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72화 (172/322)

§ 172화 - 피해 인과(1)

발걸음을 멈춰선 시안의 정신이 일순간 멍해졌다.

긴급 점검의 보상으로 받은 피해의 인과.

그것은 쉽게 말해 모바일 영주가 점검을 함으로써 시안이 이용하지 못했던 서비스와 기능들.

그 기능들로 인해 시안이 피해를 봐야만 했던 피해 인과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피해 인과라고 해봐야 별 거 없었다.

끽해야 마일리지 샵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것.

또 명성 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솔직히 피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그냥··· 불편한 것이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딱 하나.

“카이를 놓쳐···?”

카이를 놓친 것은 조금 이야기가 달랐다.

객관적으로 보면 시안은 카이를 넘어설 수 없었다.

가까스로 대적하는 것까지는 어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막아서기에 급급했다.

만일 그 이상으로 싸움을 지속했다면.

만일 콘라드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싸움 끝에 패배하는 것은 시안, 본인이었다.

현재 시안은 카이를 이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뮤리엘의 축복》

[강화 효과 1](+5) -  1분 간, 업적 보유자의 모든 신체 능력이 +7,000% 상승합니다!

[강화 효과 2](+5) -  반경 100미터 지정 범위 내, 모든 아군의 신체 능력이 10분 간 +450% 상승합니다!

《[강화 효과 1]과 [강화 효과 2]는 중복해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

지난 날, 아스란디즈와의 결전에서 강화를 거듭한 <뮤리엘의 축복>.

<뮤리엘의 축복> 중 [강화 효과 1].

1분 간 업적 보유자의 신체 능력을 +7,000% 상승시키는 [강화 효과 1].

이  버프가 있었더라면 시안이 카이를 몰아세우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

꼭 [강화 효과 1]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시안이 아닌 아군의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강화 효과 2]의 버프여도 충분했다.

비록 그 효과가 시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물론.

켄드릭과 레아 또한 +450%의 향상 버프를 얻을 수 있었다.

켄드릭과 레아가 +450%가 된다?

여기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아무리 하얀 늑대 기사단이 대단하다고 한들.

버프를 받은 켄드릭과 레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럼 금방 시안을 지원하여 카이를 제압할 수 있었을 터.

어느 쪽이든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어떤 효과든 버프의 효과만 받았더라면 카이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일 그러했다면 시안은 엘란두르를 쥐고 흔들 수도 있었다.

엘란두르에서 카이가 갖는 입지가 그리 단순하지 않았으니까.

엘란두르는 물론, 제국 내에서도 카이가 갖는 입지는 단순하지 않았다.

그런 카이를 인질로 잡을 수 있었다면···.

정말로 엘란두르를 쥐고 흔들 수가 있었다.

아무리 듀라크가 자식들을 장기말로 대우한다고는 하나.

그 장기말의 가치가 월등하다면 기꺼이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카이는 듀라크에게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장기말이었다.

아니, 충분하다 못해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었다.

따라서 <뮤리엘의 축복>을 사용하지 못한 것.

그로써 카이를 몰아세우지 못한 것.

그 피해 인과의 수치가 적게 측정되지는 않을 터였다.

시안은 떨리는 마음으로 스마트 폰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피해 인과 측정 중···.〉

화면에는 측정 중이라는 알림창만 떠오를 뿐, 더 이상의 진척이 없었다.

아무래도 피해 인과 산출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피해 인과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걸리는 것인지.

아니면 인과 측정 자체가 오래 걸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당장은 알 수가 없는 일.

“일단은··· 돌아가자.”

시안은 품 속으로 스마트 폰을 집어넣고는 다시 영주성으로 걸음을 돌렸다.

#

영주성으로 돌아온 시안은 곧장 콘라드와 엘레나가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응?”

어째서인지 콘라드와 엘레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방을 정리하고 있는 한스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시안은 곧장 한스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스. 전하랑 황녀님 어디가셨어?”

“아까 전에 레아님과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레아랑?”

“네. 레아님께서 루벤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아까는 마음에 안드니, 짜증난다느니, 어쩌니 그러더니.

그래도 후손으로서 콘라드를 어여삐 보긴 했나보다

시안은 살짝 웃음을 흘렸다.

“혹시 어디로 간건지는··· 아니, 됐다.”

해서 시안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려던 마음을 꾹, 눌러 삼켰다.

오랜 조상과 후손 간의 해후에 끼어드는 것 같았으니까.

뭐··· 엘레나는 조금 꺼려하는 것 같았다만.

굳이 시안이 나설 필요는 없어보였다.

아니, 나서면 안될 것 같았다.

“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마땅히 할게 없었다.

현질을 하자니 보유 중인 골드는 많지 않았고.

마일리지 샵이 있었으나 시안이 가진 마일리지는 전무했다.

