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남부의 성자[聖子](3)
사제와 치료사.
이름부터가 서로 다른 이들이었다.
그러나 서로 간의 공통된 특징이 하나 있었으니.
다름 아닌 둘 모두 사람을 살리는 고귀한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사제는 신성력을.
치료사는 의학의 힘을.
각기 방법은 다르나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이들.
허나, 같이 사람을 살리는 고귀한 이들이라해도 모두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신성력은 말 그대로 신의 힘.
간단하고 빠르게 사람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치료사들의 치료는 느리다.
제 아무리 명의라 한들 외상에는 살을 째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이처럼 같이 사람을 살리는 고귀한 일이라고는 하나.
명백한 차이가 있으니 둘 사이에서도 위 아래의 서열이 확고했다.
따라서 귀하고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사제를.
귀하고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사제를.
천하고 가난한 이들은 치료사를 찾는다.
이것이 대륙에 만연하게 퍼져있는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곳, 신성 제국.
신을 추종하는 이들이 모여 이룩한 국가.
그러나 결국은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라.
만물은 평등하나, 만인은 평등하지 못했고.
신은 만물을 사랑하나, 인간은 만인을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니 신성 제국 또한 위와 같은 현실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수데린 마을.
그 마을에 위치한 한 치료소.
“역병의 기세가 꺾이질 않고 있소.”
“어떠한 약을 써도 백약이 무효하니···.”
“이를, 이를 대체 어찌 해야한단 말인가.”
까마귀 가면을 쓴 치료사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부리를 맞대었다.
“허어···.”
“하아···.”
그러나 한숨만 새어나올 뿐.
별 다른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렇게 적막만이 감도는 가운데.
“······ 아무래도··· 태워야할 것 같소.”
누군가 나지막히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새 부리들이 퍼뜩, 치켜들어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일제히 겨누어졌다.
“태우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설마 지금 사람들을 산 채로 태우자는 건가?”
쏟아지는 질문에, 하나의 새 부리가 위 아래로 끄덕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어떻게! 어떻게 산 사람을 태울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수를 썯서 살릴 생각을 해도 모자를 판에···!”
“자네가 그러고도 치료사라 할 수 있는가!”
신랄한 비난이 쏟아졌다.
언성이 높아지며 분위기가 격해진다.
하지만.
“방도가··· 방도가 없지 않나···.”
곧 이어진 말에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곳 수데린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역병.
아니, 수데린 마을 뿐만 아니라 남부 지역을 초토화시켜버린 역병.
유례가 없을 정도의 이 역병은 도무지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순식간에 퍼지는 전파력이며.
어마어마한 속도의 감염력이며.
갖은 약을 써도 모두 통하지 않았다.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었지만 진척이 없었다.
그야말로 속수무책.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도 살아야하지 않겠소.”
잔혹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역병에 걸린 환자들을 태워 역병도 같이 태운다.
그로써 추가 감염을 막는 것.
이것이 그나마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사제들은. 사제들은 어찌···.”
“사제들이 이곳에 오겠소.”
이곳 수데린 마을 사람들은 신민이 아니었다.
성금을 낼 돈이 없어 신민이 될 수 없었고.
그에 따라 교단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교단의 자비를 빌어 제국에 빌붙어 사는.
쉽게 말해 화전민들의 마을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곳에 사제들이 지원을 올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또 알고 있었다.
“사제들이 와도··· 소용이 없지 않겠소.”
까마귀 부리들이 일제히 아래로 떨구어졌다.
아무도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돈없고 힘없는 이들이 마주해야만 하는.
역병보다 더 지독한 현실.
현실에 기적 따윈 없었다.
이들에게, 우리들에게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최악이 아닌 차악.
그것만이 선택할 수 있는 운명이리라.
분명···.
분명···.
벌컥!
“지금···! 지금···!!”
그러하다고 생각했었다.
갑자기 치료소의 문을 열고 들려오는 말에 치료소에 모인 새 부리들이 까닥거렸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외침이 들려온 곳을 향했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치료소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다른 까마귀 가면이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지 새 부리가 들썩였다.
이윽고 들려오는 소리.
“지, 지금 성자님께서 마을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모인 새 부리들이 일제히 갸우뚱 기울어졌다.
