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69화 (169/322)

§ 169화 - 루벤에 온 손님(3)

시안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콘라드의 두 눈에 일순간 초점이 사라졌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콘라드는 시안의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하기사, 믿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천 년전의 유령이라니.

하물며 그 유령이 샤를롯의 여동생이라니.

이건 거짓말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놀리는 수준이었다.

황족 능욕죄를 들먹이며 참형의 형벌을 내려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뭐 어쩌랴.

“믿기 힘드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입니다.”

분명한 사실이거늘.

“······”

콘라드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초점 잃은 눈빛으로 멍하니 시안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저 유령이··· 아니, 저 분이··· 샤를롯 대제의 여동생이라면··· 나의 오랜 선조되시는 분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허어···.”

한치의 고민도 없이 답을 하는 시안의 모습에 콘라드는 다시 한 번 넋을 놓았다.

천 년전의 선조라니.

그것도 샤를롯 대제의 여동생이라니.

말이야 선조였지 사실상 시조(始祖)격인 존재이지 않은가.

이건 도무지 믿을래야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분명 놀리는 것이 확실했다.

이는 황족 능욕죄를 뒤집어 씌워도 모자람이 없었다.

아마··· 이 발언의 당사자가 시안이 아니었다면.

콘라드는 필시 그렇게 했을 터였다.

콘라드는 멍하니, 정말 멍하니 서 있었다.

시안은 그런 콘라드를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정신이 돌아온 콘라드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런 콘라드의 시선으로 레아의 모습이 보였다.

레아는 시안 옆에서 한껏 뾰루퉁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엘레나는 어째서인지 그런 레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콘라드는 둘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또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샤를롯 대제의 37대 손, 콘라드 폰 샤를롯.”

콘라드가 레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분관조(分貫祖)님을 뵙습니다.”

분관조(分貫祖)란, 분관시조(分貫始祖)라 하여 본관을 달리하는 조상을 일컬었다.

콘라드의 시조는 어디까지나 샤를롯이었다.

그리고 그런 샤를롯의 여동생인 레아.

콘라드에게 있어서 시조격인 존재이나 엄밀히 따지면 시조는 아니었다.

건국 이래로 황가의 일원들은 샤를롯의 이름을 차용하여 황가의 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샤를롯은 성이 없었다.

천 년전의 샤를롯은 한낱 마을의 청년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기에 레아 또한 이렇다 할 성이 없었다.

샤를롯이라는 성을 쓰지 않았다.

천 년전의 레아 또한 평범한 마을의 처녀이기도 했거니와.

오빠의 이름을 성으로 쓸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콘라드 입장에선 레아는 시조는 시조이되 조금 다른 시조.

즉, 본관을 달리하는 조상이라 볼 수 있었다.

뭐, 복잡한 관계도였으나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콘라드의 말은 즉.

레아를 샤를롯의 여동생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제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렇기에 시안은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콘라드가 이해해줄 거라고는 어렴풋이 생각은 했었다.

완전히 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넘어가줄 거라 생각은 했었다.

시안이 봐온 콘라드는 그러한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단번에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히··· 믿기지 않네. 지금도 조금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네.”

아니나 다를까 콘라드는 시안의 생각과 같은 말을 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믿지 않을 이유도 없더군.”

“믿지 않을 이유가 없으시다는 건···?”

“황태자의 자리에 있다보면··· 싫어도 상당히 많은 거짓들을 마주하게 된다네. 해서 난 상대방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때, 한 가지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네.”

이윽고 콘라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상대방의 말이 거짓이라면, 이로써 당사자가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거짓말의 종류는 다양하네.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거나. 아니면 자신의 공로를 조금 더 치켜세우려거나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지. 어떨 땐 감언이설로 내 눈과 귀를 가리고자 할 때도 있네.”

“이렇게 거짓의 종류는 다양하나 목적은 사실 모두 똑같다네. 진실을 감춤으로써, 자신에게 이득이 되느냐.”

콘라드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시안에게 말했다.

“하지만 자네의 말은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더군.”

“······”

그런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콘라드의 말마따나 시안은 ‘레아가 샤를롯의 여동생이다’ 라는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마땅한 이득이 없었으니까.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되려 콘라드가 믿지 않으면 황족 능욕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득은 커녕 손해만 존재하네. 되려 얼버무리는 것이 자네에겐 더 큰 이득인데도 말이야.”

그렇기에 시안은 굳이 그 사실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시안이 굳이 그 사실을 언급한 것.

그건 일단 사실이기도 했거니와.

콘라드와 엘레나가 당분간 루벤에 머무르기로 한 지금.

한 번은 짚고 넘어갈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땅히 설득한 방법이 없었기에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말을 꺼낸 것이였다.

