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엘로디의 기록(1)
시안은 다시 한 번 퀘스트의 내용을 확인했다.
뮤리엘도 그렇고, 엘로디도 그렇고.
“마지막이 왜 다 이 모양들이야?”
끝이 썩 좋지 못했다.
천 년전, 세상을 구원한 6인의 아르나이즈.
신화 속에 담겨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찬란했다.
대륙을 혼란에 빠뜨렸던 악마들을 몰아내었고.
그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했으며.
세상에 둘도 없을 영웅으로 그 이름을 대륙에, 역사에 새겼다.
샤를롯은 심지어 자신의 제국까지 세웠으니.
이보다 찬란한 존재들은 대륙 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진실.
그리고 아르나이즈들이 맞이한 최후.
축복과 함께 떠났어야 할 아르나이즈들이었건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던 것일까.
“흠···.”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에이, 모르겠다.”
시안은 금방 고개를 털어버렸다.
천 년전의 사정을 지금와서 어찌 안단 말인가.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도 그런게 아니었다.
“인스티즈에 엘로디의 힘이 담겨있다는 말이지.”
퀘스트의 내용에 따르면 인스티즈에 엘로디의 힘이 담겨 있었다.
솔직히 시안은 처음에 ‘혹시 악마 7군주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난 뮤리엘처럼 악마 7군주가 개입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보아하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악마 7군주가 아닌 순전한 엘로디의 힘이 봉인된 것.
어째서 그 힘이 어둠에 물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더 문젠데?”
그래서 더 문제였다.
대마도사 엘로디.
신의 권위에 가장 근접한 자.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보았다고 전해지는 자.
그리고 기나긴 대륙의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았던 전설의 경지, 엑시드(Exceed).
엘로디는 마법사로서 엑시드의 경지에 닿은 아르나이즈였다.
강함만 놓고 비교한다면 악마 7군주와 비견된다.
그러나 악마 7군주는 현재로서 본연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대륙 어딘가에 감추어진 무언가로 인해 현신이 방해받고 있었다.
또한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는 헬렌이.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는 뮤리엘이.
각기 저마다 또 다른 제약들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엘로디의 힘은 그렇지가 않았다.
인스티즈에 봉인된 엘로디의 힘은 방해가 없었다.
천 년의 세월이 흘러 일부가 소실되었을지언정.
그에 따른 제약이 전혀 없었다.
뭐, 그래도 세월이 세월인지라.
엘로디의 힘이 고스란히 담겨있겠냐만은.
“그래도···.”
결코 가벼이 볼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지난 번에 마주한 루슈리아급은 될 터.
“음···.”
시안의 생각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바로 그때.
“시안.”
귓가를 간질이는 듯한 맑디 맑은 미성이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희다 못해 순백의 피부를 지닌 다크 엘프, 세라가 있었다.
다만 이번엔 세라의 모습이 조금은 달랐다.
다름 아닌 머리색이 순백색이 아닌 검은색으로 변해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순백의 머리색이 참 어울린다 생각했거늘.
지금 이렇게 보니 검은 머리가 더 어울리는 세라가었다.
“여기서 뭐해.”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숨 좀 돌릴 겸, 쉬고 있었어.”
세라가 시안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시안은 그런 세라를 가만히 바라봤다.
세라는 검게 변한 머리색과 함께 눈동자 또한 검은색으로 변해있었다.
존재의 영혼을 꿰뚫어 본다고 했던가.
어둠으로 물든 듯한 검고도 검은 눈동자였건만.
시안은 그 눈동자가 맑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
“응.”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뭐가 괜찮아?”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하여간, 얘도 참.
시안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이슨이 네 오빠라면서.”
“아.”
세라가 살짝 입을 벌렸다.
그러다 곧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빠가 다 말했구나.”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괜시리 발을 비비적, 거리며 땅을 문댔다.
“말 취소. 안 괜찮아.”
세라의 뾰족한 귀가 아래로 축, 쳐졌다.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시안은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나.
“알고 있었어. 오빠가 변해간다는 걸.”
세라가 툭, 하니 말을 내뱉었다.
영혼을 꿰뚫어보는 눈을 지닌 세라.
세라는 다이슨이 광기로 물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었어. 그래서 안 괜찮아.”
세라의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해있었다.
가느다란 발 또한 여전히 땅을 비비적 거리고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마··· 그래서 도와줬던 것 같았다.
야만족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인간들을 말이다.
자신의 오빠가, 일족이 저지른 참상.
아까 아스란디즈도 그렇고, 지금 세라도 그렇고.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과 죄책감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라는 다크 엘프 마을을 나가 사람들을 도와줬고.
그 과정에서 세라는 끝내 알게 된 것 같았다.
