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루벤에 온 손님(1)
시안은 콘라드와 엘레나를 데리고 루벤으로 들어갔다.
“루카스, 그럼 부탁해.”
전후처리는 일단 루카스에게 맡겼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하고 싶었지만 그때까지 어둠의 숲 밖에다 황태자와 황녀를 세워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말이 전후처리였을 뿐이었지.
부상자에 대한 치료와 잔해 정리가 고작이었다.
딱히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래도 필요한 일.
“······”
그런데 시안을 바라보는 루카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보아하니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이 온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건 시안이 미리 알려주었으니까.
하지만 황태자와 황녀의 존재는 아니었다.
루카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황태자와 황녀가 루벤에 온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시안이 백작위를 하사받았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았다.
루카스와 루벤의 영지민들에겐 뜬금없다 못해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
하지만 지금 붙잡고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걱정마십시오. 영주님.”
루카스라고 그걸 모르지 않았는지, 이내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시안은 루카스에게 뒷처리를 맡기고는 루벤 안쪽에 위치한 영주성으로 향했다.
그렇게 루벤 안쪽, 영주성으로 향하는 길.
“이, 이게 무슨···?”
“세, 세상에나···!”
루벤에 입성한 콘라드와 엘레나는 연이어 탄성을 터트렸다.
콘라드는 황태자의 체면을 생각지도 않은지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루벤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고개 또한 부러져라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콘라드 눈에 보이는 루벤의 풍경.
“이게··· 루벤이란 말인가···?”
이건 일개 영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으니까.
일단 보이는 건물들의 수준이 어마어마했다.
건물 하나하나가, 아무렇게나 즐비해있는 건물 하나가.
거진 황궁과 맞먹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상업, 농업, 목축업, 주거 등. 질서정연하게 나뉘어진 구역들.
각 목적에 걸맞게 구역이 완벽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루벤을 처음 와보는 콘라드였음에도 한눈에 어디가 어디인지, 또 어떤 목적인지.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알아보기 또한 쉬웠다.
제국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이자, 어쩌면 대륙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라 할 수 있는 수도, 다르칸.
그 다르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다르칸조차 낙후된 지역은 존재했고 또 어두운 면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루벤은 아니었다.
시선이 가는 곳곳마다, 발길이 닿는 곳곳마다.
경이롭다 못해 환상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게 어둠의 숲에 자리한 영지라고···?”
수도, 다르칸을 들이밀게 아니었다.
제국 그 어떤 영지, 도시를 들이밀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할까.
샤를롯 제국을 잘 모르는 이는 제국의 수도가 다르칸이 아닌, 여기 루벤이라 생각할 터였다.
게다가.
“저건··· 드워프들이 아닌가?”
거리 곳곳에 드워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신기함과 두려움이 반반 섞인 눈빛으로 콘라드와 엘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기함은 콘라드와 엘레나를 바라보는 심정이었고.
두려움은 방금 전, 하얀 늑대 기사단들과의 격돌에서 비롯된 심정인 것 같았다.
어쨌거나 루벤의 영지민은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드워프가 영지민으로 있다니···?
다크 엘프들이야 루벤에 영지민으로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난 잘, 북부의 사건에서 직접 진행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시안에게 들은 바, 드워프들도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하니 또 그 느낌이 새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드워프는 고지식의 대명사였으니까.
괜히 장인의 종족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예전보다야 많이 유해졌다고는 하나 이렇게 인간들과 한 지붕 아래 어울려 살 정도는 아니었다.
여전히 그들은 그들만의 부족 안에서 폐쇄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헌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다른 종족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게··· 이게 정녕 영지란 말인가?”
쩌억, 벌어진 콘라드의 입은 쉬이 다물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엘레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루벤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는 엘레나였음에도 콘라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루벤에 한 번 와본 적 있었기에 엘레나가 받는 충격은 더욱 컸다.
“어, 어떻게 이렇게···?”
그때의 기억과는 너무도 달랐으니까.
