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질하는 영주님!-207화 (207/322)

207화 - 돌풍 용병단(1)

접객실에는 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무거운 공기가 접객실을 내리눌렀고.

로즈웰은 그 어떠한 움직임을 내보이지 않았다.

마치 석화 마법을 맞은 것처럼 로즈웰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살며시 떨리는 두 눈만이 시안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비단 로즈웰뿐만이 아니었다.

덜컥.

우뚝.

네이슨과 홀란트.

그 둘 또한 움직임이 멈춰있었다.

울그락불그락하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안절부절 못하던 엉덩이는 어느새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누구하나 움직이지 않는 적막 속.

홀짝.

오직 시안만이 가볍게 찻잔을 들어올릴 뿐이었다.

시안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딱하게 굳어있는 로즈웰과 네이슨 그리고 홀란트.

그들의 모습에서 시안은 두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첫 번째.

‘역시, 홀란트도 알고 있었네.’

홀란트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엘란두르의 비자금과 소렌이 과거, 브라헤 상단의 자금을 들고 도망쳤다는 것.

홀란트는 모든 것을 알고 소렌을 숨겨준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비자금 때문에 온 게 맞네.’

로즈웰과 네이슨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비자금 때문이다.

정확히는 소렌과 관련하여 이곳에 온 것 같다만.

바보가 아닌 이상 같은 소리임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기사, 저 둘이 이곳에 있는 것이 이상했다.

이 시점에, 그것도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아벤느가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안은 손에 쥔 찻잔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달칵, 하며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적막한 접객실로 울려퍼졌다.

그리고 잠시.

“그게··· 무슨 말이지?”

로즈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정신을 차린 것일까.

로즈웰의 표정은 다시금 평정을 되찾았다.

“말 그대로입니다. 소렌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이어진 시안의 말에 로즈웰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그와 동시에 시안을 바라보는 로즈웰의 시선이 묘하게 달라졌다.

마치 시안을 탐색하는 듯한 눈빛.

이 새끼가 무얼 알고는 말하는 건가?

알고 있다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아니, 이 새끼가 그 이름을 어떻게···?

로즈웰의 눈빛에는 그런 복잡하고도 당황스러운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로즈웰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시안의 입에서 소렌이라는 이름이 나올 것이라고 정말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시안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분명 소렌.

그것도 다름 아닌 이곳, 소렌이 숨어있는 아벤느가 백작성에서 말이다.

그렇다는 건 어느 정도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아니, 알고 있다고 치자.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물어온다고?

로즈웰은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네.”

로즈웰은 금방 표정을 되찾으며 답했다.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시안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

그러나 완벽히는 아닐 거다.

그건 절대로 알 수도, 알아서도 안 되는 진실이었으니까.

로즈웰은 가볍게 찻잔을 들여보였다.

그와 동시에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차의 향을 음미했다.

그리고 그런 로즈웰을 바라보던 시안.

‘모르는 척 하시겠다?’

시안은 속으로 피식, 웃음을 흘렸다.

“누님은 모르시는 이름입니까?”

“몰라. 그리고 왜 여기서 찾는지 모르겠지만, 잘못 짚어도 단단히 잘못 짚었어.”

“저는 어디에 있냐고만 물었지. 여기에 있냐고 묻지 않았습니다만?”

“······”

로즈웰의 일순간 멍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게 그 소리 아니야? 지금 말장난 하자는 거야?”

로즈웰이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시안은 살짝 손사래를 쳐보이며 답했다.

“설마요. 저는 혹시나 누님께서 알고 계신 바가 있나 싶어서 말씀드린 겁니다.”

“없어.”

로즈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시안은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리고는 네이슨과 홀란트에게 물었다.

“형님과 할아버님께서는?”

“······ 없다.”

“······ 없다.”

네이슨과 홀란트가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그런 둘의 답에 시안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음··· 이상하군요. 제가 찾은 정보에 따르면 소렌은 여기, 아벤느가 백작성에 있는 것이 확실한데 말입니다.”

그러자 로즈웰은 물론, 네이슨과 홀란트의 눈이 동시에 치켜떠졌다.

마치 그걸 네가 어떻게···? 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시안은 그들의 반응을 모르는 척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 백작성의 사람들을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그런 시안의 말에 홀란트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시안은 역시나 모르는 척 계속 말을 이었다.

“그냥 떠나기에는 좀 찝찝해서 말입니다. 확실히 하고 가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 싶은데···.”

“당연히 안 된─.”

“할아버지랑 한 번 상의를 해볼게.”

홀란트의 말을 막듯 들려온 로즈웰의 목소리.

