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45화 (145/322)

§ 145화 - 위협(2)

영주성 Lv.2에 위치한 시안의 개인 연무장.

꽈꽈꽝─!

연무장 전체로 커다란 폭음이 터져나왔다.

대기가 짙게 떨리며 먼지 안개가 자욱히 피어났다.

시야를 완전히 가리는 먼지 안개.

파팍!

시안은 거침없이 먼지 안개 사이로 몸을 내던졌다.

번뜩.

먼지 안개 사이로 검푸른 안광이 일렁거렸다.

그와 동시에 새까만 참격이 안개를 베어내며 쇄도해왔다.

하지만 시안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검을 크게 휘둘렀다.

카앙─!!

휘두른 검이 참격을 밀어내며 주변으로 광풍이 휘몰아쳤다.

먼지 안개가 흩어지며, 그 사이로 시안과 켄드릭이 서로 검을 마주대었다.

검 위로 찍어누르는 듯한 끔찍한 압박감.

“크흑···!”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푼다면 검과 함께 짓눌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성장을 해왔다고 생각했건만.

이 끔찍한 힘은 여전히 시안을 압도하고 있었다.

힘 대결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빠르게 판단을 내린 시안은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런 시안을 따라 공간을 격하듯, 칠흑의 검이 따라 쇄도해온다.

시안은 쫓아오는 켄드릭을 떨쳐버리듯 검을 휘둘렀다.

카앙─!! 캉!

검과 검이 얽혀들어가며 진득한 불똥이 튀었다.

꽝! 꽈꽝!

검의 충돌과 함께 사방으로 짙은 마기를 흩어져나갔다.

당장이라도 팔이 부서질 것만 같은 충격이 가해온다.

추격을 뿌리칠려해도 가해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사아아···!

일순간 시안의 몸이 어둠으로 사라졌다.

몸을 어둠으로 흩어 버리는 카일의 보법,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흩어진 어둠은 배경 사이로 녹아들었고, 켄드릭은 끝내 시안을 놓쳐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아아···!

켄드릭이 왼손을 옆으로 뻗자, 스산한 마기가 쉬지 않고 끓어오른다.

콰아아아아─!

뻗은 손으로 짙은 어둠이 터져나왔다.

이 세상의 모든 끔찍함을 담아낸 것만 같은 불길함이 차오른다.

“젠장···!”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저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칠흑보다 더 어두운 어둠이 피어났다.

근원의 마(魔).

그것은 시안을 잠식하던 켄드릭의 어둠을 무차별적으로 집어삼켰다.

어둠과 어둠.

마(魔)와 마(魔).

그리고 이어진, 단 한 번의 참격.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식(第 一式).

수라천살(修羅天殺).

.

.

.

콰자작─!

연무장 전체의 풍경이 사선으로 갈라진다.

거대한 짐승의 할퀴어간 흔적처럼, 하나의 크나큰 흉터가 연무장 전체로 새겨져있었다.

그러나.

사아아···!

끊어내지 못했다. 베어내지 못했다.

시꺼먼 어둠의 파도는 여전히 시안을 향해 쇄도해왔다.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베어낼 거라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눈앞의 상대는 천 년의 데스 나이트.

무려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오른 기사다.

시안은 다시 한 번 마혼무영보를 펼쳐보였다.

시안의 몸이 어둠으로 화하며, 덮쳐오는 어둠의 파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주치는 두 어둠.

서로의 검이 닿지 않는 거리였음에도 서로가 검을 휘두른다.

꽈아아앙!

끔찍한 충돌음이 터져나오며 시안의 어둠이 주춤, 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악···!

시안의 어둠이 흩어지며 일순간 켄드릭의 뒤를 점했다.

-무슨···?

일순간 켄드릭의 안광이 당황으로 일렁거렸다.

쐐애애액!

그 당황의 틈을 비집으며 시안의 검이 쇄도해온다.

꽈앙─!

폭음과 함께 짙은 마기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닿았나···?’

