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90화 (190/322)

§ 190화 - 영지전?(2)

“아멜리아님! 떠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어머? 벌써요?”

마차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아멜리아는 살짝 놀란 눈을 떠보였다.

이윽고 서류를 작성하던 펜을 내려놓고는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재들이 말끔히 정리되어 되어있는 광경에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떠보였다.

“엄청 빨리 끝내셨네요?”

“아무래도 물건들이 모두 완판되었으니까요.”

그러자 한 병사가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해왔다.

잭슨이라는 이름의 병사로서, 이번 상행 호위를 책임지는 이였다.

루벤의 병사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

지난 날, 루벤의 대표로 로열 나이츠의 수습 기사와 대련을 펼쳤던 병사이기도 했다.

비록 아쉽게 패배했지만 병사와 기사의 대련임을 감안하면 잭슨의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로열 나이츠의 수습 기사는 웬만한 정식 기사와 다를 바 없었으니까.

또한 그 이후로 로열 나이츠들과의 대련 덕분일까.

그 실력은 더욱 상승했고, 얼마 있지 않아 루벤의 기사로 승격될 인재이기도 했다.

뭐, 어쨌든.

“빈 상자 옮기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매번까지는 아니었지만 거의 모든 상행이 이러했다.

상행으로 가져온 모든 물품을 남김없이 모두 팔아치울 수 있었다.

어부에게는 만선의 꿈과 같은 것.

그러니까 상인에게는 그 반대인 빈선의 꿈을 매 상행마다 이루고 있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상행을 편하게 하네요.”

“아닙니다. 저희가 해야할 일 인걸요. 되려 아멜리아님이 물건을 모두 팔아치워주셔서 저희들이 더 편합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한 게 없다니요? 아멜리아님이 전부 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잭슨의 말마따나 모든 물품을 팔아치운 것.

그 이유에는 아멜리아의 역할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루벤의 물건들이 품질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완판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멜리아는 단순히 물건만을 팔지 않았으니까.

그냥 발이 가는 대로 노상을 열어 물건을 팔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가장 먼저 상행을 가고자 하는 지역을 철저하게 탐색했다.

그리고 각 지역별, 영지별 상황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예를 들어 어디어디 영지의 영주 아들이 곧 생일이라더라.

어디어디 마을에 크나큰 축제가 열린다더라.

이런 굵직한 사건들부터 시작해.

얼마 전에 열렸던 파티에서 A영지의 귀부인이 드레스가 찢어져 망신을 당했다더라.

B영지의 영주가 케이크를 먹다가 체해 당분간 먹지 않는다더라.

이런 사소하다 못해 시덥잖은 소문들까지 모조리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들을 토대로 상행을 계획했다.

가장 많은 소비가 있을 것 같은 지역.

소비는 적을지 모르겠지만 수익이 많을 것 같은 지역.

그리하여 해당 지역에 가장 필요한 물품들, 가장 알맞은 시기에 풀었다.

옆에서 상행 호위를 따라다니다보면 정말 감탄 밖에 새어나오지 않았다.

때문에 아멜리아의 상행 계획이 거의 모든 것을 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제가 뭘요. 루벤의 물품이 워낙 좋기 때문에 잘 팔린 것이죠.”

물론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나 루벤의 물품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역시나 비누와 드워프제 맥주.

별 다른 향수를 뿌리지 않아도 몸에서 향기가 지속되는 비누.

비누는 귀족들에게 그야말로 없어서 못파는 물건이 되어있었다.

“아멜리아님도 참 겸손하십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인걸요.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동선을 계획할 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이건 사실이었다.

계획을 짠다 한들, 시기적절하게 때를 맞추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정확히는 시기를 맞추기 위해서 무리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산 속을 지나가야했고.

산적들의 소굴을 통과해야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아멜리아 또한 그런 위협을 받은 적이 많았다.

몬스터를 마주친 적도.

