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64화 (164/322)

§ 164화 - 대립(2)

카이 엘란두르.

엘란두르 가문의 장자이자 시안의 맏형되는 이.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천재 중의 천재.

카이는 루벤의 정문 맞은편에 서 있었다.

그런 카이의 앞으로 웅장한 루벤의 자태가 비쳐보였다.

그러나 카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앞에 홀로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설원에 서 있는 한 마리의 고고한 늑대와도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카이의 뒤로 도열해있는 흰색 갑옷의 기사들.

대륙에서 하얀색의 갑옷은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대표되는 이들은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

“저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엘란두르의 하얀 늑대 기사단.

뒤이어 따라온 콘라드와 엘레나가 눈앞의 풍경에 의문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벤에 하얀 늑대 기사단이 올 이유가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저렇게까지 많이 올 이유가 없었다.

저 정도면 거진 3개의 기사단을 모조리 끌고 온 것 같았다.

그리고 하얀 늑대 기사단 3개의 기사단이라면 웬만한 백작령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물며 카이까지 왔다?

이건 그렇구나, 하면서 넘길 만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아, 맞다.’

시안은 이 상황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다름 아닌 시안이 엘란두르 저택에서 황궁으로 떠나기 직전.

듀라크는 시안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었다.

‘네가 떠나고, 곧 카이를 하얀 늑대 기사단과 함께 루벤으로 보낼 것이다.’

그 이유는 루벤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시안이 돌아갈 곳을 없앰으로써 시안을 가문에 확실히 붙잡아두고자 하는 의도.

아무래도 그 명령의 일환으로 지금 상황이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미 끝난 거 아니었나?’

문제는 왜 지금 이 상황이 펼쳐져있냐는 것이었다.

듀라크는 분명 시안이 황궁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이를 보낸다고 말한 바 있었다.

엘란두르에서 루벤까지 거리가 가까운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시안이 황궁으로 갔다가 돌아올 거리만큼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 상황은 시안이 황궁에 있을 때 벌어져야 했던 일.

‘그런데 왜···?’

해서 시안은 의문이 들었으나, 금방 생각을 털어내었다.

듀라크가 말하는 ‘곧’ 과 시안이 생각하는 ‘곧’이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시안이 횡령한 것으로 출정이 늦어졌을 수도 있었다.

출정에도 당연히 예산이 필요했고 8,200만 골드는 그 출정을 늦어지게 하기엔 충분했으니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지금 눈앞에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저희는 분명 경고했습니다! 이 이상으로 접근하신다면 강경하게 대응하겠습니다!”

다시 들려오는 루카스의 외침.

그와 함께 방벽 위, 루벤의 병사들이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카이는 그 압박감 속에서도 홀로 서 있었다.

가만히 시선을 들어 방벽 위의 루카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치와 함께 기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츠츠츠츠─!

일순간 카이의 전신으로 섬뜩한 기세가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카이 뒤쪽으로 도열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저마다 검을 뽑아들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잠깐!”

시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갑작스러운 시안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이쪽을 향했다.

카이의 기세도 사그라들며, 터질 것 같던 분위기 또한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이윽고 카이의 시선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오는 시안의 모습을 확인하더니.

“······!”

카이의 눈이 일순간 크게 떠졌다.

바라보는 시선.

“네가··· 왜 여기에 있는거지?”

아니나 다를까 카이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어왔다.

시안은 카이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으니까.

“카이 도련님.”

일순간 시안의 뒤쪽으로 에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에런이 시안의 앞을 스쳐지나가며 카이에게 다갔다.

“에런 단장?”

그런 에런의 모습에 카이는 다시 한 번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시안이 이곳에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거늘.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인 에런이 있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었으니까.

에런은 곧장 카이에게 다가가 뭐라뭐라 속삭이기 시작했다.

워낙에 작은 목소리인 터라 뭐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보나마나 그 간의 사정에 대해 카이에게 말해주는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에런의 말이 이어질때마다 카이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에 시안을 향했던 시선은 다시 그 뒤쪽, 콘라드와 엘레나로 향했고.

