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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하는 영주님!-202화 (202/322)

202화 - 엘란두르의 비자금(2)

시안의 발걸음이 뚝, 하니 멈춰섰다.

걸음을 멈춰서 바라본 아멜리아.

아멜리아는 결연한 눈빛으로 시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길게 내려앉은 적발 사이로 비치는 두 눈엔 어떤 의지가 깃들어있었다.

“지금 소렌 아저씨를 찾으러 가시는 거죠?”

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엘란두르의 비자금을 얻기 위한 일이었다만.

따지고 보면 별 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저도 데려가주세요. 아니, 저도 갈래요.”

아멜리아가 가녀린 주먹을 쥐어보이며 말했다.

시안은 가만히 아멜리아를 바라봤다.

잠깐의 정적.

“아멜리아 님도··· 말씀이십니까?”

한스가 나서며 아멜리아에게 물었다.

아멜리아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재차 말을 이었다.

“네. 소렌 아저씨를 직접 만나 묻고 싶어요. 왜 아버지를 배신해야만 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꼭 묻고 싶어요.”

살짝 숙여진 아멜리아의 고개.

아멜리아의 붉은 아랫입술이 살짝, 깨물어졌다.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을 시안은 가만히 바라만 봤다.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브라헤 가문을 배신하고 브라헤 가문을 몰락시킨 주동자, 소렌.

아멜리아에게 있어 소렌은 철전지 원수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멜리아의 말.

“소렌 아저씨가··· 왜 그래야만했는지 알고 싶어요.”

아멜리아는 소렌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차마 어쩔 수 없는 이유.

소렌이 아버지와 아멜리아를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믿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필연적인 어떤 이유가 있었다면.

소렌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면.

소렌을 조금이라도 용서할 수 있지 않을지.

신뢰로서 사람을 대해온 브라헤 상단.

브라헤가 몰락하고서도 아멜리아는 홀로 이끌던 상단을 이끌어오고 있었다.

상단의 이름은 진실 상단.

사람을 진실되게 대한다는 마음 가짐으로 아멜리아가 지은 상단 이름이었다.

브라헤는 브라헤라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식이니 브라헤가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제 와 뭘 어쩌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진실을 밝혀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뜻도 아니에요. 하지만···.”

꼭 말아쥔 아멜리아의 두 주먹.

“그 이유만은··· 꼭 직접 듣고 싶어요.”

아멜리아는 끝내 고개를 푹, 숙여보였다.

“하지만··· 아멜리아님. 너무 위험합니다.”

그런 아멜리아에게 한스가 우려를 표하며 답을 해왔다.

그리고 한스의 말마따나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단순히 소렌을 찾는 일이라 생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일에 얽혀있는 것은 다름 아닌 엘란두르였다.

물론 이미 엘란두르와 척을 진 상황에서 뭐가 문제겠냐만은.

문제는 그 ‘척을 진 상황’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소렌이 있을거라 추측되는 곳.

제국 남부에 위치한 암스베르크.

그곳은 다름 아닌 아벤느가의 백작령이었다.

이사벨의 본가(本家)인 아벤느가.

지금 가려는 암스베르크는 이사벨의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엘란두르의 한복판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야말로 적진의 한복판.

일이 수틀리면 그대로 고립될 수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다.

한스로서는 당연히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멜리아는 현명했다.

스스로의 위치를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제가··· 방해될 것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아멜리아는 말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그런 아멜리아의 모습에 한스는 더 이상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여전히 말아쥐어져있는 가녀린 아멜리아의 두 주먹.

“방해되지 않아.”

시안은 그때서야 입을 열었다.

시안의 말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들어보였다.

고양이가 올려다보는 듯한 두 눈은 투명한 무언가가 살짝, 맺혀있었다.

시안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무력적인 측면에서는 아멜리아는 큰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일이 수틀려 고립되면 아멜리아는 별 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방해가 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애초에 뭐 어쩌란 말인가.

물론 한 걸음만에 갈 수 있는 것을 두 걸음 가야할 터였다.

한 번에 할 수 있는 걸 두 번, 세 번해야할 번거로움이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 정도야 조금 더 움직이면 그만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조금만 더 바삐 움직이면 되었다.

그게 영주라는 사람이 해야할 역할이 아니던가.