그리고 피해 인과는 아직 측정 중에 있는 상황.

해서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추적할까도 싶었지만···.

아멜리아는 현재 ‘쓸어담아 상단 Lv.1’로 이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엘란두르의 장부는 스마트 폰 안에 담겨있었기에 지금 당장 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시안만 붕, 떠버린 격이었다.

‘치료원에서 조금 더 쉴까.’

싶었지만 시안은 금방 고개를 흔들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지금도 루벤 밖에서는, 제국 전역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터.

그리고 엘란두르가 어떤 일을 꾸미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면 모를까.

한가로이 치료원에서 쉴 시간이 없었다.

“한스. 나 영주성 연무장에 있을테니까. 혹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알려줘.”

“알겠습니다.”

시안은 곧장 영주성에 위치한 연무장으로 향했다.

#

영주성Lv.3 위치한 영주 개인 연무장.

아까 전 확장 공사로 때문인지, 연무장 한쪽이 소란스러웠다.

시안은 연무장 중앙에 서서 검을 들어보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란을 애써 무시하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암전된 시야.

시안은 카이와의 격돌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각을 되뇌었다.

카이는 강했다.

제국의 별.

30도 채 되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마스터 중급을 넘어 상급을 바라보고 있었다.

듀라크마저 뛰어넘는 천재이자, 제국의 다시 없을 천재.

어쩌면 카이는 모든 기사들이 바라마지 않는 꿈의 경지, 마스터 최상급.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반면에 시안은 그렇지 못했다.

시안의 재능은 처참했다.

카이에 비하면 처참하다 못해 박살이 난 수준이었다.

수많은 현질과 성장 버프가 없었더라면.

무엇보다 모바일 영주가 없었더라면.

시안은 지금의 경지에 닿을 수도, 꿈꿀 수도 없을 터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와서 고백하건대···.

솔직히, 시안은 조금은 우쭐해져 있었던 것 같았다.

가진 바 처참한 재능 속에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또 이미 극복했다,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시안이 겪어온 수많은 시련과 고난.

수없이 헤쳐온 불가능이라 부르는 일들.

그 과정 속에서 시안은 자신의 재능을, 한계를 극복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카이와 직접 검을 맞대어보니 알 수 있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고.

나는 놈 위에는 드넓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시안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시안의 손짓에 따라 검이 움직인다.

오늘따라 검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움직이는 몸의 무게가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시안이 움켜쥔 검의 무게가.

시안이 짊어진 어깨의 무게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짓눌러왔다.

시안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몸의 무거움을 이겨내면서 휘두른 검은, 매섭고 또 날카로웠다.

예전의 시안은 펼칠 수 없는 검.

망나니의 시안은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분명 강해지고 있다.

예전보다, 어제보다.

지금의 나는 분명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부족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건 왜일까.

카일의 마혼수라검(魔魂修羅劍).

기억 속으로, 감각 속으로 지난 날의 카일이 보여준 검이 떠오른다.

시안이 쫓고자 하는 카일.

카일은 까마득한 너머의 경지에 존재했다.

현재의 시안은 물론, 앞으로의 시안 또한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경지.

언젠가 그 경지에 닿을 날이 오기는 할까.

글쎄···.

하루하루 노력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의심이 든다.

카일의 경지는 커녕, 지금 당장 카이조차 넘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할 수 있다.

아니, 해야만 한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며 정진해왔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어떤 벽을 넘어서면, 그보다 더 두꺼운 벽이 서있었다.

무언가를 이루어내면, 그보다 더 큰 시련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아닌 척, 애써 담담한 척.

사람들 앞에서는 담담하게, 유쾌하게 넘겼다.

그런데 사실은 아니었다.

사실은 담담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꽈드득!

시안은 그 사실이, 너무도 분할 뿐이었다.

시안의 검이 흘러간다.

암전된 시야 속으로 카일의 검이 스쳐지나간다.

시안의 검이 카일의 검을 따라 움직인다.

환상처럼 카일의 모습이 두 눈에 뚜렷이 보였다.

움찔.

그러나 따라할 수가 없었다. 쫓아갈 수가 없었다.

엑시드(Exceed), 그 너머의 경지.

기나긴 대륙 역사상 유일무이한 존재.

최강의 아르나이즈.

카일이 갈 수 있는 곳에, 시안은 갈 수가 없었다.

까마득한 그 경지를, 시안은 바라보는 것조차 감히 할 수 없었다.

시안의 검이 멈춰선다.

이윽고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

마음을 내리누르는 무게감.

카이였다면 어땠을까.

카이가 마혼수라검을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아득한 저 너머에서 카일의 길을 따라가고 있었을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지금쯤 카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을까.

적어도─.

-주군.

그 순간, 한 쪽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켄드릭이 검푸른 안광을 일렁이며 시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시안의 검을 지켜본 것일까.

