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마검사...?(2)
오슬리는 뛰쳐나가다시피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막사 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어라?”
막사 밖에 서있는 시안과 마주칠 수 있었다.
그 옆으로 서 있는 기사까지.
아무래도 기사와 함께 직접 찾아온 듯 싶었다.
이윽고 시안이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오슬리에게 말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만, 급한 일이 있으신 겁니까?”
“······ 들어와라.”
오슬리는 다시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막사 안으로 들어간 시안.
시안은 먼저 앉아있는 벤딩턴을 볼 수 있었다.
오슬리는 벤딩턴의 옆으로 가 자리했다.
거대한 덩치에 걸맞는, 정말 곰이나 앉을 법한 커다란 의자.
시안은 그 정도까지는 필요 없었기에 적당한 의자에 가 자리했다.
이윽고 오슬리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흑마법의 배후를 밝혀내었다고.”
“그렇습니다.”
“대체 어떻게?”
“뭐··· 어쩌다보니···.”
시안은 대충 얼버무리며 말을 흐렸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지.
그리고 굳이 설명이 필요한지도 의문이었다.
실은 제가 신성 제국에서는 성자(聖子)라 불리는데.
그때 역병을 치료한 사람들입니다.
아뇨, 의학적 지식이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해야할 것이 분명했다.
현상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법사들.
그러니까 파나트라면 또 모를까.
시안에게는 영 맞지 않는 일이었다.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쩌다보니라···.”
하지만 오슬리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기사가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한다만.
그렇다고 단순 무식하다는 뜻은 또 아니었다.
애초에 무슨 짓을 해도 입을 열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오슬리가 눈앞에서 검을 들이밀어도 입을 꾹, 닫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안에게는 바로 입을 열었다.
오슬리는 ‘혹시 시안도 흑마법의 세력과···?’ 라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벤딩턴이 설명을 잘해준 덕분인 것일까.
아니면 아까 성자라는 말을 들어서 일까.
“처음부터 무언가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오슬리는 의심 정도에서 그칠 뿐.
그것에 대해 추가로 캐묻거나 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그런 과정과 설명이 아니었으니까.
“누구지?”
오슬리의 전신에서 끔찍한 기세가 터져나왔다.
시안을 항한 것이 아닌, 그 배후를 향한 분노였다.
그리고 시안은 그런 오슬리를 이해했다.
시안도 이곳까지 오면서 북부가 어떤 상태인지.
또 북부인들이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두 눈으로 봐왔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안은 오슬리의 분노를 이해했고.
또 그렇기에 시안은 이렇게 직접 오슬리를 찾아온 것이었다.
“음··· 누구라고 특정지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특정 지어 말할 수 없다? 그게 무슨 의미지?”
“일단 말씀은 드리겠습니다만, 그래도 저와 같이 직접 보심이 나을 듯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사실 저도 긴가민가해서 직접 만나봐야 할 것 같기도 해서요. 그 전에···.”
시안은 오슬리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일단 각하께서 생각하시는 배후··· 의 개념은 아닙니다.”
“배후의 개념은 아니다?”
“정확히는 배후가 아닌지, 그것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시안은 곧장 말을 이었다.
“엘프입니다.”
“엘···프?”
오슬리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건 옆에서 듣고 있던 벤딩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프라는 말.
엘프는 대륙에서 상당히 보기 드문 종족이었다.
심지어 인간들을 혐오하는 터라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 엘프가 배후다?
“설마 엘프가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도 긴가민가 하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니···.”
시안은 오슬리의 등에 달려있는 대검을 바라봤다.
거의 시안의 키와 견줄만한 크기의 대검.
쉽게 말해 성인 남자 하나를 휘두르는 격이었다.
오슬리가 마스터 중급의 실력자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사람이 휘두를 만한 것이 못 되었다.
뭐, 어쨌든.
“만나더라도, 등에 매신 그 대검은 조금 뒤에 꺼내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오슬리는 북부의 변경백이자 마스터 중급의 실력자.
그런 오슬리가 검을 꺼낸다는 건, 단순히 검을 꺼낸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괜한 오해가 생겨 보지 않아도 될 피를 봐야할 수도 있는 일.