싶은 것도 잠시.

사아아아─!

흩어진 어둠이 다시금 켄드릭의 손으로 뭉쳐갔다.

폭사하는 마기.

꽈아앙!

응축된 마기가 터져나가며 전방위가 모조리 어둠으로 먹혀졌다.

그러나 손끝에 닿는 느낌은 없다.

사그라든 어둠 속, 역시나 시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느새···.

켄드릭의 안광이 다시 한 번 당황으로 일렁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시안의 수준.

이건 켄드릭이 알고 있던 시안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공격이 끊어질듯 이어지고, 이어질듯 끊어진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변화무쌍함이 켄드릭의 눈과 감각을 현혹했다.

그건 켄드릭이 지닌 변화무쌍과는 느낌이 달랐다.

켄드릭의 변화무쌍은 다양한 무기에서 비롯된다.

검이었다가, 창이었다가.

또 어쩔 때는 거대한 도끼로 형상화하는 전투법.

즉, 예측 불가능함에 기반한 변화무쌍함이었다.

그러나 검이면 검, 창이면 창.

그에 대한 변화는 쉬이 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것은 장점이자 하나의 크나큰 약점이 되었다.

다음 켄드릭이 형상화할 무기가 무엇인지.

그것을 예측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것을 유도할 수 있다면.

켄드릭의 공격은 더 이상 변화무쌍하다 할 수 없었으니까.

그저 상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날 뿐.

그러나 시안은 달랐다.

검이라는 무기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어질 공격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

몸을 어둠으로 흩어버리는 저 움직임.

언제, 어디에서 공격이 날아올지 쉬이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허와 실이 제대로 섞인 진정한 변화무쌍함.

쿠르르릉···!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절대적인 힘.

-이건 마치···.

켄드릭의 머릿속으로, 오래 전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일순간 연무장 전체로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포악한 마기가 응축되고 폭발하며 시야를 흔들었다.

저건, 위험하다.

켄드릭은 어둠을 다시 검의 형태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꽈드득!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르르릉!

연무장의 풍경이 일그러진다.

일그러짐이 번져나가며, 주변의 공간을 왜곡시킨다.

그 일그러진 풍경 사이로 번쩍!

한줄기 묵빛 섬광이 시야를 가로질러간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2식(第 二式).

멸천수라(滅天修羅).

.

.

.

“쿨럭···!”

내려앉는 침묵 사이로 격통 어린 신음이 들려왔다.

왈칵, 쏟아지는 핏물.

시안은 목구멍까지 치솟은 핏물을 억지로 삼키며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뚝.

시안의 눈앞으로 겨누어진 칠흑의 검에 몸을 멈추었다.

“······ 쳇.”

시안은 들고 있던 검을 내려놓았다.

“역시 안 되네.”

괜시리 아쉬운 마음.

그와 동시에 띠링! 스마트 폰의 화면 위로 알림창이 떠올랐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중급 진행률 45.16%(+8.5%)]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진행률 48.7%(+6.5%)]

[마혼제법(魔魂制法) 진행률 57.7514%(1.8%)]

“후우···!”

스마트 폰을 확인한 시안은 긴 숨을 내쉬었다.

지난 북부에서의 일과 더불어 꾸준히 수련을 해온 시안.

그 덕분에 마혼수라검 중급 과정과 마혼무영보는 어느덧 절반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혼제법의 진행률.

마혼제법은 벌써 절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간 마혼제법의 진행률은 정말로 더디게 올랐다.

하루 왠종일 수행해도 0.1%가 오를까 말까한 수준.

진짜 더럽게 오르지 않았다.

사실 신성 제국에서의 역병 사태 때 올린 진행률이 전부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지금은 무려 1.8%에 달하는 진행률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것도 켄드릭과의 대련 한 번에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효율이 상승한 이유는 단순했다.

“확실히 버프 효과가 있기는 있네.”

일단 영지에 심은 세계수, 인스티즈.

