가 아닐까···? 생각했었으니까.

그런 이가 사실은 악마라고 하니.

아리아는 이 충격을 뭐라 설명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오해였음에도.

아리아는 그 진실을 알 방안이 없었으니.

“용서 못 해!!”

화아아아아악─!!

아리아의 전신으로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이번엔 정말 시안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방 안 전체가 새하얀 신성력으로 가득 차올랐다.

신성 제국 역사상 가장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이.

과연 뮤리엘의 환생은 환생이라는 걸까.

이건 못 피한다.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리아를 공격하는 것 뿐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야! 잠깐 진정을─!”

“시끄러워!!”

아리아는 고함을 내지르며 끊임없이 신성력을 쏟아내었다.

세상 모든 부정한 기운을 일시에 소멸시키는 절대적인 힘.

아무리 악마라한들 무사하지는 못하리라.

그렇게 터져나오는 신성력은 방안 전체로 터져나가 끝내 시안 마저 집어삼켰다.

털썩.

아리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과한 신성력 사용에 힘이 빠진 것도 있었거니와.

알 수 없는 허망함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왠지 모를 서운함과 배신감.

또한 가슴 속에서 휘몰아치는 알 수 없는 감정.

그리고.

“아으윽···!”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리아의 고개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바라본 그곳.

“끄으윽···!”

잔뜩 일그러진 인상.

시안이 두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상당히 괴로워하고 있엇다.

“······ 어?”

아리아의 표정이 순간 벙쪄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멀쩡해서는 안되었으니까.

물론 저 모습이 어딜 봐서 멀쩡하다만은.

저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다.

방금 아리아가 터트린 신성력은 부정한 악(惡)을 소멸시키는 힘이었다.

악(惡)이 아닌 존재에게는 그닥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나.

악(惡)에 기반한 존재는 그 어떤 힘보다 절대적인 힘.

시안이 악마라면 그대로 소멸했어야 했다.

최소한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나뒹굴고 있어야했다.

“아윽···!”

저렇게 인상만 찌푸려서는 안되었다.

저것이 가능하려면 딱 하나.

“악마가 아니야···?

아리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이런 젠장···!’

시안은 지금 죽을 맛이었다.

내부에서 날뛰는 마기(魔氣).

마혼제법의 구결을 미친듯이 되뇌이고 있었지만.

이 날뛰는 마기를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마혼제법을 배움으로써 아리아와 마주하고 대화하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아리아의 신성력을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건 이야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카일처럼 마혼제법에 통달해 마기를 완벽히 제어할 수 있다면 모를까.

시안은 아직 마혼제법의 진행률이 14%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끊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있자니.

“너··· 어떻게···?”

아리아의 멍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끄윽···! 오해라고 했잖···욱!”

시안은 차마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끓어넘치는 마기는 아찔한 현기증을 넘어 진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모습을 지켜보던 아리아.

아리아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상황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시안은 딱히 아리아를 공격해오지 않았다.

악마의 정체가 밝혀졌다면 당장 아리아를 죽이려들어야함이 정상이었다.

그러나 시안은 방어만 했을 뿐.

아리아에게 딱히 이렇다 할 위협을 가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한 상황.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뭔가··· 확실히 오해를 했던 모양이었다.

왠지 모를 안도감.

그리고 동시에 드는 미안함.

“괜찮아···?”

아리아가 천천히 시안에게 다가갔다.

상당히 괴로워하는 얼굴이 아무래도 심각한 내상이라도 입은 것 같았다.

“치··· 워···!”

시안이 다가오는 아리아를 밀쳐내었다.

그와 동시에 아으윽···! 시안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미안···! 내가 금방 치료해줄게.”

하지만 아리아는 시안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비단결 같은 백금발의 머리가 시안의 얼굴을 스친다.

아찔한 아리아의 얼굴이 눈앞 시야로 가득찼다.

상큼한 향기가 시안의 코끝을 찔렀다.

가히 완벽이라 부를 만한 미모에는 향기마저 배어있는 걸까.

그렇기에 세상 모든 남자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비키··· 라··· 우욱!”

그리고 시안의 마기까지도 뒤흔들어 버리는!