각자의 역할과 능력이 다르다뿐.

그 역할에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지켜주는 것.

그게 시안이 영주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이지 않은가.

적어도.

“남부까지 가야되니까, 단단히 준비해.”

시안에게 영주란, 그러한 자리였다.

시안은 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런 시안의 등 뒤로.

“네!!”

힘찬 아멜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 아멜리아에게는 단단히 준비하라 일렀다만.

사실 준비할 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많은 것을 준비할 수가 없다는 것이 정확했다.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비밀 리에 움직여야 했으니까.

루벤의 병력들을 대동하고 움직인다면 소렌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누군가 자신의 뒤를 쫓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취를 감춰 버릴 터.

비밀 리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그런 의미로 루카스도 따라올 수 없었다.

브라헤 가문의 기사이자 아멜리아의 곁을 끝까지 지킨 기사, 루카스.

지금은 루벤의 경비대장을 역임하고 있다지만.

루카스는 브라헤에 대한 충성이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루카스 또한 같이 가고자 했다.

하지만 시안은 그런 루카스를 말렸다.

역시나 움직이는 인원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았거니와.

아무리 그래도 루벤의 경비대장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으니까.

물론 마수 따위야 이제는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엘란두르가 언제 수작을 부릴지 모른단 말이지.’

엘란두르가 언제 움직일지 몰랐다.

정확히는 어떤 수작질을 부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루벤의 전력은 최대한 보전해두어야했다.

해서 루카스 또한 그런 시안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영주님이라면··· 아가씨를 반드시 지켜주시겠지요. 알겠습니다. 저는 여기 남아 루벤을 지키고 있겠습니다.”

별 다른 이견 없이 루벤에 남아주었다.

해서 시안은 루카스는 물론 루벤의 기사와 병사들.

심지어 켄드릭 또한 모두 루벤에 남겨두었다.

그렇게 루벤을 빠져나온 이는 딱 5명.

시안과 아멜리아.

한스와 위고.

마지막으로 루벤의 사냥꾼, 그레이슨이었다.

그렇게 제국 남부, 암스베르크로 향하는 마차 안.

“브라헤 가문의 영애가 살아있었다니···.”

위고는 시안 옆에 자리한 아멜리아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조금 컸던 것일까.

“위고님··· 이라고 하셨죠?”

아멜리아가 시선을 들어 위고에게 물었다.

위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니에요. 험담을 한 것도 아닌데요.”

아멜리아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과거, 아버지께서 위고님에게 의뢰를 하셨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요.”

“그렇소. 브라헤 자작께서 소렌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했었지. 끝내··· 찾지 못했지만.”

위고는 끝 말을 삼키며 시선을 내려보였다.

“미안하오. 내가 그때 찾았더라면···.”

그리고 나지막히 들려온 위고의 말.

아멜리아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손사래를 쳐보이며 답했다.

“아니에요. 위고님이 미안하실게 뭐가 있나요. 당시 아버지께서도 위고님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아끼지 않으셨어요.”

“브라헤 자작이 그런 말씀을 하셨소?”

“네. 그리고··· 소렌 아저씨를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잖아요.”

이어진 아멜리아의 말.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안은 그 말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위고가 용병왕이라한들.

당시 소렌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멜리아의 말마따나 찾을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았다.

다름 아닌 지금에서야 밝혀진 진실.

브라헤의 몰락엔 엘란두르가 개입되어 있었으니까.

정확히는 아벤느가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말이 아벤느가였지 사실상 이사벨이 관여한 셈.

결국은 엘란두르가 개입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니 잡을 수가 없었지.’

어쩐지 이상하디 싶었다.

당시 사라진 브라헤 상단의 자금은 대략 3억 4천만 골드였다.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을 추적하지 못했다는 건 말이 안되었다.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다면 모를까.

그 동안 어느 누구도 그 진실을 파헤칠 수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리고 아멜리아의 아버지.

‘아멜리아, 세상에는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것이 있더구나. 돈을 초월하는 권력. 사람을 믿은 것은 지금도 후회가 없지만···. 권력을, 세력을 이루지 못한 것은 너무도 후회가 되는구나···.’

브라헤 자작이 왜 그러한 말을 하고 돌아오지 못했는지.

이제야 퍼즐이 딱딱 들어맞았다.

