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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166화 (166/322)

§ 166화 - 격돌(2)

시안을 바라보는 카이의 두 눈은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카이를 마주 바라보던 시안.

‘미친··· 그걸 막았다고?’

시안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에 시전한 수라천살.

물론 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또한 자세가 흐트러진 채로 시전한 수라천살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그 위력은 쉬이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이는 멀쩡이 막아내었다.

두 눈을 부릅, 떠보인 채 놀라고 있었다만 단지 그 뿐.

입은 타격이라고는 전무해보였다.

‘괴물이야 뭐야?’

그야말로 괴물이 따로 없었다.

‘저래놓고 내가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진짜 지랄 염병이 따로 없었다.

카이는 가만히 시안을 바라만 봤다.

쉼없이 떨리던 눈빛은 어느샌가 잔잔해져 있었다.

카이는 시선을 돌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카이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열세에 몰리고 있는 것인 이쪽이다.

심히 믿기지 않지만 눈앞의 현실은 분명 그러했다.

카이의 시선이 다시 시안을 향했다.

다시 마주하는 시선.

그 순간.

콰콰콰콰콰─!

카이의 전신으로 숨 막히는 기세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카이의 검으로 새파란 기류가 얽혀들었다.

피부 끝으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동.

그것은 곧 선명한 푸른빛으로 화하며 카이의 검 위로 맺히기 시작했다.

공기마저 갈라버리는 하나의 날.

오러 블레이드(Auror Blade).

카이는 오러 블레이드를 형상화하며 천천히 자세를 낮추었다.

하체를 굽히고, 상체를 숙이며 검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런 카이의 모습은 설원 위의 늑대, 마치 먹잇감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낸 한 마리의 늑대와도 같았다.

‘승부를 보려는 건가.’

시안은 단번에 카이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시간은 자신의 편이 아님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시안은 저 승부에 응해줄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끌고 켄드릭이나 레아를 기다리면 되었으니까.

아무리 카이라도 그 둘의 협공을 감당할 수는 없을테니까.

그렇기에 카이는 지금 승부수를 던지려는 것 같았다.

비록 전황이 밀리고 있다고는 하나, 시안만 쓰러뜨리면 그걸로 끝이었으니까.

해서 지금 카이가 시전하려는 것.

그건 엘란두르의 핏줄에게만 전해지는 검술이자.

듀라크를 대륙 제 1의 검으로 올려놓은 비기였다.

시안은 감히 배우지 못했던 엘란두르의 비기.

그러나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었다.

해서 시안은 저 승부에 응해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호승심 혹은 승부욕.

그런 어줍잖은 객기가 아니었다.

지금 느껴지는 카이의 기세.

카이라고 모를 리가 없다.

시간을 끌고 도망치면 시안이 유리하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카이는 이렇게 대놓고 승부수를 던져온다.

마치 시간을 끌려면 끌어보라는 듯이 말이다.

자신감. 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안은 그 행동에 숨어든 카이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시안이 도망치고 시간을 끄는 것.

그것이야말로 카이의 노림수다.

그러니 피해서는 안 된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시안의 전신으로 끔찍한 마기가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뚝, 시안의 호흡이 끊어졌다.

콰르르릉···!!

피어나간 마기가 폭사한다.

응축된 마기가 터져나가며 전방위가 모조리 어둠으로 먹혀졌다.

주변의 풍경이 일그러진다.

일그러짐이 번져나가며, 숲의 공간을 왜곡시킨다.

그 일그러진 풍경 사이로 번쩍!

카이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런 카이의 움직임을 따라 사아아···!

시안의 신형 또한 어둠으로 화했다.

묵빛 섬광과 청빛 섬광.

두 줄기의 섬광이 서로를 향해 가로질러간다.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제 2식(第 二式).

멸천수라(滅天修羅).

.

.

.

“쿨럭···!”

내려앉는 침묵 사이로 격통 어린 신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격통 어린 신음의 주인.

“젠장···!”

시안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끔찍한 통증이 전신을 강타했다.

왈칵, 입가를 비집으며 붉은 선혈이 쏟아져 나왔다.

내장이라도 뒤틀린 것인지 속에서 피가 끊임없이 쏟아져나왔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시안은 목구멍까지 치솟은 핏물을 억지로 삼켰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으나 꾸역꾸역 검을 쥐며 몸을 일으켰다.

시야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자 그곳엔 카이가 서 있었다.

카이는 시안과 달리 그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저 오롯이, 홀연히.

이런 표현에 걸맞게 그 자리에 서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카이가 천천히 검을 들어보였다.

시안은 그에 맞춰 검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파르르, 떨려오는 손.

다음 일격을 막을 수 있을까.

심히 의심이 들었지만 시안은 검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일순간 카이의 두 눈이 다시 한 번 빛이 났다.

온다.

시안은 파르르,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다들 그만!!!”

