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격돌(1)
뒤흔들리는 시야 속.
-주군과 루벤을 위협하는 자들이다. 모두 척결하라!
“전원 전투 준비!”
켄드릭과 루카스의 외침과 동시에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검을 뽑아들었다.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들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예상 밖의 상황인 것은 맞았다.
저 말도 안되는 힘을 지닌 데스 나이트.
그에 필적하는 사념의 원귀.
그리고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
이건 도무지 한낱 영지의 전력이라고는 생각될 수 없었다.
그것도 이런 변방의 영지라고는 더더욱 생각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에런을 위시한 기사들은 그 이름도 유명한 하얀 늑대 기사단.
입단 자격이 소드 엑스퍼트에 이르는 제국 제 1의 기사단이었다.
“가주의 명령을 거역하고 가문을 돌아선 배반자들이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쏟아지는 마기가 눈앞까지 다가온다.
번뜩이는 푸른 안광이 에런의 시야 가득히 덮쳐온다.
“착검!”
그래, 너의 상대는 나다.
에런은 이를 까득, 씹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마주치는 기세와 마기.
서로 다른 힘이 충돌한다.
꽈아아아앙!
힘과 힘의 충돌과 동시에 사방으로 힘의 파편이 비산했다.
숲 전체가 떨리고, 공간이 뒤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리고 에런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감당할 수··· 없다.
“커헉···!”
에런의 입가로 붉은 선혈이 튀어나왔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음에도 그 수준의 차이가 그대로 느껴졌다.
에런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생각을 빠르게 고쳐먹었다.
이 데스 나이트는 감히 어찌할 수 없는 존재다.
정말 말이 안되지만 듀라크에 필적하는, 실로 압도적인 무력이라 할 수 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존재가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1명이었다.
반면에 이쪽은 에런을 위시한 하얀 늑대 기사단이 있었다.
그것도 2,3,4 기사단과 더불어 시안의 감시로 붙은 기사단까지.
무려 4개의 기사단이 이 자리에 있었다.
웬만한 백작령을 초토화시킬 전력.
그러니 시간을 끌면 된다.
이 데스 나이트의 발목만 묶으면 나머지는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해주리라.
마스터 중급의 에런.
데스 나이트를 이길 수는 없겠으나 시간을 끌 정도는 되었다.
에런은 검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 또한 바로 고쳐먹어야했다.
번뜩!
에런의 눈앞에서 짙은 푸른 안광이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검이 시야 가득히 덮쳐온다.
꽈앙─!
황급히 검을 들어 막자 손끝으로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에런이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맞닿는 감각은 없었다.
사아아아악─!
켄드릭의 주위로 짙은 어둠이 뿜어져나왔다.
죽음의 기사,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천 년전, 악마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검은 사자 기사단.
검은 사자 기사단이 도달한 곳에 악마는 없다.
그 전설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신화 속의 기사단.
켄드릭은 그런 검은 사자 기사단의 단장이자 그에게 붙여진 이름, 악마 학살자
날카로운 검격이 쇄도해온다. 베기와 찌르기.
그 단순하면서도 간단한 일격들이 연달아 쏟아진다.
콰쾅─! 콰콰쾅!
“커허헉!”
에런이 왈칵, 피를 토했다.
내부가 진탕이 되어버린 듯, 끔찍한 격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분명 쏟아지는 일격들을 막았건만 이게 막은 건지 검째로 후드려 맞은 건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에런은 떨리는 눈으로 앞을 바라봤다.
이건··· 이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시간을 끈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었다.
에런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대륙 제 1의 검, 듀라크 엘란두르.
이 데스 나이트는···.
콰아앙!
듀라크와 견주어도 쉬이 밀리지 않을 실력자다.
“감히!”
“네 까짓 놈들이!”
사방으로 하얀 늑대 기사들의 분노가 사방에서 터져나온다.
그리고 그 분노의 원인은 다름 아닌 저항이었다.
벌레라 생각했던 존재의 발악.
쓸려나가지 않는 루벤의 기사와 병사들.
아니, 저걸 발악이라 할 수 있을까?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하얀 늑대 기사들에 맞서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본래라면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했어야했다.
그런데 저들은 저항하고 있었다.
저항을 넘어 대적하고 있었다.
