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화 - 고양이에게 생선을(2)
모바일 영주가 개같이 두둥등장···.
아니, 모바일 영주의 점검이 끝났음을 확인한 시안은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저택에 위치한 시안의 방으로 향했다.
어릴 적부터 지내던 방이자 세실과의 추억이 있는 곳.
원하면 다른 방에서 충분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방을 바꾸지 않았다.
온 사방이 적밖에 존재하지 않는 엘란두르의 저택.
그나마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오래 전, 세실과의 추억이 깃든 이곳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방으로 돌아온 시안.
시안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띠링!
《따라라랏~♪ 이 몸 등장!!》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화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꽤나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모바일 영주! 개같이, 두둥등장!!!》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모바일 영주였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조금 정겨운 기분.
역시나 모바일 영주는 모바일 영주.
《긴 점검을 끝내고 개같이 부활한 모바일 영주!》
《그리하여 더욱더 강력해진 모바일 영주우우!》
띠링!
《차원의 모든 인과를 끌어와도 끄덕없는 모바일 영주!》
《다시 태어난 모바일 영주는 그야말로 천! 하! 무! 적~☆》
《하핫! 어디 한 번 현질해 보시라구욧!》
“어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점검과 함께 강해지긴 강해진 모양인데···.
이상한 쪽도 강해진 것 같았다.
〈관련 시스템이 정상화 됩니다.〉
〈영지 시스템이 재활성화됩니다.〉
이윽고 시스템이 정상화 된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때문일까.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입니꽛!》
모바일 영주가 화들짝 놀라며 알림창을 띄워보냈다.
《제가 없는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꽛!!》
《다크 엘프들이 영지민으로 합류했다고요?》
《게다가 아닛?! 저건 세, 세계수?!》
《당신! 영지에 세계수를 심었습니까?》
《그것도 엘로디의 유산인 인스티즈를?!》
《세상에나! 세상에나!》
“응?”
모바일 영주의 호들갑에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크 엘프들이 영지민으로 합류하고.
영지에 인스티즈를 심은 건 꽤나 오래 전의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모바일 영주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 사실을 몰랐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바일 영주는 기절해있었으니까.
즉, 모바일 영주는 기절해있느라 시안이 인스티즈를 심은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다크 엘프들이 영지민이 된 것도 알지 못했다.
《영지민으로 합류하자마자 충성도와 만족도가 인과 허용치를 뚫어버렸다고욧?!》
정확히는 충성도와 만족도가 Max치를 뚫어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세계수라니! 그 인스티즈를 심을 생각을 하다니욧!》
《세계수는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을 품고 있는 나무!》
《석가모니 선생님도 세계수를 보자마자 이렇게 평했답니다!》
《‘이 나무 아래서 수행했더라면, 단번에 열반에 이르렀을텐데···.’》
《석가모니 선생님도 감탄을 금치 못한 세계수!》
《수 천년의 공도를 도로아미타불로 만들어버린 전설의 세계수!》
《그야말로 생명의 근원, 진리의 근원을 품은 세계수우우우! 》
《그런 세계수가 심어진 당신의 영지는 그야말로 킹왕짱 영지!》
《가문에서 망나니라 불리던 내가 이세계에선 킹왕짱 영주?!》
“······”
시안은 순간 뭐라 할 말을 잃어버렸다.
역시 호들갑의 제왕 다운 모습.
‘그리고 석가모니는 또 누군데?’
하여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바일 영주였다.
《하지만 댓츠 노노! 여긴 이세계가 아니라 실제 현실의 일이라구욧!》
《당신의 영지민들은 당신의 말에 절대 복종할지니!》
《이 정도면 초야권도 행사할 수 있다구욧!》
“······ 정신 치료를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점검 내용에서 어렴풋이 본 기억이 있었다.
긴급 점검 내용에 ‘인과 안정화 및 정신 치료’ 라는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바일 영주의 모습.
《인간, 엘프, 드워프! 무려 세 종족이나?!》
《한 종족도 아니고 세 종족을 전부우우?!》
《당신! 너무 부러운 거 아니예요?!》
어째, 정신 치료도 모바일 영주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았다.
“하여간···.”
시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실로 말도 안되는 성장을 해버린 당신의 영지!》
《영지의 발전 수준이 한계점을 맞이했습니다!》
띠링!
