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93화 (193/322)

193화 - 서막과 종막(2)

어둠의 숲 벌목에 대한 고민은 길게 이어졌다.

하지만 시안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둠의 숲 벌목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말이 벌목이었지 그냥 생지랄이나 다름 없었다.

엘릭서의 힘은 물론, 극(極) - 수라천살(修羅天殺).

그리고 메긴기요르드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써야했으니까.

그러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전신의 모든 근육이 파열될 터였다.

지난 날 오우거들을 날려버렸던 그때처럼 말이다.

뭐, 그 이후로 단련을 한 터라 그때만큼은 아닐 터였다.

그래도 최대치를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면 또 며칠 간 치료소 신세를 져야했다.

헌데 크라우드 병력이 출병을 한 지금.

아무리 그래도 한가로이 누워서 치료나 받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 저번의 일로 인해 어느 정도 벌목이 진행되어있었다.

그러니까 루벤으로 오는 길목은 대충 벌목이 되어있었다.

그러니 이건 그냥 생지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그냥 병사들한테 마수들 좀 정리해놓으라고 해야겠다.”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설마하니 백작령의 군사들인데 마수들한테 정리가 될까.

그럴리가 없을 터.

차라리 크라우드 백작이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좋았다.

“음··· 레민턴한테 밥 좀 줘야겠다.”

시안은 성큼, 걸음을 옮겼다.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일.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군.”

“그러게요.”

콘라드와 엘레나가 떠나기로 한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콘라드 주위로 도열한 로열 나이츠 기사단.

그들은 저마다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며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다들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루벤과 로열 나이츠.

서로 간의 무수한 대련을 통해 알게 모르게 우정을 키워나갔다.

마수들을 함께 상대하며 알게 모르게 전우애 또한 키워나갔다.

한때 얼굴을 붉히는 사이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땐 그랬지’ 라며 곱씹는 하나의 추억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따뜻함이 흘러 넘치는 루벤.

그런 루벤에서의 생활에 어느덧 정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눌러 앉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떠나야했기에 로열 나이츠들은 아쉬움을 달래며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떠날 준비를 마쳤을까.

“조심히 가십시오 전하 그리고 황녀님.”

시안이 콘라드와 엘레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런 시안의 뒤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즐비해있었다.

로열 나이츠들과 무수히 대련을 해온 루벤의 병사들과 기사들.

언제나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주던 다나와 식당의 사람들.

드워프, 다크 엘프를 비롯한 루벤의 영지민들.

그리고 켄드릭은 물론 레아까지.

루벤의 모든 이들이 마중을 위해 나와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더 떠나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콘라드는 그 마음을 억누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네.”

“아닙니다. 저야말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콘라드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바라본 시야.

“······”

엘레나는 왜인지 별 다른 말을 해오지 않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살짝 시선을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떠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조금의 시간이 지나 들려온 엘레나의 말.

시안은 이걸 뭐라 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엘레나의 말마따나 언제 다시 만날 지 모를 일이었으니까.

딱히 별 다른 일이 있지 않는 한.

다시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 일은 거진 없다고 봄이 옳았다.

엘레나는 황녀였고 시안은 일개 루벤의 영주였으니까.

그렇기에 엘레나에겐 이 헤어짐이 상당한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엘레나를 지켜보던 콘라드.

콘라드가 씨익, 웃으며 엘레나에게 슬며시 귓속말을 해왔다.

“작위식때 또 볼 수 있지 않느냐.”

그러자 엘레나가 살짝 눈을 치켜떠보였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즉시, 작위식을 준비할 터이니 그리 아쉬워하지 말거라 엘레나.”

그리고 정식적인 작위식이 진행되면 그때야말로 루벤은 독립된 세력이자

또한 루벤의 영주인 시안은 한 가문의 가주가 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때까지 가문을 상징할 문양과 새로이 사용할 성을 정해야했지만.

뭐, 시안이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콘라드의 귓속말에 어두웠던 엘레나의 표정이 일시에 밝아졌다.

그런 엘레나의 모습에 콘라드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그동안 귀염성이라고는 1도 없던 여동생이었거늘.

