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 대격변의 루벤(2)
아멜리아는 다행히 금방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몸에도 큰 이상이 없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기절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애시당초 버프가 중첩된 루벤에서 몸 상태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다만, 정신 상태는 좋지 않았다고 할 수 있었다.
“뭐, 뭐죠···? 제가 왜 여기에···?”
그 때문에 아멜리아의 기억이 잠깐 날아간 것 같았지만···.
뭐, 이것도 작은 해프닝에 그칠 수 있었다.
해서 지금 펼쳐진 풍경.
“영주님. 다음 장으로 넘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시안의 옆으로 상단원들이 엘란두르의 장부를 필사하고 있었다.
아멜리아는 그 필사본을 받아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었다.
단순 노동이면서 아닌 듯한 광경.
그렇게 거의 3일을 꼬박, 소모해서야 장부를 모두 필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사를 끝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아멜리아가 장부를 확인하고, 비교대조하며 비자금의 출처를 밝힐 시간은 필요했으니까.
해서 그렇게 다시 3일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어때? 좀 알아낸 것이 있어?”
“수상한 곳이 많이 보이기는 한데···.”
아멜리아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복잡하네요···.”
“많이 복잡해?”
아멜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필사 장부를 시안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보시면 비정상적인 자금의 흐름이 많아요. 그런데 문제는 많아도 너무 많아요. 자금의 규모가 너무 큰 것도 있는데, 그 때문에 자금의 흐름이 집중되는 곳을 찾을 수가 없네요. 물론 비자금은 출처를 감추고자 문어발 식으로 뻗어 자금을 세탁하곤 해요. 그런데 여기는···.”
그러면서 뭐라뭐라 알 수 없는 말들을 이어나갔다.
듣기만 해도 머리 아픈 회계 지식들.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러니까, 자금이 집중되는 핵심 부분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거지?”
“결론만 말씀드리면 맞아요.”
아멜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마디로 아멜리아도 엘란두르의 자금 규모에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제국의 두 기둥이라 불리는 엘란두르.
그 어마어마한 예산의 규모 속에서 숨겨진 비자금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금이 집중되는 핵심이라···.’
시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멜리아의 말을 완벽히 이해한 것도 아니었고.
아멜리아만큼 회계적인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말을 듣고보니 한 가지 짚이는 점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때 로즈웰이 용돈에 민감하게 반응했었지?’
다름 아닌 시안이 엘란두르 저택에서 부행정관으로 역임할 당시.
시안이 용돈을 깎아버리겠다는 말에 로즈웰은 분명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감히 시안 따위가, 부행정관 따위가 그걸 건드릴 수 있냐는 듯한 반응.
“아멜리아, 혹시 장부에 용돈 관련한 사항도 적혀있어?”
“네? 용돈이요?”
“그러니까 네이슨과 로즈웰의 용돈. 카이도 있으면 확인해봐.”
“어··· 잠시만요.”
아멜리아는 필사된 장부를 확인했다.
그리고 몇 장을 뒤적뒤적 확인하더니.
“······ 있긴 있네요. 그런데 이건 갑자기 왜요?”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에 시안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추측일 수도 있겠다만···.
“방금 자금이 흐르는 핵심 부분을 모르겠다고 했었지?”
“네.”
“그럼 그 용돈을 중심으로 한 번 파헤쳐봐.”
“용돈을 중심으로요?”
아멜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용돈과 비자금.
시안이 느끼기에도 썩 매칭이 되지 않는 조합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저번에 로즈웰한테 용돈을 깎겠다고 하니까 아주 기겁을 하더라고. 뭔가 있기는 있어보이는데 그게 뭔지는 몰랐거든. 그런데 네 말을 듣고보니 혹시 그게 아닐까 싶어서.”
“음···.”
시안의 말에 아멜리아가 장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아멜리아.
그 순간.
“영주님. 지금 한스님이 루벤으로 돌아오셨답니다.”
상단 건물 밖으로 한 상단원이 들어오며 말했다.
소렌을 추적하기 위해 루벤을 떠났던 한스.
단서를 찾아내려면 꽤나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했거늘.
“한스가? 벌써?”
“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돌아오셨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니?”
“듣기로는 한스님의 옛 동료라고 했습니다만···.”
상단원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 상단원의 모습에 시안은 잠시 시선을 돌려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어째 방금 전, 시안의 말이 힌트가 되었던 것일까.
아멜리아는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뭔가 단서를 잡은 것 같기는 한데···.
지금 당장은 알아내기 힘들 것 같았다.
한 마디로 비자금을 찾으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다.
“난 그럼 한스한테 가볼게. 아멜리아가 뭘 좀 알아내면 바로 날 찾아오라고 전해줘.”
“알겠습니다 영주님.”
시안은 아멜리아의 집중이 흐트러질까, 조용히 상단 건물 밖으로 나섰다.