“오빠는 예전처럼 돌아올 수 없어. 설령 돌아온다해도, 오빤 너무도 많은 죄를 저질렀어.”
세라의 두 눈은 여전히 땅바닥을 향해있었다.
오랜 세월.
엘프들은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왔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되어왔다하여.
그로써 티없이 순수한 모습을 보인다하여.
“오빠는 마땅한 죄값을 치뤄야해.”
그것이 어리석거나, 멍청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세라와 아스란디즈. 아스란디즈과 세라.
“너무도 슬프지만 그래야만 해. 그래서 안 괜찮아.”
이 둘은 다이슨이 자신의 가족임에도 마땅히 책임을 다하려 하고 있었다.
되려 자신의 가족이었기에 직접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 같았다.
“어른스럽네.”
“그럼. 세라는 벌써 50살인걸.”
“······ 응?”
시안은 순간 몸을 멈칫, 거렸다.
“50살···?”
“얼마 전에 성인식도 치렀어. 세라는 어른이야.”
시안은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 엘프들은 인간과 수명 자체가 다르다.
짧게는 200년, 길면 300년을 살아간다.
드워프들보다 수명이 더 길었다.
시안은 가만히 세라를 바라봤다.
희다 못한 순백색의 피부.
피부는 아이와 같았고, 잡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또 작고 코는 바로 섰으며.
검은 눈은 큼지막하여 생기를 띠었다.
괜히 미(美)의 종족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구나.
··· 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게 50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의 외모는 아무리 많이 쳐도 20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어···.”
괜시리 불편해지는 거리.
‘에이 뭐. 레아는 천 살인데.’
하지만 시안은 금방 털어버렸다.
나이가 무에 중요한가.
그런 건 숫자에 불과했다.
아무튼.
“그래서 세라. 혹시 다이슨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시안은 신경을 꺼버리고는 세라에게 물었다.
북부를 뒤집어놓은 이번 사태.
결국 이 사태는 다이슨을 잡아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 다이슨이 있는 곳을 찾으면 단번에 해결될 일이었다.
세라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오빠가 인스티즈를 가져가 버렸어. 그 때문에 찾을 수가 없어. 아빠도 찾기가 힘든가봐.”
듣자하니 환계 마법을 펼친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환계 마법이라봤자 고작 환각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 다크 엘프 마을에 들어올 때를 생각하면 마냥 그렇지 않았다.
감각 마저 완전히 속이는 수준.
시안은 전혀 위화감조차 느끼지 못했었다.
그리고 다이슨은 인스티즈를 사용하고 있었다.
무려 엘로디의 힘이 담겨있는 인스티즈.
그 수준에 대해 말해 무엇할까.
숲지기인 아스란디즈 조차 지금까지 찾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한 마디로 다이슨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잠깐.’
시안은 순간 생각 하나가 번뜩였다.
다이슨이 가져간 인스티즈는 엘로디의 지팡이였다.
살아 생전 엘로디가 사용하던 지팡이.
그리고 엘로디의 힘이 담겨있는 지팡이.
그 말은 즉.
‘엘로디의 기록에 인스티즈에 관한 기록이 있지 않을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자신의 힘을 봉인해두면서 엘로디가 관련 사실들을 기록해두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시안이 살펴본 바.
엘로디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기록하는 기록충··· 이었으니까.
오죽하면 [모르쿠루의 야금술]도 기록해놓았을까.
뭐, 기록은 마법사들의 전형적인 특성이긴 하다만은.
엘로디는 그 정도가 과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니 그에 대한 사실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스티즈에 관련한, 엘로디만이 아는 사실들이 있을 터였다.
물론 엘로디의 기록은 천 년의 세월이 지나 소실되어 사라졌다.
여기 엘로디의 후손이라 불리는 다크 엘프들.
이들조차 엘로디의 기록은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보자···.’
시안은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엘로디의 연구소 Lv.1’에 접속.
곧장 엘로디의 기록을 살폈다.
【메테오 스트라이크 마법 연산식 증명.】
【시간 정지 마법에 대한 고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현상 세계의 법칙, 인과율(因果律).】
【기만과 설득. 마력과 오러의 근원.】
【써클(Circle)과 단전(丹田)의 차이.】
.
.
.
.
지난 번에 확인했던 정말 무수한 항목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스크롤을 계속 내리는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목록들.
‘파나트가 보면 까무러치겠는데.’
그리고 옆에서 딴짓하고 있는 세라까지도.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검색 기능을 켰다.
그리고 ‘인스티즈’를 입력.
곧 검색 결과가 떠올랐다.
[검색 결과 1개] - 【인스티즈(Instiz)】
“역시.”
있었다.
시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항목을 터치했다.