요즘 들어 꽤나 귀여운 모습이 보이지 않은가.

그것이 비록 자신이 아닌 시안 때문이라지만.

콘라드는 그 변화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물론 조금··· 괘씸한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러니까 매일 같이 엘레나가 만들어준 만두를 먹는 시안이 말이다.

그래서일까.

‘작위식 때 시안이 황궁에 오면 폐하와 3자 대면을 해봐야겠군.’

콘라드는 바로 시안과 황제의 3자 대면을 할 생각이었다.

엘레나의 이유도 없잖아 있었지만···.

주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되찾는데 1억 5,000만 골드라···.’

샤를롯 대제의 검술, 조디악 소드(Zodiac Sword).

그것을 복원하는데 필요한 1억 5,000만 골드.

물론 황궁에 돌아가자마자 콘라드는 황제에게 보고할 것이긴 했다.

하지만 설득에 있어서는···.

솔직히 콘라드는 자신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억 5,000만 골드라지 않은가!

이건 아무리 콘라드라도 쉬이 설득을 할 수가 없었다.

황가의 재산은 물론 황실 자산까지 왕창 끌어와야했으니까.

그래도 가능할까···? 싶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이 검술은 진짜였다.

그렇기에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

따라서 콘라드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콘라드는 슬쩍, 시안의 일로 돌릴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황제를 설득하는데 시안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문제는 황제가 시안의 사지를 찢으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안에게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뭐···.

어차피 내 사지가 찢기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절대 엘레나의 오빠로서 약간 괘씸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 아니었다.

결단코 이렇게 내쫓기는 것에 대한 복수심 때문도 아니었다.

이 모든 건 샤를롯 대제의 검술을 되찾기 위함.

뭐, 아무튼.

그런 콘라드의 생각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전하?”

시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음? 아, 아무것도 아니네.”

콘라드는 황급히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버렸다.

“그럼 우리는 바로 가겠네. 오래 있어봤자 아쉬움만 남으니 말이네.”

콘라드는 시안의 뒤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하늘에 떠있는 레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레아님께서도 안녕히 계십시오!”

-응! 잘 가!

그러자 레아가 손을 크게 흔들며 화답을 해보였다.

그런 레아의 인사와 함께 콘라드가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런 콘라드를 따라 엘레나가 따라붙었고.

다시 그런 엘레나의 뒤로 예일과 필리프.

다른 로열 나이츠들이 따라붙었다.

“조심히 가세요!”

“다음에 또 놀러오세요!!”

“다음에 오실 땐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기사님들!”

떠나가는 그들의 뒤로 루벤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 로열 나이츠가 어둠의 숲이 펼치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나서야 시안은 천천히 등을 돌렸다.

여러 사건 사고가 많았던 콘라드와 엘레나의 방문.

하지만 아직 루벤의 사건과 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크라우드 병력이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2일.

“얘들아! 나온 김에 근처에 싸돌아다니는 마수들 좀 정리해놓자.”

한가로이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샤를롯 제국은 제국의 수도를 기점으로 5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어둠의 숲을 비롯한 다른 왕국의 국경과 맞닿은, 동부.

해안과 인접하여 상업의 요충지가 된, 서부.

야만족들과 대치 중인 척박한, 북부.

대륙 최대의 곡창지가 있는, 남부.

마지막으로 제국의 수도가 위치한, 중앙.

사실 중앙은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별 다른 특색이 없었다.

정확히는 한 가지의 특색만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지 특색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 할 수 있었다.

다름 아닌 정계의 핵심.

황제가 머무는 황궁이 위치한 지역이자.

제국 전역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중심이라는 것.

그렇기에 제국의 정계는 중앙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 중 하나, 로르실트 가(家) 또한 괜히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엘란두르는 특이하게도 동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만큼 정계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지리적 취약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단점에도 엘란두르는 제국을 떠받치는 두 기둥이라 불리고 있었다.

엘란두르가 갖는 그 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엘란두르가 특이한 것일 뿐.

모든 귀족들의 꿈은 중앙 정계, 중계의 진출을 꿈꾸고 있었다.