“게다가 엘레나도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콘라드는 슬금슬금, 레아의 눈치를 보고 있는 엘레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엇보다 자네는 거짓말을 할 인물도 아니고 말이야.”

이런저런 이유를 종합하여 콘라드는 시안의 말을 믿어주었다.

-흐응···.

레아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콘라드를 바라봤다.

-어쩜, 오빠랑 똑같은 말을 하네.

그러자 콘라드가 살짝 놀라며 레아에게 물었다.

“샤를롯 대제께서도 저와 비슷한 말을 하셨습니까?”

-비슷한 정도가 아니야. 완전히 똑같은 말을 했어. 사람의 말을 판단할 때는 어쩌고 하면서 말이야. 오빠랑 닮아도 너무 닮았다 싶었더니···.

“분관조께서 그리 칭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레아의 말에 콘라드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리고 레아가 딱히 콘라드를 칭찬한 것은 없었다.

그저 샤를롯과 콘라드가 닮았다고 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콘라드 입장에서는 아니었다.

샤를롯은 신화 속의 인물이자 샤를롯 제국의 초대 황제.

그런 샤를롯과 닮았다는 것은 콘라드에겐 세상에 다시 없을 칭찬이었으니까.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레아가 살짝,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슬며시 시안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쟤, 조금 짜증나.

“네? 왜요?”

레아의 말에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콘라드가 시안의 말을 믿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러니까, 레아가 샤를롯의 여동생임을 믿지 않아 무례하게 대했다면 모를까.

콘라드는 레아를 샤를롯의 여동생으로 대우하고 있었다.

그로써 레아를 분관조로서 걸맞는 예를 표하고 있었다.

엘레나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

콘라드가 짜증날 이유가 없었다.

-오빠랑 닮아도 너무 닮았잖아.

“아.”

하지만 이어진 레아의 말에 시안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본디 남매란 피가 이어진 원수지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는 생명체에 각인된 본능.

시안도 네이슨과 로즈웰이라면 치를 떨지 않은가.

‘그거랑은 경우가 다른가?’

뭐, 아무튼.

남매 간의 관계는 이상적인 경우가 흔치는 않았다.

뭐,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경우일 뿐.

그러니까 그냥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일 뿐.

기본적인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건 변함 없었다.

‘그러고보니 전하와 황녀님의 관계는 꽤나 돈독해보이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남매의 관계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레아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은 생각이 달리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날, 카일의 비망록을 확인해본 바 샤를롯은 레아를 끔찍이 아끼고 있었다.

그런데 레아는 샤를롯을 썩 좋아하고 있지 않고 있었다.

물론 정말로 싫어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만.

남매 간의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샤를롯의 일방적인 애정.

아마 콘라드와 엘레나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샤를롯과 레아.

콘라드와 엘레나.

레아가 엘레나를 유독 갈구는 것은, 어쩌면 자신과 너무 닮아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질 않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한 번 흘릴 뿐이었다.

#

루벤에서 조상과 선조의 만남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한편.

제국은 현재 한 가지 소문으로 떠들썩해있었다.

다름 아닌 시안에게 백작위가 하사되었다는 소문.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엘란두르는 역시나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예상대로 엘란두르는 황가를 상대로 항의를 보내왔다.

-가문의 일원에게 일말의 상의도 없이 백작위를 하사하는 건 역사상 전례가 없던 일이다. 엘란두르는 시안에게 하사된 백작위를 인정할 수 없다. 따라서 시안에게 하사된 백작위를 철회함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작위는 그 격을 달리했다.

패업을 이룬 한 지역의 제후.

그것은 한 세력을 일굴 자격이 주어진 셈이었다.

한 마디로 속해있던 가문에서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해서 평민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되는 것이 아닌 이상.

보통은 해당 가문에게 사전에 알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기에 엘란두르의 요청은 타당한 요청이자 항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황가는 답하길.

-공을 세운 이에게 마땅한 보상을 내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관례는 어디까지나 관례일 뿐이다.

해당 가문에게 사전에 알리는 것은 관례였으나 말 그대로 관례일 뿐이었다.

제국법 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또한 작위를 하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황가의 권한이다. 시안에게 내려진 백작위는 제국법에 따라 효력을 발휘할 것이며 이와 관련한 엘란두르의 의견은 묵살한다.

이에 엘란두르는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관례는 어디까지나 관례였고 그렇기에 마땅한 명분은 없었다.

말마따나 황가는 공을 세운 시안에게 백작위를 하사한 것이었다.

그 결정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 그대로 황가의 권한을 침범하는 중죄.

