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횡령튀(1)
《뭐, 뭐예욧! 저, 저게 대체 뭐예욧!!!!!!》
《저, 저 정도의 인과가 왜 츠, 측정되어있는거죠?!》
띠링!
《대체 어떻게에에엑?!?!》
발작을 하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은 끊이질 않고 계속 떠올랐다.
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8,200만 골드.
이건··· 이건 정말이지 말이 안되는 금액이었으니까.
아니, 말이 안 되다 못해 비현실적인 금액이었다.
어마어마하다? 천문학적이다?
아니면 끔찍하다?
그런 말로도 차마 설명이 불가했다.
그 어떤 과장된 표현이라도 저 금액이 갖는 값어치를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시안이 지금까지 현질한 모든 골드를 모아도 8,200만 골드가 안되었다.
지난 번에 루벤을 갈아 엎으면서 쏟아부었던 3,200만 골드.
그 골드를 합한다 하더라도 7,000만 골드가 조금 넘을 뿐이었다.
8,200만에는 전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렇기에 모바일 영주의 반응은 당연했다.
모바일 영주가 긴급 점검에 들어간 인과는 고작 3,200만 골드.
뭐··· 3,200만 앞에 고작이라는 말이 붙을 수는 없지만.
끔찍한, 이라는 말이 붙어야 옳은 표현이지만.
어쨌든 모바일 영주는 3,200만 골드 앞에 몇 주 동안 기절해있어야만 했다.
심지어 정신 치료까지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금액은···.
[82,124,000 G]
자그마치 8,200만 골드.
2배가 넘는 아득한 금액이었다.
《저, 저렇게 큰 인과가 들어올리가 업써요···!!》
《안대···!! 안대애애애!!!!!》
모바일 영주는 벌써부터 정신을 잃은 듯 중얼거렸따.
《저, 저렇게 큰 게 들어오면···! 나···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꺼에오···!!》
《깨꼬닥, 기절하고 말꺼에오···!!!!》
어째, 그 말이 상당히 곡해하게 들렸지만···.
뭐, 아무튼.
8,200만 골드는 그만큼 소름끼치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골드에만 반응하는 거 아니었나?”
생각해보니 이것도 그러했다.
그동안 시안의 경험상, 모바일 영주는 어디까지나 골드에만 반응했다.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골드.
그러니까 현물로 존재하는 골드.
전표와 같은 것에는 모바일 영주가 반응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 시안의 앞에 놓인 무시히 많은 결재서.
합쳐서 무려 8,200만 골드짜리 결재서이기는 하다만 아직 인장을 찍기 전이었다.
뭐, 인장을 찍으면 그 즉시 효력을 발휘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골드화 하지 않은 전표나 다름 없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도 그랬었지? 아마?”
다름 아닌 황제와 황실에서 도합 3,200만 골드짜리 전표를 받았을 당시.
아직 전표를 골드화 하지 않았음에도 모바일 영주는 발작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시안 또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 탓에 어렴풋하다만.
분명 그러했던 기억이 남아있었다.
“강해지면서 이런 것들도 강해진건가?”
그러니까 인과 측정의 능력 또한 강해지는 그런 것?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에이, 알게 뭐냐.”
시안은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딱히 중요한 사실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중요한 건 하나.
[82,124,000 G]
바로 8,200만 골드를 현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건 시안의 돈이 아니었다.
시안이 개고생하가며 번 돈이 아니었다.
그저 의자에 앉아 결재서를 찍은 돈.
정확히는 듀라크의 지갑에서 가져온 돈!
무려 부모님의 돈이자 이제는 남의 돈!
“아아···!! 아아아아···!!!”
시안은 전신으로 차오르는 희열을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
띠링!
《나 깨어난 지 얼마 안대써요···! 얼마 안 대었따고요···!!!》
《또 기절하기 시러!! 또 기절하기 시러어어!!!!!》
아아아아···!
우우웅···!
그렇게 방 안에는 한동안 시안과 모바일 영주.
두 존재의 희열이 가득 터져나왔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후우···!’
