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196화 (196/322)

196화 - 협상?

크라우드의 무조건 항복 이후.

루벤에 펼쳐진 전쟁 배상금에 관련한 협상 테이블.

“그래서.”

시안은 말도 안된다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크라우드 백작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못 주시겠다는 겁니까?”

“당연하다!”

그러자 크라우드 백작이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소리쳐왔다.

솔직히 말하면 크라우드 백작은 이렇게 큰소리를 칠 수가 없었다.

영지전의 패자가 무슨 큰소리를 친단 말인가.

애초에 먼저 영지전을 건 것은 크라우드였고.

침략자 또한 크라우드이기도 했다.

거기에 무조건 항복까지 한 상황.

크라우드 백작은 사실상 전쟁 포로나 다름 없는 격이었다.

“다짜고짜 사람을 때려놓고, 나몰라라 하시는 건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먼저 시비를 건 것 역시 크라우드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비를 걸었다 뿐.

때린 기억은··· 없었다.

크라우드 백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아무리 기억을 되짚고 또 되짚어봐도.

일방적으로 얻어맞은 기억밖에 없었다!

때리긴 뭘 때렸단 말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지만 크라우드 백작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먼저 영지전을 건 것은 크라우드였고.

무조건 항복을 한 것도 크라우드인 것은 맞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억 골드를 아니지 않나!”

1억 골드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조금이 아니라 완전히 이야기가 달랐다!

1억 골드라니.

100만 골드도 아니고, 1,000만 골드도 아니고.

자그마치 1억 골드라니!

이건 해도해도 너무했다.

너무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미친 수준이었다!

아무리 크라우드라도 이건 아니었다.

제국 최대 곡창지는 억이란 단위 앞에서 초라해질 뿐이었다.

억이란 돈이라는 개념을 살짝 초월한 단위.

그 금액은 전쟁 배상금이라 부를 수가 없었다!

불러서도 안 되었고!

“그래서 안 주시겠다는 겁니까?”

“안 주는 게 아니라 줄 수가 없는 거다!”

크라우드 백작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쳤고.

시안은 그런 크라우드 백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그럼 뭐. 어쩔 수 없네요.”

시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크라우드 백작은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시안의 모습.

역시나 진심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 듯 싶었다.

아무래도 그냥 슬쩍, 떠본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기사, 아무리 그래도 전쟁 배상금으로 1억 골드는─.

“크라우드 백작령을 오늘부터 루벤의 소유로 귀속시키겠습니다.”

그 순간 들려온 시안의 말.

“······ 뭐, 뭐라고?”

크라우드 백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크라우드 백작령을 루벤의 소유로 귀속시키겠다니?

“그, 그게 무슨···?”

“배상금을 안 주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거랑 이거란 무슨 상관···.”

“상관이 왜 없습니까. 제국법에 명시되어있는데.”

“어, 어어···.”

이어진 시안의 말에 크라우드 백작의 정신이 일순간 멍해졌다.

다름 아닌 지금 크라우드 백작의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

그러니까 시안이 말한 내용.

영지전은 제국법이 공인하는 적법한 전쟁이었다.

귀족과 귀족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적법한 절차.

보통 귀족들간에 개인과 개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은 결투였다.

그런 의미로 가문과 가문간의 결투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지전이었다.

귀족 간의 결투가 확장된 것이 영지전이라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결투의 규정과 마찬가지로 승자는 패자에게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패자는 승자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 사 모든 일이 그렇듯.

법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패자임에도 불구하고 요구를 못 주겠다, 배짱을 부리는 경우.

될대로 되라는 듯,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이러한 일들이 한 두번이 아니고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일어나자 제국은 영지전에 대해 한 가지 규칙을 추가했다.

정확히는 한 가지 억제력을 추가했다.

다름 아닌 승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가문을 승자에게 강제로 귀속시키는 것.

물론 이 마저도 지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 규정은 절대적인 규칙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만일 이 규정마저 어긴다면 제국의 황제가 직접 나서서 일을 처리했으니까.

절대적인 억제력.

해서 영지전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했다.

엘란두르가 쉽사리 나서지 않는 것.

그러니까 루벤의 전력을 떠보고자 함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지금.

“골드를 못 주시겠다면 땅 덩어리라도 가져가야죠.”

시안의 요구는 그러한 억제력에 기반한 내용이었다.

아무리 크라우드 백작이 배짱을 부려도 어찌할 수 없는 억제력.

“자, 잠깐!

크라우드 백작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라면 크라우드 백작령을 통째로 빼앗기게 생겼으니까!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하고 있는 크라우드 백작령.