홀란트는 놀란 눈으로 로즈웰을 바라봤다.

로즈웰은 그런 홀란트에게 묘한 눈빛을 지어보이며 시안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지만 이 성은 할아버지가 주인이거든. 백작성을 수색하는 건 여러모로 할아버지의 허가가 필요하니까. 안 그래요 할아버지?”

“그, 그렇다.”

로즈웰의 말에 홀란트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시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손녀에게 잡혀사는 할아버지라니.

뭐, 시안이 기억하는 홀란트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니 여기서 잠시 기다려.”

이윽고 로즈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왜저러나 싶었다만.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 대해 시안이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려는 것 같았다.

한 마디로 작당모의를 하려는 것 같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로즈웰의 모습.

어떻게 할까··· 싶었지만.

“알겠습니다.”

시안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아벤느가 백작성의 홀란트 집무실.

콰앙!

“저 새끼가 소렌을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네이슨이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분노로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진 얼굴.

“몰라. 그리고 정신 사나우니까 좀 닥쳐.”

로즈웰은 그런 네이슨에게 싸늘하게 답했다.

가뜩이나 생각이 복잡해죽겠는데.

저리 시끄럽게구니 짜증만 일 뿐이었다.

그때서야 입을 닥치는 네이슨의 모습에 로즈웰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과거 브라헤 상단과 더불어 엘란두르의 비자금.

그 모든 것들과 연관된 소렌.

하지만 그건 이제는 알 수 없는 진실이었다.

몇 년전에 일어난 일이었고.

모든 진실을 뒤덮었으며.

관련한 인물들 또한 모두 죽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시안이 소렌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냥 떠보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소렌이라는 이름을 떠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었다.

무엇보다 엘란두르의 비자금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 비자금이 이곳, 아벤느가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그건 엘란두르의 장부를 모조리 조사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으니까.

그런데 그건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시안이 아는 것은 없어야했다.

소렌이 이곳, 백작성에 숨어있다는 것도.

엘란두르의 비자금이 이곳, 아벤느가에 있다는 것도.

그 어떠한 사실도 시안은 알 수도, 알아서도 안 되었다.

물론 시안이 정말 알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시안은 그저 ‘소렌’이라는 이름만 내뱉었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뭔가 짚이시는 게 없어요?”

쉬이 넘길 수는 없는 문제였다.

“나, 나도 모르겠구나···. 저 녀석이 어떻게 소렌을 알고 있는지···.”

홀란트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답을 했다.

역시나 홀란트 또한 알고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다가온 상황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뭔가 알고 온 게 확실해.”

해서 로즈웰은 시안이 무언가를 알고 있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물론 단순히 해프닝이자 우연의 일치일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쯤되면 우연이라 치부할 수 없었다.

시안은 관련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나! 그냥 가서 죽여버리면 안돼? 보니까 무장도 하지 않은 것 같은─.”

“넌 제발 좀 닥쳐!”

로즈웰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물론 로즈웰도 마음 같아선 시안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뻔뻔하게 제 발로 적진 한복판에 걸어들어온 시안.

막말로 지금 당장 목을 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곳, 백작성 내부에서는 안 되었다.

그랬다간 황가가 나서는 명분을 만들어주게 되니까.

루벤과 엘란두르.

그 둘 사이에 황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까짓거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황가가 나서도 상관 없었다.

물론 아무리 엘란두르라고 한들.

황가를 상대로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안을 잡을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시안만 잡으면 루벤은 끝이었으니까.

황가의 개입이야 사과와 사죄 그리고 처벌을 받으면 되었다.

처벌이 가볍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시안을 잡을 수 있다면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걸 로즈웰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리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저 새끼가 아무 대책도 없이 왔을 거 같아?”

시안이 생각없이 저렇게 왔을리가 없으니까.

듀라크는 물론 이사벨을 완벽하게 속인 시안이었다.

그로써 엘란두르에게 뒤통수를 거하게 날린 시안이었다.

제국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일을 버젓이 해낸 시안.

그런 시안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곳에 왔다?

시안은 이곳, 아벤느가가 이사벨의 영역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적진 한복판이라는 것을 시안은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안은 당당히 정문 앞으로 걸어왔다.

마치 해보라면 해보라는 듯이 말이다.

필시 어떤 대비와 방비를 해두었을 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밑작업을 해두었을 터.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되려 이쪽이 당할 수 있었다.

물론 진실은 정말 대책없이 온 것이 맞았다.

그리고 시안은 로즈웰과 네이슨이 이곳에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앞서 시안이 보인 행적에 로즈웰은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럼 어떡하자고. 저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그리고 만에 하나 저 새끼가 소렌을 찾기라도 하면···.”