인스티즈 효과로 인해 루벤의 마나 농도는 +100% 짙어진 상황이었다.

쉽게 말해 축적되는 마기의 양도 2배 늘어난 상황.

게다가 아르나이즈 특전인 <엘로디의 탐구>의 효과 3의 시너지가 겹쳤다.

『《마력증폭(魔力增爆)》

▶업적 보유자의 마력 효율을 +10% 증폭시킵니다.』

마력 효율을 상시로 +10% 늘려주는 사기적인 버프 효과.

인스티즈의 효과와 버프 효과가 겹치며 어마어마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19,030 G

골드 상황은 처참히 박살났지만.

‘하아···.’

새어나오는 짙은 한숨.

뭐, 어쨌든.

그 덕분에 정체되어있던 마혼제법 진행률이 쑥쑥,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시안은 혹시···? 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마스터 상급의 데스 나이트, 켄드릭.

물론 이길 것이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늘.

그런데 상대는 염병.

어떻게 된 게 갑옷 하나 스치지 못했다.

고작 당황 한 번 시킨 것이 전부.

“언제쯤 너랑 제대로 싸워볼 수 있을런지.”

시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주군, 어찌 이 정도로···?

어째, 켄드릭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싶었다.

-지난 번 대련 때와는 차원이 다르십니다. 그 짧은 기간에 이 정도의 성장이시라니···.

켄드릭은 상당히 놀란 듯 두 안광을 일렁거리며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느낀 겁니다만··· 주군의 성장은 참으로 기이합니다. 평소에는 굉장히 답답해보이지만 이렇게 어느 순간에 보면 어마어마한 성장을 해오시니···.

그러면서 켄드릭의 안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일렁였다.

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참하다 못해 박살난 시안의 재능.

그러나 온갖 현질로 치덕치덕 바른 성장 버프.

그 두 가지에서 오는 괴리감을 켄드릭이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평소에는 굉장히 답답하다니.’

켄드릭이 저런 말을 할 정도면 참···.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보이신 일격은··· 정말로 저도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닿지 못했잖아.”

-닿을 뻔 했습니다. 제가 조금만 긴장을 늦추었다면···.

“됐어. 누누히 말했지만 위로 받자고 꺼낸 말은 아니야.”

시안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보다 켄드릭. 다시 한 번 대련을 부탁해도 될까?

-저야 상관없습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시안의 부탁에 켄드릭이 우려 섞인 말을 건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으니까.

비록 켄드릭에게는 여전히 닿지 못했으나.

시안은 지난 번과는 달리 부쩍 성장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켄드릭도 조금의 진심을 담아야했다.

특히, 시안이 마지막에 펼친 멸천수라의 일격.

위험했다, 라는 켄드릭의 평이 농담이 아닌 것이 켄드릭은 전력을 다해야만 했다.

지금도 시안의 입가로 번져있는 선혈이 그 증거였다.

“괜찮아. 그러니 다시 부탁할게.”

그러나 시안은 개의치 않았다.

여유 부릴 시간 같은 건 없었으니까.

현질로 박살난 재능을 메꿀 수는 있었다.

그러나 노력마저 현질로 메꾸지는 못했다.

“할 수 있을 때 바짝 해둬야지.”

시안은 다시 한 번 검을 움켜잡았다.

-주군께서 그러시다면.

켄드릭 또한 다시 검을 들어보이며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또 다시 피어나는 두 어둠.

바로 그때였다.

-시안, 손님이 찾아왔는데?

레아의 목소리가 두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레아가 연무장의 벽을 뚫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시안은 검을 잠시 내려놓고는 물었다.

“손님이요?”

-응.

고개를 끄덕이는 레아의 모습과 동시에 연무장의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한 명의 사내.

“커너?”

그는 다름 아닌 커너였다.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커너가 개인적으로 찾아온 일은 없었으니까.

“네가 갑자기 웬일이야?”

“영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만···.”

커너는 살며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난장판이 되어있는 연무장.

아니, 거진 박살이 나있는 연무장.