#
“이, 이게 무슨···.”
위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시야 가득히 보이는 루벤의 풍경.
위고는 용병왕으로서 무수히 많은 의뢰와 사건들을 해결해왔다.
웬만한 용병들의 경력을 끌어모아도 위고에게는 비교할 수 없었다.
용병왕이라는 칭호는 그만큼 얻기 힘든 칭호.
위고는 굉장히 많은 의뢰와 사건들을 해결해왔고.
그 중에는 귀족들의 의뢰도 상당히 많았다.
또 그 중에는 한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들의 의뢰도 상당히 많았다.
그에 따라 위고는 수많은 영지들을 방문하고 또 봐왔다.
제국에 존재하는 웬만한 영지를 모두 가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국 이외의 타국의 영지에도 가본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위고는 단언할 수 있었다.
“이게··· 정녕 영지란 말인가···?”
제국에 이런 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니, 존재할 수가 없다고.
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영지는 가보았다만.
타국의 모든 영지마저 가본 것은 아니었기에 사실 여부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위고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루벤은 영지가 아니라고.
이건 영지라는 개념으로 정의내릴 수준이 아니라고.
이게 ‘영지’라 불린다면 제국의 모든 영지는 쓰레기 장이나 다름 없었다.
대륙에서 영지라 정의내릴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눈앞에 펼쳐진 루벤은 영지가 아니었다.
지상의 낙원.
혹은 천상의 유토피아.
그런 종류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정의를 내려야만 다른 영지가 비로소 영지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그런데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정도의 발전은 단순히 운영이라는 측면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영주라는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반드시라고 할 만큼 외부적인 이점이 존재해야만 했다.
제국 전역의 물자들이 모이는 유통의 핵심이라거나.
제국의 심장이라 불리는 제국의 수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의 중심지라거나.
반드시 이러한 지리적, 정치적, 환경적인 이점이 존재해야만 했다.
그런 이점을 밑바탕 되어야만 이 정도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아니, 그래도 이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영주 혼자서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루벤은 그렇지 않았다.
전역의 물자들이 모이기는 개뿔.
루벤은 척박하다 못해 황폐화된 땅이었다.
제국의 수도는 말할 건덕지도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이기는 염병.
마수들이나 축제를 벌이는 위험천만한 지역이었다.
척박하다 못해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공간.
제국마저 포기한 금기 구역, 어둠의 숲.
루벤은 그런 어둠의 숲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루벤은 개박살이 나있어야만 했다.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으로 보이는 루벤의 풍경.
가장 외곽으로 루벤을 둘러싼 방벽.
루벤을 수호하는 병사들과 기사들.
루벤 내부에 위치한 각종 건물들.
질서정연하게 지어져있는 시설들.
건물들과 시설들의 수준들.
모든 구역을 이어주는 말끔한 도로까지.
“받아라! 필살 수라쵼살!”
“꾸에에에에엑!”
“꺄하하하! 영주님처럼 비명지르면 어떠케!”
마지막으로 배경음처럼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이것은 루벤의 풍경에 생기와 활력을 더해주고 있었다.
모든 것들이.
시야에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이, 이게 대체···.”
부릅, 떠진 위고의 두 눈은 좀처럼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진 30년 간 연락이 끊겼던 한스.
한스는 그동안 이런 영지에서 지내왔단 말인가.
위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한스를 바라봤다.
그런데 웬걸.
“······ 무, 무슨···!!!”
한스 또한 눈을 부릅, 떠보이며 놀라고 있었다!
한스의 반응도 위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고는 순간 뭔가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스는 왜 저런단 말인가.
자기 집을 보면서 자기가 놀란다니.
이게 뭔···.
“자네··· 루벤에서 지내고 있다하지 않았나?”
“그, 그렇긴 하다만···.”
한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건··· 내가 알던 루벤이 아니네···.”
위고는 저게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진짜 뭔 개소리인가 싶었다.
물론 한스가 자신을 만나기 위해 루벤을 잠시 떠난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간이 고작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고작 한달만에 살던 집이 바뀔리가 없지 않은가.
“이, 이게 무슨···.”
그런데 한스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스가 떠날 때의 루벤과 지금의 루벤.
그 루벤에는 약 1억 5천만 골드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얘들아! 그러다 아카데미 늦겠다!”
“엣! 벌써 시간이! 제두스! 어서 가자! 선생님한테 혼나겠다!”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히 다녀오렴!”
책가방을 매고 거리를 뛰어가는 아이들.
저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비단 아이들만이 아니었다.
거리 곳곳 책을 들고 바삐 뛰어가는 이들이 보였다.
그러니까 학생처럼 보이는 이들이 더럿 있었다.
그런데 루벤에 학생이라니···?
“요 근래 아카데미가 생겨서 정말 좋은거 있죠.”