시안은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지, 진정하자. 지, 지, 진정해야해···.”
시안은 말을 되뇌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결재 인장을 꺼내 들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손이 부르르, 흔들려왔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결재서에 인장을 찍어왔건만.
이번만큼은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았다.
시안은 반대손으로 인장을 잡은 손을 부여잡았다.
그럼에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래도 인장을 찍을 정도는 되었다.
꿀꺽.
시안은 침을 한 번 삼켰다.
이 인장 한 번이면 모든 것이 시작된다.
“흐읍···!”
시안은 눈을 질끈 감으며 결재서에 인장을 찍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책상이 크게 흔들렸다.
살며시 인장을 들추자, 결재서에는 하얀 늑대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시안은 슬쩍, 인벤토리의 금액을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84,734,560 G
8,200만 골드가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헙···!!!”
시안의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와 동시에 띠링! 띠리링! 띠리리링!
띠리링! 띠링! 띠리링! 띠리리리리리리링!
스마트 폰에서 미친듯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시안은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크헙···.!!!”
확인할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치, 치, 침막해···! 아니, 침착해!”
시안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심정을 가라앉혔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200만 골드.
다름 아닌 커너의 품에서 발견한 전표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전표였다.
하지만 보나마나 이사벨이 암살 의뢰로 커너에 준 전표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하여, 지금 인벤토리에 쌓여있는 8,400만 골드.
그 말은 즉.
이 8,400만 골드는 죄다 엘란두르의 지갑에서 나왔다는 뜻이었다!
또 달리 말하면 시안이 현질할 수 있는 금액이 자그마치 8,400만 골드라는 뜻이기도 했고!
“이, 이, 이 돈이면···!”
루벤을 2번이나 갈아 엎을 수 있었다.
또 그 뿐이랴.
4인 가족이 무려 23만 년.
그러니까 아르나이즈가 23번 까무러칠 시간 동안 살아갈 수 있는 금액이었다.
현존하는 언어로는, 표현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금액.
“치, 치, 침착해야돼··· 이럴 수록 침차으아아아아악!!”
그 황홀한 금액에 시안은 차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파르르, 떨리는 전신.
아득해지는 정신.
“아아아아···!”
콰당탕!
시안은 끝내 앉아있던 자리에서 뒤로 자빠져버렸다.
“후우..! 후우···!!”
거칠어진 호흡.
시안은 몇 번이나 심호흡을 내뱉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8,400만 골드가 시안의 수중에 들어온 것은 맞았다.
그러나 정확히는 시안의 인벤토리에 들어와 있는 ‘골드’는 아니었다.
정확히 따지면 엘란두르의 창고에 있는 예산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예산에 시안이 결재만 했을 뿐.
그러니까 예산 사용 허가만 내렸을 뿐이었다.
이를 모바일 영주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엘란두르의 부행정관이라는 인과에 걸맞게, 시안이 운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산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엘란두르의 부행정관에서 박탈되면.
그러니까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인과가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는 돈이었다.
“지금 사용하면 안돼.”
그렇기에 현질을 함에 있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했다.
엘란두르의 예산은 가히 추정조차 불가하다.
그러나 8,400만 골드를 간과할 만큼은 아니었다.
아무리 엘란두르라고 하더라도 8,400만 골드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티가 난다.
아니, 티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기둥 몇 개는 뽑아먹는 금액이었다!
“분명 눈치를 챌 거야.”
그러니 반드시 눈치를 챌 것이 분명했다.
사라진 8,400만 골드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끝에 시안이 있음을 밝혀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시안이 횡령했음을 숨기는 방법은 없다고 봄이 옳았다.
하지만.
“밝히는 데 오래 걸릴 거야.”
그 과정까지 시간을 끄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일단 모바일 영주에 대한 현질은 출처가 남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골드가 증발해버린다.
그러니 시안이 사용했다는 것을 밝혀내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또한 그 동안 시안이 쌓아온 이미지가 더 시간을 끌어줄 터였다.
구휼 정책을 통한 성과.
