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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127화 (127/322)

§ 127화 - 마왕[魔王]

산산히 깨어져 부서진 공간.

일순간 풍경이 뒤바뀌며 눈앞이 어지러이 얽혀왔다.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드넓은 평야.

그것도 초목과 식생들이 메말라 비틀어져 버린 황량한 황야였다.

창공에 떠있는 태양은 이글거리며 대지의 생물들을 말라비틀어버렸다.

차디찬 북부에서 보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사막이라면 또 모를까.

되려 방금 전, 휘몰아치던 눈보라의 풍경이 북부의 환경이라 할 수 있었다.

부서진 공간이 정말 환계의 공간이었던 것일까.

어쩌면 이 또한 새로운 환계의 공간이 아닐까.

공간에 간섭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에 개입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환계라하여, 환각이라하여.

단순히 눈속임이라 보면 안된다.

공간에 완전히 개입하여 간섭하는 그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눈속임이 아닌 왜곡된 현실이자, 사실이 된다.

감각이 뒤죽박죽 엉켜왔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일그러진다.

“어째서 저를 이해해주지 못 하시는 겁니까.”

그 사이로 뚜렷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한 남자가 황야를 가로지르며 걸어오고 있었다.

짙은 흑발의 남자.

아스란디즈와 세라를 닮은 다크 엘프.

그러나 순수한 세라와는 달리.

느껴지는 분위기는 냉혹하고 또 어두웠다.

“다이슨.”

아스란디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스란디즈의 아들이자, 세라의 오빠.

그리고 지금 이 북부의 사태를 벌인 주범, 다이슨.

다이슨은 내딛던 발걸음을 멈춰섰다.

주변을 훑듯, 다이슨의 시선이 좌에서 우로 향했다.

바텐베르크의 병사들과 아르카닉 마법 병단.

그리고 시안과 루벤의 기사들.

마지막으로 아스란디즈와 세라.

그들에게 이르러 다이슨의 시선이 멈추었다.

“인간들과 손을 잡으신 겁니까?”

다이슨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동시에 섬찟한 기세가 터져나왔다.

배신, 분노, 노여움.

부정의 감정들에 기반한 마력이 들끓어올랐다.

다이슨의 주변으로 시뻘건 광채가 빛을 발했다.

부르르, 떨리며 진동하는 빛은 마법사들의 마력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나태의 악마, 누르비아. 색욕의 악마, 루슈리아.

악마 7군주들이 발하는 광기와 사기에 훨씬 더 가까웠다.

다이슨의 광기가 일렁이며 새빨간 안광이 아스란디즈에게 향했다.

“아들을, 동족을 죽이고자 인간들과 손을 잡으신 겁니까!!”

콰아아아아아─!

다이슨의 외침과 함께 어마어마한 광기가 터져나왔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지며.

심연의 저편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공포가 드리운다.

일순간 아스란디즈이 한손을 위로 펼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짙은 어둠이 아스란디즈의 손에 맺히며, 다이슨의 광기를 집어삼켰다.

드리우던 광기가 주춤, 거리며 밀려난다.

다이슨의 살기 어린 눈빛이 다시 아스란디즈에게 향했다.

다크 엘프의 숲지기, 아스란디즈의 두 눈은 검었다.

반면에 다이슨의 두 눈은 붉었다.

아버지와 아들.

같은 검은 머리를 가진 다크 엘프.

둘의 시선과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 다른 힘을 가진 마력이, 충돌한다.

꽈아아아아앙!

크나큰 폭음과 함께 공간 전체가 떨려왔다.

영창도, 이렇다 할 술식의 완성도.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다.

의지, 그것 하나만으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마법이 시전되고 있었다.

다이슨이 손을 앞으로 활짝 펼쳤다.

붉은 마력이 손에 맺히며, 허공에 무수한 마력의 창이 생성되었다.

아스란디즈이 빠르게 손을 휘저었다. 검은 마력의 장막이 넘실거리며 주변을

쩌어엉! 쩌정!

맞닿은 순간, 마력의 창은 어둠의 장막을 뚫어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시군요.”

다이슨은 빠르게 인정했다.

다크 엘프의 숲지기이자 8위계(位界)의 대마법사, 아스란디즈.

현재 자신의 수준으로 아스란디즈를 감당할 수 없다.

다이슨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오른팔을 옆으로 펼치며 가진 바 마력을 이끌어내었다.