시안은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신성력에 당해 들끓는 마기였거늘!

세상 강대한 신성력 덩어리가 다가오니.

“아윽···!”

마기가 도저히 버티질 못하고 미쳐날뛰기 시작했다!

마치 ‘저, 저, 저 망할 것을 치워!!! 당장!!!!’ 이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미모라고는 하나.

지금 시안에게는 해악하기 그지 없는 존재라.

“역겨우니까 그 얼굴 들이밀지 말라고···!!!”

시안은 거칠게 아리아를 밀쳐내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조금 늦었던 걸까.

“우웩···!”

시안은 끔찍한 통증에 저도 모르게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버렸다.

“우에에웩···!”

한 번 게워내기 시작한 속은 계속해서 안의 내용물을 쏟아내었다.

“······”

아리아는 머릿속이 어지러이 얽혀왔다.

지금··· 토하는 거야?

물론 내상을 입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만은.

문제는 지금 시안이 분명 역겨운 얼굴을 들이밀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은 즉.

‘내 얼굴이 역겨워서 토하는 거라고···?’

아리아는 우두커니 서서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아···! 하아···!”

시안은 소매로 입가를 훔쳤다.

지끈거리는 두통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일단 상태를 진정시키려면 아리아로부터 멀어져야했다.

심지어 이곳은 성역이라 불리는 교황청이니.

아예 교황청 밖으로 나가야할 것 같았다.

“따라오지마···!”

시안은 몸을 홱, 돌려 방을 나가버렸다.

#

“우리 성녀님은 잘 하고 계시려나···.”

둘 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 물러났던 로라.

또한 주변의 사제들과 신성 기사들도 모두 물렸던 로라였다.

그렇기에 조금 더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두고 싶었지만.

지금 로라는 시안과 아리아가 있는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히르 대주교님도 남부로 가시겠다니···.”

다름 아닌 라히르 대주교의 전언을 전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유례없는 역병이 돌고 있는 남부.

이에 아리아가 지원을 보내야한다고 피력했지만.

라히르 대주교는 그럴 수 없다며 그런 아리아에 맞섰다.

끝내 아리아가 직접 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 상황이거늘.

그런데 갑자기 이제 와 직접 가겠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로라는 어느덧 시안과 아리아가 있는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크를 하려던 바로 그때.

벌컥!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며 시안이 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무슨 일이었던 걸까.

땀이 범벅으로 흘러 머리칼이 죄다 젖어있었고.

숨은 왜인지 헐떡거리고 있었다.

방 안에서 격한 무언가를 하고 난 직후인 것 같았다.

‘대체 뭘···?’

이윽고 시안이 로라를 한 번 슬쩍,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큼, 걸음을 옮겨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로라는 그런 시안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 살며시 방 안을 살폈다.

방 안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아리아.

아리아는 멍하니 시안이 떠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한 왜인지 옷가지는 헤져있었고.

비단결 같은 백금발의 머리 또한 여기저기 헝크러져 있었다.

이 또한 격한 무언가를 하고 난 직후인 것 같았다.

‘대체 뭘···?’

로라는 대체 둘이 방 안에서 뭘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서, 성녀님···?”

로라가 아리아를 불렀다.

이윽고 아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보였다.

그리고 진짜, 정말 왜일까.

아리아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

“하여간 쟤는···.”

방 문 밖을 나선 시안은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오해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다짜고짜 공격을 해오지 않나.

심지어 진심으로 신성력을 뿜어대는데.

하마터면 그대로 성불할 뻔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무리 아리아가 뮤리엘의 환생이라 한들.

설마하니 카일의 마(魔)에 범접할 수 있겠냐만은.

아직 진행률이 높지 않은 시안으로서는 버티기 힘든 종류였다.

“아윽···! 계속 속이 들쑤시네.”

꽤나 강대한 신성력을 맞아서 그런걸까.

아리아로부터 충분히 멀어졌음에도 몸 상태가 영 말이 아니었다.

가슴 께는 무언가에 콱, 틀어막힌듯 답답했고.

속은 공기가 빵빵하게 들어차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게다가 주변으로 느껴지는 신성력까지.