권력이 모이는 곳이자 힘이 집중되는 핵심.

그리고 지금.

그런 중앙의 정계는 한 가지 이야기로 떠들썩해있었다.

“크라우드 백작이 칼을 뽑아들었다지?”

“듣자하니 벌써 루벤 앞에 진을 치고 있다던데···.”

다름 아닌 루벤과 크라우드 간의 영지전.

“크라우드의 군대가 무려 1만이 넘는다는데”

“뭐? 1만? 세상에나···.”

“크라우드 백작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야.”

“그리고 엘란두르는 개입하지 않는다더군.”

각종 파티, 연회, 모임.

귀족들이 둘 이상 모이는 곳에는 영지전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흐름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었다.

“그럼 이건 보나마나한 싸움이겠군.”

“그러게··· 백작위는 너무 성급했어.”

“엘란두르가 개입하지 않는 것은 조금 의외긴 하다만···.”

루벤의 패배.

귀족들의 모두가 루벤의 패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라우드는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명문가.

반면에 루벤은 어둠의 숲에 위치한 변방의 영지였다.

제국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금기의 땅.

그런 곳에 위치한 영지의 수준이야 뻔하지 않은가.

애초에 이번이 아니었다면 평생 들어보지도 못할 영지였다.

그 어느 누구도 루벤의 승리를 예상하는 이는 없었다.

“이제 막 날개를 피려던 인재였거늘···.”

“아깝게 되었서이···.”

그저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주제도 모르고 나댈 때부터 알아봤어.”

“새로운 제국의 별은 무슨. 한낱 망나니 따위가 말이야.”

꼴 좋다는 의견들 동시에 존재할 뿐이었다.

그렇게 중앙과 더불어 제국 전역이 떠들썩한 가운데.

중앙 지역에 위치한 용병 도시, 제이른.

“젠장! 이 시기에 여기서 술이나 퍼마시고 자빠졌으니.”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오!”

제이른에 위치한 선술집의 용병들은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용병이란 분쟁과는 관련없는 제 3자이며, 이익을 위해 군사 분쟁에 참여하는 이들.

돈만 주어진다면 각종 의뢰를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용병들이 맡는 의뢰에는 당연히 영지전도 있었다.

그리고 영지전은 용병들에게 있어 하나의 기회나 다름 없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일반적인 의뢰에 비해 보수가 남달랐으니까.

그리하여 지금 루벤과 크라우드의 영지전.

“이번에 크라우드가 내건 보수가 무려 3배였다지?”

심지어 크라우드가 내건 보수는 무려 3배였다.

승리 시에는 또 2배.

용병으로서 눈이 돌아가지 않을래야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루벤이 크라우드 상대로 이길 수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이건 그냥 참여만 해도 돈이 넝쿨 째 굴러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기회.

한탕 제대로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제기랄!!!”

그런데 현실은 이곳에서 술이나 마시고 나자빠져있었다.

“뭐, 어쩔 수 있나. 용병왕이 나서서 의뢰를 묵살시켜버렸는데.”

다름 아닌 용병왕이 개입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동안 가만히 있던 용병왕이 대체 왜!”

“듣자하니 루벤에 친우가 살고 있는 모양이야.”

친우에게 검을 들이밀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용병에겐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이유였다.

아니, 애초에 용병들에게 납득될 만한 이유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용병들에게는 정치적인 이해 관계 같은 건 전혀 없었으니까.

그저 돈만 준다면 검을 들고 싸우는 것이 용병이란 존재였다.

이들에게 이해관계란 오로지 돈.

그 이외의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 의리를 왜 우리에게 강요하냐고!”

용병왕의 의리를 왜 다른 용병들에게 강요한단 말인가.

그 때문에 용병들의 불만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용병왕의 심기를 거스르면 용병 생활은 그야말로 끝이었으니까.

당연히 불만을 못 이긴 이들이 모여 용병왕에 대항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나.

“내 마음 같아서는 정말!!”

이렇게 뒷담화나 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선술집은 용병들의 각종 불만섞인 말로 시끌벅적 해져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끼이익.