그때의 루벤과 지금의 루벤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고작 몇 개월의 차이밖에 없었건만.
지금 보이는 풍경은 거진 수 백년은 발전한 모습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엘레나가 본 루벤과 지금의 루벤에는 약 1억 골드가 넘는 차이가 있었다.
1억 골드의 투자로 완전히 탈바꿈된 루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엘레나의 입장에선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괄목상대. 상전벽해.
그 어떤 말을 들이밀어도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마, 말도 안돼···.”
“이, 이럴 수가···.”
엘레나와 콘라드는 그저 이런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콘라드와 엘레나가 루벤의 풍경과 자태에 경악하고 있자니.
어느덧 영주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영주성의 자태.
“이 무슨···!!”
“여, 여기도···?”
콘라드와 엘레나는 영주성의 모습에 다시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에 Lv.2에서 Lv.3으로 업그레이드 된 영주성.
그 웅장함과 구조는 솔직히 말해 황궁의 것과 비교할 것이 못 되었으니까.
조금 더 솔직히 말할까?
이 정도면 황궁이 밀린다고 볼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렇기에 콘라드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궁은 천 년전, 샤를롯이 제국을 건국할 때 지은 건물로서, 신장(神匠)이라 불리던 아르나이즈, 모르크루가 지은 건물이었다.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조차도 웅장한 황궁.
제국의 그 어떤 건축가들도 현 황궁을 재현할 수가 없었다.
그런 황궁이 밀려보인다···?
그 말은 즉.
이 영주성을 지은 건축가의 수준이 모르크루를 넘어선다는 뜻이나 다름 없었다.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아르나이즈의 수준을 넘어서는 건축가가 있다는 게?
콘라드와 엘레나는 입을 쩌억, 벌린 채 영주성 Lv.3의 자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 영주성 Lv.3의 주인 시안.
“아윽···!”
시안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전신을 강타하는 통증.
카이와의 격돌에서 입은 상처가 생각보다 심한 듯 싶었다.
그래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확히는 괜찮아 질 것이라 생각했다.
콘라드와 엘레나를 밖에 세워둘 수는 없었을 뿐더러 세계수, 인스티즈의 축복이 있었으니까.
해서 버티면 괜찮아 질 거라 생각했거늘.
그런데 점점 괜찮아지기는 무슨.
“아으윽···!”
어째, 그 강도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자네··· 괜찮은 건가?”
계속되는 시안의 격통에 콘라드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엘레나 또한 심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 습니다.”
시안은 그런 둘을 향해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
“커헉···!”
하지만 자꾸만 새어나오는 격통을 참을 수가 없었다.
뒤틀린 마기가 내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아무래도 어딘가 잘못된 모양인 것 같았다.
세계수의 축복인 회복 속도 +7,000%.
그것을 믿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회복 속도는 말 그대로 회복 속도일 뿐.
부상을 온전히 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외상에는 어마어마한 효율을 발휘하나 내상에는 되려 독이 될 수 있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뼈가 부러졌을 때.
뼈가 붙는 속도를 증대시켜줄 뿐이었다.
그렇기에 제 위치로 되찾아주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무리하지 말고 가서 치료를 받게나. 우리는 신경쓰지 말고.”
“그래요 공자님. 이러다 큰일 나겠어요.”
이어진 콘라드와 엘레나의 말에 시안은 고민했다.
하지만 시안은 금방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윽···!”
그도 그럴 것이 이 상태로는 손님 맞이는 무슨.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으니까.
괜히 혼자 끙끙 앓을 바에는 엘리한테 치료를 빨리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송구하오나,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천천히 쉬고 와도 되니 무리하지 말게.”
“아닙니다. 정말 금방이면 되니 잠시만 영주성에서 기다려주십시오. 영주성 안 쪽에 한스가 있을 겁니다. 들어가셔서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시안은 그 말을 남긴 채, 치료원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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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이 떠나가고 난 이후.
콘라드는 엘레나와 함께 영주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마주한 영주성의 풍경.
“허어···.”