콘라드의 외침이 전장 가득히 터져나왔다.

#

콘라드의 외침을 기점으로 시안의 움직임이 뚝, 하니 멈추었다.

카이 또한 마찬가지로 검을 든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켄드릭을 비롯한 레아.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 또 하얀 늑대 기사단들.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내려앉는 정적.

콘라드는 그 정적 사이를 터벅, 가로질러 걸어왔다.

그런 콘라드에게 모든 이들의 집중되었다.

콘라드는 집중된 시선 속에서도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콘라드는 시안과 카이가 대치하고 있는 중간에 자리했다.

그리고 시안과 카이, 두 사람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떤 이유든. 이 이상의 싸움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네.”

그런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니, 꺼낼 수가 없었다.

솔직히···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검을 들고 있는 시안의 손은 계속해서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득해지는 정신에 시안은 당장 지금이라도 쓰러질 자신이 있었다.

조금 더 솔직히는, 격돌의 찰나에 잠깐 정신을 잃었었다.

세계수의 축복 덕분인지 완전히 잃는 것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이상으로 싸움을 지속할 수 있을까.

마혼수라검의 1식과 2식, 수라천살과 멸천수라.

시안은 가진 바 밑천을 다 드러내었다. 시안이 배운 건 이게 전부였으니까.

물론 정말로 모든 밑천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아르나이즈 특전, <뮤리엘의 축복>

업적 보유자의 신체 능력을 극도로 올려주는 버프.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하면 카이를 몰아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뮤리엘의 축복>은 현재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다름 아닌 모바일 영주의 점검.

아르나이즈 특전의 패시브들은 상시 적용되었으나, 시전 버프는 점검 때 동안은 사용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혼자서 카이를 제압하는 건 불가했다.

그렇다면 켄드릭과 레아가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시안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고백하자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콘라드가 나선 건, 정말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사정이 무엇인지 몰라 가만 두었다만, 그 정도가 과해지는 것 같군. 정 피를 봐야겠으면 제국법을 따라 정식으로 영지전을 신청하게. 이런 식의 패싸움을 이어간다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네.”

이어진 콘라드의 말.

현재 시안은 백작의 신분으로 더 이상 엘란두르 소속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카이와 시안의 격돌.

이건 엄밀히 따지면 엘란두르 내부의 일이 아닌 가문과 가문과의 분쟁이었다.

그리고 제국법 상 가문 간의 분쟁은 영지전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적법한 절차였다.

이런 식의 패싸움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말마따나 품격있고 고귀한 귀족들간의 다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문제가 있다면 절차를 따라 영지전으로 해결해야할 일이었다.

콘라드의 말에 로열 나이츠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로열 나이츠 단장, 예일과 필리프를 중심으로 로열 나이츠들이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카이는 가만히 콘라드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의 전황을 살펴봤다.

이윽고 카이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시안을 바라봤다.

무덤덤하고 무표정한 얼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죄송합니다 전하. 무례를 보였습니다.”

카이가 콘라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카이가 다시 에런을 비롯한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향해 말했다.

“돌아간다.”

“도련님!”

그런 카이의 말에 에런이 크게 소리쳤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가주께서···!”

“그만.”

하지만 카이는 에런의 말을 끊었다.

그 이상의 발언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더 이상의 결정 번복은 없을 거라는 듯.

“돌아간다.”

카이는 터벅, 걸음을 옮겨 에런과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스쳐지나갔다.

에런은 멀어지는 카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꽈드득!

“······ 우리도 돌아간다.”

하얀 늑대 기사단들과 함께 카이의 뒤를 따라갔다.

#

카이의 뒤를 따라붙은 에런.

에런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배반자를 내버려두고 이대로 떠나야한다는 것이 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카이의 결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황이 불리해도 너무 불리했으니까.

정말 믿을 수 없지만,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루벤을 상대로 밀렸다.

한명 한명이 정예 병사를 넘어 기사 수준인 루벤의 병사들은 물론.

하얀 늑대 기사단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루벤의 기사들.

거기에 루벤 안 쪽에서 쏟아지는 마법 세례.

무엇보다 데스 나이트와 원귀의 존재까지.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말하면··· 패배하는 건 시간 문제였다.

그렇기에 에런은 카이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카이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황은 확실히 이쪽이 상당히 불리했다.

하지만 카이는 아니었다.

예상 외로 뛰어난 시안의 수준이었다.

과거 시안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안이었다.

그러나 카이 앞에서는 아니었다.

제국의 별이자 듀라크를 뛰어넘을 천재.

아무리 시안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카이 앞에서는 아니었다.

카이는 시안을 몰아쳤고 그렇기에 시안만 잡으면 끝나는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카이는 주저없이 돌아가는 결정을 내렸다.

해서 에런은 내심 카이의 결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

휘청.

일순간 앞서 가던 카이의 몸이 흔들렸다.