이게···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건가?
에런은 그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얀 늑대 기사들이었다.
최소 엑스퍼트의 경지로 이루어진 최강의 전력.
제국 제 1의 기사단임과 동시에 어쩌면 대륙 제 1의 기사단일지도 모를 이들이었다.
그런데 밀리지 않는다.
밀리지 않는다고···?
아니, 그런 수준을 논할 것이 아니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악!!!
사방으로 터져나오는 귀곡성.
“커헉···!”
“크하학···!”
하얀 늑대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갔다.
밀리고··· 있었다.
대륙 최강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하얀 늑대 기사들이···.
“커허헉!”
“크학!”
한낱 루벤의 전력을 대항하지 못하고 밀리고 있었다.
“이, 이게 지금···!”
사아아악─!
일순간 에런의 발 아래로 칠흑의 어둠이 솟구친다.
솟구친 어둠 속에서 망자의 비명이 들려온다.
에런은 지금 이 상황을···.
“크하학···!”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
루벤의 기사들과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격돌하고 있는 시점.
시안과 카이는 서로 검을 맞댄 채 대치하고 있었다.
카가각─!
맞닿은 검에서 둔탁한 쇠음이 일어났다.
힘과 힘의 충돌.
소름끼치는 힘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
바라본 카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서 보이는 감정은 놀람.
그리고 일말의 당황.
지금 시안이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을,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카이의 기세가 폭발했다.
어마어마한 무게의 압박감이 검 위로 덮쳐왔다.
카카카칵! 검과 검,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크윽···!’
그 끔찍한 힘에 시안은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과거를 통틀어 카이와 직접 검을 맞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가문에 있을 적, 곁눈질로나마 카이의 수준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
단 한 번의 격돌일 뿐인데도 카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시안은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의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눈에 훤히 보였다.
아직 닿을 수 없는 경지.
수많은 수련과 현질을 통해 어마어마한 성장을 거듭했음에도 카이의 경지에 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보인다.’
그 경지가 보였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보였다.
물론 그 수준에는 닿지 못한다.
여전히 까마득하다.
그러나 그 격차가 이제는 눈에 보인다.
눈에 보일 정도로, 따라왔다.
꽈드득!
시안은 다리에 힘을 주고서 이를 까득, 깨물었다.
목구멍 가득히 올라오는 핏물을 삼키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쩌어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시안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힘에 휘말린 몸이 휘청거리며 흔들린다.
가까스로 힘을 주어 균형을 잡았다.
까득, 씹은 이빨 사이로 비릿한 피맛이 느껴졌다.
반면에 카이는 아무런 타격조차 입지 않았다.
방금 전 격돌한 자리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휘청거리는 것을 기대했건만.
카이는 석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시안은 그런 카이를 바라보다 슬쩍, 시선을 돌렸다.
챙! 채챙!
주변으로는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루벤의 전력과 하얀 늑대 기사단.
역시나 루벤의 전력이 하얀 늑대 기사단을 압도하고 있었다.
일단 켄드릭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에런이 나서서 막아서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시간 벌이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하얀 늑대 기사단이 루벤의 전력을 압도하냐.
그것도 아니었다.
물론 아직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그 수준에 못 미쳤다.
병사들 하나하나가 거진 기사급에 이르렀으나, 하얀 늑대 기사단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얀 늑대 기사들은 전원 엑스퍼트로 이루어진 기사단.
제국 제 1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최강의 기사단이었다.
그런 기사단을 상대로 몰아붙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하얀 늑대 기사단을 몰아세울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속된 시안의 현질로 인한 장비 업그레이드.
그리고 훈련장의 버프로 인한 어마어마한 성장.
여기에 방벽 위에서 쏟아지는 다크 엘프들의 마법 지원.
무엇보다 레아의 존재.
레아는 사방으로 사념을 쏟아내며 하얀 늑대 기사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들은 레아의 힘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할 뿐이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하얀 늑대 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들이 제압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 때문일까.
로열 나이츠들은 별 다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보아하니 루벤의 전력이 하얀 늑대 기사단을 압도하고 있었으니까.
이기고 있는 싸움을 중재할 이유는 없었다.