그와 동시에 파지직─!

손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안에서 기다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생명의 기운을 품고 있는 세계수.

그러나 지금은 그 무엇보다 강한 어둠을 품고 있는.

엘로디의 지팡이, 인스티즈(Instiz).

폭사하는 광기가, 마력이 인간의 인지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다.

“이, 이럴 수가···.”

“어찌··· 어찌 이런 힘이···!”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공포.

파지지직─!

인스티즈가 붉은 뇌전을 발하며, 다이슨의 손 위에 잡혔다.

새빨간 마력이 드리우며 주변의 공간을 잠식한다.

이윽고 다이슨이 손에 쥔 인스티즈를 앞으로 뻗어보였다.

콰콰콰콰콰콰콰─!!

형용할 수 없는 마력이 지팡이 끝으로 응축되며 전방위로 폭사한다.

끔찍한 광기가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그것은 존재의 정신을 검게 물들이며 의식을 잠식한다.

“으으윽···!”

“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 사방으로 터져나왔다.

바텐베르크의 병사들.

아르카닉 마법 병단의 마법사들.

그들 모두가 터져나오는 광기를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오슬리와 파나트조차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쩌어엉!

아스란디즈이 급히 어둠을 끌어올려 드리우는 광기에 대항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엘로디의 힘이 봉인된 인스티즈.

그 힘은 아스란디즈조차 어찌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때.

사아아아아아─!!

짙고도 짙은 마기가 사방으로 드리운다.

먹구름과도 같은 칠흑의 안개가 피어난다.

사방을 새까맣게 물들이는 어둠.

공간을 잠식한 다이슨의 광기가 크게 들썩인다.

사아아아아─!

영역을 지배한 마력이 소멸하며, 새로운 어둠이 드리운 공간을 장악한다.

“허억···! 허억···!”

“내가 방금···?”

그와 동시에 광기에 물든 사람들의 정신이 하나 둘씩 일깨워졌다.

“이 무슨···?”

다이슨이 당황하며 인스티즈의 힘을 끌어올렸다.

마력이 짙어지며 광기가 어둠을 새빨갛게 덧칠해갔다.

그러나.

콰자작─!

끝내 힘의 격류에 휘말려 찢겨진다.

‘찢겨···져? 힘의 차이로?’

아니. 그런게 아니다.

다이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힘의 차이가 아니다.

격의 차이다.

이건 격의 차이로 벌어진 일이었다.

그것도 까마득한, 존재의 격.

‘그런데 그게 어떻게···?’

다이슨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 다이슨이 사용한 힘은 평범한 힘이 아니었다.

인스티즈에 깃든 절대적인 힘.

천 년전, 대마도사라 불리던 엘로디의 힘이자.

기나긴 대륙의 역사상 단 6명만이 닿았던 엑시드(Exceed).

개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다.

감히 어찌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숲지기인 아스란디즈 조차 이 힘에는 범접할 수 없었다.

물론 기나긴 세월이 흘러 그 힘은 상당 부분 소실되었다.

그러나 엘로디의 힘이 소실되면서 담긴 새로운 힘.

그 힘은 존재가 감히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엘로디의 힘조차, 천 년이라는 세월 끝에 그 힘에 굴복하여 먹혀버렸다.

그런 초월의 힘이 격의 차이로 찢겨진다···?

어둠은 다이슨의 마력을 집어삼키며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다이슨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어둠을 지배하는 한 존재.

다이슨의 시야로 금발의 사내, 시안이 보였다.

다이슨의 기억에 있는 인간이었다.

다이슨이 인스티즈로 펼친 환계의 공간.

그것을 깨부신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헌데 이상했다.

다이슨이 바라본 금발의 인간.

그러니까, 시안의 수준은 형편 없었으니까.

형편 없어도 너무도 형편 없었다.

저런 형편 없는 인간이 다이슨이 펼친 광기의 공간을.

그리하여 이 엘로디의 힘을, 엘로디의 격을 뛰어넘었다고?

‘그럴리가.’

다이슨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어떠한 경우에서도 불가능이라, 정의내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불안하다.

시안을 볼 때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다이슨의 가슴 속에서 떠올랐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수 만의 병력들 중 저 인간 하나가 너무도 불안하고 신경쓰였다.

믿기지 않지만 아스란디즈보다 더더욱.

그러니.

“죽여주지.”

다이슨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인스티즈를 휘둘렀다.

#

콰르르릉!