《영지 등급이 ‘마을 → 도시’ 로 변경되었습니다!》
《도시 등급에서 건설 가능한 시설들이 개방됩니다!》
그러면서 【영지 시설】 항목에 새로운 건물들이 추가되었다.
정확히는 무수히 많은 항목들이 추가되었다.
“아직도 마을 수준이었다고?”
지난 번, 부락 취급을 받았던 때야 그럴 수 있었다만.
지금의 루벤은 누가 봐도 ‘마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마을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
“인구 때문에 그랬었나?”
어째, 그럴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아무래도 등급 상승에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럼 다음 등급은 대체 어느 정도인데?”
그러니까 어느 정도로 현질을 해야하는 건데?
시안은 아찔한 생각에 그만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뭐, 어쨌든 발전을 했다는 것은 좋은 일.
시안은 곧장 추가된 시설들을 확인했다.
【[New!] 마법 공학 시설】
【[New!] 군사 공학 시설】
【[New!] 기계 공학 시설】
【[New!] 교육 시설】
【[New!] 경제 시설】
【[New!] 인쇄 시설】
.
.
.
그 밑으로 쭈욱, 이어진 항목들.
각 항목마다 관련한 시설들이 다시 주르륵, 나열되어있었다.
“워···.”
시안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지난 번 3,200만 골드의 현질로 루벤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세계수, 인스티즈와 더불어 사실상 대륙에서 루벤과 같은 영지는 없다봐도 무방했다.
해서 이제 발전할 것은 거진 다 발전했고.
있다 하더라도 기존 시설의 업그레이드 정도라 생각했건만.
어째, 모바일 영주의 현질처럼 영지의 발전 또한 끝이 없었다.
“그게 그 소리인가?”
시안은 추가된 항목들을 차분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유독 눈에 띄는 시설이 하나 있었다.
“경제 시설에는 뭐가 추가 되었지?”
역시나 경제 시설.
그러니까 돈과 관련한 경제 시설이었다.
시안은 곧장 경제 시설 항목을 터치했다.
꾹.
『시끌벅적 시장 Lv.1』
『다차원 은행 Lv.1』
『쓸어담아 상단 Lv.1』
『모여라 모여! 교역소 Lv.1』
.
.
터치와 함께 새로 추가된 경제 시설들이 주르륵, 나열되었다.
화면 위로 떠오르는 시설들은 그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전부 경제와 관련한 시설들이었다.
시안은 떠오른 시설들을 차분히 훑어봤다.
그리고 이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시설 하나.
“다차원 은행?”
다름 아닌 은행이었다.
은행이라 함은 일반적으로 골드를 빌리거나 맡기는 기관이었다.
경제와 금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시설.
샤를롯 제국에서도 은행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 관리를 황가에서 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은 경제의 주축이라 봐도 무방한 시설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국가 경제가 박살이 날 수 있었다.
해서 은행은 황가에서 엄격한 통제 하에 관리가 이루어졌다.
물론 규모가 큰 영지.
이곳 엘란두르와 로르실트 그리고 일부 상단 가문에서도 은행은 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금전을 맡기고 되찾는 금고의 기능이 강했다.
그리고 이 마저도 황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설치할 수 있었다.
은행은 일개 영지에서 운영할 시설은 아니었다.
그런 은행을 설치할 수 있다?
시안은 다차원 은행을 터치했다.
꾹.
『다차원 은행 Lv.1 (2,000,000 G)
▶당신! 혹시 돈이 부족하시진 않으신가요?
지금 당장 생활고에 허덕이지 않으신가요?
그런 당신을 위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것을 준비했습니다!
바로바로 ‘다차원 은행 Lv.1’!!
차원에서 당신의 신용을 평가하여 돈을 빌려드립니다!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신!
영지 전체가 파산나기 직전인 당신!
지금 바로 이 다차원 은행 Lv.1을 이용해보세요!
매달 10%의 이자로 당신께 돈을 빌려드립니다!
어라라? 돈이 그렇게 급하지 않으신가요?
걱정하지 마시라!
다차원 은행 Lv.1은 단순히 돈만 빌려드리지 않습니다!
당신의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다는 사실!!
또 단순히 돈만 안전하게 맡지 않는다는 사실!
무려 1%!!
맡기신 돈의 1%에 달하는 이자를 당신께 선사합니다!