또 그 시선은 그 옆으로 도열한 로열 나이츠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시안에게 이르러 멈추었다.

카이는 별 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분명 사정을 모두 들었음에도 카그저 무덤덤하고 담담한 얼굴로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이슨이었다면 노발대발 분기탱천하며 있는 지랄, 없는 지랄을 떨었을 텐데.

시안은 가만히 카이의 시선을 마주했고.

그렇게 묵직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루벤의 처분은 잠시 보류한다.”

정적을 깨고 카이가 입을 열었다.

카이는 슬쩍, 고개를 돌려 자신을 따라온하얀 늑대 기사들에게 말했다.

“일단은 시안을 데리고 가문으로 복귀한다.”

그런 카이의 결정에 시안은 조금 놀라보였다.

이렇게 순순히 시안만 데리고 갈 줄은 몰랐으니까.

듀라크가 시안을 데려오라 명한 것도 사실이나.

루벤을 지워 없애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일부는 시안을 데려가고 나머지는 루벤을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이렇듯 루벤의 처분을 보류할 필요는 없거늘.

아무래도 황태자와 황녀가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카이는 지금 당장의 전투를 꺼려하는 것 같았다.

카이가 다시 한 번 시안을 바라봤다.

여전히 무덤덤한 눈빛이었으나 이번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얌전히 따라와라.

그러면 지금 당장 루벤을 어찌하지는 않겠다.

카이는 그렇게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거절하겠습니다.”

시안은 그런 카이의 등에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뚝.

일순간 카이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런 카이와 동시에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의 움직임 또한 멈추었다.

시안은 그런 카이를 향해 다시 한 번을 말을 내뱉었다.

“누구 마음대로 그런 결정을 내리시는 겁니까.”

시안의 말에 카이가 천천히 등을 돌렸다.

다시 한 번 마주 바라보는 시선.

“가주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뜻이냐.”

“아니요.”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주라 함은 한 가문의 주인이자 대표를 지칭했다.

따라서 엘란두르 가문의 가주라 함은 엘란두르 가문의 주인이자 대표를 의미했다.

그리고 엘란두르에서 가주의 뜻은 절대적이었다.

엘란두르에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절대로 거역해서는 안되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시안 또한 엘란두르로서 가주의 뜻을 따라야함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엘란두르로서’일 때였다.

아직 정식적으로 작위식을 거행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황제의 이름으로 공언된 바.

시안은 현재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백작이라 함은 한 지역에서의 최고 관리자. 패업을 이룬 제후.

자신 밑으로 귀족을 임명할 수 있는 고위 귀족이자.

이는 오등작에서 진정한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시안은 스스로의 세력을 일굴 수 있는 진정한 귀족.

“듀라크는 더 이상 제 가주가 아닙니다.”

시안에게 듀라크는 더 이상 가주가 아니었다.

시안 스스로가 한 가문의 가주가 되었을 뿐.

시안의 말에 하얀 늑대 기사단들의 기세가 급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말.

빙빙 돌려 말했으나 결국 듀라크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하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심지어 가주라 말하지 않고 듀라크라 말하는 것까지.

“도련님의 발언은 도를 넘어섰습니다.”

이에 보다 못한 에런이 시안을 향해 한 발 나셨다.

진득한 기세를 피워올리며 시안을 압박해왔다.

“그만.”

하지만 카이가 그런 에런을 막아세웠다.

에런은 그런 카이의 만류에도 그만둘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에런은 금방 그 기세를 거두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카이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그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당장 루벤이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거냐.”

일순간 카이의 기세가 폭발했다.

마스터의 기사가 내뿜는 끔찍한 기세가 사방을 드리워왔다.

오로지 존재의 죽음을 갈망하는 살기.

살기는 살의(殺意)가 되어 시안으로 하여금 죽음을 윽박질러왔다.