산적들에게 길을 막힌 적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상행의 호위로 언제나 루벤의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벤의 병사들은 평범한 병사들이 아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마수들을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들.

그들에게 몬스터는 정말이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병사들은 현재 거진 기사급에 이르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다.

산적 따위가 대체 무슨 문제일까.

상행 도중 위협을 받은 것은 여러번이었으나 단 한 번도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

“그게 겸손이라는 겁니다. 뭐, 아무튼. 준비는 모두 끝났으니 어떻게, 바로 출발할까요?”

“네. 그래요. 영주님이 골드가 급하다고도 하셨으니까요.”

“넵. 그럼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아멜리아의 말에 잭슨은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아멜리아는 천천히 주변을 훑어봤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상단원들.

텅텅 비어버린 빈 상자들.

그로써 벌어들인 골드는 무려 830만 골드였다.

예상 수익인 770만 보다 60만 골드는 더 벌어들인 수익.

세상 어떤 상단이 한 번의 상행으로 이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아멜리아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과거, 브라헤 상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몰락한, 브라헤 상단도 말이다.

“······”

저도 모르게 흘러간 생각에 아멜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름 아닌 얼마 전.

엘란두르 장부에서 보인 소렌이라는 이름.

그는 다름 아닌 브라헤 가문을 몰락시킨 주동자였다.

그리고 그 소렌이라는 이름이 엘란두르 장부에 적혀있다는 것.

그건··· 브라헤 가문의 몰락이 엘란두르와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엘란두르가 배후에 있다고 생각될 수 있었다.

억측이라 생각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멜리아의 아버지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아멜리아, 세상에는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더구나. 돈을 초월하는 권력. 사람을 믿은 것은 지금도 후회가 없지만···. 권력을, 세력을 이루지 못한 것은 너무도 후회가 되는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권력과 세력.

그건 어쩌면··· 엘란두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

아멜리아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져만 갔다.

하지만 아멜리아는 금방 고개를 흔들었다.

나약해지면 안된다.

무너져서도 안된다.

이깟 절망 따위는 매번 겪어오던 일이다.

얼마든지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무엇보다 이제, 아멜리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아멜리아님! 바로 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혼자서 모든 것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힘들면 기대어도 되었고.

지치면 쉬어갈 수 있는, 돌아갈 안식처도 있었다.

뒤쳐져도. 넘어져도.

세상의 모진 풍파로부터 아멜리아를 지켜줄 이도 있었다.

어딘가 어벙해보이지만, 때로는 바보처럼 보이나.

가끔은··· 왜 저럴까 싶을 때도 많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강직하고 넓은 등을 가진 남자가 말이다.

그러니 할 수 있었다.

언젠가. 그 언젠가.

브라헤 상단을 뛰어넘는 제국 제 1의 상단이 될 수 있을거라.

“네!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아멜리아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멜리아는 힘차게 대답하며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오랜만이야. 아멜리아.”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일순간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

“다, 당신은···?”

아멜리아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

크게 떠진 아멜리아의 두 눈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당신이 왜 여기에···?”

되려 눈빛이 떨리며 눈앞의 대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이 이상했던 것일까.

“아멜리아님? 왜 출발을···.”

잭슨이 다가 와 아멜리아에게 물어왔다.

그리고 아멜리아 앞에 있는 낯선 사내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

“누구··· 십니까?”

현 상황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그런 잭슨의 물음에 낯선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레민턴 크라우드.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이다.”

“크라우드 백작가라면···.”

들어 본 적은 있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가문.

평민인 잭슨도 이름는 들어본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런데 그 가문의 차남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잭슨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아멜리아님. 아시는 사이입니까?”

“그럼 잘 알지. 한때 결혼을 약속했던 사이였으니까. 안 그래 아멜리아?”

그러나 대답은 아멜리아가 아닌 레민턴에게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런 레민턴의 대답 때문일까.

“이야기가 오고 간 적은 있지만 혼인을 약속한 적은 없어요.”