그러니.
“일단 대화를 해보라는 뜻이냐.”
“그렇습니다.”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슬리는 그런 시안을 가만히 바라봤다.
잠시 내려앉는 정적.
비록 오슬리의 분노는 그 여느 때보다 서슬퍼렀으나.
북부의 변경백이라는 자리는, 때론 그 분노를 다스려야할 때가 있는 법.
“······ 좋다.”
끝내 오슬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
사람들에게 들은 장소.
그러니까 엘프를 만날 수 있는 장소는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북쪽으로 하루 정도를 더 올라가야했다.
그리고 행여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그러니까, 엘프의 도움이 필요하면 이곳을 찾아오라며 알려준 장소라고 사람들은 말해주었다.
‘엘프들이 사람들을 도와줬다?’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혐오했다.
자신들을 잡아다 노예로 쓰는 인간들을 좋아할리가 있겠는가.
다짜고짜 공격하지는 않을지언정 기본적으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렇게 선뜻 인간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가?’
그렇다고 보기엔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그들은 정말로 엘프를 은인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눈앞에 검을 들이밀어도 입을 열지 않을 정도였으니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음···.’
시안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지만···.
역시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엘프가 있다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런 시안을 따라 나선 이들.
일단 대화가 우선이었기에 인원은 최소한으로 꾸렸다.
시안과 더불어 북부의 변경백, 오슬리 백작.
그리고.
“대체 어찌 안 겐가?”
로르실트의 파나트였다.
파나트가 시안의 옆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파나트의 옷은 굉장히 가벼웠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털옷으로 낑겨입은 시안과는 달리.
파나트는 정갈한 로브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심지어 로브에 달린 후드를 쓰지도 않았다.
농담이 아니라 한 시간도 못 가, 얼어 죽기 딱 좋은 복장이었다.
그런데 파나트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달달달, 떨기는 커녕 땀 마저 흘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 마법을 사용한 듯 싶었다.
‘저건 부럽네.’
오러로는 할 수 없었으니까.
물론 오러를 끌어올리면 어느 정도 추위를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신체가 추위를 오래 버티게 해줄 수 있을 뿐.
추위 자체를 없애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안은 불어오는 칼바람에 몸을 여미며 말했다.
“무얼 말씀이십니까?”
“사람들이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네.”
시안은 살짝 고개를 돌려 파나트를 바라봤다.
의문으로 가득한 파나트의 표정.
순수한 마법사로서의 호기심과 동시에.
시안은 그 안에 깃든 한 가지 사실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무얼··· 말인가?”
“사람들이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말입니다.”
파나트와 같은 질문이었지만 그 의미는 달랐다.
처음 파나트는 사람들이 흑마법을 사용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나트는 시안에게 이렇게 물었어야했다.
‘정말 사람들이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나?’
그것도 아니면.
‘네 까짓게 뭘 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던가.
실제로 아르카닉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
그들은 저 두 가지의 반응들을 보였다.
그런데 지금 파나트는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들이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았냐, 이리 물었다.
즉, 파나트는 이미 사람들이 흑마법을 사용한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 확신한 건 아니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뿐.”
역시나 파나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마따나 확신이 아닌, 가능성 정도에서 그친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죽이려던 오슬리를 막아섰던 거였나.
“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건가?”
파나트는 다시 시안에게 물었다.
따지고 보면 파나트조차 가능성만 생각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시안은 그 사실을 단번에 꿰뚫어보였다.
그것도 같은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라는 자가 말이다.
파나트의 입장에서는 궁금해 미칠 지경일 터였다.
시안은 딱히 숨길 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광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광기?”
파나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광기에 사로잡힙니다. 어둠의 마나가 갖는 성질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허나, 광기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건 그렇게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그건 광기를 컨트롤 한다는 말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게 가능한 건 악마들 뿐이다.
정확히는 악마 7군주들.
그리고 그렇게 숨길 수 있다 한들.
시안의 감각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파나트가 눈을 크게 떠보이며 놀라보였다.