하지만 그렇다고하여 엘란두르가 아주 할 말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관할 백작령으로 엘란두르의 영지를 하사한 것은 문제가 있다. 가문의 영지를 빼앗아 하사한 것은 전례도 없을 뿐더러 제국법에도 심히 어긋난다.

다름 아닌 루벤을 백작령으로 하사한 것.

루벤은 어디까지나 엘란두르 관할의 영지였다.

그런 루벤을 시안의 백작령으로 하사한 것은 황가가 엘란두르의 영지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러한 경우는 관례는 물론, 제국법에도 상당히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루벤을 시안에게 하사한 바, 엘란두르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었다.

엄밀히 따지면 빼앗은 것은 아니었다.

시안에게 루벤을 하사할 적.

황가는 엘란두르에게 마을 15개와 2개의 영지 그리고 향후 6개월 간의 세금 면제라는 어마어마한 혜택을 주었으니 말이다.

루벤 하나 떼어주는 셈치고는 솔직히 과하다 못해 파격적인 보상이었다.

물론 북부 사건에 대한 공로의 보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북부 사건에 엘란두르는 아무런 공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북부 사건에 엘란두르의 공로는 전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북부 사건에는 시안과 루벤의 기사단.

이 둘만이 움직였을 뿐이었으니까.

본래는 시안과 하얀 늑대 기사단과 시안이 움직이려 했었다.

하지만 시안이 듀라크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루벤의 기사단으로 변경되었다.

결국 엘란두르는 북부 사건에 공헌한 바가 없었고.

시안이 당시 승부수를 던졌던 것이 효력을 발휘한 셈이었다.

따라서 엘란두르는 순전히 루벤을 떼어줌으로써 얻은 보상이었다.

어둠의 숲에 위치한, 하등 쓸모 없는 영지를 떼어줌으로써 말이다.

또한.

-엘란두르는 루벤 영지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루벤을 시안에게 하사한 것은, 엄밀히 따지면 제국법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제국법 상, 제국에 존재하는 모든 영토는 황가의 소유다.

그리고 그런 영토를 황가에게 하사 받아 제후들이 통치하는 것.

쉽게 말해 황가가 귀족들에게 땅을 나누어준 개념이라 볼 수 있었다.

이것이 샤를롯 제국의 기본적인 봉건 제도였다.

따라서 각 귀족들은 황가에게 하사받은 땅을 잘 관리하고 윤택하게 할 ‘의무’를 지닌다.

그것은 귀족이 마땅히 가져야할 의무였다.

그런데 엘란두르는 지난 수 백년 간 루벤을 방치하기만 했다.

권리란 마땅한 의무를 다했을 때 생겨나는 법.

황가가 이를 회수한다고 한들, 엘란두르는 루벤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

-······

엘란두르는 이에 대해 역시나 아무런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엘란두르는 또 아니었다.

-시안은 현재 횡령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다. 조사를 위해 엘란두르는 시안을 구속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다름 아닌 8,200만 골드의 횡령 사건.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으나, 시안은 현재 그 횡령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다.

따라서 백작위든, 명분이든, 나발이든.

엘란두르는 시안을 구속할 권한이 있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엘란두르 가문 내부의 일.

이건 아무리 황가라도 관여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가문 내의 일까지 간섭할 권한은 황제에게도 없었으니까.

하물며 그 가문이 엘란두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하여, 황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어쩌라는 거지.”

“······예? 예?”

문서를 작성하던 황실 서기관장의 손이 덜컥, 굳어버렸다.

바라본 시선.

황제, 발루아가는 눈썹을 와락, 찌푸리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냐.”

“그, 그것이···.”

그런 발루아가의 말에 서기관장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엘란두르 가문의 일이다. 가문 내부의 일은 황가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발루아가는 엘란두르에게서 보내온 상소문을 바라봤다.

뭐라뭐라 빼곡히 적혀있는 글씨들.

발루아가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

“······”

그런 발루아가의 말에 서기관장은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뭐 어쩌라고’ 라는 물음이 절로 나왔으니까.

시안이 횡령을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강경한 엘란두르의 태도를 보아하니··· 횡령을 한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왜 나한테 와서 지랄인거지?”

그걸 왜 황가에 따지고 드냔 말이다.

시안에게 따지고 들 일이지.

“정 문제가 있으면 영지전을 걸라고 해라.”

현재 시안이 독립을 한 지금.

엘란두르와 시안은 서로 다른 가문이었다.

따라서 가문과 가문 간의 분쟁은 영지전으로 해결하는 것이 관례이자 제국법상 적법한 절차였다.

“혹시 이길 자신이 없어서 내게 중재를 요청하는 건가?”

발루아가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황태자, 이 놈은 내게 일을 떠맡기고 홀라당, 내 빼?”