선술집의 문이 열리며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자글한 주름과 더불어 쇠약한 몸.

딱히 별 다른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특별한 것 없는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노인은 천천히 걸어가 선술집의 바에 서있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여기가 제이른에서 용병들이 애용한다는 선술집인가?”

“그건 그렇소만··· 영감도 용병이요?”

선술집의 직원이 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인이 잠시 멈칫 거렸다.

“지금은··· 아니네만.”

그리고 지금은 아니라는 노인의 말.

예전에는 용병이었다는 뜻이었다.

“은퇴한 영감이 여긴 왜 온 거요? 술이라도 마시려고?”

“사람을 찾으러 왔네.”

“사람? 이보쇼 영감. 여긴 술집이요. 의뢰는 여기가 아니라 옆에 용병 사무소로 가쇼.”

직원은 고개를 살며시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직원의 말이 들렸던 걸까.

“늙어서 노망이라도 난 거요 영감?”

“이거 용병이었단 말도 다 거짓말 아니야?”

“푸하하하하하하!!”

주변의 용병들이 노인을 비아냥 거리며 웃어댔다.

하지만 노인은 딱히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친우가 이곳으로 오라 했네만.”

“음? 친우? 영감 친우가 누군데 그러시오?”

“위고라는 이름의 용병이네.”

“······?”

그러자 직원의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그와 동시에 주변으로 터져나오던 웃음 또한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뭐, 뭐라고?”

“방금 저 노친네가 뭐라고 한거야?”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어 직원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보쇼. 위고님이 누군지 알고나 하는 소리요?”

그도 그럴 것이 위고라는 이름은 쉬이 들릴 수 없는 이름이었으니까.

위고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용병계에서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용병왕 위고.

“듣자하니 용병왕이라 불린다던데. 아닌가?”

그런데 노인은 그 이름을 당당히 부르고 있었다.

그것도 친우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지금 무슨···.”

바로 그때.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 또 내 욕을 하고 있냐?”

술집 위쪽으로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한 노인.

아니, 우락부락한 근육과 거대한 덩치는 결코 노인의 것이 아니었다.

희끗하게 쇠어버린 흰 머리가 아니었다면 결코 노인이라 생각할 수 없는 존재.

“위, 위고님···.”

용병왕 위고.

“이것들이 내 욕은 작작하라니까.”

위고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천천히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평상시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파악한 것일까.

이윽고 위고의 시선이 선술집의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끝내 소란의 중심인 노인에게서 그 시선이 멈추었다.

노인의 시선 또한 위고에게 향해 있었다.

마주치는 시선.

“자네···?”

위고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런 위고의 모습에 주위의 용병들이 크게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위고의 반응은 분명한 지인을 보는 반응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위고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제 알겠군. 이 잡것들이 주제도 모르고 나댄거로구만.”

흠칫!

그런 위고의 말에 용병들이 몸을 크게 떨어보였다.

저런 말을 한 직후 위고가 어떤 행동을 할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위고는 피식, 웃음을 흘릴 뿐.

별 다른 행동을 내보이지 않았다.

위고가 다시 시선을 돌려 노인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꽤나 의외군. 한바탕 했을 줄 알았더니.”

“손님으로 와서 소란을 피울 수야 있나.”

“하하하하하하하하!”

위고의 웃음이 쩌렁쩌렁, 선술집 전체로 가득 터져나갔다.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한스, 네가 그런 말도 할 줄 알았나?”

그리고 이어진 위고의 말.

“뭐, 뭐라고? 한스···?”

“하, 한스···? 저 노인이 한스라고?”

그와 동시에 선술집 전체가 크게 술렁거렸다.

“한스?”

“한스가 누군데?”

물론 모든 이들이 한스의 이름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용병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이들.

용병에서 오래 발을 담군 이들.

베테랑이라 불리는 용병들은 모두가 눈을 크게 떠보였다.

과거, 해결 못하는 의뢰가 없다는 돌풍 용병단.

그 용병단을 이끌었던 단장이 바로 한스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용병왕이라 불리는 위고.