그리고 그런 파나트의 반응에 시안도 조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파나트의 반응.
시안이 어둠의 마나에 대해 어찌 그렇게 잘 아는지에 대한 놀람이었다.
그리고 그 놀람에 기반한 근거.
‘이거···.’
어째, 직접 그 광기를 경험해본 듯한 말투였다.
아무래도···.
파나트는 직접 어둠의 마나를 사용해본 것 같았다.
연구 혹은 호기심.
파나트는 어둠의 마나에 손을 대었고.
그 안에 담긴 광기를 직접 겪어본 것 같았다.
“혹시 어둠의 마나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설마.”
파나트는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어둠의 마나는 절대 다루어서는 안되는 종류였으니까.
하지만 시안은 확신할 수 있었다.
파나트는 어둠의 마나에 관심이 있다.
관심이 있다 못해 직접 사용해봤다.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목적은 단 하나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진리.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
그 진실을 인간 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
그리하여 모든 이치를 법칙으로서 정의하고.
모든 진리를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세상 모든 마법사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리고 어둠의 마나는 아직 미개척된 영역이었다.
그 힘을 다룰 수 없다 알려진 종류였다.
오직 천 년전.
아르나이즈였던 엘로디만이 그 힘을 사용했다.
그 말은 즉.
그 힘을 다루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비밀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는 마법사들이 밝혀내야 할 오랜 숙원과도 같은 일.
허나, 한 가지.
시안만은 그 진실을 알고 있었다.
‘엘로디의 기록에 뭐라 적혀있었더라.’
시안은 기억을 되짚으며 지나가는 말투로 툭, 내뱉었다.
“어둠의 마나는 자연의 마나에 반하는 성질을 가진 마나를 의미합니다. 또한 존재의 마음을 제물로 삼죠.”
그러자 파나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로 뚜렷한 호기심이 엿보였다.
“마음이 격하게 끓어오를수록 어둠의 마나는 빨리 쌓이고, 그렇게 어둠의 마나는 광기로 존재를 집어 삼킵니다. 해서 어둠의 마나는 오랜 시간 배척되어 왔죠.”
파나트는 가만히 시안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혹시 그거 아십니까? 어둠의 마나를 사용하고도 광기에 미치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요.”
“대마도사 엘로디를 말하는 겐가?”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엘로디도 맞는 말이지만 그 이전.
“악마들입니다.”
“악마···?”
처음 엘로디가 어둠의 마나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을 때의 상황이었다.
엘로디는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악마들을 봐왔고.
그들에게 광기만이 아닌, 냉철한 이성이 존재함에 호기심을 품었었다.
결국 엘로디는 카일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고.
카일이 엘로디에게 말하길.
“전제가 틀렸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전제가 틀렸다···?”
시안은 파나트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마트 폰에서 보았던 엘로디의 기록.
카일이 엘로디에게 해주었던 이야기를 조금 각색해서 말해주었다.
추가로 엘로디가 이에 관해 세세하게 정리한 내용도 있었는데···.
‘뭔소린지 알아먹어야 말이지.’
그건 시안이 이해하지 못했다.
뭐, 스마트 폰을 꺼내 엘로디의 기록을 볼 수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또 없었다.
그래도 기억나는 대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어, 어, 어찌···?!”
파나트는 그것만으로도 꽤나 충격이었나보다.
파나트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떠졌다.
파르르, 떨리는 동공이 오롯이 시안을 향했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록 단편적인 지식이라고는 하나.
시안이 말해준 것은 엘로디의 지식이었다.
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진리.
오직 신만이 알고 있는 진실.
그 진실을 인간 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것.
마법사란 어찌보면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신의 권위에 가장 근접한 자.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보았다고 전해지는 자.
바로 천 년전의 아르나이즈.
대마도사 엘로디다.
제국의 별이든, 나발이든.
당장 에그리트를 데려다 놓아도 마찬가지였다.
“마, 말도 안돼··· 자네···!”
에그리트도 파나트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심지어 최강의 아르나이즈라 불리던 카일.
그런 엘로디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었던 근원의 마(魔).
