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분노 그리고...(1)
영주성에서 발생한 사건.
그 사건은 루벤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그에 따라 루벤이 발칵, 뒤집혀버렸다.
“영주님이 암살 위협을 받으셨다고···?”
“세상에나··· 세상에나···.”
시안에 대한 암살 시도.
물론 시안에 대한 암살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게 암살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암살이 시작되기도 전에 제압되었으며.
그 때문에 그 누구의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암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 없었다.
하지만 시안이 조용히 일을 처리한 덕에 관련한 자세한 사정을 영지민들은 알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지금 커너 교관님이 굉장히 위독한 상황이라던데.”
이번 암살 시도는 명백히 ‘피해자’가 존재했다.
그리고 시안을 암살하고자한 암살자.
“그런데 듣자하니··· 커너님이 영주님을 암살하려고 했다던데···?”
그 암살자가 그 누구도 아닌 루벤의 암살 교관, 커너였다.
“뭐?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그럼 영주님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들은 이야기라···.”
루벤의 영지민이 시안을 암살하려고 한 상황.
이는 루벤의 영지민들 입장에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벤의 영지민들에게 있어 시안은 영주 그 이상의 존재였으니까.
그런 시안을 배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배신을 넘어 암살 시도까지 자행했다?
“커너 교관님이 대체 왜···?”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영지민들은 흘러가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엇하나 자명하게 나온 사실이 없었다.
이에 영지민들은 각기 다른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커너님은 암흑가 출신의 특급 암살자였지 않았나?”
“설마 루벤에 들어온 이유가 혹시···?”
영지민들은 커너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암흑가 출신의 특급 암살자, 커너.
비록 지금은 루벤의 영지민이 되었지만 커너가 살아온 과거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에이, 무언가 오해가 있는 거겠지.”
“설마하니 커너 교관님이 영주님을···.”
“내가 본 커너 교관님은 그러실 분이 절대 아니야.”
그럼에도 커너를 믿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루벤의 영지민으로서 바라본 커너.
그가 그동안 루벤을 위해 보인 행동들은 전혀 거짓이라고 볼 수 없었으니까.
영지민들이 시안을 생각하고 믿는 만큼.
영지민들 또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영주님을···.”
커너를 의심하는 의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게 내부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아니, 오해일 수도 있잖아. 너도 그냥 들은 이야기라며? 어떻게 그렇게 단정짓는건데?”
“하지만 커너가 영주님을 살해하려고 한 건 맞잖아.”
“뭐? 커너? 이젠 커너 교관님도 아니다 이거야?”
그것은 단합된 루벤으로 하여금 조금씩 분열의 조짐을 만들었다.
루벤 전역은 발칵, 뒤집혀져있었다.
그렇게 루벤 전체가 혼란스러운 지금.
루벤에 위치한 ‘신의(神醫) 치료원 Lv.5’
한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신의 치료원 Lv.5로 향했다.
그리고 치료원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한스의 물음에 치료원에 모인 이들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자신들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집무실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그 안에서 일어난 일을 알리가 만무했다.
오직 한 명.
-그게 말이지···.
레아만이 상황에 대한 전말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루벤의 수호령이자 영주성의 집사를 겸하고 있는 레아.
레아는 시안의 집무실에 손님이 올 때면, 몰래 벽 뒤에서 엿듣는 버릇이 있었다.
시안은 그걸 알고 있었으나 알게 모르게 넘어가 주고 있었고.
-처음엔··· 별 다른 일이 없었어.
레아는 집무실에 있었던 일을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짧은 이야기가 끝나고.
“······”
한스는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상황만 놓고 보자면 이러했다.
커너가 시안에게 만두를 건넸고, 시안은 그것을 먹었다.
그러다 커너도 만두를 먹었고, 커너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커너가 먹은 만두에 독이 들어있었던 겁니까?”
레아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건 누군가 시안이 먹을 만두에 독을 탔다는 것.
시안이 먹은 만두는 다름 아닌 다나가 만들었다.
그렇기에 독을 넣었을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다나였다.
그러나 다나는 의심 대상에서 금방 제외되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을 뿐더러.
애초에 그럴려고 했다면 다나는 진즉에 그럴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
“커너가··· 만두에 독을 탄 겁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아.
“······”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는 레아의 모습에 한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마디로 시안을 먹이려고 했던 독 만두를 커너 스스로가 먹었다는 뜻이었으니까.
한스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북적이는 사람들 속.