그곳에서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조급해하지 마시옵소서.

켄드릭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안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조급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시안이 대적해야만 하는 카이와 듀라크.

시안과 함께 싸우고 있는 레아와 켄드릭.

이들은 저만치 앞서서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시안은 아직 그 수준에 닿을 수가 없었다.

조급해하지 않으면 시안은 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범재가 천재를 쫓아가려면 무수한 노력을 해야했다.

그야말로 뼈를 깎아내는 노력을 해야했다.

그럼 노력하는 천재를 쫓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노력을 하고서도 쫓아갈 수가 있을까.

재능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떠한 노력을 해도 넘을 수 없는 벽.

그리고 시안은 범재도 아닌 둔재에 지나지 않았다.

남을 쫓을 재능이라고는 일절 없었다.

한시라도 잊은 적 없는 생각이건만.

그 사실이 오늘따라 시안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시안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주군처럼 재능이 없지 않습니다.

시안의 귓가로 나지막한 켄드릭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켄드릭의 검푸른 안광이 오롯이 시안에게로 향했다.

켄드릭은 데스 나이트이자 마스터 상급의 기사였다.

살아생전 카일을 따르던 검은 사자 기사단의 단장.

그 이름도 유명한 악마 학살자.

켄드릭의 재능은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 주군께서 느끼시는 심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주군께서 걸으시는 그 길이 얼마나 가혹하고, 또 처참한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켄드릭은 시안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둔재가 천재를 따라갈 수 없듯.

천재 또한 둔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켄드릭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의 경지를 뛰어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안은 시선을 들어 켄드릭을 바라봤다.

켄드릭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 수준이 낮다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마스터 상급의 켄드릭.

그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대륙 제 1의 검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어찌 낮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천 년의 세월에 비교한다면, 높다고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켄드릭은 천 년의 세월 동안 데스 나이트로 살아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거듭하여 인간 시절의 검술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것을 달리 말하면.

켄드릭은 천 년의 세월 동안 그 경지에 머물러있었던 것이었다.

여전히 마스터 상급의 경지가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천 년의 세월 앞에서는 조금은 부족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특히 켄드릭과 같은 재능의 소유자가 말이다.

-오래 전, 전대 주군께서 한 번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켄드릭이 말하는 전대 주군이란 다름 아닌 카일.

카일은 켄드릭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켄드릭. 내가 본 네 재능은 상당히 뛰어나다. 그렇기에 네 재능이 너의 발목을 붙잡게 될까, 심히 염려가 된다.’

‘······ 제 역량이 부족하여, 주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카일은 그런 켄드릭을 바라보다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가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무(武)는 무엇이라 생각하지.’

‘······ 주군의 검이라 생각합니다.’

켄드릭은 약간의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아부와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실제로 켄드릭이 보고 느낀 카일의 검은 그러했으니까.

카일은 천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리고 말하길.

‘내 검은,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검이었다.’

당연히 켄드릭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바라본 카일의 두 눈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검을 갈고 닦으면서 수없이 많은 좌절을 겪어왔다. 마(魔)를 다루는 검이라며 배척하고 괄시했지. 나는 나보다 앞서있던 이들을 보며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수없이 들었고. 나의 검보다 월등한 수준의 검술들을 바라보며 다른 길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수없이 해왔다.’

하지만.

‘나는 수없는 세월동안 묵묵히 검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끝내 지금의 경지까지 올려 놓았지. 그러나 처음부터 나의 검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지금의 이 경지가 최고의 무(武)냐 라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나의 검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높은 수준에 있는 검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켄드릭은 역시나 카일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카일의 검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은 물론.

카일의 검보다 높은 수준에 있는 검이 존재한다는 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바라본 카일의 눈빛은 어떤 확고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무(武)의 길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무(武)의 길을 걸어간다는 건, 끝없는 길을 걷는다는 것과 같다.’

‘얼마나 강한 힘을,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끝없는 길 앞에서 그런 것은 똑같은 점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가장 강력한 무(武).

궁극의 무(武)는 결코 닿을 수가 없는 경지라 할 수 있었다.

무(武)의 길은 끝이 없었고.

그 길의 끝에 다다르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사실 상 이길 수 없는 싸움과 다름 없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길 수 없다고 한들.

그것이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도 지지 않는 방법은 존재했으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끝을 추구하는 방법은 존재했으니까.

‘어떤 절망과 좌절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그 싸움을, 길을 걷는 것을 끝내지 않는 것.

‘그것이 무(武)의 길을 걷는 자에게 필요한 진정한 재능이다.’

.

.

.

-주군께서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좌절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절망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벽에 가로막혀본 적은 있으나, 금방 그 벽을 허물었습니다.

카일조차 인정한 켄드릭의 재능.