위고가 속해있던 전설적인 용병단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현재까지도 전설로 회자되는 용병단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단장인 한스가 그 자취를 감추며 용병단은 해산되었다.

해서 혹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만일 한스가 그대로 용병으로 남아있었다면, 현재의 용병왕은 위고가 아니라 한스였다고.

그런데 지금 눈앞의 노인이 한스다?

믿기 힘든 일이었으나 위고의 반응은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해주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돼···.”

선술집의 용병들이 눈을 부릅 뜨며 한스를 지켜봤다.

반면에 한스와 위고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천하의 한스도 세월은 못 당하는 건가.”

“세월을 이길 수 있는 이가 어디에 있겠나. 지금은 검을 놓은지도 오랜 세월이라, 요즘 젊은 이들에게는 못 당하네.”

“웃기는 소리.”

위고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웃기는 소리였으니까.

뭐, 말마따나 한스는 많이 늙었다.

단련을 하지 않았는지 느껴지는 기세도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 잔챙이들 정도에 굴할 한스는 아니었다.

위고는 성큼, 한스에게 다가갔다.

마주하는 시선.

씨익, 웃음짓는 미소.

“오랜만이네, 단장.”

“자넨 변한 게 하나도 없군, 위고.”

둘의 손이 맞잡아졌다.

#

한스와 위고의 만남.

그 때문에 선술집에는 때 아닌 파문이 일었지만 딱히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다.

한스는 위고와 함께 선술집의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조용한 자리에서 마주한 둘.

“진짜 이게 얼마만인지. 20년? 30년?”

“30년은 넘지 않았나 싶은데.”

한스의 답에 위고는 반가운 마음에 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런데 한스. 지금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건가?”

위고는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다름 아닌 현재 제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일.

루벤과 크라우드가 한창 영지전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위고는 알고 있었다.

한스가 용병계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후에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위고를 비롯한 돌풍 용병단의 단원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 이후로 연락이 끊겨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 제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한스는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되었다.

조금이라도 루벤의 힘이 되어야만 했으니까.

과거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한스는 그래도 한스였다.

루벤에서는 중요한 전력일 것이 분명했다.

“아. 도련님이 따로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말이네.”

“도련님이라면··· 시안 엘란두르? 아, 지금은 아니지. 그러니까 루벤의 영주를 말하는 겐가?”

한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위고는 한스가 이곳에 온 이유를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루벤의 영주가 따로 부탁한 일이라는 것.

그건 아마도··· 위고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겠지.

그리고 위고의 도움이란 간단했다.

바로 용병들의 도움.

현재 루벤은 크라우드와 영지전 중에 있었다.

듣자하니 크라우드가 끌어모인 병력은 무려 1만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크라우드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루벤은 용병들의 힘을 빌려야 했다.

물론 위고는 둘의 영지전에 참가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바 있었다.

그래서 크라우드 가에서 보내온 의뢰는 묵살했다.

하지만 한스의 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애초에 크라우드 가의 의견을 묵살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지 않은가.

“어느 정도가 필요하지?”

위고는 서두를 자르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뭘 말하는 건가?”

한스는 위고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내 도움이 필요해서 나를 찾아온 것 아닌가?”

“그건 맞네만.”

“그럼 괜찮으니 편하게 말하게. 크라우드의 의뢰는 묵살했지만 한스, 네가 있는 루벤이라면 다르니까. 뭐, 불만이야 터져나오겠다만 내가 괜히 용병왕이라 불리겠나.”

위고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한스는 여전히 위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 되자 위고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 용병들을 고용하고자 온 것이 아니었나?”

“음? 아니네. 난 그 일로 자네를 찾아온 것이 아니야.”

위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 말고 한스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지금 루벤은 한창 영지전 중이지 않은가.”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제 막 크라우드 병력이 도달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곳 중앙에서 루벤 영지까지 거리는 제법 되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 제때 시간을 맞출 수 있거늘.

“······?”

한스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싶은 것도 잠시.

한스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직 중앙까지는 소식이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군.”

“소식이 전달되지 않아?”

한스는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볍게 끄덕여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이어진 한스의 말.

“영지전은 이미 끝이 났네.”

위고는 저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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