콘라드라고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별 다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해서 콘라드와 엘레나는 멀찍이서 이 상황을 관망할 뿐이었다.
시안은 다시 시선을 돌려 카이를 바라봤다.
주위로는 여전히 치열한 전투의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카이는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마주치는 시선.
그리고 찰나의 순간.
파박!
공간이 접히듯, 시안과 카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일순간 카이의 모습이 사라졌을 때, 시안의 검은 이미 앞으로 내질러지고 있었다.
콰쾅!
공기가 찢어지며 끔찍한 소리를 자아냈다.
다시금 맞닿은 시안과 카이의 검.
“황태자를 믿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그 사이를 비집듯 카이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시안을 바라보는 카이의 두 눈빛에는 이채가 서려있었다.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게냐.”
카이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시안은 마땅한 답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캉! 카캉!
카카캉!
휘몰아치는 검의 연속.
덮쳐오는 검격의 향연 속에서 시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중급의 경지라고?’
켄드릭과 대련을 해보았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마스터 중급의 경지라 부를 수 없었다.
물론 켄드릭의 경지에 비하면 모자랐다.
그러나 이건 중급이라는 수준으로 논할 수 있는 경지가, 힘이 아니었다.
상급에 살짝 걸친 수준.
그런데 중급에 발을 딛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야말로 제국의 별이요, 듀라크를 뛰어넘을 천재라 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뛰어나구나.”
지랄 염병하지 마십쇼.
그 때문인지 이어진 카이의 말에 시안은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캉! 카캉─!
물론 쉴새없이 휘몰아치는 검격에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수 백번 가량 욕을 반복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카이의 입에서.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시안에게.
저게 할 말이란 말인가.
저건 그냥 무지에서 비롯된 기만이었다.
아니면 조롱이라던가.
꽈앙!
어느 쪽이든 지랄 염병밖에 되지 않았다.
꽈드득!
시안은 움켜쥔 검에 힘을 꽈득 쥐며 밀어내었다.
그럼에도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끔찍한 힘이 더해지며 시안을 검째로 내리 눌렀다.
농담이 아니라 SSS등급의 검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아작이 났을 터였다.
꽈꽈꽈꽝!
어둠의 숲이 통째로 뒤흔들렸다.
시야가 뒤흔들리며 일순간 카이의 모습을 놓쳐버렸다.
쇄도하던 검이 흩어지며 사라진다. 휘몰아친 검격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지?
시안을 황급히 카이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선명하게 느껴지는 카이의 기세.
시안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시야에 의존하면 안된다.
감각에만 의존하면 안된다.
감각을 넘어선 확장된 기감.
그것은 시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안의 몸이 어둠으로 화하며 흩어졌다.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 마혼무영보(魔魂無影步).
쐐액!
시안의 목을 노리며 날아든 카이의 검이 허공을 가른다.
카이는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는다.
카이는 허공을 가르는 검의 궤도를 비틀었다.
멀지 않은 곳에 모습을 드러낸 시안은, 옆구리로 날아드는 카이의 검에 순간 당황해보였다.
이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끔찍한 마기가 응축되었다.
주변으로 피어나는 칠흑의 아우라.
그리고 이어진, 단 한 번의 참격.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1식(第 一式).
수라천살(修羅天殺).
.
.
.
콰자작─!
시안의 앞선 풍경이 사선으로 갈라진다.
거대한 짐승이 할퀴어간 흔적처럼, 하나의 크나큰 흉터가 숲을 배경으로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 속.
주르륵, 카이의 몸이 긴 자국을 남기며 크게 밀려나있었다.
“······!!!”
카이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감정 하나 내비치지 않던 카이의 얼굴에는 뚜렷한 충격이 떠올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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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이런 소리를 내뱉어버렸다.
도무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엘레나는 처음부터 나설 생각이었다.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그들이 루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그 순간.
그리고 시안과 카이가 대치를 하고 있던 그 순간.
엘레나는 가장 먼저 나서서 싸움을 말리려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과야 뻔했으니까.
아무리 시안이 더 이상 망나니가 아니라고는 하나.
보이는 루벤의 자태 또한 철옹성 같다고는 하나.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
이 둘 앞에서는 시안은 여전히 망나니였고, 루벤은 한낱 폐허나 다름 없는 영지였으니까.
