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87화 (187/322)

§ 187화 - 메긴기요르드(2)

소름끼치는 살의(殺意)가 터져나오는 어둠 속.

쿵! 쿵!

일순간 지축이 뒤흔들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일정 주기를 가지고 이 울림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지를 거세게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무언가.

이윽고 콰아아앙─!

어둠의 숲 한 쪽 어귀가 무조건적으로 박살이 났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

8M에 이르는 거대한 덩치.

흉악하다 못해 흉포하게 일그러진 얼굴.

“오우거···?”

오우거(Ogre).

두 발로 땅을 딛는 몬스터들의 개체 중 가장 흉악한 몬스터.

크워어어어어어─!!

크나큰 굉음이, 어둠의 숲을 타고 퍼져나갔다.

지상 최강의 포식자, 오우거.

오우거는 몬스터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최상위에 있는 존재로서, 그 강함은 엑스퍼트 중급~상급 수준의 기사 비견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엑스퍼트 중급~ 상급 수준의 기사가 나서야만 처리할 수 있는 몬스터였으니까.

하나의 존재만으로 도시 하나는 물론.

작은 영지조차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존재.

용병 업계에선 오우거의 임무를 수행한 용병을 ‘오우거 슬레이어(Ogre Slayer)’라 칭한다.

그리고 지금.

숲의 잔해들을 무조건적으로 박살내며 달려드는 거대한 몬스터.

“오우거다!”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지만 누구도 겁을 먹거나 도망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수들이 습격해오는 루벤.

오우거를 상대해본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여기엔 로열 나이츠들까지 있었다.

모두가 엑스퍼트 수준에 달하는 최강의 기사단.

아무리 오우거라한들 이 전력 앞에서는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크워어─!!

크워어어어어어─!!

숲 안 쪽에서 다시금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마치 앞선 굉음에 공명을 하듯, 소름끼치는 괴성이 수차례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건 하나가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최소 수 십.

아니나 다를까 모습을 박살이 난 잔해 뒤쪽으로 또 다른 오우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역시나 한 두마리가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20마리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더하면 족히 2배는 되어보였다.

“말도 안돼!”

그런 오우거의 모습에 로열 나이츠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오우거는 무리 생활을 하지 않았다.

오우거는 반드시라고 할 만큼 홀로 생활한다.

애초에 무리를 짓는 것은 나약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오우거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상 최강의 포식자, 오우거.

그들은 무리를 지을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그렇기에 동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오로지 암컷과 수컷. 그 둘의 개념만 존재할 뿐이었다.

따라서 오우거에게 같은 오우거란 짝짓기 대상.

혹은 영역을 침범한 침입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대체···.

“어, 어떻게 이런···?”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 모습에 루벤의 기사들까지 놀란 눈을 떠보였다.

그간 루벤에 있으면서 오우거를 경험해 본 바.

그들 또한 이렇게 무리짓는 오우거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람들은 놀란 눈을 부릅, 뜨면서 오우거 무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우거의 약점은 무엇이지?”

누군가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기점으로 로열 나이츠들이 정신을 가다듬었다.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 모르겠다.

어째서 오우거가 무리 생활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당장 오우거를 상대해야함은 변함 없었다.

로열 나이츠들은 검을 움켜 쥐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없습니다.”

들려온 대답은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오우거에겐 약점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재앙.

게다가 이곳은 다름 아닌 어둠의 숲이었다.

광폭화(Over Drive)로 인해 몬스터가 마수화되는 지역.

지금 저 오우거는 단순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광포한 본능에 삼켜진 끔찍한 마수(魔獸)였다.

저건 엑스퍼트의 기사조차 쉬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 재해나 다름 없었다.

그런 자연 재해가 무려 수 십.

“모두 뒤로 물러나라! 방벽으로 올라와!”

뒤쪽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엔 루벤의 경비대장, 루카스가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그 말에 루벤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황급히 루벤 안쪽으로 들어갔다.

“물러나야합니다! 오우거와의 전면전은 불가합니다!”

그리고 로열 나이츠들을 향해 들려오는 외침.

로열 나이츠들은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용기와 객기. 자신감과 오만함.

그 둘은 엄연히 구분해야한다.

제국 최강의 기사단이라 불리는 로열 나이츠 였지만.

마수화가 진행된 저 수 십마리의 오우거를 아무런 피해없이 상대할 수는 없었다.

로열 나이츠들은 서둘러 루벤의 방벽 안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앞선 이들이 루벤으로 들어오고 있는 시각.