제국 곡식 유통량의 15%를 책임지는 어마어마한 생산량.

1억 골드가 말이 안되는 돈인 건 맞았다.

말이 안되다 못해 돈의 개념을 초월한 단위인 것은 변함없었다.

하지만 크라우드 백작령과 비교하자면··· 조금 고민이 되었다.

앞으로 백작령에서 벌어들일 수익.

그리고 가문 대대로 이어나갈 귀족으로서의 생활.

그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 1억 골드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1억 골드와 크라우드 백작령.

그 둘은 저울질 한다면 당연히 백작령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5,000만 골드! 5,000만 골드는 어떠한가!”

그렇다고 하여 1억 골드를 순순히 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1억 골드.”

그러나 시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듯.

이 이상의 에누리는 결단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 미만은 절대 안 됩니다.”

시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어보일 뿐이었다!

그런 시안의 모습에 크라우드 백작은 잠시 넋을 놓았다.

이거 분명 협상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름은 분명 협상 테이블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분명 그랬던 것 같았다.

전쟁 배상금에 관련한 협상 테이블.

“안 주시면 백작령을 먹겠습니다.”

그런데 저게 어딜 봐서 협상이란 말인가!

이건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누누히 말하고 있다만.

안 주는 게 아니라 못 주는 거다!

“조, 조금만 깎아주게! 아무리 그래도 1억 골드는 아니지 않은가!”

크라우드 백작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1억 골드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안에겐 그닥 중요한 사실은 아닌 듯 싶었다.

“배상금을 내지 못하면 땅이라도 내주셔야죠.”

정확히는 ‘그거야 네 사정이지 않느냐’ 라고 말하고 있었다.

“······”

크라우드 백작은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크라우드 백작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입을 꾹, 다물어 답을 회피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말씀이 없으시니 그럼 그렇게 알고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마저도 크라우드 백작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시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 매몰찬 움직임은 정말이지 한치의 자비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정말로 백작령 전체를 먹어버릴 터였다.

그렇기에 이대로 배짱을 한 번 부려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의 요구는 과해도 너무 과했으니까.

승자가 패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상식이라는 선에서 행해지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수긍가능한 정도의 선에서 처리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1억 골드는 상식이라는 범주가 아득히 초월한 일임은 분명했다.

그러니 크라우드가 못 주겠다 배짱을 부린다한들.

솔직히 제국과 황가 또한 나서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이건 말 그대로 말이 안되는 요구였으니까.

제국과 황가가 나서는 건 적법하고 상식적인 법례를 보호하기 위함.

얼토당토 않는 지랄과 생떼를 보호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안 주겠다, 못 하겠다.

그리 배짱을 부려도 제국이 나서는 일은 없다고 봐야했다.

하지만 루벤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루벤은 ‘크라우드가 먼저 시비를 걸고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라는 명분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영지전을 걸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루벤과 다시 한 번 영지전을 한다.

그리고 이번엔 루벤이 침략자가 된다.

그러면 백작령이 삼켜지는 건 이러나 저러나 똑같았다!

그렇기에 이건 루벤을 건드리는 순간 결정된 사안이나 다름 없었다.

처음부터 루벤을 건드려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자, 잠깐!”

크라우드 백작은 떠나려는 시안을 황급히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멈춘 시안의 발걸음.

시안의 시선이 크라우드 백작에게로 향했다.

크라우드 백작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혹시 조금의 자비가 없을까, 약간의 아량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일었지만···.

“뭡니까?”

역시나.

시안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크라우드 백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 주주···... 주주주겠···..”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 말을 직접할 수 있을까.

그러나 백작령과 1억 골드를 저울질 해야한다면···.

“주···.겠······다···.”

역시나 백작령 쪽으로 기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자 시안이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는 크라우드 백작의 손에 들린 서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거기에 바로 싸인하시면 됩니다. 아, 뒷말 안 나오게 크라우드 가문의 인장으로 찍으셔야하는 거 알고 계시죠?”

크라우드 백작은 차마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순간에도 내뱉은 말에 후회를 거듭할 뿐이었다.

하지만 크라우드 백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꽝!

크라우드 가(家)를 상징하는 까마귀 인장을 찍었다.

이윽고 시안이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아주 선명하게 찍힌 크라우드의 인장을 보더니.

“아주 좋습니다.”

흡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크라우드 백작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아무런, 정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1억 골드.

이 빚더미 앞에 무슨 생각이 들까.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백작령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제국 최대의 곡창지.