콘라드는 황태자의 체면도 잊어버린 채 감탄을 터트리기에 바빴다.
깔끔하면서도 편안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그럼에도 고풍스러운 느낌마저 일지 않고 있었다.
아니, 되려 고풍스러움이 부각되어 있었다.
황태자로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맞나··· 싶었지만.
황궁의 인테리어는 이곳과 비교하면 거적대기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영주성의 인테리어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자니.
“도련님을 보필하고 있는 한스라고 합니다. 이렇게 황태자 전하와 황녀님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문득 앞선 시야로 노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루벤의 행정관을 역임하고 있는 한스.
“아, 자네가 한스인가. 시안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네.”
콘라드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이 아니라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시안과 루벤에 대해 이야기 할 적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한스라는 이름이 등장했었으니까.
그렇기에 시안이 얼마나 한스를 믿고 있는지도 콘라드는 알고 있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도련님께서 오실 때까지 잠시 머무르실 방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콘라드는 그런 한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방.
역시나 영주성의 자태에 걸맞게 방 또한 감탄스럽기 그지 없었다.
창문 밖으로 한 눈에 보이는 루벤의 풍경은 물론.
아늑하다 못해 포근한 느낌의 분위기까지.
당장이라도 널브러져 휴식을 취하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 황태자라는 감투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했을 터였다.
“네가 왜 그렇게 루벤에 놀러가고 싶어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콘라드는 그때서야 엘레나가 왜 그리 루벤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엘레나가 이에 대해 할 말이 있는지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금방 꾹, 다물었다.
그렇게 두리번두리번, 방을 구경하고 있자니.
“두 분이서 드실 다과들을 조금 가져왔습니다.”
한스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커다란 쟁반 위에는 쿠키를 비롯한 다양한 다과들이 담겨 있었다.
금방 구운 것을 가져온 것인지, 쟁반 위로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나오고 있었다.
일순간 반짝, 엘레나의 눈빛이 빛이 났다.
한스가 다과들을 탁자에 내려놓자 후다닥!
엘레나가 탁자 옆으로 자리했다.
그리고는 누가 뺏어먹을세라.
빠르게 다과를 입 안으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황녀로서 몸에 배인 품위가 있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꽤나 게걸스러운 모습이었을 터였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엘레나는 끊임없이 다과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접시 하나가 순식간에 비워지고.
엘레나는 다시 그 옆의 접시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 콘라드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멈칫.
다과를 향하던 엘레나의 손짓이 멈추었다.
그리고 엘레나는 심히, 심히 고민을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다 결국, 다과로 뻗은 손을 다소곳이 무릎으로 가져갔다.
“오, 오라버니도 하나··· 드셔보세요.”
이어진 엘레나의 말.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와 조신한 모습을 보인다고 달라지는게 있을까.
무엇보다 엘레나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하며.
양볼이 다람쥐처럼 빵빵하게 부풀려진 것하며.
콘라드는 짙은 미소와 함께 엘레나 옆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접시에 놓인 다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모양새는 뭐,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황궁에서 먹던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황궁의 음식을 책임지는 수석 셰프.
수석 셰프는 말 그대로 수석 셰프였다.
황궁의 음식을 책임지는 이로서 제국 최고의 셰프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었다.
하지만 이건 일개 영지의 요리사가 만든 것에 지나지 않은가.
요리 솜씨는 물론이고 재료의 수준부터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루벤이 대단하다고는 하나 이런 음식에는 어쩔 수가 없을 터.
콘라드는 기대 반, 의심 반의 심정으로 손에 든 다과를 한입 베어물었다.
아삭.
하는 촉감과 함께 입 안으로 다과의 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역시나.
콘라드는 엘레나가 거짓말을 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황궁에서 먹던 것이 쓰레기처럼 느껴질 것이라니.
객관적으로 말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
황궁에서 먹던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시궁창이었다!
“이, 이게 무슨···?”
콘라드는 눈을 부릅, 떠보이며 입 안의 맛을 음미했다.
맛있···다?