“기사들이 돌아오면 성문을 닫고 해자를 올려라! 마법사들은 미리 마법을 캐스팅 해둬라!”

루카스는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루벤의 경비대장, 루카스.

루카스는 빠르고 또 정확하게 전투를 준비했다.

오우거와의 전면전은 불가하다.

그렇다면 현재로서 오우거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은 둘.

다크 엘프들의 마법.

그리고···.

“신기전은? 신기전은 준비되었나?”

다연발 화살로 목표한 구역을 초토화시켜버리는 신기전.

“아직 준비 중에 있습니다!”

들려오는 병사의 외침에 루카스는 주먹을 꽈득, 움켜쥐었다.

신기전은 막강한 화력을 뿜어내나 그에 따른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화살을 장전하고 마정석을 끼워넣는 작업에는 어쩔 수 없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오우거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물론 튼튼한 루벤의 방벽은 오우거의 공격에도 버텨주겠다만···.

크워어어어어어─!!

수 십의 오우거라면 경우가 조금 달랐다.

그러니 신기전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했다.

하지만 오우거를 상대로 시간을 벌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켄드릭 단장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준비하도록 하지.

루카스의 말에 켄드릭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푸른 안광을 일렁이며, 시꺼먼 어둠을 피워올렸다.

“우리도 돕겠다!”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도움이 될 거다!”

그와 동시에 방벽 아래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다름 아닌 로열 나이츠의 단장, 예일과 필리프.

그들은 다른 이들과 달리 방벽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루카스는 그 둘을 말리지 않았다.

마스터 중급의 실력자인 둘.

그들이라면 충분히 저 오우거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줄 수 있을 테니까.

루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의 병사에게 물었다.

“레아님은? 현재 어디에 계시지?”

“황태자 전하와 함께 영주성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루카스는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어쩔 수 없었다.

“가서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해라. 그리고 영주님께도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루카스의 명령에 병사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루카스는 시선을 돌려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크워어어어어어─!!

크워어어─!!

앞선 시야로 오우거들이 커다란 괴성을 내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루카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간 루벤에 오우거가 습격해오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처럼 수 십의 오우거가 뭉쳐서 온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무리 생활을 하지 않으니까.

그건 최강의 포식자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보이는 수 십 마리의 오우거.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저들이 저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최강의 포식자들이 뭉쳐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현재로서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루카스는 고개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지금은 저 오우거들의 습격을 막아내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쾅! 콰쾅!!

수 십 마리에 달하는 오우거들이 주변 숲의 잔해를 무차별적으로 파괴했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자연 재해가 다가오는 것만 같은 위압감을 선사했다.

“온다!”

루카스의 외침과 동시에, 켄드릭이 방벽을 가르지르며 뛰어나갔다.

이윽고 예일과 필리프가 켄드릭의 뒤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서걱─!

콰자작─!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쿵! 쿠쿵─!

2마리의 오우거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격돌과 동시에 켄드릭이 베어낸 1마리의 오우거.

그 뒤를 이어 예일과 필리프가 1마리를 베어낸 결과물이었다.

단 일격에 2마리의 오우거를 쓰러뜨린 실로 경이로운 무력.

그러나 남아있는 오우거의 숫자는 여전히 많았다.

동족의 죽음에 수 십 마리의 오우거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뀌었다.

크워어어어어어─!!

광포한 본능, 흉포한 분노.

동족의 개념이 없는 오우거였거늘.

고막을 뒤흔드는 괴성에는, 그러한 감정이 담겨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루카스는 꽈득, 주먹을 움켜쥐었다.

오우거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까.

켄드릭과 예일, 필리프가 시선을 끌어주고 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지금이야 저들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으나 잠시였다.

역시나 오우거의 수가 많았으니까.

지금도 앞선 오우거들에게 가로막혀 흥미가 떨어진 것인지.

일부 오우거 무리들이 등을 돌려 루벤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신기전의 준비는─!”

바로 그때.

타닥! 탁!

무언가 루카스의 옆을 스치듯.

방벽 앞으로 뛰쳐나갔다.

저도 모르게 바라본 시야.

그곳엔 두 금발의 사내가 오우거 무리들을 향해 뛰쳐나가고 있었다.

#

수 십의 오우거들의 틈 바구니 속.

예일과 필리프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 드리운 수 십의 오우거들.

지상 최강의 포식자가 내뿜는 강렬한 살의.