그리고 그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용한 예산까지.
시안에 대한 의심이 있더라도 그들은 생각할 것이다.
설마 부행정관님이?
에이, 아니겠지.
그 믿음이 시안으로 하여금 시간을 벌어줄 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규모가 커도 너무 컸다.
횡령도 횡령 나름이지.
이 정도 규모면 횡령이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니, 세상 어떤 미친놈이 8,400만 골드를 횡령한단 말인가!
이 미쳐버린 행각에 사람들은 쉽사리 횡령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예산 누락.
혹은 장부 분실.
이렇게 생각하고 추적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밝혀질 일이긴 했다.
언제고 시안의 횡령 사실이 발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발각되었을 때.
시안은 이미 엘란두르에 없을 터였다.
정확히는 루벤에서 이 모든 것들을 관망하고 있을 터.
그러니 지금은 현질을 할 때가 아니었다.
때는 엘란두르의 저택을 떠나 황궁으로 향하는 날.
“기다려라···!”
시안의 두 눈이 희번뜩, 떠졌다.
#
시간을 빠르게 흘러 어느덧 황궁으로 떠날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시안은 그 시간 동안 거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도 그럴 것이 시도 때도 없이 발작하는···.
아니, 스마트 폰이 웅웅···! 진동하는 바람에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었다.
1초가 멀다하고 띠링!
알림음을 꺼버리면 우우웅···!
모바일 영주에게 밤새 시달리는 바람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마법 공학 연구랑 또 기존 시설들 Lv.7로 업그레이드하고··· 아, 그러면 영주성 Lv.3 업그레이드 해야했지.”
현질할 목록들을 정리하느라 잠을 잘 여유가 없었다!
8,400만 골드에 달하는 현질.
심지어 이번엔 루벤을 초기화하는 일도 없었다.
새로 작성한 세미르의 청사진은 이후의 모든 변수까지 계산했고.
다른 시설이 들어온다 한들, 그저 영지 확장을 통해 지으면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골드가 소모되었지만···.
지금은 8,400만 골드를 사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시안은 3일 동안 거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그 끝내 현질할 목록들을 모조리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
시안은 마차 안의 창문을 살짝, 열었다.
그런 시안의 시야로 흰 갑옷을 입은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절제된 분위기가 유독 특징인 기사.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 에런이었다.
그리고 그런 에런의 주위로 여러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비쳐보였다.
그들은 시안이 탄 마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 이유는 별 반 다르지 않았다.
다름 아닌 시안의 호위.
황궁으로 향하는 시안을 호위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호위 병력으로 하얀 늑대 기사단이 따라붙었다는 것.
그건 시안을 공식적으로 엘란두르의 일원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하나.
에런이 따라붙은 건 조금 과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에런은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이자 마스터 중급의 기사.
고작 시안의 호위로 붙기에는 과하다 할 수 있었다.
이건 인력 낭비다 못해 갖다 버리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에런이 따라붙는다는 것.
‘감시를 하겠다는 건가.’
시안은 그 의미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시안이 딴 길로 새지 못하도록 감시하고자 에런을 붙인 것 같았다.
‘듀라크가 안달이 난 것 같기는 하네.’
카이를 루벤에 보내는 것도 그렇고.
지금 에런을 감시로 붙이는 것도 그렇고.
듀라크는 시안을 어떻게서든지 붙잡으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안은 이 저택을 떠나는 그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예정이었다.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건 엘란두르의 적으로서 돌아오겠지.
‘에런이 따라붙은 건 조금 의외이긴 하다만···.’
물론 에런이 따라붙은 건 예상 밖이었다.
아무리 시안이라고 마스터 중급의 감시를 벗어날 수 없었다.
때문에 황궁에서 루벤으로 가는 것에 차질이 생길 수 있겠으나···.
‘뭐, 상관 없겠지.’
이것도 다 생각이 있었다.
듀라크가 직접 따라붙는다면 모를까.