그런 카이의 기세에 맞서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 또한 기세를 피워올렸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들이 오롯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숨조차 제대로 내쉴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시안은 그런 압박감을 마주하며 홀연히 서 있었다.

시안을 강제로 끌고 가려는 카이.

예전이라면, 과거의 시안이었다면.

이 압박감에 못 이겨 카이를 따라갔을 터였다.

영지민들이 시안을 붙잡았겠지만 시안은 되려 그런 영지민들을 말렸을 터였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났을 터였다.

그것이 이들 모두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그리고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제국을 지탱하는 두 기둥, 엘란두르 가(家).

제국에서 엘란두르와 척을 진 가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가문들이 엘란두르와 맞서 싸왔고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 없어졌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엎드려 빌어야했다.

그렇기에 이대로 카이를 따라 나서는 것이 루벤을,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었다.

아마, 예전의 시안이었다면 이것이 정답이라 생각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은 알고 있었다.

그건 루벤을, 사란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도망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지금의 시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거 시안은 언제나 도망만 쳐왔다.

엘란두르 앞에서는 항상 작아졌던 시안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루카스!”

숨고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챙!

시안은 인벤토리에서 SSS등급의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엘란두르와 관련한 그 누구도! 루벤에 단 한 발짝도 못 들이게 하라!”

“명 받들겠습니다.”

챙! 채챙!

루카스의 대답과 함께 방벽 위의 병사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결연한 눈빛과 터져나오는 기세는 단 한 명도 루벤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관철시켜 보였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코웃음 쳐보였다.

비아냥 거리는 듯한 눈빛으로 시안과 루벤을 바라봤다.

그 눈빛 안에 담긴 의미는 제각각이었으나 뜻은 하나로 통일되어있었다.

감히 네 까짓게. 네 까짓 놈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시안은 그런 시선들을 담담히 마주했다.

그리고 터벅,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툭,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켄드릭.”

사아아아···!

그 순간 루벤의 안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어어어어···!!

사방으로 섬뜩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죽은 자의 절규.

망자의 비명.

그것엔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이 깃들어있었다.

새까만 어둠이 밀려온다.

칠흑의 어둠이 공간을 잠식한다.

그리하여 드리운 기세를 무차별적으로 집어 삼킨다.

이윽고 짙은 어둠이 루벤에서 튀어나오며 시안의 옆에 자리했다.

흐드러지는 칠흑의 안개.

그 사이로 짙푸른 안광이 번뜩이며 한 존재가 피어올랐다.

어둠으로 물든 존재.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켄드릭.

“······!”

“······!”

갑작스러운 켄드릭의 등장에 하얀 늑대 기사들이 주춤, 몸을 떨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켄드릭에게서 기운.

저건···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명하십시오 주군.

어둠에서 피어난 켄드릭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시안은 그런 켄드릭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이들은 루벤을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목소리.

“모두 척살하라.”

-존명.

켄드릭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이윽고 켄드릭이 검을 뽑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정문이 열리며  일련의 기사들이 뛰쳐나왔다.

칠흑의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

그들은 시안과 켄드릭의 뒤쪽으로 질서정연하게 도열했다.

그리고 뿜어져나오는 끔찍한 마기(魔氣).

“······!”

“······!”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은, 결코 만만히 볼 수준이 아니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소름끼치는 귀곡성(鬼哭聲)이 터져나왔다.

지옥의 이명처럼 길게 울리는 굉음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폭사하는 어둠에 두려움과 공포가 파고들며 이성을 마비시켜왔다.

그리고 보이는 천 년의 원귀, 레아.

그런 레아에게서 터져나오는 끝없는 사념(死念).

레아는 시안의 오른쪽에 자리하며 진득한 사념을 피워올랐다.

그 사념 앞에 하얀 늑대 기사들의 기세는 맥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공간을 잠식하는 어둠.

시안은 그 새까만 어둠의 틈에서 홀연히 서있었다.