그것에 대한 설명도 있었으니.
“자네 설마···!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겐가!”
파나트가 시덥지도 않은 오해를 해버렸다.
“······ 예?”
시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파나트를 바라봤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털옷을 낑겨입었게?
당신처럼 보온 마법인지 뭔지 모를 마법을 사용했겠지.
“이건··· 이건 도무지 기사라는 자가 가질 수 있는 마법적 이해도가 아니네···.”
그런데 파나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상의 법칙을 이해하는 마법사.
그리고 검과 마법.
정확히는 오러와 마법.
이 두 가지는 병행될 수가 없었다.
오러란 개인의 상상에 불과한 것들을 끌고 와, 마치 세계의 법칙인 것 마냥 현실에 강림해낸 것.
세계의 법칙 따위는 무시해버리는 그야말로 터무니 없는 힘이었다.
헌데 마법사들은 이미 이해해버렸다.
현상의 준엄한 법칙은 뒤틀 수가 없음을.
그것이 본디 불가능한 일임을.
이미 저 뛰어난 머리로 이해해버렸다.
그러니 마법과 오러는 병행될 수가 없었다.
이건 절대적인 법칙이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시안의 모습.
시안은 마법적인 현상을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파나트의 이해를 뛰어넘는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단순히 아는 척 재는 게 아니라, 확실히 ‘이해’했다는 것이었다.
이 세계의 준엄한 법칙을 정립하고 ‘이해’ 한 것이다.
그럼에도 동시에 오러의 힘을 다루고 있었으니.
“마검사가 실존했다고···?”
그러니 이런 오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파나트가 경악 어린 눈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딱 봐도 말도 안되는 오해를 하고 있는데···.
시안은 마법적 현상을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엘로디가 적어놓은 지식을 읽은 것에 불과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 됐다.
무슨 해명을 하냐.
나중에 자연스레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
시안은 그냥 고개를 저어버렸다.
시안이 파나트에게 어둠의 마나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단순했다.
보아하니 어둠의 마나에 대해 계속 연구할 것 같기도 했고.
괜히 연구하다 광기에 물들면··· 그것도 좀 곤란했다.
파나트 같은 천재가 광기에 물들면 세기의 악(惡)이 탄생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뭐.
해명을 위한 설명도 귀찮았고.
굳이 그럴 필요도 못 느끼겠고.
무엇보다.
“거의 다 온 모양입니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왔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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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으로 덮여있는 숲 속.
추위로 인해 나무들은 모두 헐벗어 앙상해져있었다.
솔직히 이 추운 곳에 나무들이 어떻게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죽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것인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이곳인가?”
오슬리가 물었고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고 했습니다만···.”
바로 그때.
저 멀리서 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슬리와 시안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뒤를 이어 파나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오슬리의 눈에 살짝 이채가 서렸다.
다름 아닌 시안의 모습.
시안은 자신과 똑같이 인기척을 감지했다.
파나트조차 한 박자 늦었던 것을 시안은 동시에 감지했다.
마스터 중급의 오슬리.
그 말은 즉, 시안의 감각이 마스터 중급에 버금간다···?
물론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금 다가오는 존재.
그 존재에게서 마(魔)의 힘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슬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렇기에 시안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 오슬리의 심정을 알지 못한 채.
시안은 저 멀리, 다가오는 존재를 바라봤다.
누군가 앙상한 나무를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날아오듯 다가오고있었다.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찰랑이는 머리칼과 가녀린 체형.
저 존재가 여인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윽고 여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보였다.
정확한 나이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젊음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피부는 주변에 내려앉은 눈처럼 희다못해 투명했고.
머리칼 또한 윤기가 흐르는 순백의 하얀색을 띠고 있었다.
똘망똘망한 두 눈과 더불어 뚜렷한 이목구비.
대륙 어디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미(美)의 여인이었다.
화사하다 못해 눈이 부신 순백의 여인.
그러나 옆으로 솟아있는 뾰족한 귀는 그녀가 인간이 아님을.
그녀가 엘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엘프의 눈동자가 앞을 향했다.
마주치는 시선.
“어라?”
엘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