황궁에서 루벤으로 갈 계획에 에런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해서 지금 문제는 단 하나.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84,734,560 G
8,400만 골드의 횡령···
아니, 현질튀··· 아니, 횡령튀.
아니, 횡령을 빙자한 현질···.
아니, 현질을 빙자한 횡령···.
아무튼 그거였다!
시안은 품 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빈틈없이 빼곡히 적혀있는 글씨들.
다름 아닌 밤새 정리한 현질 목록들이었다.
띠링! 띠리링! 띠리리리리링!!!
일순간 모바일 영주의 발작이 떠올랐지만 시안은 가볍게 무시했다.
“후우···!”
시안은 심호흡을 크게 내뱉었다.
그리고 마차에 앉아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도련님.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마차 밖에서 들려오는 에런의 목소리.
띠리리리리링!!!
《시, 시러어어어어어어어!!!!!!!!!》
그와 동시에 모바일 영주의 절규가 가득히 울려퍼졌다.
#
엘란두르 저택에 위치한 행정실.
“후우··· 이로써 전부 마무리가 된 건가.”
파이톤은 마지막 결재서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작령에 들이닥친 흉년.
그 흉년으로 인해 후작령에는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했다.
기아와 기근으로 말미암은 사망자들이 속출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들 또한 훗날의 미래를 걱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모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일사천리로 일을 해결해버렸다.
그것도 전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말이다.
“참···.”
파이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엘란두르의 총괄 행정관이자 수 십년을 행정관으로 역임해온 파이톤.
“어디서 행정일을 배운 것은 아닐텐데.”
그런 파이톤조차 시안의 정책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단 정책뿐만 아니라 정책을 시행하는 결단력과 배포까지.
머릿속에 쌈박질 생각만 가득한 무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주께서 다 이유가 있으셨군.”
파이톤은 듀라크가 시안을 왜 부행정관에 앉혔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낙하산이라 생각했지만, 낙하산이 절대 아니었다.
인재 채용 그러니까, 스카우트.
사실상 총괄 행정관 자리를 내주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도 은퇴할 때가 되었나.”
파이톤의 고지식한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때.
“총괄 행정관님!! 총괄 행정관니이이임!!!!”
어디선가 파이톤을 부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어디서 오우거 폐라도 삶아 먹기라도 한 걸까.
목소리가 행정실 전체를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파이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곳엔 한 행정관이 헐레벌떡 파이톤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콰당탕!
와르르르···!
어찌나 급하게 뛰어오는지 넘어지고 자빠지고.
옷까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지만 행정관은 뛰어오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총괄 행정관니이이이이임!!!!”
되려 더욱 더 큰 소리를 내지르며 파이톤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헐레벌떡 다가온 행정관.
“무슨 일인가?”
“크, 크, 크일···! 큰일 났습니다아!!!”
파이톤이 묻자 행정관이 숨을 헐떡거리며 소리쳤다.
그런 행정관의 모습에 파이톤은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렇지.
지금 보이는 태도는 영 보기 좋지 않았으니까.
해서 파이톤은 보고 대신 잔소리를 하려고 했었다.
“예산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아···!”
이 말이 들려오기 전까진.
찡그려진 파이톤의 눈썹이 치켜떠졌다.
“예산이 사라져?”
“예! 예예!”
황급히 대답하는 행정관의 모습에 파이톤은 작은 실소를 흘렸다.
늘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예산을 엄중히 관리 한다고는 하나 완벽하게 관리할 수는 없었다.
규모가 크면 클수록 누락되는 금액은 발생되기 마련.
엘란두르 정도의 규모면 수 십만 골드에서 수 백만 골드는 빵꾸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런 로스율을 미리 계산해 예비 예산을 책정해두지 않는가.
아무래도 눈앞의 행정관은 엘란두르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쩐지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다 싶더라니.
“대체 얼마가?”
그렇기에 파이톤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러자 행정관이 심히 주저하며 답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걸 말해도 되는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뜸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
행정관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8··· 8천 2백만 골드입니다···.”
우뚝.
그와 동시에 파이톤의 몸이 굳어버렸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그러다 끝내 내린 결론.