다름 아닌 성자(聖子)가 방문했다는 말.
“성자···?”
“성자라니?”
성녀는 들어봤어도 성자는 처음 들어봤다.
“직접···! 직접 보시는 것이 빠를 듯 합니다!”
치료소에 모인 새 부리들이 서로가 서로를 겨누었다.
이윽고 약속이라도 한듯 곧장 치료소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치료소 밖으로 나온 이들.
그리고 금방 성자라 불리는 이를 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상 천지 까마귀 부리만 가득한 곳에서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는 존재가 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한 명은 그 미모가 초월적인지라 단번에 성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어딘가 어벙한 분위기를 지닌 금발의 사내.
솔직히 말할까.
저게 어딜 봐서 성자이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자면 그 미모 또한 성자여야했으니까.
물론 그리 못난 얼굴은 아니었다.
못났다기 보다는 제법 준수하게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성자라고 불릴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옆의 성녀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뭔가 싶은 것도 잠시.
“다음!”
성자가 크게 소리쳤다.
다음? 다음이라니?
까마귀 부리들이 좌우로 까닥거렸다.
그와 동시에 사제로 보이는 이들이 역병에 걸린 환자를 들 것에 들고 왔다.
그리고 성자 앞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성자가 환자에게 살며시 손을 가져다 대었다.
“다음!”
하는 외침과 함께 환자가 옆으로 이동한다.
그럼 성자 옆에 있던 성녀가 신성력을 뿜어낸다.
그러면.
“내, 내가 어떻게···?”
“여보!!!”
“아빠!!”
환자가 벌떡, 하고 일어났다!!!!
“뭐, 뭐, 뭐···!!”
“말도··· 말도 안돼···!!”
“저, 저, 저게 무슨···!”
까마귀 부리들이 쩌억, 벌어졌다.
저게··· 저게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역병이었다.
오로지 산 채로 태우는 것만이 역병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다음! 다음! 다음! 다음!”
그야말로 순식간에 환자가 치료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죽어가던 이를 벌떡, 일으켜 세우는 기적.
“서, 성자···?”
실로 성자(聖子)가 따로 없지 않은가.
치료사들은 그저 멍하니.
정말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만 봤다.
그리고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성자, 시안.
“다음! 다음! 다음! 다음!”
시안은 정말 미친 속도로 환자들을 치료했다.
역병의 씨앗을 굴복시킬수록 마혼제법의 진행률은 올라갔고.
또 마혼제법의 진행률이 높아질수록 그 속도 또한 덩달아 빨라지니.
“다음! 다음! 다음! 다음! 다다음!”
말을 하는 것조차 따라오지 못할 지경이었다!
띠링! 띠링! 띠링!
그와 함께 미친듯이 오르는 마혼제법의 진행률까지!
그렇게 시안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치료해나갔다.
그러다 문득.
“음?”
시안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새로이 보이는 환자.
“멍이 심하게 들었는데···?”
허벅지부터 옆구리까지 살이 새까맣게 죽어있었다.
어찌보면 살이 괴사한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음···.”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멍이란 몸 속에 고인 피라 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충격에 혈관이 터져 피부 안에 고여버린 피.
그렇기에 가만히 두면 몸에서 다시 흡수한다.
제 몸에 이로운 영양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신성력은 멍을 치료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만히 두면 몸에 이롭게 작용하는 것이니.
신성력이 이에 잘 반응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또한 신성력이 갖는 한계라 할 수 있었다.
‘······ 라고 엘리가 말했었지.’
뭐, 엘리도 어디까지나 추측에 기반한 설명이었다.
그러나 엘리 정도의 말이라면 기정 사실이라 봐도 무방했다.
“무슨 문제가 있어?”
그 순간 아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시안이 가만히 있으니 의아했던 모양이었다.
시안은 그런 아리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물론 아리아쯤 되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
아리아가 신성력을 퍼부으면 몸 자체를 그냥 초기화시켜버렸으니까.
그러나 저건 아리아가 특별한 것일 뿐.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리아라도 많은 신성력을 쏟아부어야할 터.
괜히 힘을 빼기 보다는 이 환자는 치료사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았다.
사제와 치료사.