홀로 동떨어진 사내를 한 명 발견할 수 있었다.
시안은 치료원 구석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런 시안의 전신은 피로 낭자해져있었다.
저 정도의 피를 쏟고도 살아있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로 피로 낭자해있었다.
도무지 한 사람에게서 나온 피의 양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마치 전쟁터에서 지금 막 돌아온 사람이라면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
시안은 아무런 말없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때문인지 시안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사뭇달랐다.
약간 어벙하고 얼빠진 듯한 느낌이 전혀없었다.
어딘가 무겁고, 또··· 무언가에 분노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치료원에 모인 사람들은 물론.
레아 또한 시안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루벤에서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시안의 모습.
그러나 시안과 평생을 함께 해온 한스는 본 적이 있었다.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딱 한 번.
가문에서 시안의 저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도련님···.”
그렇기에 한스는 시안이 상당히 걱정되었다.
바로 그때.
달칵.
치료원 안쪽의 문이 열리며 수수한 미모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레이슨의 딸이자 루벤의 뛰어난 치료사, 엘리.
한스는 시안에게서 시선을 돌려 곧장 엘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되었나.”
엘리는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살며시 저어보였다.
“다행히 체내에 흡수된 독은 모두 제거했어요. 사실 제가 한 건 딱히 없어요. 이미 독이 정화되고 있었거든요. 아마 하루 정도 쉬면 깨어날 거예요.”
“허어···.”
“흐음···.”
엘리의 말에 한스를 비롯한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커너의 상태를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신이 피로 낭자한 시안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커너가 먹은 독은 세상에 다시 없을 치명적인 독이다.
그런데 그런 독을 먹고도 살아있다는 것은 물론.
엘리의 치료 없이도 독이 정화되고 있었다?
해서 하루만 쉬면 깨어날 수 있다?
그럼 애초에 독살 같은 건 의미가 없었던 게 아니었나?
“음···.”
“허어···.”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굉장히 악독한 독이었어요. 저도 처음 보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독을 구해온 것인지···.”
엘리가 아무리 의학적 지식이 뛰어나다한들.
세상의 모든 약초와 독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엘리만큼 잘 알고 있는 이는 거진 없다시피했다.
독에 대해 심도 있게 파고 공부하지 않은 이가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루벤에 딱 한 명.
“설마··· 커너가 작정하고 영주님을 암살하려고 했단 말인가?”
암흑가 출신의 특급 암살자, 커너뿐이었따.
“그것까지는 저도 잘···.”
엘리는 살며시 고개를 저어보일 뿐,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았다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공통된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엘리조차 처음 보는 종류의 독(毒).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그때.
“아니야.”
한쪽 어귀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향했다.
그렇게 바라본 그곳.
“커너는 날 암살하려고 한 게 아니야.”
그곳엔 시안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시안은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와 동시에 머릿속으로는 복잡한 생각이 밀려왔다.
시안을 향한 암살 시도.
사실 커너는 시안을 한 번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알 수 있었다.
커너는 처음부터 시안을 암살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말이 안되었다.
독이 든 만두를 커너가 먹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다.
시안을 먹이려다 실수로 자신이 먹었다?
특급 암살자가 그런 실수를?
뭐, 그럴 수는 있었다.
정확히는 특급 암살자도 ‘실수’라는 것을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실수라는 개념으로 이해 가능한 범주가 있었다.
그리고 커너의 행동은 실수라는 말로 이해 가능한 범주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커너는 독이 든 만두를 따로 숨겨두었다.
도시락 통 아래 깊숙한 곳.
그곳에 독이 든 만두를 따로 숨겨두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알지 못했다.
커너가 밝히기 전까지 시안은 그런 공간이 있었는지.
그곳에 만두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마 레아는 이 장면을 못 본 것 같았다.
시안 몰래 엿본다고 제대로 못 본 것 같았다.
그렇기에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직 시안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하던 커너의 말.
‘못난 저를 위해, 한낱 개새끼 따위를 위해.’
처음부터 커너는.
‘부디··· 분노하지 말아주십시오.’
시안에게 독이 든 만두를 먹일 생각이 없었다.
시안은 차분히 시선을 들어 굳게 닫힌 치료원의 방을 바라봤다.
현재 안정을 취하고 있는 커너.
원래라면 해독이 불가능한 독이라 할 수 있었다.
만일 시안이 ‘신의(神醫) 치료원 Lv.5’로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더라면.