아멜리아가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을 약속한 적이 없으니까.

혼사의 이야기가 오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말 말 그대로 이야기만 오간 사이였다.

양 가문의 가주끼리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떻나?’ 정도의 이야기만 나온 정도였다.

쉽게 말하면 소개만 한 사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레민턴의 판때기를 보고 아멜리아의 아버지가 바로 없던 일로 해버렸다.

반면에 크라우드 백작은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아멜리아의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절했다.

애초에 아멜리아 또한 전혀 마음이 없었다.

그 이후 브라헤 가문이 몰락하자 완전히 없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헌데 지금 와서 저딴 소리나 내뱉고 있으니···.

아멜리아는 눈을 치켜 뜨며 레민턴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무슨 일이시죠? 아니.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왜긴 왜야. 반가운 모습이 보이길래 잠시 얼굴이나 보고자 들른 거지.”

“그럼 얼굴 봤으니 되었네요. 그만 가시죠.”

아멜리아는 레민턴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레민턴은 그런 아멜리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헀다.

“워워. 그렇게 매몰차게 가서야 쓰나. 한때 지아비가 될 이였는데 말이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당신과 결혼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어요.”

“그 앙칼진 성격은 여전하네?”

레민턴은 비릿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멜리아는 다시금 걸음을 옮겨 레민턴을 지나쳤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어요.”

“아직도 그 놈팽이 옆에 있는 거야? 꽤 잘 해주나봐?”

레민턴이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지만 아멜리아는 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더 잘해줄게. 그 놈팽이가 어떻게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특히 침대 위에서는 내가 더 엄청날 걸? 못 믿겠으면 어때. 오늘 밤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데.”

그 정도가 점점 과해지고 있었지만 아멜리아는 역시나 대응하지 않았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

저딴 남자와 말을 섞어봤자 제 기분만 더러워질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나 지금 부탁하는 거 아닌데.”

레민턴의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멜리아의 앞을 한 사내가 가로막았다.

무장의 상태를 보아 기사로 보이는 이였다.

그것도 레민턴이 데려온 기사.

그리고 그를 시작으로 상행 마차 주위.

수많은 병사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까마귀 문양이 그려져 있는 갑옷.

모두 크라우드 소속의 병사들인 것 같았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뭐하긴. 나 부탁하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

이윽고 레민턴이 성큼, 아멜리아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너만 얌전히 따라오면, 아무 문제 없을거야.”

말이 점액처럼 끈적하게 늘어졌다.

마치 오물 덩어리가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

털어내려해도 고막에 감싸 달라붙어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불쾌감이 있었다.

아멜리아의 두 주먹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리고 바로 그때.

“크라우드 가의 자제분이시라 그냥 두었습니다만···.”

가만히 있던 잭슨이 레민턴과 아멜리아 사이를 가로막았다.

“행동이 조금 과해지는 것 같습니다. 레민턴 공자님.”

그러자 레민턴의 인상이 와락, 일그러졌다.

“한낱 병사 따위가 어딜 감히···.”

레민턴은 오른손을 크게 휘둘러 잭슨의 뺨을 때렸다.

아니, 때리려고 했었다.

덥썩.

잭슨에게 잡혀버린 손목.

레민턴은 힘을 주며 벗어나려했지만, 도무지 잭슨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 이 새끼가···! 이거 안 놔!!”

하지만 되려 꽈드득, 레민턴의 손목을 얽매이는 힘이 강해질 뿐이었다.

“끄윽! 가만히 있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거늘.”

일순간 레민턴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주변에 드리운 크라우드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이 새끼들 전부 죽여버려!!”

그런 레민턴의 말과 함께 크라우드 병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피어나는 진득한 살의.

위협이나 겁박의 종류가 아니었다.

진짜로··· 죽일 생각이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그 모습에 아멜리아가 소리쳤다.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제국에서 가만 두고 볼 것 같으세요?”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식의 겁박은 당연히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건 산적이나 도적들이나 하는 짓이었으니까.