그러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네이슨은 주먹을 움켜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로즈웰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저 새끼가 소렌을 찾는다해도 문제는 없으니까.”

“그게 무슨··· 아.”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비자금은 찾을 수가 없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소렌만 찾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비자금을 감추어둔 수많은 장치들.

이사벨은 철저하게 비자금을 은폐했다.

모든 경우와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설계했다.

에이, 저런 상황까지 오겠어···? 하는 상황들을 모두 생각하고 변수를 차단했다.

카이, 로즈웰, 네이슨.

먼 훗날 이 세 명 중 한 명만 살아도 비자금을 찾을 수 있게 해두었다.

물론 소렌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찾을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로즈웰과 네이슨이 이곳에 직접 온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

그러니 시안이 소렌을 찾는다 한들.

결국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찾을 수가 없었다.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엘란두르의 핏줄이 아니면···?”

로즈웰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엘란두르의 핏줄.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이사벨이 아닌 듀라크의 피.

이사벨의 자식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엘란두르의 가주, 듀라크 엘란두르.

그 피를 이어받았냐 못 받았냐의 여부였다.

그리고 시안.

시안은 이사벨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

하지만 듀라크는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시안은 듀라크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명분상으로도 엘란두르의 핏줄로서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시안이 백작위를 받으며 엘란두르의 이름을 버렸다.

그렇기에 엘란두르의 핏줄이라기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정식 작위식이 진행되지 않았다.

백작위를 받았지만 제국법 상 기록된 시안은 아직 백작이 아니었다.

백작의 권한과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실질적인 효력일 뿐.

형식적으로는 아직 백작이 아니었다.

그로써 시안은 새로운 성이 없었다.

엘란두르가 아닌 다른 성이 없었다.

그 말은 즉.

현재 시안의 이름은 ‘시안 엘란두르’.

제국법 상 시안은 엘란두르의 핏줄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

그 순간 로즈웰의 머릿속으로 소름끼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부릅, 떠지는 두 눈.

“지, 지금 소렌이 어디에 있죠!”

로즈웰이 홀란트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

“지금 백작성 내부에서 병력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레이슨의 보고에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소렌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그레이슨의 말.

비록 그레이슨은 ‘같습니다.’로 말을 끝맺었지만.

추적술의 달인인 그레이슨이 저리 말할 정도면 확실하다고 봐야했다.

“이거··· 백작 각하가 제대로 들 쑤셨나보군.”

“대체 뭘 어떻게 하신 거야?”

위고와 보니타가 감탄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안이 백작성에 들어간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움직인단 말인가.

못해도 하루 정도는 꼬박 새어야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정확히는 불가능한 일이라 내심 생각하고 있었건만.

“이러면 굳이 야영을 할 필요가 없겠군.”

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위고를 뒤로한 채, 한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력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

“30명 정도로 파악됩니다. 그리고 차림새는 병사의 모습이었지만··· 행동 거지를 보면 꽤나 단련된 이들로 생각됩니다. 아마··· 기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레이슨의 보고에 한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30명에 달하는 기사.

솔직히 쉽게 볼 수 없는 전력이었다.

쉽게 보는 정도가 아니라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다.

병사 30이라면 모를까 기사 30이면 만만히 볼 수 없었다.

게다가 평범한 기사들도 아니었다.

남부의 명망 높은 귀족이자 이사벨의 본가(本家)인 아벤느가의 기사들.

엘란두르의 하얀 늑대 기사단만큼은 아니겠다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 높은 기사들이었다.

루벤의 기사들을 대동할 수 있었더라면.

하다 못해 루벤의 병사들이라도 있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터였다.

아벤느가의 기사들이라고 한들.

루벤의 병사들에게는 한 수 밀렸으니까.

하지만 루벤의 병사들은 지금 없었다.

이쪽의 전력은 고작 7명.

여기서 아멜리아를 제외하면 6명.

그것도 늙디 늙은 노인들 5명에 사냥꾼 1명이 전력의 전부였다.

여기에 아멜리아를 지키는 것까지 생각하면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건 5명.

30의 기사를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 천금같은 기회를 날릴 수는 없는 법.

“다들 준비해. 바로 출발한다.”

한스는 자신을 바라보는 동료들에게 말했다.

#

아벤느가 백작성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

암스베르크 근방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산속.

“하악···! 하악···!”

거친 호흡을 내뱉는 뚱뚱한 사내.

“이런··· 제기랄!”

소렌은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몸.

평소대로라면 지금쯤 백작성에 편안히 누워있어야했다.