그 순간 한스의 귓가로 들려온 목소리.
“그러니까요. 오전에 아이들 걱정없이 일할 수 있어서 어찌나 좋은지.”
“맞아요. 그 동안 일하면서 집에 혼자 있는 애가 걱정되었는데··· 아카데미에 보내니 덕분에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거 있죠.”
“아이도 많은 것을 배울 수도 있고요.”
저건 진짜 뭔 소리란 말인가.
아카데미?
루벤에 아카데미가 있었던가?
한스는 정말이지 저게 뭔 소린가 싶었다.
“······”
한스는 바뀐 루벤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
위고 또한 낙원과도 같은 루벤의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게 두 노인은 멍하니 제자리에 박혀 서있었다.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스? 여기서 멀뚱이 뭐해?”
한쪽 어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라본 그곳.
그곳엔 시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도련님.”
한스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시안.
한스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시안에게 물었다.
“이게··· 대체 뭡니까?”
“응? 뭐가?”
“아카데미 말입니다. 루벤에 아카데미가 있었습니까?”
“아, 그거?”
시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새로 지었어.”
“······”
그리고 한스는 다시 한 번 정신이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지었다는 시안의 말.
그게 단순히 새로 지었다는 말로 퉁칠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것도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이게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한스는 금방 고개를 털어버렸다.
그동안의 경험상.
깊게 생각하면 괜히 정신만 나갈 것을 뻔히 알고 있었으니까.
“무, 무슨···?”
그 확실한 예로 옆에 위고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한스는 루벤의 행정을 맡았으니 잘 알잖아. 겉보기와는 달리 루벤의 내정은 좀··· 허약하다는 걸.”
이어진 시안의 말에 한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루벤이 가진 힘과는 달리 내정은 좀··· 부실했으니까.
그동안은 어떻게 틀어막고 있었다만.
다크 엘프들이 합류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 슬슬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해서 이번 기회에 내실을 좀 다지려고 했지.”
“그래서 아카데미를···?”
“내정의 체계를 다지려면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교육도 필요하잖아. 아무리 루벤이 어둠의 숲에 있다만··· 배우는 게 쌈박질만 있어서야 쓰나.”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한스는 그런 시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도 아무도 뭐라하는 사람이 없거늘.
그럼에도 하나하나 영지민들을 신경쓰는 모습이 참···.
“아, 참. 그런 의미로 한스도 아카데미에 교육자로 넣었어.”
“저도··· 말입니까?”
“이게 학생들은 많은데 선생님들은 부족해서 말이지. 그 때문에 또 다시 인력이 좀 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인구를 비롯한 여러 복잡한 문제가 다시 생겼긴 한데 뭐, 아무튼. 그 동안 한스 혼자서 행정일 하기 바빴잖아. 일을 대신할 행정관도 좀 뽑아야지.”
물론 지금은 한스가 직접 교육시켜야겠지만.
시안은 멋쩍게 웃으며 뒷말을 삼켰다.
“뭐, 어쨌든 이런저런 의미로 아카데미를 지은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다들 마음에 들어하는 거 같더라고.”
시안은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였다.
“그보다 옆에는 누구야?”
그리고 이어진 시안의 말.
한스는 그때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 위고라는 친구입니다만. 인사하게. 시안 도련님이네.”
그런 한스의 말이 있고나서야, 위고도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백작 각하를 뵙습니다. 용병 위고라 합니다.”
위고는 시안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한스야 시안을 도련님이라 부른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안은 명실상부 제국의 백작.
아무리 용병왕이라 한들 위고의 신분은 평민에 지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시안이라고 합니다. 한스에게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용병왕이라 불리신다고···.”
그럼에도 시안은 위고에게 함부로 하대를 하지 않았다.
앞선 한스와의 대화도 그렇고.
지금 함부로 하대를 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위고는 시안이 어떠한 인물인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나이 먹은 노인이랍시고 대접해주는 것입니다.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은 못 됩니다.”
그런 위고에 말에 시안은 웃음을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용병왕이라는 칭호는 아무에게나 붙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단순히 나이 많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어느 분야든 1인자라 불리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시안은 위고에게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한스에게 말했다.
“그보다 한스. 생각보다 일찍 돌아왔네? 소렌에 관한 단서를 찾을 때까지는 안 올 줄 알았는데.”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한스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생각보다 소렌이 어디에 있는지를 빨리 찾아서 말입니다.”
“뭐? 벌써?”
시안은 눈을 크게 떠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찾았단 말인가.
그것도 엘란두르의 비호를 받고 있는 자를 말이다.
“여기, 위고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래?”
시안은 놀란 눈으로 위고를 바라봤다.
역시 용병왕은 용병왕이라는 것일까.
“내가 뭘. 뒷방 늙은이들이 힘 좀 써줬지.”