사람들은 이 둘의 서열을 나누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렇듯 어떤 면에서는 치료사가 사제보다 뛰어날 때도 있었으니까.
서로 역할이 다를 뿐이다.
영지의 엘리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기적의 치료원 Lv.4을 등에 업은 엘리는 명의이자, 사제라봐도 무방했지만.
뭐, 어쨌든.
“이 분은 저쪽 치료사분들께 맡길게.”
시안은 저 멀리, 까마귀 부리를 들고 있는 치료사들을 불렀다.
그렇게 사제와 치료사.
그 둘이 각기 다른 영역을 도맡아 치료하니.
수드렌 마을에 드리운 역병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수드렌 마을만의 일이 아니었다.
시안은 역병이 창궐한 남부 전역을 쏘다녔고.
그에 따라 순식간에 역병을 몰아내었으니.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꺾이지 않았던 역병의 기세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황이 이쯤되니.
“성자님께서 남부의 역병을 싸그리 몰아내셨다며?”
“글쎄, 말도 말라니까! 성자님께서 손만 대시면 역병이 달아나는 거 있지!”
“세상에나 세상에나!”
남부 전역으로 시안의 이름이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맞어 맞어! 우리 딸내미들도 모두 성자님이 살려주셨다니까!”
“참으로···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셔···.”
“심지어 더 아픈 사람이 없냐며 눈에 불을 키시며 역병 환자를 찾아다시는데···. 힘드실텐데도 그렇게까지 하시니···.”
그리고 본디 소문이란.
한 번 퍼지고 나면 생명을 얻어 제 멋대로 퍼져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심지어 며칠 밤낮을 새가며 아픈 환자들을 돌보시더라니까!”
“또 그뿐이야? 고름 투성이의 환자 몸을 만지시는데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으신다나봐!”
“우리 같은 천한 이들에게도 그 은혜를 나눠주시는데···.”
“정말 성자(聖子)님이 따로 없으셔!!”
사람들은 시안을 성자(聖子)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때문일까.
띠링!
《남부 지역에 당신의 이름이 끊이질 않고 들려오고 있습니다아악!!》
《명성 포인트 + 3,000 P》
《명성 포인트 + 4,000 P》
《명성 포인트 + 5,000 P》
《명성 포인트 + 2,000 P》
《명성 포인트 + 3,000 P》
《명성 포인트 + 6,000 P》
.
.
.
명성 포인트가 시도 때도 없이 오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혼돈! 파괴! 망각···!의 성자아아아?!!》
모바일 영주가 살짝 오류를 일으켰지만···.
뭐, 아무튼.
마혼제법의 진행률과 더불어 명성 포인트까지.
이건 정말이지.
“개꿀인데?”
실로 개꿀 중에 상개꿀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
“세드진 마을의 역병이 잡혔다고 합니다.”
“게스두르 마을 또한 그러하다고 합니다.”
“로위 교구 지역에 속한 모든 마을에 역병이 사라졌다고합니다.”
“허어···.”
속속들이 들려오는 보고에 라히르가 탄성을 내뱉었다.
아리아를 따라 남부로 지원 온 라히르 대주교.
라히르는 가만히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순식간에 잡혀버리는 역병의 기세.
이제 역병이 남은 지역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기세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힐 터.
사실상 남부에 창궐한 역병은 끝이 났다 할 수 있었다.
“어찌 이런···.”
라히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역병.
이 역병은 치료할 수가 없는 역병이었고.
또 치료 되어서도 안되는 역병이었다.
그런데 웬 시덥지도 않은 놈팽이가 순식간에 해결해버렸다.
말 그대로 순식간이요 파죽지세였으며.
속된 말로 뚝딱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라히르와 황혼 교파의 입장이 꽤나 난처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것도 한 게 없었으니까.
호기롭게 아리아를 돕겠다 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듣자하니 미천한 치료사들 또한 활약을 하고 있다 들었다.
그런데 정작 라히르를 비롯한 황혼 교파의 사제들.
지원해주겠다 해놓고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렇다고 따로 행동하기에도 뭐한 상황이었다.
저 성자라 불리는 시안이 아니면 역병을 치료할 수가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이도저도 못하고 있으니.
“허어···.”
그야말로 난처하다 못해 곤란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해서 이 일을 어찌해야하나.