백작성의 가장 안전한 곳에서.

모든 것이 최고급으로 이루어진 방에서.

어여쁜 여인들을 껴안으며 쾌락을 즐기고 있어야했다.

“하악···! 하악···!”

이런 험준한 산길을 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소렌은 숨을 헐떡거리며 산길을 올랐다.

두툼한 뱃살이 출렁이며 끈쩍한 땀이 흘러내렸다.

“제기랄! 젠장! 제기랄!”

소렌의 입으로 수많은 욕지거리들이 자연스럽게 내뱉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쉬어가고 싶었지만 또 그럴 수가 없었다.

백작성에 갑자기 들이닥친 웬 놈팽이.

그 놈팽이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야했으니까.

“하악···! 하악···! 제에엔장!”

소렌은 숨을 헐떡거리며 험준한 산길을 올랐다.

그 순간.

멈칫.

소렌의 앞에 가던 병사가 돌연 발걸음을 멈추었다.

쿵.

그 탓에 소렌은 병사의 등에 부딪히며 철푸덕, 바닥으로 넘어졌다.

체력의 한계로 정신이 없던 터라 반응도 못했을 뿐더러.

중심을 잡을 여유도, 힘도 없었으니까.

“뭐야!”

소렌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가뜩이나 지랄맞은데 이게 뭐란 말인가.

소렌은 이를 까득, 깨물며 앞선 병사에게 소리쳤다.

“왜 갑자기 멈─”

그리고 바로 그때.

투웅─!

쇠뇌가 당겨지는 둔탁한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쇠뇌가 당겨지는 소리···?

···라는 의문이 들기도 전.

쐐액─!

바람을 가르며 한줄기 화살이 소렌을 향해 날아들었다.

소렌은 한점처럼 보이는 화살에 어떤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캉!

그리고 다시 들려온 쇠음.

바라본 그곳엔 앞선 병사가 소렌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날아드는 화살을 쳐내었는지 힘을 잃은 화살이 시야 밖으로 튕겨져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병사가 갑자기 멈춰선 이유가 이 화살 때문인 것 같았다.

기척을 감지할 것도 모자라.

갑작스레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낸 병사.

결코 평범한 수준의 병사라고 생각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적습이다!”

화살을 튕겨낸 병사가 크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챙! 채챙! 소렌 주위의 병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병사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갖추었다.

이윽고 화살이 날아든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바라본 그곳.

그곳엔 숲의 어둠을 가르며 일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인···?”

그건 어떤 노인들이었다.

얼굴엔 주름이 자글하고.

근육은 세월에 묻혀 그 힘이 빠진 늙은이들.

그런 노인들이 도합 5명이 있었다.

그리고 저마다 장검, 도끼, 단검, 쇠망치, 메이스의 특색있는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꿀꺽.

그 모습에 소렌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눈에 보이는 모습은 노인이었다.

모두 세월 속에 흘러간 늙은이들.

그런데 느껴지는 기세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늙고 쇠약한 오우거라도 오우거인 법.

지금 5명의 노인들에게서는 그런 기세가 느껴졌다.

이윽고 한 노인이 터벅, 앞으로 나서보였다.

“그레이슨. 후방 지원을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그런 노인의 말과 함께 숲의 어둠 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5명의 노인 이외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들리나 그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 한바탕 놀아볼까!”

“죽기 전에 이 멤버로 다시 한 번 싸울 수 있다니.”

“크하하하핫!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구만!”

이윽고 들려오는 노인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그 소리에 가장 앞선 노인, 한스가 천천히 검을 말아쥐었다.

과거, 돌풍 용병단이 해결하지 못하는 의뢰는 없다.

용병계에 전설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간 돌풍 용병단.

한스는 그런 돌풍 용병단의 단장이었으나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었다.

지금은 루벤의 행정관.

다른 동료들과 달리 한스는 검을 놓은 세월이 너무도 오래 되었다.

단련을 하지 않은 세월이 또한 너무도 길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 빛은 바래지고 바래졌다.

하지만.

“위고. 과거에 브라헤 자작의 의뢰를 해결하지 못했었다고.”

전설은 전설이기에 전설인 법.

“그래. 돌풍 용병단의 명성에 흠집을 가했지.”

씨익, 웃음을 짓는 위고의 모습에 한스는 차분히 검을 말아쥐었다.

정말로 오랜 만에 쥐어보는 검이건만.

그리고 다시는 잡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었건만.

손에 느껴지는 오랜 기억의 감각.

“그 의뢰. 돌풍 용병단이 이어서 수행한다.”

그 감각이, 그리 어색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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