루벤에 엘리라는 뛰어난 치료사가 없었더라면.
무엇보다 세계수의 축복 ‘모든 해로운 효과 -80% 감소’가 없었더라면.
이 중 단 하나라도 어긋났더라면.
커너는 지금 살아 있을 수가 없었다.
꽈드득!
시안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파들파들, 떨리는 시안의 주먹에 사람들이 모두 시안의 눈치만 볼 뿐이었다.
커너는 처음부터 시안을 해칠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커너는 시안을 찾아왔다.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딱 하나.
뒤에서 커너를 사주한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커너는 그 의뢰를 거절하지 못했다.
차마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왜 커너가 거절하지 못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커너를 사주한 누군가.
그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커너의 소지품에 있던 200만 골드짜리 전표.
그리고.
“영주님. 그레이슨입니다.”
일순간 치료원 밖으로 그레이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의 숲에서 수 십년을 살아온 뛰어난 사냥꾼이자 추적술의 달인, 그레이슨.
“며칠 전, 커너가 엘란두르 후작령으로 향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래도··· 커너가 엘란두르 저택에 방문한 것 같습니다.”
“······!”
“······!”
“······!”
그레이슨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오직 시안만이 아무런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
이어 그레이슨이 시안에게 한 장의 편지를 건넸다.
편지는 엘란두르 가(家)를 상징하는 하얀 늑대 인장이 찍혀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추가로 찍혀있는 듀라크의 인장까지.
시안은 그레이슨이 건네는 편지를 받아들어 그 내용을 살폈다.
[차디찬 바람이 물러가고,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는 계절. 엘란두르 후작가(家)에서···.]
쓰잘데기 없는 미사여구로 시작되는 글귀.
시안은 그 내용을 차분히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편지의 마지막 내용을 읽은 직후.
“아무래도 때가 다가오는 것 같네.”
콰지직─!
시안은 편지를 그대로 찢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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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했다라···.”
이사벨은 총관, 레리트의 보고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시안에 대한 암살이 실패했다는 보고.
하지만 곧이 곧대로 믿기엔 뭔가 꺼림칙한 면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의뢰 당시에서 보인 모습.
그건 사냥개가 보일 법한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거짓된 연기일 가능성은?”
“조금 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현재까지 조사 결과, 암살 실패로 사냥개가 죽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이어진 레리트의 보고에 이사벨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된 연기라면 사냥개가 죽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외부의 눈만 속이면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사냥개가 죽었다는 것.
이건 시안이 정말로 분노해서 죽였다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말은 즉.
사냥개는 진심으로 시안에 대한 암살을 시행했다는 것이었다.
“특급 암살자라더니.”
이사벨은 코웃음을 한 번 쳐보였다.
이윽고 이사벨은 들고 있던 찻잔을 한 번 홀짝거렸다.
“어떻게 할까요.”
이사벨은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암살이 실패한 것은··· 상당히 아쉬웠다.
그러나 딱 그뿐이었다.
아쉬운 정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낱 개의 죽음 따위 이사벨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다음을 준비하면 그만이었으니까.
암흑가의 사냥개 따위는 널리고 널렸다.
돈만 쥐어주면 꼬리를 흔들며 짖어댈 놈들은 많았다.
그러나.
“일단은 두거라.”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암살을 실패한 터라 경계가 강화되었을 것은 물론.
듣자하니··· 루벤 자체에 분열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었으니까.
영지민이 영주를 암살하려고 했다.
이 사실은 영지민들에게 분란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자고로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법.
비록 암살 자체는 실패했지만 소정의 성과는 거둔 셈이었다.
그러니 지금은 이사벨이 딱히 행동에 나설 필요는 없었다.
그저 루벤과 시안이 자멸하게끔.
하나하나 망가져가게끔 두면 되었다.
“지금은 그냥 두거라.”
이사벨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
콰당탕!
갑자기 문 밖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웅성웅성거리는 큰 소란이 일었다.
-비켜.
그리고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이, 이러시면 아, 안 됩니다···!
-아무리 공자님이라도···!
그 뒤로 당황하는 목소리들이 따라붙었다.
“제가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그 소란에 레리트가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레리트는 금방 그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난 분명 비키라고 말했어.
문 바로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히익···!
그리고.
꽈앙!
커다란 굉음과 함께 이사벨의 집무실 문이 박살났다.
이윽고 터벅, 누군가 박살난 문 사이로 걸어들어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님.”
그리고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
이사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