커너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보아하니 수련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이게 수련을 한 건지.

아니면 전쟁을 일으킨건지 당최 모를 풍경이었다.

“혹시 수련 중이셨다면,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커너가 다시 물러났다.

“아니야. 됐어.”

하지만 시안은 떠나가는 커너를 붙잡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중요한 일인 듯 보였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잠깐 쉬었다하지 뭐.”

시안은 검을 검집에 꽂아넣었다.

#

영주성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시안은 맞은편에 자리하는 커너를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손에 든 그건 또 뭐고.”

커너의 손에 들린 무언가.

보따리에 싸여있는 그것은 얼핏 보기에 도시락처럼 보였다.

“만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시락의 용도가 맞았던 것 같았다.

“만두?”

“다나님이 만들어준 겁니다. 영주님께서 좋아하실 거라고 하더군요.”

이어진 커너의 말에 시안은 살짝 놀란 눈을 떠보였다.

“내가 만두를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았대?”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은 누군가에게 만두를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시안은 딱히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뭐, 눈치가 있으면 시안이 골드를 좋아하는 것쯤은 알고 있겠다만은.

그것 이외에는 딱히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나는 시안이 만두를 좋아함을 알고 있었다.

“식당에 오실 때면 자주 만두를 부탁하시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고 합니다.”

“아.”

시안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커너의 말마따나 시안은 다나에게 만두를 자주 부탁했었으니까.

뭐, 실제로 만두를 좋아하기도 했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시안이 어린 시절.

시안의 어머니, 세실이 종종 만들어주었던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시안은 가문에서 무시와 멸시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시안의 형인 네이슨과 누나인 로즈웰.

그 둘이 시안을 많이 괴롭혔었다.

대련을 빙자하며 때리기 일 수 였고.

재능이 없다며 시안을 비웃기 바빴다.

그리고 시안은 그런 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었다.

결국 그들은 재미없다며 떠나갔고.

시안은 그때서야 홀로 훌쩍거렸었다.

만두는 그럴 때마다 세실이 만들어준 음식이었다.

꼭 만두였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

아니면 만두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세실은 홀로 훌쩍이고있는 시안을 찾아와 만두를 주곤 했었고.

시안은 그런 세실이 만들어준 만두를 먹고 기분이 풀리곤 했었다.

이제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

그래서 가끔 세실이 생각날 때면 다나에게 부탁했던 것이건만.

다나는 알게 모르게 체크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시안은 커너가 건네는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마침 켄드릭과 대련한 직후라 출출하던 찰나.

“어디 한 번 먹어볼까.”

보따리를 풀자 동글동글한 만두가 예쁘게 담겨있었다.

갓 만들어 온 것인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새어나오고 있었다.

시안은 만두 하나를 집어들어 입 안에 넣었다.

아그작, 씹히는 식감과 더불어 입안 가득 터져나오는 육즙.

그와 동시에 만두피가 절묘하게 얽히며 형용할 수 없는 맛을 선사했다.

그야말로 만두가 순식간에 입안에서 녹아버렸다.

“음! 역시!”

역시는 역시였다.

솔직히 말하면 세실이 만들어준 것보다 맛있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할까?

세실의 만두는 금새 잊혀지는 맛이었다!

‘황녀님이 괜히 황궁의 음식을 못 먹겠다고 한 건 아닌 모양이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다시 만두 하나를 입에 넣으며 커너에게 말했다.

“그랭성. 하고 시픙 말이 뭐양?”

시안은 질문을 던져놓고 계속해서 만두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커너.

“어째서··· 입니까?”

커너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내왔다.

꿀꺽.

“응? 뭐가?”

“왜··· 의심하시지 않으시는 겁니까?”

“의심? 뭘 의심해?”

시안은 어느덧 네 번째 만두를 입에 집어 넣었고.

커너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만두에 독을 탔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영주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암흑가 출신의···.”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우물우물, 꿀꺽.