100만 골드를 넣으면 매달 1만 골드가 공짜!
1,000만 골드를 넣으면 매달 10만 골드가 공짜!!
심지어 업그레이드에 따라 그 이자율이 증가한다고요!
그야말로 돈 넣고 돈 먹는 개꿀!
개꿀 중에 상개꿀!!
지금 바로 설치하셔서 개꿀을 빨아보세요!
······네?
왜 빌리는 이자는 10%이고.
맡기는 이자는 1%냐고요?
하핫! 원래 세상이 그렇답니다!』
.
.
.
“······”
시안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저걸 보고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그래도 뭐···.
“설치하면 그래도 나쁠건 없을 것 같은데.”
나쁠 건 없는게 아니라 굉장히 좋았다.
급할 때 골드를 빌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골드를 넣어두기만 해도 이자를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1%에 달하는 이자였으나 보아하니 업그레이드를 하면 이자율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10%만 되어도···.”
1,000만 골드를 넣었을 때 매달 들어오는 이자가 무려 100만 골드.
정말 돈 넣고 돈 먹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다차원 은행 Lv.1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은행업’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스마트 폰 화면 위로 새로운 알림창이 떠올렸다.
“연구?”
어째, 은행업을 연구해야 다차원 은행 Lv.1을 지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루벤에서 연구가 행해지는 곳은 다름 아닌 엘로디의 연구소였다.
그간 제리 혼자서 떠맡고 있었지만.
이번에 다크 엘프들이 합류하면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 할 수 있는 연구들은 모두 완료한 상황이었다.
해서 그동안 수고한 제리에게 휴가라도 주려고 했었거늘.
시안은 곧장 엘로디의 연구소에 들어갔다.
그리고 연구 가능 목록을 확인.
[New!] 마법 공학 연구
[New!] 군사 공학 연구
[New!] 기계 공학 연구
[New!] 은행업 연구
[New!] 인쇄술 연구
[New!] 교육학 연구
.
.
.
관련한 연구들이 무수히 생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깐, 설마 그럼 다른 시설들도?”
시안은 다시 새로 추가된 시설 항목들을 탐색했다.
그리고 【마법 공학 시설】 항목을 터치.
그 중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마법 공학 제작소 Lv.1’을 확인했다.
꾹.
『마법 공학 제작소 Lv.1 (1,000,000G)
▶당신! 혹시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가요?
마법을 쓰고 싶은데 재능이 없어 좌절하고 계신가요?
그런 당신을 위해 그리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것을 준비했습니다!
바로바로 마법 공학 제작소 Lv.1
마법 공학이란, 마법이라는 학문과 공학이라는 기술을 접목시킨 분야입니다.
그리고 이는 천 년전, 엘로디가 고안한 아이디어였죠!
대마도사라 불리던 천재 마법사 엘로디!
그녀는 드래곤도 저리갈 정도로 마법이라는 분야에서 최정점에 올라 선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안타까웠습니다.
바로 마법이 선택받은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마법은 재능이 뛰어난 자만이 사용할 수 있죠.
허나 마법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세계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
그런 마법이 특정한 누군가에게 소유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해서 엘로디는 고민을 거듭했고 그 끝내!
빠밤!
그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그리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대단한 것을 고안했습니다!
마법과 공학의 기술을 접목시킨 기술, 마법 공학!
그 어떤 차원에도 없었던 새로운 분야이죠!
익스플로전 마법을 차용하여 철책을 빠샤! 단번에 부숴버리는 폭탄은 물론!
인비져블 마법을 접목하여 존재의 기척을 숨기는 스텔스 기술까지!
마법에 재능 따위가 일절 없어도!
그 누구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초고도 기술!
이 놀라운 상상력에 초월 마법사들이 무릎 똭! 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자, 궁금하시지 않으신가요?
궁금하면 지금 바로 설치해보세요!』
.
.
.
“어··· 음···.”
시안은 이걸 뭐라 반응해야할지 난감했다.
일단 그 내용이 꽤나 심상치 않았으니까.
마법 공학.
설명을 보아하니 엘로디가 고안한 마법? 기술?
뭐, 그런 것의 일종인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엘로디의 지식인 셈.
하지만 아무도 그 지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중간에 소실되어 사라진 것일까.