“그러니 위고님이 전혀 미안해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렇게 말해주어 고맙소.”

아멜리아의 말에 위고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이윽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괜시리 침울해진 마차 안의 분위기.

“그건 그렇고···.”

시안은 그런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입을 열었다.

“위고님. 소렌을 찾을 방법이 있습니까?”

물론 소렌이 암스베르크에 있다는 것은 특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스베르크의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암스베르크는 아벤느가 백작의 관할령.

그 중에서도 백작성이 위치한 대영지였다.

한 마디로 넓어도 너무 넓었다.

당연히 인구 또한 많았고 그 속에서 소렌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숲에서 나무 하나를 찾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에 우려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발하기 전에 동료들에게 소식을 미리 전해두었습니다만···.”

역시나 위고도 그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제 다들 나이가 있다보니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위고의 말에 한스가 거들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한스의 한 마디.

“하지만 그레이슨이 함께 하니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레이슨은 루벤의 치료사, 엘리의 아버지이자.

수 십년을 어둠의 숲에서 살아온 베테랑 사냥꾼이었다.

수 십년간 어둠의 숲에서 마수의 흔적을 쫓으며 살아온 사냥꾼.

그 때문에 그레이슨의 추적술은 타에 추종을 불허했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레이슨은 겸손하게 말을 했으나 아마 찾는데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물론 아무리 그레이슨이라도 드넓은 숲에서 나무 하나를 찾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몇몇 용의자들을 추릴 수만 있다면.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만 알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리고 듣자하니 한스의 옛 동료들이 이미 용의자들을 추려놓았다고.

시안의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스의 옛 동료들.

평범하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만···.

“돌풍 용병단··· 이라고 했었지?”

“과거 제가 활동했던 용병단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시안의 말에 한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가 돌풍 용병단의 단장이라고 했었고.”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돌풍 용병단.

시안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애초에 시안이 태어날 적도 전에 활약했던 용병단이라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저랑 한스는 많이 싸웠습니다. 대부분 제가 졌지만 말입니다.”

그런 돌풍 용병단의 일원 중 한 명이 위고.

현재 용병왕이라 불리는 이였다.

“그 정도였습니까?”

“말도 마십쇼. 성격이 얼마나 지랄맞은지. 한 번은···.”

그러면서 위고가 오랜 기억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말투 또한 조금 편해져있는 것이 과거의 이야기가 상당히 즐거운 모양.

“그때 한스가 술도 못 마시는 용병이 무슨 용병이냐며 제 입에 술을 통째로 들이 붓는데···.”

노인은 노인인가 싶었다.

“그래도 뭐. 한스의 실력은 진짜배기였습니다. 해결 못하는 의뢰가 없다는 돌풍 용병단의 이미지는 사실 한스가 만들었다 봐도 무방합니다.”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기억은 보통 미화되고 과장되기 마련이죠. 그러니 주책좀 그만 부리게 위고.”

“주책이라니? 난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네.”

“주책이 아니라 노망이 난 것이었군.”

“뭐야?”

그러면서 한스와 위고가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주름은 자글하고, 머리는 쇠어버린 두 노인이었건만.

“그때 그 술값을 나한테 전부 청구한 사실을 똑똑히 기억할 정도로 멀쩡하다고!”

“나중에 내가 반절은 내줬다는 건 잊어먹은 걸 보니 노망이 확실하군.”

어째 투닥거리는 건 어린 아이나 다름 없었다.

“친우들 만나면 세월은 의미 없다더니. 그게 맞는 말인가봐요.”

“그러게.”

아멜리아는 작게 웃음을 지어보였고.

시안은 어깨를 한 번 으쓱여보였다.

그러다 문득, 드는 궁금증 하나.

“그럼 한스. 그런 용병단을 왜 갑자기 나온거야?”

시안은 태어날 적부터 한스와 함께 했었다.

정확히는 시안이 과거를 기억하는 시점부터 한스는 곁에 있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건만.

이렇게 들으니 한스는 엘란두르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시안의 어머니, 세실 옆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뭐, 들은 바는 있었다.

세실에게 어떤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 하는데···.

그 이상으로 들은 것은 없었다.

워낙에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탓에 시안은 그 은혜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세실에게 물어도 그저 웃음만 지을 뿐.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어라? 백작 각하는 모르십니까?”