카이는 급히 검을 바닥에 내리 꽂으며 휘청거리는 몸의 균형을 잡았다.

“쿨럭···!”

그와 함께 카이의 입가에서 격통이 터져나왔다.

왈칵, 진한 핏물이 바닥으로 쏟아져내렸다.

“도련님!”

에런은 화들짝 놀라며 카이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바라본 카이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허억···! 허억···!”

그리고 들려오는 카이의 거친 호흡.

“······!!!”

에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젠장.”

시안은 카이가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듯 말을 내뱉었다.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휘몰아쳤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아윽···!”

전신을 강타하는 끔찍한 통증.

털썩.

시안은 끝내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영주님!”

그와 동시에 루벤 안 쪽에서 크나큰 외침이 들려왔다.

천천히 시선을 돌리자 수수한 외모의 여인.

루벤의 치료사, 엘리가 시안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엘리는 순식간에 시안에게 다가왔다.

“괘, 괜찮으세요?”

엘리는 한껏 걱정 어린 표정으로 시안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괜찮지는 않았다.

전신을 두들겨 패는 듯한 격통은 지금이라도 정신을 끊어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안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에게 말했다.

“나 말고, 저기 병사들을 좀 살펴봐줘.”

시안보다 괜찮지 않은 이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고는 하나.

그 상대가 무려 하얀 늑대 기사단이었다.

그렇기에 피해를 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망자는 없다는 것이었다.

숱한 현질로 인해 모두 S등급의 장비를 입고 있었을 뿐더러.

세계수, 인스티즈의 축복으로 각종 버프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중상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아야했다.

“하지만···.”

“괜찮으니까 빨리 가봐.”

시안은 엘리에게 재차 말했고 엘리는 그때서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엘리가 떠나간 직후.

“루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싸웠으면 진즉에 아작났겠네.”

시안은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앞선 말마따나 루벤에서 각종 버프를 두르고 싸웠음에도 이 정도였다.

“병사들 장비를 좀 업그레이드 해줘야겠는데.”

거기에 병사들의 수준을 더 끌어올릴 필요도 있었고.

또 루벤의 기사들을 충원해야할 필요도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켄드릭이 선별한 루벤의 기사는 고작 20명에 불과했으니까.

반면에 하얀 늑대 기사단은 무려 4개의 기사단.

애초에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대적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렇기에 S등급의 장비와 준 기사급에 달하는 병사들.

그리고 다크 엘프들의 마법 지원과 더불어 켄드릭과 레아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대적할 수 없었을 터였다.

하더라도 필시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터.

켄드릭과 레아가 시안을 지원 올 수 없었던 이유는 별반 다른 데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

시안은 스스로의 수준에 대해 통감할 수 있었다.

카이와 직접 검을 맞대음으로써 시안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카이는 마스터 중급, 그 이상의 실력자였다.

제국의 별이라 불리며 듀라크를 뛰어넘을 천재였다.

그렇기에 시안이 카이를 대적한 것만으로도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

시안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시안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휘몰아치는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고 있자니.

“자네···.”

문득, 콘라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들어 바라본 그곳.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콘라드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비단 콘라드 뿐만이 아니었다.

콘라드 뒤쪽으로 도열한 로열 나이츠 그리고 엘레나까지.

그들 모두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시안과 루벤의 병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이렇게···.”

콘라드가 멍하니 중얼거리듯 시안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리더니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

마지막으로 웅장한 루벤의 자태를 바라보더니.

“왜 진즉에 들고 일어나지 않은겐가?”

콘라드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은가. 이 정도의 전력을 가지고도 엘란두르 후작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다니···.”

콘라드는 그렇게 말을 내뱉고는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철옹성 같은 루벤의 자태와 칠흑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병사들.

그리고 켄드릭과 레아의 존재까지.

“이 정도면 엘란두르가 아니라 우리 황가라도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콘라드의 표정은 감탄과 경악을 넘나들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설마하니, 나중에는 제국을 향해 반기를 들 생각은···?”

시안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들으면 제가 반역만 일으키는 반동 분자인 줄 알겠습니다. 설마하니 제가 제국에 반기를 드는 미친 짓을 하겠습니까.”

“엘란두르 후작에게 반기를 드는 것도 충분히 미친 짓이네만.”

이어진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음··· 아무래도 안 되겠어. 훗날을 위해서라도 자네와 더욱 끈끈한 연을 만드는 수밖에. 백작위도 받았겠다. 엘레나도 마음이 있겠다. 자네만 허락한다면 내 폐하를 설득해 데릴 사위가 아닌 쪽으로 추진하겠네.”

그러면서 콘라드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농담이 짖궃으십니다.”

“마냥 농담은 아니네만? 가족으로 연을 맺으면 자네가 반기를 들지 않을 것 아닌가?”

그 말과 함께 콘라드가 씨익,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정말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이상한 소리 그만하시고. 아윽···! 안으로 들어가시죠.”

시안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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