그 곡창지에서 나오는 수익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니 어떻게 모으고 또 모아본다면 불가능한 금액도 아니었다.

다만, 빚을 해결할 동안 숨만 쉬며 살아가야겠다만.

그래도 백작령을 지킬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 이게 맞는 거다.

크라우드 백작은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크라우드 백작의 눈에 비친 시야.

“자, 그럼 전쟁 배상금 이야기가 끝이 났으니···.”

정확히는 들려오는 시안의 의미심장한 목소리.

시안은 크라우드 인장이 찍힌 서류를 소중히 품속에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한쪽 어귀를 향해 소리쳤다.

“루카스! 가서 데려 와.”

그런 시안의 말과 동시에 한 기사가 몸을 움직였다.

아무래도 방금 시안이 부른 루카스라는 이름의 기사인 듯 싶었다.

루카스는 어딘가로 걸음을 옮기더니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루카스는 어떤 누군가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이 꽁꽁 묶여있는 어떤 사내.

그건 크라우드 백작에게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레민···턴?”

다름 아닌 자신의 둘째 아들, 레민턴 크라우드.

“으으으으읍!!”

레민턴은 온몸이 묶여 이리저리 팔딱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만.

그 모습이 꼭 뭍에 나온 활어처럼 싱싱해보였다.

바로 회를 쳐서 먹어도 될 만큼.

“갑자기 레민턴을 왜···?”

그렇기에 크라우드 백작은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 잠깐··· 서, 설마···?”

그 순간 크라우드 백작의 머릿속으로 끔찍한 생각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크라우드 백작은 설마설마하는 심정으로 시안을 바라봤다.

아닐 거다. 절대 아닐거다.

크라우드 백작은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끊임없이 부정해보였다.

덜덜, 떨리는 눈빛.

그리고 그런 크라우드 백작의 눈에 비친 시안의 모습.

시안은 아주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왜일까.

“이제 인질의 몸값에 대한 협박··· 아니, 협상을 진행해볼까요?”

그건 신화 속, 악마의 미소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

루벤과 크라우드의 영지전.

그 결과에 대한 소식은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크라우드가··· 졌다고?”

“그것도 개박살이 난 채로?”

충격 그리고 경악.

“에이, 그럴리가.”

“자네 잘못 들은 거겠지. 아니면 잘못 전달 되었다던가.”

물론 소식을 부정하는 반응들도 더럿 있었다.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싸움이었으니까.

제국 최대의 곡창지를 보유한 가문, 크라우드.

어둠의 숲이라는 변방에 위치한 자그마한 영지 루벤.

여기에 대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시안이라는 새로운 제국의 별이 있다한들.

전쟁은 개인이 뭘 어찌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승패는 사실상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또 그렇기에 들려온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쟁 배상금으로 1억 골드를 요구했다고? 그게 무슨···.”

“그걸 크라우드 백작이 승인을 했고?”

“지, 진짜로 크라우드 가문이 박살이 났다고···?”

그러나 추가로 들려온 소식에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대체 상황이 어떻게 되어간거야?”

그제서야 사람들은 영지전의 과정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영지전이 시작도 전에 마수들에게 당했다더군.”

그리고 끝내 그 전말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제국마저 포기해야만 했던 금기의 구역.

수 백년 간 제국이 나서 정벌을 시도했지만 어찌할 수 없었던 지역.

제국마저 어찌하지 못했는데 크라우드가 뭘 어쩐단 말인가.

“루벤이 아니라 마수들에게 당한 것이로군.”

“그럼 그렇지. 크라우드 백작이 그리 허망하게 당할리가.”

“뒷걸음질치다 얻어 걸렸건가. 운도 좋네.”

사람들은 그때서야 크라우드의 패배를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허망하게 끝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었으니까.

마수들의 위험성은 인정한다.

괜히 제국마저 포기해야했던 금기의 구역이 아니었다.

그러니 크라우드 백작이 마수들에게 박살이 났다.

이 또한 어느 정도 인정한다.

그로써 크라우드가 맥을 못추고 당한 것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둠의 숲이 그만큼 위험천만한 구역이라는 것도 충분히 알겠다.

그런데.

“루벤은 어떻게 어둠의 숲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지?”

루벤은 어떻게 지금까지 영지로서 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으나 명쾌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제국은 관련한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못해 발칵, 뒤집혀버렸다.

제국 전역의 어딜가나 루벤과 크라우드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제국 전체가 떠들썩한 가운데.

제국 동부에 위치한 엘란두르 후작령.