그런 시안의 오른쪽에는 레아가, 왼쪽에는 켄드릭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시안의 뒤쪽으로 루벤의 기사단들과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있었다.

터벅.

시안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보였다.

집중된 시선 속, 시안은 카이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을 내뱉었다.

“루벤이 어찌 되어도 상관 없냐 물으셨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시안의 한 마디.

“할 수 있다면, 해보십시오.”

그와 동시에.

그어어어어어어어─!!!

시안의 전신으로 포악한 마기(魔氣)가 사방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

먹구름과도 같은 칠흑의 안개가 주변의 공간을 잠식해왔다.

어둠이 대지를 적시며, 주위를 새까맣게 물들인다.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아로새겨졌다.

지금 피부로 느껴지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투기.

이건 감히···.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종류다.

그렇기에 떠오르는 의문.

“어, 어찌 이런···?”

에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다는 충격은 쉬이 숨길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일단 저 짙은 어둠을 흩뿌리는 데스 나이트.

그리고 그 위로 떠돌아 다니는 원귀.

백은색의 머리와 짙은 회백색의 눈동자.

얼굴에 묘비 두 개를 박아넣은 것처럼 생기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근육은 빳빳하게 굳어버리고.

날카롭게 선 정신이 몸을 옭아맨다.

뇌리에 박히는 의지.

정신을 마비시키는 공포.

끼야아아아아악!!

그어어어어어어─!

터져나오는 귀기(鬼氣)와 드리우는 마기에 의식이 저만치 멀어진다.

그것은 소름끼치는 지옥의 이명을 자아냈다.

그리고 그런 두 존재의 가장 앞서 있는 한 사내, 시안.

시안은 가장 앞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의 기세를 마주하고 있었다.

휘몰아치는 칠흑의 마기가 시안의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 마기의 양은 현저하게 적었다.

저기 저 데스 나이트와 원귀에 비하면 현저하다 못해 처참하다는 표현이 적합했다.

하지만 에런은 단순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것.

근원의 마(魔).

그 근원의 마 앞에 다른 두 마기가 굴복하고 있었다.

참된 주군을 맞이하듯.

드리우는 힘에 경배하듯.

시안의 마(魔)는 차원이 다른 불길함을 내재하고 있었다.

감히, 감히 시안을 감당할 수 없다는 불길한 예감을.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에런은 떠오르는 생각을 격하게 부정했다.

그건 말이 안되었으니까.

말이 되어서도 안되었으니까.

에런은 하얀 늑대 기사단의 단장이자 마스터 중급의 실력자였다.

제국 어딜 가나, 대륙 어딜 가나.

에런을 위협할 존재는 없었다.

에런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에런이 공포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엘란두르의 가주, 듀라크.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리는 듀라크 뿐이었다.

헌데 지금.

에런은 시안의 기세에 어떤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말이 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불길함에 지나지 않을 터였다.

에런이 시안에게 공포를 느낀다는 건, 시안이 듀라크에 필적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대륙 제 1의 검이라 불리는 듀라크.

그의 강함이 어떠한지 에런은 직접 경험해봤기에 알 수 있었다.

그건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존재는 역시나 딱 한 명밖에 없었다.

아니, 가능할 것이라 예상되는 존재는 하나밖에 없었다.

지금 옆에 있는 카이 엘란두르.

오직 대륙에서 카이만이 가능한 영역이었다.

에런은 떨리는 눈빛으로 카이를 바라봤다.

카이는 묵묵히 자리에 서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감정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덤덤한 표정과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시안.

시안은 알 수 있었다.

다르다.

카이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는 표정과 얼굴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느껴지던 기세가 사뭇 달랐다.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집어던진 것처럼, 카이의 기세가 조그맣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찰나.

무덤덤하기만 하던 카이의 두 눈이, 일순간 빛이 났다.

온다.

시안의 생각과 동시에, 카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꽈아아앙!

공간이 진동하는 듯한 착각.

꽈앙! 하고 터진 폭음은, 일순간 시야를 뒤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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