꾹.
《해당 지식은 연구소 Lv.2부터 열람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알림창이 떠오르며 기록이 열람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띠링!
《기록을 열람하시려면, 업그레이드를 해보세요!》
.
.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 에라이.”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시 얼려버릴까.”
싶었지만 금방 털어버렸다.
모바일 영주가 이러는 게 한 두번도 아니고.
지난 강화로 인해 골드를 죄다 날려먹긴 했었지만···.
저번에 듀라크에게 뜯어낸 300만 골드가 있었다.
업그레이드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한 번 하긴 했어야 했으니까.’
시안은 엘로디의 연구소 Lv.2의 업그레이드 가격을 확인했다.
그리고.
《엘로디의 연구소 Lv.2》 (1,000,000 G)
100만 골드라는 정신 나간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띠링!
《업그레이드를 하시려면~ 현질을 해보세요오~!》
.
.
“안 되겠다.”
시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시안의 행동에 세라가 물어왔다.
“어디가.”
“잠깐, 마을 밖에 좀 나갔다올게.”
“마을 밖?”
세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추우면 손상될 수도 있다고 해서.”
“추워? 손상돼? 뭐가? 우움··· 인간들 말은 너무 어려워.”
세라의 뾰족한 귀가 축, 아래로 쳐졌다.
오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리링!!!!
굉장히 다급한 모바일 영주의 알림음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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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수 밑둥에 자리한 숲지기의 방.
그곳에 오슬리와 파나트 그리고 아스란디즈가 모여 앉아있었다.
“그 말씀은···.”
파나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어 파나트가 아스란디즈를 바라보며 말을 내뱉었다.
“숲지기님도 다이슨을 찾지 못하신다는 겁니까?”
“지금까지도 계속 찾고 있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허어···.”
이어진 아스란디즈의 답에 파나트는 저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별 반 다른 이유가 없었다.
같은 마법사로서, 6위계(位界)에 닿은 마법사로서.
숲지기, 아스란디즈의 수준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최소 자신보다 윗등급.
어쩌면 가주, 에그리트와 버금가는 8위계(位界).
대륙 최강을 논해도 될 정도로 아스란디즈는 어마어마한 마법사였다.
그런데 그런 아스란디즈가 찾지 못할 정도다?
“어찌 그런···.”
그건 꽤나 중대한 문제였다.
아니, 중대하다 못해 심각한 문제였다.
일단 다이슨을 찾을 방법이 없다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리고 그 말은 즉.
다이슨이 숲지기, 아스란디즈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마법을 구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엇하나 만만치 않은 사실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북부 전역을 수색하면 그만이다.”
오슬리가 툭, 말을 내뱉었다.
오슬리도 파나트가 깨달은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마법사들이 기사들을 힘만 쓸 줄 아는 단순 무식쟁이라 부르긴 한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아냥 거리는 것일 뿐이었다.
애초에 마스터쯤 되면 멍청할리가 없었다.
그리고 북부 전역을 수색하자는 오슬리의 말.
솔직히 단순 무식한 방법이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저것밖에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북부 전역을 수색하는 시간이 문제긴 합니다만···.”
문제는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언제 또 어디서.
다이슨이 이상한 일을 벌일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북부 전역을 들쑤시면 다이슨이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아마 더욱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터.
그러다 다이슨이 북부를 넘어 제국 안쪽으로 스며들어간다면?
그땐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또 북부 전역을 수색한다한들.
다이슨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애초에 아스란디즈가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그러니 설령 눈앞에 있다 한들, 그것을 놓칠 가능성도 있었다.
한 마디로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
“......”
“......”
“......”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바로 그때.
벌컥.
“어라? 벌써 다들 모여계셨네요.”
방 문이 열리며 시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방에 드리운 어색한 분위기에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다이슨을 찾는 것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네.”
파나트는 시안에게 방금 오고 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 전 또 뭐라고.”
시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을 이었다.
“찾았습니다.”
“······?”
순간 파나트의 표정이 벙쪄버렸다.
그와 동시에 오슬리와 아스란디즈 또한 멍한 얼굴로 시안을 바라봤다.
“찾았··· 다니? 뭘 말인가?”
파나트가 조심스럽게 시안에게 물었다.
“다이슨요. 아, 찾았기보다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시안의 말.
“······?”
“······?”
“······?”
파나트와 오슬리 그리고 아스란디즈의 표정이 동시에 벙쪄버렸다.
그런 이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안이 곧장 등을 돌려 방을 떠났다.
“바로 가시죠. 아, 참.”
그러다 멈칫.
“그··· 여기 세계수 가지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잔가지라도 하나 좀···.”
시안이 멋쩍은 표정으로 아스란디즈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