위고는 한스의 말을 흩어버리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만 어쨌든 소렌의 위치를 파악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들려온 한스의 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그것이···.”
한스는 뜸을 들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할지 난감한 듯한 표정.
어째, 꽤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보였다.
“자세한 건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시안은 한스와 위고를 데리고 영주성 Lv.4로 향했다.
#
영주성 Lv.4에 위치한 시안의 집무실.
이번 업그레이드에 맞춰 시안의 집무실 또한 상당히 확장이 된 상황이었다.
시안의 첫 감상으로는 쓸데없이 크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만.
“이, 이게 대체···.”
시안을 마주하는 이에게는 상당한 위압감을 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시작도 전에 기선을 제압하고 들어가는 격.
쉽게 말해 똥개도 자기 집에서 반절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진짜로 그런 이름이었지.’
그리고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영주성 Lv.4 영주 집무실 효과] - 똥개도 제 집에선 킹왕짱!
실제로 집무실이 갖는 효과의 이름이었다.
모바일 영주식 표현이 적용되었지만 뭐, 아무튼.
“이게 소렌으로 추정되는 자들의 위치란 말이지.”
시안은 한스가 건넨 지도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제국의 지리적 정보가 담겨있는 지도.
지리적 정보라기보다는 동,서,남,북, 중앙의 구역.
그리고 주요 도시들의 위치가 그려진 요약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지도는 지도.
그런 지도에는 도합 10군데의 지역에 표시가 되어있었다.
모두 소렌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지역을 표시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 진짜 소렌이 있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습니다.”
시안의 말에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을 우려한 것인지 동선에 혼란을 주려는 움직임을 주더군요.”
“무언가 뒤가 캥기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입니다만···.”
이어진 한스와 위고의 말에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헤 상단의 자금을 들고 도망친 소렌.
뒤가 캥기지 않을 수가 있나.
“동료들이 계속 추적 중에 있습니다만···.”
이 이상으로 진척이 나가질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이것도 줄이고 줄인 것이란다.
그리고 본래라면 이렇게까지 추적하지도 못했다고한다.
소렌이 급히 움직이며 흘린 흔적들 때문에 이 정도까지 추적할 수 있었다고.
해서 함정인가도 의심했지만 그건 아니었다고 한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렌이 급히 움직여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그렇기에 이번이 아니면 사실상 소렌을 잡을 수 없다고 봄이 옳았다.
“여기 한 곳씩 모두 들쑤시는 건?”
“그랬다간 소렌이 누군가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입니다. 그럼···.”
“그 사실을 알아챈 소렌이 쥐도새도 모르게 꽁꽁 숨을 것이다, 이거지?”
“네.”
“음···.”
결국 10곳 일일이 들쑤시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 동시다발적으로 습격하는 건?”
“하루의 오차로 동시에 습격한다면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제국 전역에 퍼져있는 지역을 어떻게 딱딱 시간을 맞출 수 있을까.
“그리고 각 지역 내에서도 혼란을 주기 위해 동선을 분산시키고 있습니다. 위장 신분으로 누가 누구인지도 따로 조사를 해봐야합니다.”
“철저하네···.”
누군가 자신을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데 이 정도.
“흐음···.”
여러모로 소렌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괜히 문제가 있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찍을까···?’
싶었지만 금방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런데 소렌이 흘렸다는 그 흔적이라는 것은 뭐야?”
시안은 고민을 거듭하다 한스에게 물었다.
그동안 흔적조차 없다가 이번에 갑자기 흔적을 흘린 소렌.
“비정상적인 자금의 흐름이었습니다.”
“비정상적인 자금의 흐름?”
“네.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이 일시에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도에 찍힌 지역도 그 자금들이 흘러간 구역을 표시한 겁니다.”
“비정상적인 자금이라···.”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
“······ 어?”
그 순간 시안의 머릿속으로 생각이 하나 스쳐지나갔다.
비정상적인 자금의 흐름.
그리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
소렌은 브라헤 상단의 자금을 들고 도망친 주동자였다.
그리고 그 배후로 엘란두르와 관련이 있었고.
그렇기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이거 혹시···?”
엘란두르의 비자금아니야?
이렇게 생각해보니 꽤나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만일 엘란두르가 현재 비자금을 꺼내 쓰기 위해 소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 때문에 소렌의 흔적이 흘러나온 것이라면?
“뭔가 짚이시는 것이 있습니까?”
한스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위고 또한 궁금한지 멀뚱거리는 눈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자세한 건 확인해야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그 그 확인이라는 것은 하나.
아멜리아가 밝혀내고 있는 비자금의 출처.
그리고 만일.
아멜리아가 밝혀낸 비자금의 출처가 여기 10곳 중 한 곳과 겹친다면···?
고민할 것이 무얼까.
“지금 같이 아멜리아한테 가보자.”
시안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