엘로디가 고안한 마법 공학은 현재로서는 전해지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대륙에는 마법 공학이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천 년전에 사장된 마법이자 기술.
그러나 엘로디의 연구소에는 그 지식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마법 공학의 위력이 평범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 평범은 무슨 어마어마할 것 같았다.
초월 마법사들이 무릎을 똭, 쳤다는 모바일 영주의 말.
얼핏 농담처럼 보이나 그 간의 경험상.
저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니까.
해서 이 ‘마법 공학 제작소 Lv.1’은 반드시 지어야하는 시설이었다.
후에 엘란두르와의 전투에서 큰 도움을 줄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해당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마법 공학 연구가 필요합니다.〉
〈해당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계 공학 연구가 필요합니다.〉
〈해당 시설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교육학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 역시 관련한 연구를 진행해야만 설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명처럼 굉장한 시설인 것인지 ‘마법 공학 제작소 Lv.1’에는 상당한 연구가 필요했다.
뭐, 여기까진 이해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정말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법 공학 연구] - 10,000,000G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뭔···.”
시안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무려 1천만 골드.
단순한 연구 시작에 드는 비용이 자그마치 1천만 골드였다!
이건 미쳐 날뛰다 못해 제정신이라 볼 수가 없지 않은가!
“초월 마법사들이 무릎을 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나?”
가격이 제정신이 아니어서?
초월의 존재들도 저 가격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건가?
심지어 저 연구가 끝이 아니었다.
연구를 완료해도 시설을 건설하는 비용은 또 따로 들어갔다.
거기에 기계 공학, 군사 공학 연구까지 해야했고.
각종 시설들 건설 비용까지 더해야했다.
여기에 영주성 업그레이드와 기존 시설들 업그레이드까지 가미한다?
대충 계산기를 때려도 수 천만 골드.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세요!》
“······ 젠장.”
시안은 일순간 정신이 빠져버리는 기분이었다.
#
엘란두르 저택에 위치한 행정실.
수많은 행정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저··· 부행정관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시안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엘란두르의 행정관이 조심스레 시안을 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그게 다름이 아니라···.”
행정관은 묘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재서의 예산이 높게 측정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결재서의 예산이 높게 측정 돼?”
“네. 여기.”
행정관은 시안에게 들고 있던 결재서를 건넸고.
시안은 그 결재서를 받아 그 내용을 확인했다.
결재서의 내용은 32개 마을에 보내는 구호 물품들이었다.
그것도 이번에 신설된 1차 치료소에 보내는 구호 물품들.
조금 더 정확히는 구호 물품을 구매하는 것에 대한 예산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예산은 10만 골드 내외로 책정되었다.
그런데 지금 행정관이 건넨 결재서.
이곳엔 무려 21만 골드가 책정되어 있었다.
2배 이상이 뻥튀기 되어 책정된 상황.
“딱히 별 다른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예산이 뻥튀기 된 것이 상당히 이상합니다.”
행정관은 그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시안이라고 그 문제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 이거. 괜찮아. 그대로 진행해.”
시안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예?”
시안의 답에 행정관이 살짝, 당황해보였다.
누가 봐도 결재서의 내용이 이상했으니까.
이윽고 시안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1차 치료소는 병환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잖아. 그만큼의 지출도 당연한 거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1차 치료소는 각 마을마다 설치되어 증상이 괜찮은 자들을 치료하는 치료소였다.
또한 환자들이 가장 먼저 방문하여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치료소.
물론 증상이 심각한 자는 1차 치료소에서 처리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증상이 심한 자들도 1차 치료소에서 긴급하게 구호를 받을 수 있었으니.
이를 말미암아 사망자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그 덕분에 기아와 기근으로 말미암은 병들은 순식간에 치료가 되었고.
후작령의 병환자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실로 완벽한 시안의 구휼 정책.
하지만.
“이제 환자들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 완벽한 구휼 정책 덕분에 예산이 남아돌고 있는 실정이었다.
행정관의 지적에 시안은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어···.”
살짝 흔들리는 시선.
솔직히 시안도 알고 있었다.
행정관의 지적도.
이 결재서의 예산이 높게 책정된 것도.
전부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시안은 예산서를 고치라 말하지 않았다.
‘횡령해야 돼.’
횡령할 준비를 해야했으니까!
그 일환으로 시안은 예산서를 조금씩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까, 횡령을 위해서 예산을 조작할 필요는 없었다.