그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폭력으로 다가왔다.

그 압도적인 폭력에 예일과 필리프는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로열 나이츠의 단장으로서 오우거를 상대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직접 오우거의 목을 베어본 적도 수십 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이 오우거들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오우거와는 다르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개체라 봐도 무방했다.

-시선을 끌어주겠다.

앞선 시야로 켄드릭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들려왔다.

켄드릭은 검푸른 안광을 일렁이며, 가진 바 어둠을 폭사시켰다.

그와 동시에 예일과 필리프에게 집중되었던 오우거의 시선이 켄드릭에게로 향했다.

말마따나 시선을 끌어주는 행동.

한편으로는 예일과 필리프를 지켜주는 행동이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객기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곁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것만 같았다.

그리고.

크워어어어어어어─!!

어마어마한 괴성과 함께 오우거들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오우거의 공격은 단조로웠다.

가진 바 무기도 없는 그저 신체를 활용한 일격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이 최강의 무기나 다름 없었다.

압도적인 신체에서 폭발하는 소름끼치는 힘.

그 힘 하나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콰아아아앙─!!

간단한 주먹질 한 번에 땅이 짓뭉개졌다.

그리고 조금의 반응이 늦었더라면.

짓뭉개진 건 땅이 아니라, 예일과 필리프였을 터였다.

마스터 중급의 감각이 겨우 따라갈 만한 속도.

거대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마어마한 속도였다.

‘아니.’

예일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걸맞지 않다. 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덩치가 크다고 해서 느리다고 생각하는 건 크나큰 오해다.

그건 오우거를 상대해보지 못한 이들이나 할 법한 생각이다.

직접 오우거를 상대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단번에 깨닫는다.

압도적인 힘으로부터 나오는 파괴력, 민첩성, 순발력, 반응 속도.

지상 최강의 포식자라는 말은, 괜히 붙이는 말이 아니다.

꽈아아아앙─!

사방으로 터져나간 대지의 파편들이 비산한다.

내지르는 주먹 하나하나가 커다란 폭발과도 같은 충격을 선사한다.

예일과 필리프는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오우거의 공격을 피했다.

앞서 오우거를 베어낸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오우거의 일격을 피하기에 급급했으니까.

만일 지금 켄드릭이 시선을 끌어주지 않았더라면.

벌써 짓뭉개져 저기 어딘가에 나뒹굴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쾅! 콰쾅!

이어지는 오우거의 맹렬한 일격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충격 때문일까.

휘청.

일순간 필리프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그 틈을 놓칠세라 오우거 한 마리가 필리프를 향해 뛰어들었다.

“필리프!!”

예일은 다급히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쇄도하는 오우거 주먹에 의해 금방 그 움직임을 멈춰서야했다.

콰아아앙─!

움푹파이는 땅.

다급히 고개를 들어 바라본 시야.

오우거의 주먹이 거진 필리프의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저 정도의 거리라면 아무리 예일이라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켄드릭은 거진 7마리의 오우거를 상대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감탄밖에 새어나오지 않는 무력이었으나, 그 또한 여유는 없어보였다.

한 마디로 필리프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우거의 주먹은 필리프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필리프!!!”

터져나오는 예일의 외침.

바로 그때.

서걱─!!

섬뜩한 절삭음이 들려왔다.

오우거의 주먹에 짓뭉개지는 필리프의 파육음이 아니었다.

무언가 베어지는 섬뜩한 절삭음이 예일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

예일의 사고가 일순간 정지했다.

그리고 바라본 그곳.

그곳엔 태양빛을 닮은 금발의 사내.

“전···하?”

황태자, 콘라드가 서 있었다.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그런 의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그런 의문은 터져나오는 굉음 앞에 묻혀 사라질 뿐이었다.

손이 잘린 오우거는 비명을 지르며 끔찍한 살의를 터트렸다.

그리고 그 대상은 오롯이, 콘라드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전하!!”

예일은 그대로 콘라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필리프 또한 정신을 차리며 콘라드를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분노로 일그러진 괴악한 힘 때문일까.

그 폭발적인 속도는 예일과 필리프보다 앞서 있었다.

또한 주변으로 쇄도하는 오우거들의 공격에 좀처럼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마스터조차 쉬이 반응하기 힘든 속도.

역시나 콘라드는 아무런 대응을 못하고 있었다.

“안돼!!”

예일이 고함을 지르듯 소리쳤다.