귀족이라는 작자가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들.

이건 명분 없는 살인 범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그 소식을 못 들었나봐?”

레민턴은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루벤과 크라우드는 지금 영지전 중이라는 걸 말이야.”

“뭐, 뭐라고요?”

아멜리아는 두 눈을 크게 떠보였다.

영지전의 이야기는 처음 듣거니와.

영지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으니까.

영지전은 양 영지 간 벌이는 전쟁.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물론 영지전 중임에도 이런 파렴치한 짓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쟁이라 한들.

어디까지나 고귀한 귀족들간의 다툼이었으니까.

이런 식의 비열한 수법은 귀족가에서도 비난받기 일 수였다.

하지만 이 역시나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법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목격자가 없으면 증인도 없는 법.

“이 새끼들 싹 다 죽여버려!!”

레민턴의 말에 크라우드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서슬 퍼런 검날을 들이밀며 상단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바로 그때.

“어라? 루벤과 크라우드가 영지전 중이었습니까?”

몰랐다는 듯한 잭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역시나 잭슨은 두 눈을 크게 떠보이며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도 잠시.

잭슨이 고개를 돌려 크게 소리쳤다.

“얘들아! 들었지? 우리 영지전 중이란다!”

그런 잭슨의 말과 동시에 마차 구석구석에서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빈 상자 위에 누워 잠을 청하던 병사.

마차 안에서 빈둥거리던 병사.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히히덕 거리던 병사.

크라우드 병사들의 모습에도 딱히 신경을 갖지 않던 병사들이었다.

“하아아암··· 어쩐지. 이 새끼들 함부로 살기를 피워 올리나 했습니다.”

“어라? 선배님. 그럼 이것들 싹 다 죽여도 되는 겁니까?”

“아니, 그렇다고 죽이진 마. 병사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니.”

잭슨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하지만.

“선배님. 이 잡것들 베티님한테 쓰레기 같은 말들을 내뱉었습니다만.”

베티는 루벤 브라헤 상단의 여상단원이었다.

꽤나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이자.

지금 한쪽에서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는 가녀린 여인.

“뭐라 했는데?”

“맛있을 것 같으니 죽이지 말자고 했습니다.”

“돌려서 같이 나눠 먹자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야, 됐어.”

잭슨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였다.

“그냥 실수로 죽여. 아니다. 죽이진 말고 병신으로 만들어 놔. 평생 불구로 살아가게.”

“넵!”

잭슨의 말에 병사들이 힘차게 대답해보였다.

그리고 그런 루벤의 병사들을 지켜보던 크라우드의 병사들.

“그래봤자 코딱지만한 영지의 병사들 주제에···.”

“주제도 모르고 감히···.”

병사들은 코웃음을 치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레민턴 또한 코웃음을 치며 다시 시선을 돌릴 뿐.

“넌 뭐하고 있어!”

그저 잭슨에게 아직도 잡혀있는 손목이 짜증날 뿐이었다.

레민턴의 말에 기사가 천천히 손을 검의 손잡이로 가져갔다.

그 순간.

“그 검.”

기사의 귓가로 들려오는 잭슨의 목소리.

“뽑으실 겁니까?”

흠칫!

기사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잭슨에게서 느껴지는 기세.

그건··· 쉬이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기사는 차마 검을 뽑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기사가 답답했던 것일까.

“뭐하고 이써! 당장 이 새끼 죽여버리지 안코!”

레민턴이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 흥분에 레민턴의 발음이 뭉개지기 시작했다.

아작이 나버린 턱관절의 후유증.

그 때문인지 레민턴은 더욱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기사는 떠오르는 생각을 털어내었다.

그래봤자 쥐똥만한 영지의 일개 병사.

반면에 자신은 오러를 다루는 기사였다.

병사와 기사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 방금 전의 기세는 착각일 터.

기사는 움켜쥔 검을 천천히 뽑아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챙─!