후작령에 위치한 엘란두르 저택이자 이사벨의 집무실.

“······ 이상. 루벤과 크라우드의 영지전에 관련한 전말입니다.”

총관, 레리트의 보고에 이사벨은 들고 있던 찻잔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살짝 내려앉은 시선.

이사벨은 레리트의 보고를 다시 한 번 곱씹었다.

여러 복잡한 상황 설명과 전말들이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크라우드의 병력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패배했다라···.”

아무것도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그냥 줘 털리고 온 수준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영지전.

전력 파악이고 자시고, 알아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크라우드가 패배했다는 사실.

이 사실 자체가 루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엘란두르는 이미 크라우드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패배했냐는 것.

그런데 듣자하니 마수들에게 당해 끝나버렸단다.

루벤은 거기에 포크만 살짝 얹었을 뿐.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무런 성과도, 실리도 없는.

되려 1억 골드라는 배상금만 시안에게 쥐어지게 한 실책 중의 실책이었다.

“······”

이사벨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1억 골드.

이게 말이 되는 금액일까? 그것도 전쟁 배상금으로?

심지어 크라우드는 이를 승인했단다.

이로써 크라우드 가(家)는 사실상 몰락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확히는 다시 재기하기까지 수 십년은 걸릴 터였다.

그나마 크라우드였기에 재기라도 할 수 있었지.

다른 가문이었으면 그대로 몰락했을 상황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인지······.

“······”

이사벨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결국 다른 가문을 부추기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럼 엘란두르가 직접 나서야 하는데···.

“소렌은 어떻게 되었지?”

현재로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사라진 예산의 구멍을 쉽사리 메울 수가 없었으니까.

“연락은 했으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움직이는 터라 늦어지고 있습니다.”

레리트의 말에 이사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잠깐의 정적.

이사벨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은 한시가 급하니, 개의치 말고 움직이라 전하거라.”

“하지만 그러면 자금의 위치가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레리트의 답에 이사벨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리트의 우려대로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건드리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떳떳하지 못한 돈이었고.

그 규모 또한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렇기에 운용에 있어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했다만.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사건이다. 이제는 그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을 터.”

시간에 묻혀 관련한 이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찾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는 없다.

그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망령일 뿐.

그러니.

“개의치 말고 진행하라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레리트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사벨은 그런 레리트를 바라보다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어진 잠깐의 정적.

“카이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더냐.”

이사벨이 찻잔을 살며시 내려놓으며 레리트에게 물었다.

루벤에서의 사건 이후 연무장에 틀어박힌 카이.

“안 그래도 카이 도련님과 관련해서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사벨의 물음에 레리트는 품 속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한 장의 서신을 꺼내 이사벨의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이사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신을 살폈다.

정확히는 서신의 발신지에 의문을 감출 수 없었다.

“신성 제국?”

다름 아닌 신성 제국에서 보내온 서신이었으니까.

샤를롯 제국과 신성 제국.

대륙에서 2강으로 손꼽히는 강국 중 하나.

그런데 어디까지나 타국이었다.

한 마디로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나라 사람.

그런 신성 제국에서 엘란두르에 서신을 보내올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이게 왜 카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냐.”

이게 왜 카이와 관련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카이 도련님 앞으로 온 서신입니다. 하지만 도련님이 확인하시지 않으셔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저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터라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만···.”

이사벨은 다시 시선을 돌려 서신을 바라봤다.

신성 제국에서 보내온 서신.

이사벨은 천천히 서신을 뜯어 그 내용을 확인했다.

내용은 별 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카이와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내용을 이리저리 길게 늘려써놓은 것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기에 신성 제국에서 카이를 만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카이는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이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평소라면 그냥 묵살해버렸을 내용이었다.

어쩌면 카이도 그래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몰랐다.

이사벨 또한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아마 서신의 내용, 마지막에 적혀있는 발신인.

“레이첼 추기경이라···.”

그 이름만 아니었다면, 이사벨은 그렇게 했을 터였다.

#

“꿈인가?”

《꿈인가요?》

시안은 멍하니 중얼거렸다.

모바일 영주가 대답을 하듯 같이 중얼거려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아니,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시안은 현재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 폰 화면 가득히 보이는 알림창.

정확히는 인벤토리 알림창 안에 가득 적혀있는 숫자.

[현재 보유 중인 골드] - 157,669,840 G

1억 5천만 골드.

···하고도 766만 9,840 골드가 더해진 숫자.

“진짜 꿈인가?”

《정말 꿈인가요?》

이건 꿈이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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