그런 천재적인 재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켄드릭은 당시, 카일의 말에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데스 나이트가 된 지금.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켄드릭은 비로소 카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수많은 벽들을 부숴 온 켄드릭.

그러나 정작.

-저는 저의 한계는 부술 수가 없었습니다.

마스터 상급이라는 한계.

켄드릭의 재능을 뛰어넘는 그 한계.

켄드릭은 재능의 한계를 끝내 부술 수가 없었다.

무려 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한계.

단 한 번도 마주한 적 없었던 절망과 좌절.

켄드릭의 뛰어난 재능은 수많은 벽을 쉽게 넘게 해주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좌절이라는 벽을 뛰어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해서 지금와서 고백하건대.

켄드릭은 천 년의 세월 동안 오롯이 수련을 해온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 어느 시점부터.

-저는 더 이상 높은 경지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켄드릭은 마주한 절망에서 끝내 시선을 돌려버렸다.

절망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외면해버리는 선택을 해버렸다.

스스로의 천재성에도, 켄드릭은 끝내 좌절했다.

여기까지구나. 하며 말이다.

그러나 시안은 아니었다.

켄드릭이 바라본 시안은 그야말로 둔재 중의 둔재였다.

카일에 비해, 그리고 자신에 비해 가진 바 재능은 박살이 나있었다.

그렇기에 시안은 매 순간 벽에 가로막혔다.

켄드릭이 보기에 벽같지도 않은 벽게 가로막혀 좌절하고 또 절망했다.

그런데 시안은 외면하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자신과는 달리 마주한 절망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끝끝내, 불가능이라 부르던 벽들을 헤쳐나갔다.

자신의 한계를, 매순간마다 부숴나가고 있었다.

‘극(極)에 달하면, 결국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오래 전, 카일이 누누히 해오던 말.

그 때는 저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비로소 저 말이 조금씩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건 천 년전의 주군, 카일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눈앞에 있는 주군.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던 둔재.

-저는 그런 주군이 존경스럽습니다.

시안에게서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주 조금씩.

켄드릭은 스스로의 한계를 부수는 법을 시안에게서 배우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켄드릭은 둔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시안이 겪는 좌절을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켄드릭이 지켜봐온 시안이라면.

다시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시안이라면.

언젠가, 그 언젠가 아득한 그 경지에 닿을 수 있을거라.

반드시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켄드릭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잠시 넣은 쉼표에, 마침표를 찍지 마시옵소서.

켄드릭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시안은 그런 켄드릭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리고는 피식,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괜시리 새어나오는 웃음.

그리고 왜인지 편안해지는 마음.

“고마워 켄드릭.”

-주제 넘은 참견이었습니다.

시안은 작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언제부터 이런 것에 주눅이 들었단 말인가.

모바일 영주를 만난 이후에도.

카일의 검을 배운 이후에도.

시안은 시안이었다.

처참하다 못해 박살난 재능.

오러조차 쉬이 깨우치지 못한 둔재 중의 둔재.

그렇기에 이런 좌절쯤. 이런 절망쯤.

이젠 익숙하다 못해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좌절과 절망들을 이겨나가는 것.

아무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을 해내는 것.

이것도 언제나 누누히 해오던 일이지 않은가.

그러니 다시 일어나면 된다.

다시 일어나 나아가면 된다.

조급해하지 말자.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발전해있었으니까.

그거면 충분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그 언젠가.

이 길의 끝에 닿을 수 있겠지.

“후우···.”

시안은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런 기나긴 숨에는 갖가지 감정들이 녹아들어 내뱉어졌다.

“그런 의미로, 한 수 부탁해도 될까?”

-물론입니다.

켄드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시안은 켄드릭과의 대련을 무수히 이어나갔다.

그리고 뭐···.

역시나 켄드릭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하지만 시안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나보다 더욱 강해졌다면 그걸로 된 것이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알겠습니다.

시안의 말에 켄드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켄드릭의 모습에 시안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며 전신으로 무수한 탈력감이 쏟아져내렸다.

온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엘리가 한동안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째 또 잔소리 듣겠네.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순간.

띠링!

품 속에서 스마트 폰의 알림음이 들려왔다.

시안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스마트 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확인한 스마트 폰의 화면.

〈피해 인과 측정 완료〉

그곳엔 피해 인과가 측정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라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건만 생각보다 빨리 끝나있었다.

점검을 거듭하면서 시스템도 강해진 건가?

시안은 바로 측정된 인과를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 위로 떠올라 있는 하나의 알림창.

[산출된 피해 인과] - 100,002,100 G

우뚝.

일순간 시안의 움직임이 그대로 정지했다.

정지한 움직임으로 두 눈만이 떠오른 화면의 0의 개수를 세었다.

“······ 1억···?”

저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까무러치는 모바일 영주의 알림창이 화면 가득히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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