하지만 고함은 오우거의 주먹을 멈춰세워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끝내 오우거의 주먹이 콘라드의 눈 앞까지 다가왔을 때.

콰아아아아앙─!!

시야 가득히, 커다란 폭발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먼지 안개가 짙게 피어났다.

“전하!!!”

“전하!!!”

예일과 필리프가 절망 가득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나 먼지 안개가 서서히 가라앉았을 때.

그 사이로 보인 것은 짓뭉개진 콘라드의 시신이 아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허공을 날아가는 콘라드의 몸뚱이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오우거의 주먹을 막아서고 있는 한 인간.

콘라드와 또 다른 금발의 사내.

“백작··· 각하?”

다름 아닌 시안이었다.

시안은 콘라드를 향한 오우거의 주먹을 막고 있었다.

꽈아아악!!!

어마어마한 힘이 시안을 짓눌러왔으나, 시안은 꿋꿋이 버티고 있었다.

아니, 버티고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꽈드드드득!!

괴이한 소리가 들려오며 시안이 한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그와 동시에 오우거의 주먹이 뒤로 점점 밀려났다.

“······!!!!”

“······!!!!”

그 모습에 예일은 물론 필리프의 두 눈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지금 보이는 광경.

그러니까 시안이 오우거의 주먹을 밀어내는 모습.

“오우거의 힘을··· 꺾었다···?”

이건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게 말이 되지 않았다.

말이 될 수가 없었다. 되어서도 안 되었다.

물론 말 자체는 될 수 있었다.

간혹 힘이 센 사람에게 ‘너, 힘이 오우거처럼 강하구나!’ 라고 내뱉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말 뿐이었다.

말 그대로 말만 그렇게 내뱉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한낱 비유적인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힘이 엄청나다는 과장에 지나지 않았다.

오우거가 가진 괴악한 힘.

그건 인간이라는 개체가 닿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힘의 대명사라 불리는 드워프들.

그들조차 오우거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오우거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의 광경은 현실에 있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꽈드드드드득!

다시 한 번 괴악한 소리가 들려오며 오우거가 한껏 뒤로 밀려났다.

그리고 힘의 대결에서 밀린다고 여겼던 걸까.

크워어어어어어─!!

오우거가 포악한 괴성을 내지르며 힘을 더해갔다.

폭발적인 오우거의 근육이 꿈틀거리며 어마어마한 힘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밀리지 않았다.

그 힘에 맞서며 시안은 꿋꿋이 서있었다.

그리고 잠시.

이내, 서걱─! 하는 절삭음과 함께 오우거의 손목이 재차 잘려버렸다.

그 잘린 시야로 보이는 콘라드의 모습.

콘라드는 어느샌가 오우거의 손목을 재차 베어내고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고통에 찬 오우거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오우거는 더 이상 포식자가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는 생명체일 뿐.

두 손목이 모두 잘린 오우거.

그 사이로 타닥, 시안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움직인 시안의 몸과 동시에 검이 흘러간다.

어둠을 가르는 칠흑의 검.

서걱─!

휘두른 참격에 오우거의 머리가 허망하게 잘려나갔다.

이 모든 동작들이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졌다.

‘빠르다!’

예일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소리쳤다.

감각으로도 쫓지 못했다.

예일이 인지할 수 있었던 건 하나.

시안이 움직였다, 라는 사실 뿐이었다.

쿠웅─!

머리가 잘린 오우거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대지가 뒤흔들리는 충격에 예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질기고 질긴 오우거의 손목을 자른 콘라드.

그리고 오우거의 힘을 꺾고 끝내 목을 베어낸 시안.

두 사람의 합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하지만 고작 한 마리였다.

이곳에 드리운 오우거는 무려 수 십.

고작 한 마리를 처리했다고 어찌할 수준이 아니다.

크워어어어어어어─!!

광포한 오우거들의 괴성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예일은 검을 꽈득, 움켜쥐었다.

일단 가장 먼저 콘라드부터 보호한다.

그런 예일의 생각을 파악한 필리프가 곁으로 따라 붙었다.

바로 그때.

“모두 엎드려!!!”

시안의 커다란 외침이 터져나왔다.

엎드리라니?

지금 이 순간에?

예일과 필리프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이 떠올랐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예일과 필리프의 몸은 이미 낮아져있었다.

그때서야 바라본 시야.

그곳엔 시안이 칠흑의 검을 말아쥔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암전된 시야.

보이지 않는 시야 속으로 오우거들의 괴성이 파고든다.