시안은 네 번째 만두마저 순식간에 먹어치워버렸다.

커너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시안을 바라봤다.

“뭔데?”

시안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렸다.

평소와는 다른 커너의 모습.

하지만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덥썩.

시안은 만두를 향한 손가락을 멈추지 않았다.

“영주님. 실례가 안된다면··· 한 가지만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그래. 뜸들이지 말고 빨리 물어봐.”

우물우물.

“영주님께서도 알다시피 저는 암흑가 출신의 암살자입니다. 그리고 영주님을 암살하려다··· 붙잡히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 일을 빌미로 커너는 시안의 노예(?)가 되었다.

현재 커너가 루벤의 암살 교관으로 역임한 계기가 된 사건.

“왜··· 그때의 저를 용서해주셨습니까.”

사실 커너는 이렇게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커너는 시안을 죽이려했었다.

그 이유야 어찌되든 커너는 시안을 죽이려 했었다.

그때 당시 그 자리에서 참형을 시켜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시안은 커너를 살려주었다.

게다가 루벤에서 살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커너는 항상 궁금했었다.

왜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는지.

“다 지난 이야기를 이제 와 무슨.”

“답해주십시오.”

시안은 손을 휘휘, 내저었으나 커너는 완고하게 물어왔다.

마주치는 시선.

“그냥.”

시안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람 냄새가 났거든.”

“사람 냄새··· 말씀이십니까?”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안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암흑가를 누비는 범죄자들.

그들은 살인은 고사하고 고문, 강간, 납치.

온갖 창의적인 범죄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놈들이었다.

그러면서 일말의 죄책감마저 느끼지 않으니.

심히 개새끼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놈들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암흑가를 휘어잡은 그림자 달 길드.

그들은 스스로들에게 규칙을 부여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범죄에 정당한 이유가 어디있겠냐만은.

그래도 개새끼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범죄자라는 사실에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커너는 그런 그림자 달 소속의 암살자였다.

그것도 특급 암살자.

커너 또한 범죄자라는 사실은 변함 없었다.

하지만.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개냄새는 나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커너는 적어도 개냄새는 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커너는 개새끼가 맞았다.

의뢰만 있다면 누구든 암살하는 특급 암살자.

아마 그동안 커너가 죽인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시안이 본 커너는 분명한 개새끼가 맞았다.

그러나.

“풍기는 냄새는 사람이었단 말이지.”

정작 풍기는 냄새는 사람이었다.

시안을 암살할 당시, 커너는 루벤의 사람들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루벤의 경비들을 암살하고 편하게 루벤에 들어올 수 있음에도.

커너는 시안이라는 목표 이외에 그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굳이 어려운 길을 돌아 시안에게 왔었다.

무엇보다 커너가 의뢰로 번 돈들.

“암흑가에서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쓰고 있었다며?”

그 때문에 시안이 커너의 돈을 모두 압수했을 당시.

특급 암살자 치고 재산이 그리 많지 않았다.

왜 그러했는지는 시안도 알지 못했다.

그저 ‘특급 암살자가 왜 이렇게 돈이 없어?’ 라는 생각으로 조사하다 알게 된 사실일 뿐이었으니까.

커너 나름대로의 사정이라든지.

아니면 나름의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지.

하지만 시안이 본 커너는 개새끼일지언정.

풍기는 냄새는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뭐···.

“그때 루벤에 사람이 없어 노예 한 명이 필요했던 것도 있고.”

이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시안은 또 다시 만두를 하나 집어들어 입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커너.

“······”

커너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특급 암살자는 특급 암살자인 것일까.

보이는 표정 또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렇군요.”

커너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이거였어?”

“아뇨.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커너가 시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실례가 안된다면, 저도 만두 하나만 먹어도 되겠습니까.”

“만두? 그래, 먹어. 뭐 어려운 거라고.”

시안의 허락에 커너가 만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확히는 만두가 아닌 만두가 담겨있는 도시락.

커너는 도시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달칵.