모바일 영주의 현질은 출처도, 확인도 불가능한 기이한 현상이었으니까.
그러니 조금씩 조금씩ㅡ 현질을 하면 아무도 모를 터였다.
괜히 예산을 조작하면 흔적만 남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시안은 예산을 조작했다.
아니, 조작해야만 했다.
[마법 공학 연구] - 10,000,000G
현질할 금액이 생각보다 너무 커졌으니까!
아니, 큰 정도가 아니었다.
마법 공학은 물론 기계 공학, 군사 공학 연구.
또 각종 시설들 건설 비용까지.
여기에 영주성 업그레이와 기존 시설들 업그레이드까지 가미한다?
그 모든 것들의 견적을 대충 때려만 봐도···.
‘7천만 5백만 골드···.’
얼추 이런 금액이 산출되었다.
그야말로 미쳐버린 금액이 산출되었다!
이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었다.
엘란두르의 예산이 천문학적이라고는 하나.
저 7천만 골드를 간과하고 넘어갈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이건 깨어난 모바일 영주가 그대로 다시 혼절해버릴 금액.
긴급 점검이 끝나자마자 다시 긴급 점검에 들어갈 금액이었다!
긴급 점검뿐이랴?
정기 점검, 임시 점검, 연장 점검.
점검이란 모든 점검을 때려박아도 모자를 금액이었다.
띠링!
《진행을 하다 막혔을 땐, 현질을 해보시든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모바일 영주는 여전히 깐쪽거리고 있었지만···.
뭐, 아무튼.
‘지랄이지 이건.’
어쨌거나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었다.
이건 횡령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엘란두르의 기둥 하나를 뽑는 수준이었다!
아니, 하나가 아니라 수 십개는 뽑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의 횡령은 사실상 불가하다.
이 정도의 횡령은 필시 덜미가 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현질을 안 한다?
‘그건 말도 안 되지.’
그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
차라리 덜미가 붙잡힐지언정 횡령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안은 계획을 급하게 수정했다.
‘한탕 제대로 하고, 그 즉시 튄다.’
이름하야 횡령튀.
7천만 골드를 현질하고 그 즉시 튄다.
물론 현재 시안은 엘란두르 저택에 감금되어있었다.
하지만 곧 저택을 벗어날 기회가 올 터였다.
다름 아닌 시안이 콘라드에게 미리 보내둔 편지.
‘왜 이렇게 늦는지는 모르겠다만···.’
이제 슬슬 그 반응이 올때가 되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횡령의 때를 기다릴 때였다.
시안은 금방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래서 그래. 괜히 역병이라도 돌았다가는 문제가 생기잖아? 잡을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잡아야지.”
“음···.”
“문제 생기면 내가 책임질테니까 그냥 진행해.”
행정관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행정관님께서 그러신다면야···.”
별 다른 의심 없이 결재서를 들고 자리로 복귀했다.
그저 시안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시안이 보여준 모습이 있었으니까.
흉년이 들이닥친 후작령의 피해를 빠르게 복구하는 완벽한 구휼 정책,
그 과정에서 냉철한 판단력과 분석력.
그리고 상황에 대처하는 기질까지.
그런 시안 덕분에 흉년의 피해는 이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모든 자금을 투명하고 또 정당하게 사용했었다.
성과가 눈앞에 버젓이 있는데 의심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렇게 행정관을 돌려보낸 직후.
시안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 부행정관님. 다름 아니라 결재서에 책정된 예산이···.”
또 다른 행정관이 시안을 찾아왔다.
아무래도 방금 전 행정관과 같은 내용인 모양.
시선을 돌리자 역시나.
다른 행정관이 결재서를 들고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그 행정관이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 주르륵, 수많은 행정관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그리고 그들 손에 들린 결재서들.
“어··· 그건 말이지···.”
시안의 머릿속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수많은 변명의 말을 찾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시안 도련님.”
분위기가 사뭇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하얀 늑대 기사단의 기사가 보였다.
기사는 행정관들의 행렬을 무시하며 곧장 시안에게 다가왔다.
기사는 금방 시안 앞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들려온 기사의 말.
아무래도.
“지금 가주께서 급히 도련님을 찾으십니다.”
벌써 횡령튀··· 아니, 엘란두르를 떠날 때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