끔찍한 살의가 덮쳐오며 전신의 솜털이란 솜털이 곤두선다.

호흡이 순간, 뚝 멈추었다.

멈춘 호흡 속에서, 번쩍!

시안은 두 눈이 떠지며 칠흑의 어둠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어둠으로 물든 시야 속.

오우거의 공격이, 한없이 느려졌다.

오우거의 공격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다만, 시안이 내딛는 속도의 시간이 빠를 뿐이었다.

다른 속도의 세계.

그리고 한 번 경험해본 세계

지난 날 북부에서의 사건.

<뮤리엘의 축복>을 극한으로 사용했을 때 경험했던 찰나의 세계.

그때와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시간마저 쪼개지는 찰나의 순간.

그 순간에는 다가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느리다.

달려오는 오우거의 모습이.

쇄도하는 오우거의 주먹이.

내뱉는 호흡이.

떠지는 두 눈이.

폭사하는 마력이.

그 모든 순간들이.

콰자자자자자작─!!!

한없이, 느리게만 느껴졌다.

#

세상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참격.

그것은 단순히 풍경을 베어낸 것이 아니었다.

검격이 미치는 모든 곳.

시야 끝에서 끝이자, 풍경 끝에서 끝.

어둠의 숲 전체가, 베어졌다.

그리고 어둠의 숲 안에 담겨져 있던 수 십의 오우거들.

쿵─! 쿠쿵─!

그 오우거들이 일시에 허물어져버렸다.

각기 다른 부위가 양단된 채, 모두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

“······!!!!”

“······!!!!”

그 말도 안되는 광경에 사람들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경악으로 일그러진 표정과 입에서는 그 어떠한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았다.

시안 옆에 있는 콘라드는 물론.

예일과 필리프 그리고 방벽 위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루카스와 병사들.

또 로열 나이츠들.

-······!!!!

심지어 켄드릭과 더불어.

-뭐, 뭐야···?

지금 막 도착한 레아까지.

경악, 충격, 기겁, 식겁, 기절, 놀람, 질색.

그 어떠한 표현을 덧붙여도 지금 느끼는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경악으로 내려앉은 침묵 속.

“······ 어라?”

시안은 저도 모르게 이런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보이는 풍경.

그러니까 어둠의 숲이 일시에 벌목이 되어버린 풍경.

“이게 뭔···?”

시안도 이 정도의 위력이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물론 이번엔 단순한 참격이 아니었다.

엘릭서의 힘을 이끌어내었고.

또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어둠의 숲을 모조리 벌목할 정도로.

그리하여 오우거들을 일시에 양단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

“이거 설마···.”

시안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다름 아닌 메긴기요르드.

착용자의 힘을 아무 조건없이 2배 증폭시켜주는 사기적인 아이템.

아무래도 메긴기요르드의 힘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상했다.

고작 2배의 힘을 증폭시켜주었다고, 한들 눈앞의 위력은 실로 말이 안되었으니까.

게다가 아까 전, 오우거의 힘을 이겨낸 것까지.

“이거 2배가 아닌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2배는 아니었다.

고작 2배의 힘이 세졌다고 해서 이 정도의 위력을 사출할 수는 없었다.

최소 10배였다.

즉, 눈앞의 광경은 시안이 가진 바 힘의 10배에 달하는 힘이 발휘된 결과였다.

그야말로.

“이거 완전 개사기─.”

···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찌직─!

갑자기 시안의 전신으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꾸드드득, 전신의 근육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잠깐, 이거 설마···!’

시안은 머릿속으로 스치는 생각에 눈을 부릅, 떠보였다.

광고에서 파는 메긴기요르드.

마일리지 샵에서 파는 메긴기요르드.

그 둘의 차이점은 사출하는 힘의 차이였다.

광고에서 파는 모조품은 2배.

마일리지 샵에서 파는 진품은 10배.

그 말은 즉.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부작용은 모조품이나 진품이나 똑같다는 것.

그 부작용은 사출한 힘에 대한 반동을 신체가 견뎌내야한다는 것.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한 부작용을 구매자가 감당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시안이 사용한 힘의 배수는 10배.

꾸드드드득─!!!

그 생각과 동시에 전신의 근육이 크게 요동쳐왔다.

그리고 시안이 무얼 대응하기도 전.

콰지지지지직─!!

“끄어어어어어어어어억!!”

전신의 모든 근육이 파열되며, 모조리 찢겨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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