공간의 진동에 시안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이슨의 전신으로 피어나는 끔찍한 마력.

검붉은 색을 띤 마력은 시안의 인지로도 감히 추정할 수가 없었다.

아마, 인스티즈에 깃든 엘로디의 힘이리라.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엘로디의 힘이라기엔 가진 바 힘의 성질이 달랐다.

아무리 광기에 삼켜졌다고 한들.

가진 바 힘은 결국 마력에 기반한다.

그런데 지금 느껴지는 힘은 마력이라기보다는 악의.

악마 7군주, 그들과 너무도 닮아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악마 7군주는 아니다.

악의가 느껴지나 악의와는 다르다.

악의에 한없이 가까울 뿐 악의는 아니다.

그럼에도 폭사하는 사기(死氣)는 한없이 끔찍했으니.

마왕(魔王).

다이슨은 지금, 마왕이라 불러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 힘은 대체···!”

“이건···!”

파나트와 오슬리가 충격 어린 표정으로 다이슨을 바라봤다.

그러나 시안은 답하지 않았다.

폭사하는 마력.

“옵니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며 진동하는 공간 사이로 몸을 내던졌다.

화르르르륵─!

수 천개의 화염구가 하늘을 가득 떠올랐다.

후끈거리는 열기는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시안에게로 쏟아져내렸다.

이렇다 할 기교가 없는 화력 위주의 공격.

갑자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반드시 시안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저 화력을 정면으로 부딪히는 건 불가하다.

사악, 시안의 몸이 일순간 어둠으로 화했다.

마혼무영보를 펼치며 쏟아지는 공간을 회피했다.

흩어지는 시안의 전신을 따라 다이슨이 인스티즈를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지휘자의 손짓과도 같았고.

아니나 다를까 수 천의 화염구가 시안을 따라 일제히 움직였다.

그 순간.

콰콰콰쾅!

시안에게 쏟아져 내리던 화염구들이 일제히 터진다.

그 사이로 짙은 어둠이 내려앉으며 아스란디즈의 모습이 보였다.

다이슨이 이를 까득, 씹으며 말했다.

“저를 방해하시─!”

들려오던 다이슨의 말이 일시에 끊겼다.

그리고 꽈꽝!

다이슨의 주변으로 커다란 폭음이 터져나왔다.

오슬리의 거대한 대검이 넘실거리는 붉은 장막을 밀어내고 있었다.

쩌저적─!

붉은 장막에 자그마한 실금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스터 중급의 실력자, 오슬리.

거대한 곰 같은 덩치에 걸맞게, 마스터들 중에서도 힘에 특화된 이였다.

다이슨은 뻗은 인스티즈를 아래로 내려보였다.

다이슨의 주변을 휘감고 있던 장막이 일순간 날카로운 송곳이 되었다.

파사사삭─!

막대한 마력이 쏘아졌고, 오슬리가 뒤로 크게 밀려났다.

그리고 그 빈공간을, 푸른 마력이 가득채웠다.

꽈아앙!

다이슨의 주변에서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불길과 불길이 서로 이어붙으며 드리운 마력의 송곳을 불살라먹었다.

파나트와 아르카닉 마법 병단.

그들이 펼친 마력이 만들어낸 불길이었다.

“우리도 도울게!”

“모두 변경백 각하를 도와라!”

그 뒤를 이어 세라와 다크 엘프 파수꾼들.

그리고 바텐베르크 병력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다이슨은 재차 인스티즈를 휘두르며 마력을 폭사시켰다.

쾅!

쩌저적!

대지가 진동하며,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그 끝에 다이슨이 주춤,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귀찮게 하기는···!”

다이슨이 이를 까득, 씹었다.

짙은 분노가 피어오르며 검붉은 마력이 폭사한다.

피어나는 광기.

“무류의 경계에 사라져버린 진리여···.”

다이슨의 입이 달싹거렸다.

영창 마법.

단순히 의지로 구현하는 마법은 시전이 빠르나 위력이 반감된다.

빠르게 구현된 마법은 술식이 뒤흔들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무영창의 마법은 궁극의 경지라 불린다.

뒤흔들리는 술식 속에서도, 마법을 완성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무영창이 궁극의 경지라 불린다고는 하나.

그것이 영창 마법에 비해 위력이 더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되려 무영창을 구사하는 수준 높은 마법사가 시전하는 영창 마법.