한줄기 검날이, 기사의 목 위를 스쳐지나갔다.

부릅, 뜬 두 눈.

그리고 허물어지는 기사의 신형.

“······?”

레민턴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으로도, 감각으로도.

보이지도, 쫓지도 못했다.

그저 어느 샌가 검을 뽑아든 잭슨의 모습만이 비쳐보일 뿐이었다.

“뭐, 뭐야···.”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쓰러져있는 건 기사여서는 안 되었으니까.

저 기사는 오러 유저(User)의 기사.

그것도 무려 상급에 달하는 실력있는 기사였다.

그러니 쓰러져있는 건 저 기사가 아니라 잭슨이어야했다.

쥐똥만한 영지의 일개 병사, 잭슨이 저 자리에 쓰려져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대체···?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끄아아아악!”

사방으로 터져나오는 비명.

바라본 그곳엔··· 크라우드의 병사들이 휩쓸려나가고 있었다.

루벤의 병사들이 아니라, 크라우드의 병사들이 휩쓸려나가고 있었다.

3배라는 수적 우위는 의미가 없었다.

그저 비명 소리가 3배 증폭된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로 보이는 압도적인 실력의 병사들.

저게··· 저게 일개 병사라고···?

기사가 아니라?

“······?”

레민턴의 고개가 다시 한 번 기울어졌다.

놀랄 여력도 없었다.

그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그 순간 터벅.

잭슨이 레민턴을 향해 걸어왔다.

잭슨의 검에는 새빨간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 잠깐···!”

레민턴은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때서야 현재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니,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뭘 해야할지는 알 수 있었다.

도망쳐야한다.

한시라도 빨리 지금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만 헀다.

그런데 어떻게···?

레민턴은 이를 까득, 깨물며 소리쳤다.

“나, 난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이다···!

그러자 잭슨의 발걸음이 뚝, 하니 멈춰섰다.

그 모습에 레민턴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영지전은 전쟁이나 어디까지나 귀족들간의 전쟁.

한 마디로 귀족들은 언제나 그 안전을 보장 받는다.

하물며 정식 영지전도 아닌 이런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귀족을 해치는 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군요.”

역시나 잭슨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런 잭슨의 모습에 레민턴은 슬며시, 몸을 빠져나왔다.

병사들의 수준이 예상 밖이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진짜 영지전이 시작되면 이들은 아무것도 아닐 터.

레민턴은 이를 빠득, 갈며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어디 가십니까?”

잭슨이 그런 레민턴의 앞을 가로막았다.

마치 어딜 도망가냐는 듯한 물음.

“바, 방금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어쩔 수 없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만.”

잭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누가 곱게 보내준다고 했습니까?”

“나를 억압하면 제국이 가만있지 않을텐데?”

레민턴은 당당히 소리쳤다.

귀족을 해치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도 있어서는 안되는 일.

하물며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것이 고귀한 귀족이 갖는 특권이었다.

분명··· 그러할진대.

“공자님께서 방금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어진 잭슨의 말.

“루벤과 크라우드는 현재 영.지.전. 중이라고요.”

레민턴은 그때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이건 아니었다.

이건 계획에 없었다.

뭔가···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주 심히.

“적군의 수장을 그냥 보내주는 경우가 어디에 있답니까?”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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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숲에 위치한 루벤.

“······ 뭔데?”

시안은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시안의 눈앞에 있는 사내.

“읍!! 으으으읍!!”

사내는 온몸이 포박된 채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렴풋한 기억 속에 있는 얼굴이었다.

“으으읍!! 읍읍!!”

다름 아닌 지금 루벤과 영지전 중인 크라우드 백작가의 차남, 레민턴.

그러니까 지금 이 손에 들려있는 영지전에 관한 서신.

이 서신에 적힌 크라우드 백작가의 둘째 아들이었다.

쉽게 말해 적군의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으으으으으읍!!!!”

그런 애가 왜 여기서 팔딱팔딱, 거린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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