아니, 맛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냥 입에서 녹아들었다.
혀에 다과가 감기는 순간 그대로 녹아 사라져버렸다.
콘라드는 다시 한 번 다과를 베어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혀에서 녹아내린다.
실로 말도 안되는 천상의 맛.
이 맛을 고작 맛있다, 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
농담이 아니었다.
정말 황궁에서 먹던 것은 시궁창이나 다름 없었다!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탁자에 놓인 다과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엘레나가 황급히 다과에 손을 가져갔다.
그렇게 한 개, 두 개.
콘라드와 엘레나는 경쟁을 하듯 끊임없이 다과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다나님께 말해 다과를 더 구워오겠습니다.”
그 모습에 한스가 자리를 떠나갔다.
하지만 콘라드와 엘레나는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한스가 나가는 것조차 인지하지도 못했다.
덥썩, 아삭.
그저 다과를 향한 손놀림에만 집중할 뿐.
그렇게 다과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어느덧 마지막 하나만 남은 상황.
덥썩. 덥썩.
다과를 향한 콘라드와 엘레나의 손이 겹쳤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동생을 위해 양보하시는 것이 어떠세요 오라버니.”
엘레나가 살짝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그리고 평소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콘라드였건만.
“너는 지난 번에 와서 많이 먹지 않았느냐.”
이번만큼은 그렇지가 않았다.
다시 한 번 콘라드와 엘레나의 눈빛이 마주했다.
“다과를 많이 드시면 건강에 좋지 않아요.”
“네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는 떼고 말하는 게 좋을 듯 한데.”
콘라드의 말에 엘레나가 흠칫, 몸을 떨어보였다.
그리고 조신하게 입가의 부스러기를 떼었다.
그 모습에 콘라드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안과 결혼하면 원없이 먹을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이건 오라비에게 양보하거라.”
콘라드는 마지막 남은 다과를 입으로 가졌다.
하지만 덥썩, 엘레나가 그런 콘라드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누가 보면 벌써 결혼한 줄 알겠어요. 공자님이 철벽치시는 거 오라버니도 잘 아시잖아요.”
“지금이야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그렇지는 않을 것이지 않느냐. 마침 루벤으로 같이 왔겠다. 이 오라비가 도와주마.”
“그럼 결혼한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해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제가 마차 가득히 다과를 실어서 오라버니께 보내드릴게요.”
마지막 남은 다과를 두고 두 사람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흔한 남매의 다툼.
전혀 황태자와 황녀의 대화로는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또 한 번 마주쳤다.
한사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충돌했다.
이어 다과를 잡은 두 사람의 손에 힘이 빠득, 들어가던 바로 그때.
-야.
갑자기 어디선가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콘라드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콘라드는 뭔가 싶었지만 금방 생각을 털어내었다.
애초에 ‘야’라는 말이 들려올 리가 없지 않은가.
이 방에 있는 존재는 자신과 엘레나. 딱 두 사람 뿐이었다.
한 마디로 황태자와 황녀만이 이 방에 있었다.
세상 누가 이 둘을 야라고 부를까.
그것이 가능한 건 오로지 황제와 황후뿐이었다.
하지만 황제와 황후는 콘라드를 야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그러니 필시 잘못들은 것이 분명했다.
콘라드는 생각을 털어내며 다시금 마지막 남은 다과에 집중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흠칫!
엘레나는 어째,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일순간 엘레나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와 동시에 엘레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나갔다.
“엘레나?”
콘라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어째서인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엘레나의 여린 어깨만이 작게 떨려왔다.
그 모습이 마치 공포에 떠는 듯 해보였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어쭈? 또 내 말을 무시해?
다시 한 번 기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번엔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다과가 놓인 탁자.
불쑥, 탁자를 뚫고 한 여인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길게 내려앉은 백은색 머리와 고혹적인 외모.
그리고 보이는 회백색의 두 눈동자.
인간이되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
또한 몸이 약간 흐릿하게 비쳐보이는.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말하길.
“유령···?”
······ 이라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