그렇기에 엘레나는 곧바로 나서려했었다.
하지만 콘라드가 그런 엘레나를 막아섰다.
‘오라버니···?’
엘레나는 그런 콘라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의 위명은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시안과 대치하고 있는 카이 엘란두르.
제국의 별이라 불리는 카이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조차 입 아플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당장이라도 말려야 하건만.
‘조금만 지켜보자꾸나.’
그런데 콘라드는 이런 말만 해올 뿐이었다.
엘레나는 그런 콘라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게 무슨···?”
엘레나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피를 튀기는 격렬한 전투.
시안은 카이에 맞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고.
루벤의 전력들 또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에게 밀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밀렸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엘레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마, 말도 안돼요···.”
그저 이런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엘레나는 검에 대해, 기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호신 및 심신 수양의 일환으로 검을 잠깐 잡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호신 및 심신 수양의 일환일 뿐.
그 이상으로 검을 수련하지는 않았다.
황녀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엘레나는 알 수 있었다.
시안이 카이와 ‘대적’ 한다는 것,
그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임을.
거기서 끝이 아니라 하얀 늑대 기사단들 또한 루벤의 전력에 밀리고 있었다.
이게··· 정녕 말이 되는 일인 걸까?
하얀 늑대 기사단은 그 이름도 유명한 제국 제 1의 기사단.
지금 당장 로열 나이츠와 맞붙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최강의 기사단이었다.
“······ 예일 경. 필리프 경.”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둘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왜인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예일과 필리프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충격과 경악으로 물든 표정.
어째, 엘레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예일 경? 필리프 경?”
“······ 아, 네. 부르셨습니까.”
“죄송합니다.”
두 번 묻고 나서야 둘은 살짝 놀라며 답해왔다.
엘레나는 그것에 대해 책하지 않았다.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엘레나는 그 둘을 향해 물을 뿐이었다.
“로열 나이츠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리고.
“······”
“······”
예일과 필리프는 차마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었으니까.
지금 보이는 루벤의 전력을 보고 이길 자신이 없었으니까.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이었다.
마스터 중급에 달하는 예일과 필리프.
황가를 수호하는 로열 나이츠로서 자긍심 또한 가지고 있었다.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과 라이벌이라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코 하얀 늑대 기사들에게 뒤쳐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되려 앞서 있다고 생각했으면 했을 뿐.
그런데··· 루벤은 아니었다.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아니었다.
현 전력으로 이길 수 없다.
특히나 저기 데스 나이트와 사념의 원귀.
아무리 생각해도 예일과 필리프는 저 둘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로열 나이츠의 모든 기사단을 이끌고 온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으로는 반드시 진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마스터의 눈으로 바라본 객관적인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예일과 필리프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엘레나 앞에서 질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엘레나는 자신들이 수호해야하는 황가의 일원이었다.
황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건 로열 나이츠로서의 자존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없는 말을 지어낸다?
그건 또 마스터로서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예일과 필리프는 입을 꾹, 다물었다.
황녀의 질문에 침묵한다는 불경죄임을 간과한 채.
“······”
“······”
서로가 서로에게 눈치를 보며, 답을 미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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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떠진 카이의 두 눈은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되려 동공이 흔들리며 그 놀람과 충격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었다.
파르르, 검을 쥔 카이의 손아귀가 살며시 떨려왔다.
카이는 살짝 시선을 내려 손을 몇 번 쥐었다 펴보았다.
하지만 방금 전의 충격에 감각이 상실된 것일까.
손이 제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실로 말이 안되는 상황.
그러나 카이는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임을 알고 있었다.
카이는 방금 전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떠오르지가 않았다.
정확히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억 속 시안의 일격은 단순한 베기에 지나지 않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사선으로 올려친 참격.
무너진 자세에서 급하게 끌어친 터라 그 자세 또한 형편 없었다.
그런데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단순한 베기, 그 안에 깃든 묘리.
보다 근원적인 무(武).
카이와 시안의 수준 차이는 까마득 했다.
애초에 수준의 차이를 논하는게 무의미했다.
이건 직접 검을 맞대어본 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떠오르지 않는다.
이해할 수가 없다.
시안이 행한 일격을, 카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이는 떨리는 눈으로 시안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