‘내가 늙긴 늙었나 보군.’
이젠 귀까지 잘 안들리니.
파이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었다.
“미안하네. 얼마라고 했었지?”
그런데 어째서일까.
“8천 2백만 골드···. 입니다.”
행정관의 말은 전혀 달라져있지 않았다.
우뚝.
파이톤의 몸이 다시 한 번 굳어버렸다.
내가 노망이 났나?
파이톤은 그런 의문을 한아름 안으며 행정관에게 다시 물었다.
“8백 20골드?”
그러자 행정관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럼 8천 2백 골드?”
도리도리.
“8만 2천 골드?”
도리도리.
“8십만 2천 골드?
도리도리.
“······ 8백 20만 골드?”
여기서부터는 조금 흠칫 거렸다.
820만 골드는 쉬이 넘어갈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도리··· 도리···.
행정관은 끝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8천 2백만······ 골드?”
끄···떡.
행정관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우뚝.
그와 동시에 파이톤의 몸이 굳어버렸다.
몸과 함께 사고의 흐름 또한 정지해버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니, 그러니까··· 지금 8,200만 골드가 사라졌다는 뜻?
정신이 출타하며 멍해졌다.
그 사이로 행정관이 한 장의 서류를 살며시 내밀어 보였다.
파이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류의 내용으로 향했다.
그리고 파이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로 8,200만 골드가 사라져있는 것을.
정확히는 8,214만 4천 골드가 재정에서 사라져있는 사실을!
“이, 이,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어억!”
형용할 수 없는 충격에 말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 누가! 대체 누가! 아니, 사용처는? 출처는? 전부 싹다 확인했나?!”
파이톤은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8,200만 골드는 엄청난 돈이었다.
아니, 엄청나다는 말로도 부족한 돈이었다.
그런 돈이 사라졌다 함은 반드시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단 1골드라도 출처를 확인하면 추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어, 없습니다···.”
들려온 행정관의 말이 되지 않았다.
“사라진 골드의 출처가··· 없습니다···.”
말이 안되는 수준을 넘어 말 같지도 않았다!
“뭐, 뭐?”
파이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라진 골드의 흔적이 없다.
그 말은 즉.
“지금 골드가 증발이라도 했다는 뜻이냐?”
이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염병.
“······ 네.”
그게 맞댄다.
“......”
파이톤은 이걸 뭐라 반응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저딴 걸 행정관이라고 앉혀놓은 스스로의 안목을 탓할 뿐이었다.
파이톤은 헛웃음을 흘리며 행정관이 내민 서류를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골드가··· 증발했다?”
정말로 증발한 골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골드가 사라져있었다.
진짜 골드가 증발해버렸다.
출처도, 사용처도 전무한 상태로!
“이, 이럴 수가 있나···?”
수 십년 행정관 경력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맹세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 규모 또한 말이 되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을 넘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이 8,200만 골드면 엘란두르의 예산이 심히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이번에 구휼 정책으로 예산을 물 쓰듯이 써버린 탓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렇기에 엘란두르의 백성들이야 큰 상관없었다.
그들은 이미 받을 것을 넘치도록 받은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엘란두르의 가신들을 비롯한 저택의 일원들은 아니었다.
이 정도면 봉급은 줄 수도 없을 뿐더러.
당장 내일부터 저택의 식사로 죽이나 퍼먹어야할 판이었다!
또 그 뿐이랴?
계획하고 있던 사업들도 죄다 취소해야할 판이었다.
몇 년간 기획 중이었던 사업들을 죄다 엎어버려야했다.
이건 단순히 8,200만 골드만이 아니었다.
그 골드로 벌어들일 수익까지 생각하면 못해도 1억 골드 이상의 손해가 발생한 셈이었다!
1억 골드.
돈이라 부를 수 있는 개념을 아득히 초월한 금액.
그 골드가 지금 사라진 상황이었다!
“어, 어억···!!!”
콰당탕!
“총괄 행정관님! 총괄 행정관님!!”
파이톤은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