역시나 교황청 밖을 완전히 나가야할 것 같았다.

시안은 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야?”

그대로 길을 잃어버렸다!

시안은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봤다.

일단 넓기는 드럽게 넓었거니와.

죄다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도무지 나가는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 로라가 안내했던 길을 되짚어왔다 생각했거늘.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젠장···.”

한시라도 교황청 밖으로 나가 날뛰는 마기를 진정시켜야하거늘.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

시안은 일단 되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여긴 또 어디야?”

시안은 도무지 알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

상당히 외져있는 곳으로 그 많던 사제들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교황청 내부의 사람들도 딱히 오지 않는 곳인 것 같았다.

“하아···.”

시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지나가는 사제에게 길을 물어봐야할 것 같았다.

괜히 길을 물어봤다가 ‘아니 형제님. 안색이 좋지 않으신데 괜찮으십니까?’ 로 시작되는 사제의 오지랖과 더불어.

괜히 또 신성력에 마기가 날뛸까 혼자 해결하려 했건만.

시안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어디론가 바삐 움직이는 사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안은 그 사제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흠칫.

시안의 감각으로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이질적이라기보다는 조금 익숙한 기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빌어쳐먹을 신성으로 가득찬 교황청에서 그나마 익숙한 기운.

“······ 마기?”

저 사제에게서 마기의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시안은 정말 뭔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청에서 마기라니?

그것도 신성력을 다루는 사제가?

시안은 잠시 정신을 집중했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마기가 날뛰었으나 꾹, 눌러참았다.

그리고.

“진짜 뭐지?”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느껴지는 마기가 꽤나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마기라 하기엔 미묘했다.

시안이 다루는 본연의 마(魔)를 차치하고서라도.

어둠의 숲에서 느껴지던 마기(魔氣)와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악의(惡意)마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악마라고 하기엔 또 이상했다.

그간 시안이 만나본 악마.

악마 7군주, 나태의 누르비아.

부정의 악마, 리치(Lich).

이 둘에게서는 뚜렷한 악의(惡意)가 느낄 수 있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시안은 뚜렷한 악의(惡意)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기운.

그런 악의(惡意)라 하기엔 뭔가 미묘했다.

‘마족?’

그렇기에 떠올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였으나.

이건 또 말이 안되었다.

마족은 어둠의 숲에서 나올 수가 없었으니까.

어둠의 숲에서 나오는 순간 존재가 부정당한다.

심지어 이곳은 신성력이 가득한 교황청.

마족은 발을 들일 수조차 없었다.

쉽게 말해 악마의 기운은 아니었으나.

또 마족이라 할 수도 없는 기운이었으며.

인간에게서 느껴질 수 있는 기운이 아닌 무엇.

“뭐야?”

그러니까 뭔지 모를 기운이었다.

이윽고 사제가 바삐 걸음을 옮겼다.

시안은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 사제를 따라갔다.

그렇게 얼마 간을 따라갔을까.

사제가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

시안은 짐짓 모르는 척 그 방 앞을 지나쳤다.

그러자.

-성녀가 직접 남부로 간다는 모양이군.

-뭐라고? 성녀가 직접?

방 안 쪽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래. 성녀가 하도 떽떽거려 라히르 대주교님이 홧김에 말을 꺼냈는데. 그걸 덥썩 물었나봐.

-잠깐. 성녀가 남부로 가면 안 되잖아. 거긴 지금···.

-그래서 라히르 대주교님께서 같이 따라가신다는 것 같아.

-어찌 이런···.

방 안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다시.

-계획을 앞당기실 생각인가?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야.

-이거 큰일이군. 그릇을 완성시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거늘.

바로 그 순간.

“처음 보는 얼굴이오만.”

갑자기 시안의 옆쪽으로 노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정갈한 법복을 입은 노인이 서있었다.

-누, 누구냐!

그 목소리에 방 안 쪽에서 놀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방 문 밖으로 사제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문 앞에 서있는 시안과 더불어.

시안에게 말을 건 존재를 발견하더니.

“라, 라히르 대주교님!”

사제들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귀하는 누구신데 여기서 남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이오?”

라히르가 시안에게 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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