도시락이 반으로 갈라지며 숨겨진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안에 놓인 하나의 만두.

“뭐야, 2단 도시락이었어?”

시안의 물음에도 커너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뻗어 놓인 하나 놓인 만두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만두를 천천히 입에 가져가, 우물우물 씹었다.

“확실히··· 맛있군요.”

커너는 작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말과는 달리 커너의 표정은 딱히 맛있어 보이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이윽고 커너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는 암흑가 출신의 암살자입니다. 의뢰라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죠. 저는···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짐승입니다.”

암흑가의 사냥개.

그것이 커너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말이었다.

주인 따위는 없이 도구로서 쓰여지다 버려지는 사냥개.

그것이 커너가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그러다 시안을 만났고.

루벤의 노예가 되어 강제로 암살 교관의 직을 자리했다.

처음엔 너무도 하기 싫었다.

언제고 탈출하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유령, 레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탈출하려고 하면 기가 막히게 그 낌새를 눈치챘으니까.

특급 암살자의 은신술 따위는 레아 앞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커너는 억지로 루벤에서의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하루, 이틀, 일주일.

루벤에서의 생활이 이어질 때마다 커너는 무언가 이상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루벤의 영지민들.

이곳의 영지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

이들은 암흑가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암흑가의 사람들과 달랐다.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고 보듬어주었다.

암흑가의 개새끼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줄 알았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커너는 부럽다,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하지만 금방 털어내었다.

자신은 이방인이었으니까.

암흑가를 전전하던 범죄자였으니까.

이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

커너는 그리 생각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커너 교관님을 두고 당장 나가십시오.’

로열 나이츠들에게 대항하던 루벤의 병사들.

‘지금 당장 루벤을 떠나주십시오.’

황녀를 향해 일갈하던 시안.

“처음··· 이었습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준다는 것이.

커너에게 있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믿을 곳 하나 없던 암흑가의 생활.

그러나 루벤에서의 생활은 커너에게 있어 생소한 경험이었고.

그리고 썩···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러다 문득, 커너는 알 수 있었다.

“저는 루벤이··· 너무도 좋아졌습니다.”

루벤을 좋아하게 된 자신을.

루벤의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자신을.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며 말하는 자신을 문득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또 이들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아까부터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야?”

계속 이어지는 커너의 말에 시안이 물어왔다.

하지만 커너는 그에 따른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영주님.”

그저 묵묵히, 자신의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커너는 시선을 들어 시안을 바라봤다.

바라본 시안의 표정은 역시나 의문 투성이었다.

그렇기에 조금은 어벙해보이는 표정.

영주의 위엄이라고는 딱히 찾아볼 수 없었다.

커너는 피식,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조금은··· 억울했다.

이런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엘란두르는 거짓된 연기로 속일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거짓으로 속이면 되려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한다.

누군가는 희생되어야 시안에게 뻗친 손길을 잠시나마 떨칠 수 있었다.

또한 그림자 달에게, 다이애나에게 뻗친 손길 또한 떨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커너는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을 거두어준 은혜를 갚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암흑가의 사냥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었으니까.

아직··· 아직은···.

루벤은 엘란두르를 대적할 힘이 없으니까.

루벤의 사람들을 지키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이 말은 한낱 개새끼의 소망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시안은 그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였고.

자신은 암흑가의 버려진 사냉개 따위였으니까.

그렇기에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은 버려진 짐승의 마지막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커너가 본 루벤은.

커너가 지켜봐 온 시안이라는 남자는.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못난 저를 위해, 한낱 개새끼 따위를 위해.”

커너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디, 분노하지 말아주십시오.”

커너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시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

그 순간.

쿨럭!

커너의 입가로 시꺼먼 피가 왈칵, 쏟아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푸화확!

커너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터져나왔다.

이윽고 얼굴의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새까만 피가 쏟아져나왔다.

순식간에 피로 얼룩지는 집무실.

충격으로 부릅, 떠지는 시안의 두 눈.

쿠웅.

커너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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