발루아가는 그 말을 끝으로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렇게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서기관장.

“······”

서기관장은 정말로, 정말로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이윽고 서기관장은 시선을 답변을 작성하고 있던 깃펜으로 돌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적어버린 ‘어쩌라고’란 글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렇게 서기관장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찍찍, 글자에 두 줄을 긋고는.

-문제가 있으면 제국법의 절차를 따라 영지전을 신청하라.

비교적 순화된 표현을 적어내려갔다.

#

루벤에 위치한 영주성 Lv.3

시안은 레아의 존재를 확인시켜준 이후, 콘라드와 현 상황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서 영지전의 명분을 막을 수는 없네. 그러니 이에 따른 준비를 해야할 걸세.”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을 막아내긴 했으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엘란두르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할 수 있었다.

“물론 나와 엘레나가 있으니, 지금 당장 엘란두르도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겠지.”

정확히는 콘라드와 엘레나가 루벤을 떠날 시점부터라 할 수 있었다.

“아마 지금도 엘란두르에서 황가를 향해 많은 항의를 하고 있을걸세. 물론 폐하가 다 처리하시겠지만.”

그러면서 콘라드가 능글 맞은 웃음을 비어보였다.

그런 콘라드의 모습에 시안은 헛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휴가를 떠나오신 이유가 있으셨군요?

어쩐지, 갑자기 휴가다 뭐다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다 싶었다.

아마 콘라드가 지금 황궁에 있었다면, 관련한 일을 모두 콘라드가 처리했을 터.

“나도 엘란두르 후작은 조금···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네.”

아니나 다를까 콘라드가 멋쩍은 웃음을 흘려보였다.

그리고 그런 콘라드의 말에 시안은 살짝 놀랐다.

엘란두르를··· 그러니까, 듀라크의 눈치를 본다는 콘라드의 말.

제국에서 엘란두르의 입지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았다만.

막상 콘라드 입에서 눈치를 본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나와 엘레나가 최대한 밍기적거리며 시간을 벌어줄 터이니, 만반의 준비를 해놓게나. 뭐··· 지금도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만.”

“감사합니다 전하. 그리고 황녀님.”

시안은 그런 콘라드와 엘레나에게 작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콘라드와 엘레나가 작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콘라드가 시안 옆에 자리한 레아를 바라봤다.

정세에 관련한 이야기가 지루했던 걸까.

레아는 길게 하품을 내보이고 있었다.

콘라드는 그런 레아를 바라보다 물었다.

“그보다··· 분관조께서는 어쩌다 이곳 루벤에 자리하시게 되셨습니까?”

하지만 레아는 하품만 해보일 뿐, 아무런 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분관조라는 말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임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콘라드의 시선을 느꼈던 것일까.

분관조가 곧 자신을 지칭하는 말임을 알고는 레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얘, 너 자꾸 분관조, 분관조. 하지 말아줄래? 괜히 나이 들어 보이잖아.

“하오나, 분관조님을 분관조님이라···.”

-됐고. 그냥 레아님이라고 불러.

“하지만···.”

-씁! 내가 그러라면 그런 줄 알아.

콘라드는 잠시 고민하다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분관조님께서 정 그러하시다면···.”

-레아님!!

그렇게 레아가 소리치고 나서야 콘라드는 호칭을 정정했다.

이어 레아는 콘라드에게 그간 있었던 사정을 말해주었다.

아르나이즈 전당에서 있었던 일들부터 이곳, 루벤까지 오게 된 경위.

그리고 이는 엘레나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해서 엘레나도 아닌 척, 레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다만 시안은 그 내용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직접 겪은 일의 내용을 또 들어서 무얼하겠는가.

해서 시안은 레아의 말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른 생각에 잠겼다.

다름 아닌 엘란두르와의 전면전.

곧 있을 본격적인 영지전에 대한 대비.

카이와 하얀 늑대 기사단들을 막아낸 건 사실이나 그것이 엘란두르를 막아내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앞으로 이어질 공세는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약하지는 않을 터.

그러니 루벤의 방벽 강화는 물론.

기사들과 병사들의 수준까지 더 향상시켜야할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돼.’

시안 또한 스스로의 수준을 더 갈고 닦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그러했다.

만일 시안이 카이를 제압했더라면··· 지금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터였다.

하지만 시안은 카이를 제압하지 못했다.

제압은 커녕 카이를 막아서기에 급급했다.

그렇기에 이대로─.

바로 그때.

띠링!

갑자기 품 속에서 경쾌한 스마트 폰 알림음이 들려왔다.

‘뭐지?’

시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렇게 확인한 스마트 폰 화면.

《킹바일 영주우우!!! 등자아아앙!!!》

그곳엔 점검을 끝낸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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