라히르의 고민은 깊어져만 가던 그때.
“대주교님. 라히르 대주교님!”
한 사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
“지금 레이첼 추기경께서···!”
라히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성자님 이거!”
한 소녀가 시안에게 감자 하나를 건넸다.
어제까지만 해도 역병에 걸려 생사를 오고 갔던 작은 소녀였다.
“울 엄마가 삶아준 감자인데요! 성자님 드리려고 가져와써요!”
그러나 지금은 그 여느 때보다 활기찬 소녀였다.
울퉁불퉁했던 얼굴 또한 아리아의 신성력 덕분인지.
그 흔적을 찾기조차 힘들었다.
시안은 소녀가 건네는 감자를 받아들었다.
큼지막하니 잘 익은 감자.
“고마워. 잘 먹을게.”
“헤헷!”
소녀가 귀엽게 웃으며 폴폴, 저 만치 뛰어갔다.
괜시리 새어나오는 미소.
시안은 소녀가 준 감자를 한입 베어물었다.
“웅, 괜찮네.”
꽤 괜찮았다.
물론 다나가 만들어준 음식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랐으나.
그래도 고소하고 짭쪼름한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시안은 감자를 다시 한 입 베어물며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보자···.”
[마혼제법(魔魂制法) 진행률 47.86% (+21.08%)]
무려 47%에 달하는 진행률.
처음에 14%의 진행률임을 감안하면 무려 30%가 넘는 어마어마한 진행률을 올린 셈이었다.
하지만.
“예상만큼은 못 올렸네.”
남부 전역을 들쑤신 것에 비해서는 많지 않은 진행률이있다.
예상대로라면 거의 수료에 가까웠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47% 대에 머문 이유는 단순했다.
“점점 진행률이 느리게 올랐단 말이지.”
처음 환자 한 명당 0.01%가 올랐던 진행률.
하지만 반복하면 할수록 0.007%로 떨어지더니.
0.005%, 0.003%.
급기야 이제는 환자 한 명당 0.001%의 진행률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뭐.
“이게 어디냐.”
14%에서 빌빌 거렸던 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또 전설 업적에 수많은 명성 포인트도 얻었고.
무엇보다 지금 시안의 손에 들린 감자.
“루벤의 음식과는 다른 맛이 또 있네.”
이 감자를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시안은 감자를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그렇게 게 눈 감추듯, 감자를 다 먹은 뒤.
시안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장족의 발전을 한 마혼제법의 진행률.
그 때문인지 마기가 상당히 짙어져있었다.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시안 스스로가 느낄 수 있었다.
또 그뿐일까.
역병의 씨앗을 굴복시키면서 마(魔)를 다루는 능력 또한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 덕분에 더욱 날카로워진 감각까지.
시안은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이윽고 짙고도 짙은 마기가 시안의 손위로 일렁였다.
기사의 경지는 크게 5단계로 나눈다.
비기너, 유저, 엑스퍼트,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
시안은 마혼제법을 습득함으로써 비기너(Begineer)의 경지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사아아악─!
어둠보다 더 어두운 칠흑의 마기가 일렁인다.
시안의 뜻에 따라 마기가 움직인다.
오러를 느끼고 단순하게 다룰 수 있는 것을 넘어.
의지로써 오러를 다양한 형태로 다룰 수 있는 경지, 유저(User).
시안은 지금 유저(User)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시안은 끌어낸 마기를 흩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선명한 감각.
대충 중급···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정확히는 상급의 문을 두들기고 있는 단계.
초급을 건너뛰고 곧바로 중급에 진입한 것도 모자라 바로 상급에 발을 걸친 것.
“좋았으!”
시안은 상당한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남은 마을들도 빨리 치료해야지.”
물론 이제 마혼제법의 진행률은 더디게 올랐으나.
단지 그것 때문에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시안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멈칫.
일순간 시안의 감각으로 기묘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누군가가 시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새하얀 백합을 닮은 머리색의 여성.
그와 느껴지는 화사한 분위기.
그러나 동시에 느껴지는 차분한 분위기는 어딘가 차갑기까지 했다.
그 때문일까.
“당신이 남부의 성자라 불리는 이인가요?”
들려오는 목소리에 섬뜩한 서늘함이 깃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