그러자 위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스, 백작 각하에게 말씀을 안 드렸나?”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해서 뭘 하나.”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씨익, 미소짓는 위고의 모습.

“그게 말입니다 각하. 어떤 여자 때문입니다.”

“여자?”

시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스가 여자 때문에 돌풍 용병단을 나왔다?

“그러고보니···.”

언제였던가?

시안은 한스가 결혼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처음 루벤으로 왔을 때였던 것 같았다.

고블린들을 만나기 전에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시안은 한스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당연히 시안은 한스의 아내가 누구인지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갑자기 흥미가 돋았다.

아멜리아 또한 흥미가 돋는지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그게 그러니까···.”

이어진 위고의 말.

바로 그때.

“나으리들. 암스베르크에 도착했습니다.”

앞쪽으로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스는 일어날 채비를 하며 시안에게 말했다.

“목적지에 다 온 것 같습니다.”

“그러게.”

시안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마저 말하라는 듯 위고를 바라봤다.

하지만.

“따라오게. 바로 동료들을 만나러 가야하니 말이네.”

“으잉? 자, 잠깐 한스.”

그러나 한스가 위고를 강제로 끌고 마차에 내려버린 탓에 그 이야기를 들을 수가 없었다.

#

마차가 도착한 곳은 엄밀히 따지면 암스베르크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암스베르크가 보이는 곳.

암스베르크 근방의 지역이었다.

그리고 암스베르크가 아닌 이곳.

암스베르크 근방에서 마차가 멈춰 선 이유는 간단했다.

“한스? 진짜 한스야?”

여기서 한스의 동료들을 만나기로 했었으니까.

마차에 내리자마자 들려온 목소리.

그곳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확인한 바.

어떤 여성이었다.

그리고 꽤나 젊어보였다.

그러니까 한스와 위고, 둘과 연배가 비슷해보이지 않았다.

쇠어버린 백발과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은 묻어나있었으나.

한스와 위고처럼 자글한 주름은 보이지 않았다.

겉보기로는 40대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 속에 그 빛을 바랬으나 과거 꽤나 미인이었을 상이었다.

“오랜만이군 보니타. 그동안 잘 지냈나?”

“와! 정말 한스잖아!”

보니타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눈을 크게 떠보였다.

“위고가 말했을 땐 노망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이것들이 진짜! 나 노망 안 났다니까!”

위고가 옆에서 한 마디 거들었지만 보니타는 가볍게 무시했다.

“이게 얼마 만이야 한스? 20년? 30년?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보니타는 날짜를 세듯 손가락을 몇 개 접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어버렸다.

“그게 뭐가 중요해. 괜히 나이만 들어보이지. 그건 그렇고···”

이윽고 보니타의 시선이 시안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쪽은?”

“아, 인사하게. 시안 도련님이네.”

“시안 도련님···?”

보니티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시안이라는 이름과 한스가 칭한 도련님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 이번에 새로운 제국의 별로 떠오른?”

보니타는 금방 시안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현재 제국에서 시안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거진 없다시피 했으니까.

“백작 각하를 뵈어요. 보니타라고 합니다.”

이윽고 보니타가 시안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시안은 그런 보니타에게 가볍게 화답했다.

“반갑습니다. 시안이라고 합니다. 한스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어머. 한스가 제 이야기를 하던가요?

그러자 보니타가 눈을 치켜 뜨며 시안에게 물어왔다.

묘한 눈웃음을 짓는 것이 어째,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보다 혼자인가 보니타? 막심과 토마는?”

일순간 한스가 보니타에게 물었다.

보니타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금방 답을 해왔다.

“그 둘은 지금 암스베르크 안에 있어.”

“암스베르크 안에? 왜 같이 나오지 않고?”

“아까 전까지 같이 있었어. 그런데 소렌을 찾았다며 허겁지겁 암스베르크 안으로 뛰어가던데?”

정말이지 지들 멋대로라니까.

보니타는 뒷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 응?”

“······ 응?”

“······ 네?”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리고 역시나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시안.

이 넓은 암스베르크에서 어떻게 소렌을 찾을까 싶었다만.

“거기가 어딥니까?”

어째, 오자마자 일이 끝나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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