그건 폭발적인 위력의 상승을 가져왔으니 말이다.

“꿇어라!”

쿠우우웅!

어마어마한 무게의 압박감이 공간 전체를 짓눌렀다.

시안은 순간 무릎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이를 까득,깨물며 간신히 압박감을 버텨내었다.

“끄윽···!”

“끄아악···!”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내리누르는 압박감을 버티지 못한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다이슨의 인스티즈가 전방으로 향했다.

“무업의 일그러짐, 무형 속의 왜곡···”

다이슨의 중얼거리는 영창이 다시 들려온다.

키이이잉─!

찢어지는 듯한 이명소리가 들리며, 사방으로 무수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터져라!”

콰아아아아아앙!!!

중얼거렸던 영창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소리가 터져나왔다.

사방이 폭발에 휘감기며 시야를 가리는 짙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공간 전체를 부숴버린 듯한 끔찍한 위력.

“커헉···!”

누군가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지 안개가 가라앉으며 그 안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보인 것은 폭발에 휘말린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아니었다.

어둠과 마력.

검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마력의 장막이 전방위를 보호하고 있었다.

아스란디즈와 파나트.

그리고 세라와 파수꾼, 아르카닉 마법 병단.

이들이 모든 힘을 다해 다이슨의 영창 마법에 대항하는 마법을 펼쳤다.

인스티즈의 힘을 사용하는 다이슨은 마왕이나 다름 없었다.

그가 펼친 영창 마법을 쉽사리 막을 수는 없었다.

파나트의 입가로 주륵,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지금이네!!”

이윽고 파나트가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파나트의 위로 짙은 어둠이 치솟아올랐다.

시안은 다시 한 번 마혼무영보를 펼치며 다이슨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마왕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다이슨.

그러나 다이슨은 엘로디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엘로디의 힘은 가히 초월적이라고는 하나.

다이슨의 가진 바 역량이 그 힘을 온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 섣불리 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것 같았다.

환계 마법을 펼쳐 그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다이슨은 혼자였다.

광기에 물든 야만족들도, 그를 따르는 다크 엘프도 없었다.

설마하니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지 몰랐던 것이겠지.

그것도 이렇게 빨리 말이다.

그러나 시안은 다이슨의 위치를 단번에 찾아내었고.

그의 예상을 깨어 방비조차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에 반면에 이쪽은 다수.

그것도 수많은 병력들을 동반한 군대가 있었다.

“네 녀석···!”

다이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손을 빠르게 움직이며 인스티즈가 이리저리 휘둘러졌다.

인스티즈가 허공을 훑을 때마다 붉은 마력이 폭사했다.

그와 동시에 수 천의 마력 화살이 다이슨의 주변으로 떠올랐다.

파바바바박.

수 천의 마력 화살들이 쇄도해오는 시안의 어둠을 향해 쏘아졌다.

시안은 다가오는 마력 화살을 마주하며 몸을 피하지 않았다.

그 순간.

검은 갑옷을 입은 무리들이 시안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루벤의 기사단들.

그들은 저마다 검을 치켜들며 쏟아지는 마력의 화살들을 베어내었다.

캉─! 카캉!

쩌정─!

“이것들이···.!!”

콰아아아아아─!

다이슨의 분노와 함께 인스티즈 주변으로 시뻘건 마력이 터져나왔다.

가히 무한의 가까운 마력.

끝없는 마력의 세계가 펼쳐지며 드리운 공간을 잠식했다.

그런데.

사아아아아─!

드리우는 어둠이 그런 마력의 세계를 집어삼켰다.

피어나는 광기와 마력은 어둠에 대항하지 못하고 삼켜졌다.

“이 무슨···!”

다이슨의 얼굴에 뚜렷한 당황이라는 감정이 새겨졌다.

“마혼수라검.”

그리고 들려오는 아득한 목소리.

바라본 그곳엔 어느샌가 다가 온 짙은 어둠이 드리워져있었다.

이윽고 어둠이 형체를 갖추며 한 인간의 모습, 시안이 떠올랐다.

피어나는 칠흑의 어둠.

치켜든 검.

“제 1식.”

그 사이로 느껴지는 아득한 너머의 힘.

다이슨은 그 힘을 마주하며, 아까 전 떠올랐던 불안함을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이건······.’

불안함이 짙어져 간다.

그것은 불길하고도, 아주 기분 나쁜 예감으로 확산되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여기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실로 아주 불길한 예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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